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0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07화(408/412)
#407화. 외전7 – 경배하라
└ 죽어! 이 머저리 같은 자식아! 감히 누굴 건드려!
└ 뭐? 니가 한수혁보다 나은 선수라고? 머리통에 구멍이 나고 싶은 거지?
└ 한 해 반짝한 놈이 어디서 야구의 신을 넘봐?
└ 이 멍청한 자식 머릿속에는 뇌 대신 파스타가 들어차 있는 게 분명해
└ 지나가던 보스턴 팬인데 이건 누가 봐도 시애틀 놈들 말이 맞아
└ 감히 신을 능멸한 죄, 죽음으로 갚게 될 거다. 이 개자식아!
턱
“…빌어먹을.”
“데이빗, SNS는 그냥 닫아놓으라니까. 고통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걸 왜 자꾸 들여다보는 건데?”
“젠장,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지난 시즌 성적을 보라고. 리그 수준 차를 고려하면 분명 내가 한수혁보다 낫지 않았어? 난 그저 팩트만을 말했을 뿐이라고.”
“알아, 알긴 아는데…….”
시애틀의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피닉스에서 동쪽으로 2,200마일 떨어진 플로리다, 뉴욕 양키스의 캠프에 합류한 데이빗 블레이크가 자신의 에이전트를 앞에 놓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 데이빗을 보며 에이전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난 시즌 첫 투웨이에 성공한 데이빗이 투수로서 평균자책점 1.61에 16승, 타자로서 타율 0.333에 홈런 62개를 기록하는 동안 한수혁은 KBO에서 평균자책점 1.58, 홈런 55개에 그쳤으니 리그 차를 감안해 계산하면 분명 데이빗의 성적이 더 나았다.
‘그 친구가 육아 때문에 30경기 이상을 결장한 건 그냥 무시하고, 거기에 자잘한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것도 빼면 말이지.’
무엇보다 한수혁이 데이빗의 나이일 때 그는 매 시즌 80개 내외의 홈런과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그야말로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팩트가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고객을 달래는 것이었으니까.
“어쨌든 데이빗, SNS 같은 건 신경 끄고 찬란한 미래만 생각하라고. 결국 우리가 이겼어. 12년 8억 달러! 엄청나지 않은가? 자넨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몸값을 가진 선수로 기록될 거라고. 자, 스마트폰에서 눈 떼라니까?”
“쯧…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이런 좋은 날 SNS 때문에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지. 알프레드, 수고 많았어. 수수료는 충분히 가져가라고, 친구.”
“좋아. 바로 그 말을 기다렸다고, 흐흐.”
지난 스토브리그 동안 진행된 데이빗 블레이크과 뉴욕 양키스 간의 장기계약 줄다리기는 결국 데이빗의 승리로 끝났다.
기존 메이저리그 최고액 계약이었던 오타니 쇼헤이의 10년 7억 달러를 넘어선 12년 8억 달러에 도장을 찍은 뉴욕의 황제 데이빗 블레이크.
빅리그 데뷔 후 줄곧 투웨이를 시도했지만 부상 등의 이유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그는 지난 시즌 처음으로 풀 시즌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1.61, 16승, 타율 0.333, 홈런 62개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혹자는 말한다.
내구성에 있어 이런저런 문제점을 드러냈던 데이빗에게 12년짜리 계약을 안긴 건 실수라고, 그 계약이 양키스를 지옥으로 끌고 가게 될 거라고.
하지만 양키스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야구 실력뿐만 아니라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뉴욕의 황제로 떠오른 그를 붙잡기 위해서는 모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번 계약으로 인해 데이빗은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고 새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목표와 함께 말이다.
“그나저나 데이빗, ESPN에서 온 인터뷰 요청은 어떻게 할 텐가? 트레이닝 중이니 서면으로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몇 가지 민감한 질문이 섞여 있어서 말이야.”
“민감한 질문?”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질문 중에 이런 게 있더군. 선수로서, 그리고 팀으로서 한수혁과 시애틀 매리너스를 이길 자신이 있는지, 젠장, 이건 뭐라고 대답해도 욕먹을 게 뻔한 질문이잖아. 개자식들.”
“알프레드.”
“그래, 말해봐. 데이빗.”
“고민할 필요 있나? 그냥 자신 있다고 답변해. 어차피 한쪽에서 욕을 먹어야 한다면 우리 팀이 아닌 다른 팀 팬에게 먹는 게 낫잖아. 그리고…….”
“음?”
“정말로 이길 자신도 있고 말이야. 빌어먹을, 아무리 한수혁이라 해도 이제 곧 마흔이야. 이제 그의 시대는 끝났어. 두고 보라고, 내가 새 시대의 야구 황제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여줄 테니까.”
* * *
한수혁이 입단하기 전 시애틀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는, 그야말로 만년 하위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약팀이었다.
하지만 한수혁이 입단한 후 10년간,
시애틀은 역사상 그 어떤 팀도 비교할 수 없는, 현대 야구 이전 제국이라 불리던 양키스조차 넘볼 수 없는 역사를 써내려갔다.
아메리칸 리그를 지배했던 양키스, 레드삭스, 레인저스 같은 팀들이 매리너스의 기세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반대편 내셔널리그 팀들은 월드시리즈에 나가봐야 어차피 우승은 시애틀의 것이라며 자포자기하기 일쑤였다.
물론 세상에 영원한 건 없었다.
한수혁이 고국으로 돌아간 후 치른 7시즌,
매리너스는 사상 최강의 팀에서 평범한 강팀으로 돌아왔다.
그가 남긴 유산이 작동하던 초창기에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트로피를 더 가져왔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한수혁의 공백을 틈타 적극적인 선수 수집에 나선 양키스, 그리고 전통의 강호 레드삭스에 밀려 월드시리즈조차 진출하지 못한 것이다.
양키스가 2년 연속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시애틀 팬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한때 아메리칸 리그, 아니, 메이저리그 최강이었던 팀의 하향세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제길, 끝내주는군. 다시 저 친구를 볼 수 있다니.”
“오, 신이시여. 매리너스에 영광을!”
스프링 트레이닝 종료와 함께 시작된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그 시범경기 동안 단 한 차례도 출전하지 않았던 한수혁이 시애틀 홈구장에서 열리는 마지막 시범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시애틀 팬들, 그리고 전설의 귀환을 눈으로 보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야구팬들이 눈을 크게 뜬 채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전광판에 새겨진 그의 이름,
3번 유격수 한수혁.
찬란하게 빛나는 그 이름이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나저나 유격수라니……. 아무리 한수혁이라 해도 가능할까? 그의 나이도 벌써 38이잖아? 젠장, 좀 더 편한 자리를 줘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듣기로는 한수혁이 자청했다더군. 후안 디아즈 그 빌어먹을 자식이 양키스로 튀… 하아, 그 생각을 하니 또 뒷골이. 어쨌든 주전 유격수가 팀을 떠났고 마이너에는 마땅한 자원이 없으니… 팀에 가장 취약한 부분을 메꿔주려는 모양이야.”
”빌어먹을, 끝내주는군.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 몇 년 정도는 더 뛰어도 될 텐데 딱 1년만이라니.“
“그건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지.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자고. 어쩌면 우리 인생에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 순간을 말이야.”
* * *
“한!”
“소리 지르지 말라니까.”
“앗, 죄송합니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제 타격에 대해 조언해주실 부분은 없을지 해서…….”
“조언이라… 뭐, 공을 좀 더 차분히 지켜보는 건 어떨까?”
“차분히… 차분히… 과연, 역시 역대 최고 선수의 조언은 뭔가 다르군요. 뭔가 확 와닿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이 팀에 합류한 후부터 줄곧 내 뒤를 따라다니며 시끄럽게 구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파이브툴 재능의 소유자라 불리는 노아 마르티네스가 당당한 걸음으로 배팅박스에 들어섰다.
음…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확실히 맞는 말인 거 같다. 저 녀석의 롤모델이라 할 수 있는 데릭 플레밍, 서형주와 저놈의 나이 차이가 대충 10살 정도 차이 나니 말이다.
어쨌든,
7시즌 만에 돌아온 매리너스는 많이 변해 있었다.
명색이 구단주이기에 한국에서 뛰는 동안에도 계속 선수단에 대한 보고는 받아왔지만, 이게 서류나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 그 안에 들어와서 보는 것은 많이 달랐다.
내 팀이라는 생각을 거두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본 시애틀 매리너스라는 팀은…….
음,
일단 레너드가 버티고 있는 포수 자리와 서형주 놈이 지키는 2루는 꽤 경쟁력이 있다. 둘 다 서른 후반대에 접어들었다는 게 문제이지만 백업을 잘 활용하면 시즌을 치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FA로 데려온 베테랑들이 지키는 좌우 코너 외야수 자리도 나쁘지 않다. 둘 다 파워는 조금 부족하지만 3할 가까운 타율로 130 이상의 WRC를 찍어주는 쓸 만한 선수들이다.
문제는 신인급들이 지키는 나머지 자리다.
1루와 3루, 그리고 중견수, 젊은 피라고 쓰고 애송이라 불러야 마땅할 놈들이 지키는 포지션들 말이다.
현재보다는 미래를 봐야 한다는 말, 그래, 좋은 말이다.
이 팀이 윈나우를 지향하는 팀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번 시즌이 내 마지막 시즌이 아니라면 말이다.
쯧.
따악!
“아웃!”
잠깐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오늘 시범경기에 리드오프로 나선 노아 녀석이 유격수 직선타로 아웃되었다.
방금 전까지 의기양양해 있던 녀석이 내 눈치를 슬슬 보며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저 녀석은 내가 은퇴한 후, 그리고 서형주 저 녀석이 그라운드를 떠난 후 이 팀의 기둥이 될 것이다. 지난 삶에서 노아 마르티네스라는 선수가 어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내 눈으로 바라본 녀석은 그만한 잠재력을 가진 타자임에 분명했다.
[2번 타자 세컨베이스맨 서형주]원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 내 친구이자 이 팀의 캡틴인 서형주가 타석에 들어섰다.
지난 시즌 최악의 부진을 겪은 녀석은 타격 매커니즘에 많은 변화를 줬다. 잡아당기는 어퍼 스윙에서 밀어치는 레벨 스윙으로 폼을 조정하고, 타석에서 조금 더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이 녀석이 택한 새로운 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이를 먹어 빠른 공 대처 능력이 떨어진 타자가 살아남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따악
“파울!”
“젠장!”
방금 전 타구가 바로 그 증거다. 한가운데 들어오는 밋밋한 포심을 힘껏 잡아당겼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파울이 되어버렸다.
어떻게든 나를 이겨보겠다고 파닥거리던 녀석이 언제 저렇게 나이를 먹은 걸까.
시간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 역시 나이를 먹었다. 어쩌면 데이빗 블레이크인지 후레이크인지 하는 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제 막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는 26살 애송이와 경쟁하기에 내 나이가 너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나는 지난 삶에서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망가진 몸을 이끌고 최고의 자리에 섰던, 그 어떤 고난에도 야구공을 놓지 않았던,
두 번째 기회를 허락받으며 이제야 비로소 야구가 뭔지 알게 된,
나는 한수혁이다.
따악!
“세이프!”
유격수 쪽 깊은 땅볼을 치고 1루에서 간신히 살아난 친구가 숨을 헐떡이며 나를 바라본다.
평균 나이 38세의 키스톤 콤비이자 이 팀의 상위타선을 함께 이끌게 될 내 친구.
씨익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친구,
친구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수 있는 상대가 있음에, 그런 녀석과 함께 내 길고 길었던 야구인생의 마지막을 같이 할 수 있음에, 현 시점 메이저리그 최강의 선수라는 애송이와 다시 한 번 승부를 겨룰 수 있음에 감사한다.
지난 삶을 통틀어 50년 가까운 시간을 바친 내 야구인생의 마지막이 이토록 멋질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런 감사한 마음을 담아,
슈웅
대략 97마일 정도로 보이는 포심에 타이밍을 맞춰서 힘껏,
따아아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아아!”
언제 들어도 상쾌하기 이를 데 없는 함성을 들으며 다이아몬드를 산책.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상대팀 야수들을 지나,
턱
“젠장, 이 괴물 자식! 난 겨우 내야안타인데. 다시 해! 이번 타석은 무효야!”
나이를 거꾸로 먹었는지 여전히 철없이 구는 친구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빌어먹을! 그래! 바로 이거지! 올 시즌도 잘 부탁한다고, 친구!”
“한! 경기 중에 죄송한데… 혹시 그 배트… 저한테 비싸게 파실 생각은 없으실… 아아! 감독님! 말로 하세요! 말로! 아아! 진짜 아프다고요!”
떠들썩한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며,
“한수혁! 한수혁! 한수혁!”
“야구의 신이 돌아왔도다! 모두 경배하라!”
“올 시즌 월드시리즈 챔피언은 시애틀이다! 개자식들아!”
8년 만에 마주한 관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나는 그렇게 내 야구인생 마지막 장이 될 역사의 순간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들었다.
먼 훗날 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추억하게 될 역사의 순간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