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0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08화(409/412)
#408화. 외전8 – 마지막을 향해
“넌 진짜 잔인한 놈이야. 이제 막 새싹을 피우려는 어린애들을 그렇게 밟아놔야 쓰겠냐?”
“뭐?”
“라고 우리 와이프가 전해달라더라.”
“흐흐, 미친놈.”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장한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는 12 대 3, 매리너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올 시즌 선발 로테이션 합류가 결정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영건들을 상대로 나는 홈런 세 방을 터뜨렸다.
그 경기를 끝으로 정규시즌 전 모든 일정을 마친 나는 서형주와 함께 내 또 다른 친구이자 은퇴 후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사장으로 변신한 안치욱의 가게를 찾았다.
“그나저나 스테이크는 어때? 너희들 주려고 내가 직접 구운 건데.”
“안치욱.”
“어?”
“아무리 매장이 바빠도 너 절대 주방에는 들어가지 마. 살다 살다 이렇게 못 구운 스테이크는 첨 본다. 야, 대체 어떻게 하면 스테이크가 이 모양이 될 수 있는 건데?”
“나쁜 놈… 빈말이라도 맛있다고 해주면 안 되냐.”
“음식은 전문가에게 맡기란 소리야. 그나저나 네 와이프는? 오늘은 매장에 안 오나? 인사라도 하고 가고 싶었는데.”
“어제 경기 끝나자마자 보스턴으로 날아갔어. 그쪽으로 매장 확장하는 문제 때문에 나도 얼굴 잘 못 봐.”
“흐음… 형주야. 진짜 신기하지 않냐? 이놈이 미국 여자랑 결혼해서 여기 눌러앉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 안 그래?”
“사실 난 눈치채고 있었지. 자이언츠랑 경기할 때마다 이놈이 자꾸 사라지더라고. 하도 궁금해서 몰래 쫓아갔더니 이 새끼가 글쎄, 수혁이 너도 거기 알지? 자이언츠 구장 건너편에 극장 있고 그 옆으로 이어지는 호텔…….”
“야야! 시발! 하지 마! 여기 직원들도 있는데!”
“뭐 어때? 어차피 결혼도 했는데. 들으면 뭔 상관.”
“그게 아니라, 아우, 시발.”
“뭐야, 안치욱, 너 설마…….”
“그만 좀 하라니까.”
“설마, 야, 너 그거 다른 여자였어?”
“제발 그만 좀 해라……. 부탁이다. 응?”
“와, 이놈 봐라. 와아… 하느님 맙소사, 이런 놈도 이렇게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데 나는 대체…….”
한국에서 뛸 때도 여자 친구는커녕 여자 팬조차 없다고 투덜거리던 안치욱은 현역 말년에 만난 미국 국적의 사업가와 결혼해 야구계를 떠났다. 구단에서는 코치직을 제안했지만 녀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야구와의 이별을 선언했다.
반면 그 누구보다 여자에 관심이 많았던 서형주 놈은 저 나이 먹도록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하지 않은 채 야구에만 올인하고 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두 녀석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과연 믿을까?
“그나저나 한수혁, 너 진짜 괜찮겠냐?”
“뭐가?”
“올 시즌에 유격수 겸 1선발로 뛸 거라며.”
“어, 그렇게 안 하면 우승 못 할 거 같더라.”
“야, 너도 이제 곧 마흔이야. 그러다가 어디 탈난다.”
“내가 넌 줄 아냐? 아까부터 말 안 하고 참고 있었는데, 이게 대체 뭐냐? 어? 이게 운동선수 출신 몸 맞아? 허리에 타이어를 두르고 다니네, 이 새끼.”
“아아아아아! 놔! 시발! 아프다고!”
내가 미국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겠다 선언한 후, 그리고 오랜만에 유격수 자리에 복귀하기로 결정한 이후 사방팔방에서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 지난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30경기 정도를 결장하긴 했지만 프로데뷔 이후 처음으로 60개 미만의 홈런을 쳤고, 평균자책점 역시 사상 처음으로 1점 중반대를 넘어섰으니 말이다.
이유를 대자면 여러 개가 있다. 수술했던 부위가 살짝 불편하기도 했고, 오랜 시간 피로가 누적된 근육들이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며 신체 밸런스가 무너졌다. 거기에 예린이가 월드투어를 떠나는 바람에 대신 시원이를 돌봐야 했고 말이다.
하지만,
“치욱아.”
“어?”
“와이프가 자이언츠 팬이라고 했지?”
“그치, 그 집안 삼대가 다 자이언츠 팬이야. 나 처음에 그 집에 인사하러 갔다가 샷건 맞을 뻔했잖아. 생각해 보니까 내가 자이언츠에 꽤 강했더라고.”
“음, 그래. 그럼 올해도 고생 좀 해야겠네.”
“왜?”
“걔들 나한테 박살 날 거거든.”
“우와… 재수 없는 새끼. 말하는 것 좀 봐. 하긴 내가 누굴 걱정한 거냐.”
지금 내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지난 시즌과 지지난 시즌 꽤 많은 경기를 결장해서일까, 아니면 더 이상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일까.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넘친다. 오랜만에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난 분명 경고했다. 우리 팀하고 자이언츠랑 붙을 때는 되도록 와이프랑 같이 경기 보지 마라.”
가만… 올해 자이언츠랑 인터리그 경기가 언제더라?
* * *
–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팬 여러분,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8년 만에 빅리그 복귀를 결정한, 자신의 마지막 은퇴 시즌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한 야구의 신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냅니다! 홈팀 시애틀 매리너스와 원정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간의 시즌 1차전, 지금부터 ESPN을 통해 지켜보실 수 있습니다!
– 조셉, 너무 흥분한 것 같군요.
– 네, 스티브. 그럴 수밖에요. 드디어 한수혁의 플레이를 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스포츠 캐스터를 선택한 과거의 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 흐흐. 시간이 흘렀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 한수혁을 처음 보는 캐스터와 경기를 중계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 어쨌든 스티브, 지금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한수혁 선수와 관련된 이야길 테지만 그 이야기는 경기를 진행하며 계속 나올 테니 일단 양 팀에 대한 소개부터 해 주시죠.
– 물론입니다. 먼저 시애틀 매리너스는 지난 시즌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2위 팀입니다. 와일드카드로 시작해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올라갔지만 뉴욕 양키스에게 전패를 당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은 무산되고 말았죠. 이에 맞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서부지구 3위를 기록한, 평균 연령 24세에 빛나는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입니다. 매리너스의 평균 연령이 32세인 걸 감안하면 저 팀이 얼마나 어린 팀인지 실감이 나실 겁니다.
– 좋습니다. 라이언 티보우 감독이 공언한 것처럼 이번 개막전에 한수혁 선수는 선발투수 겸 3번 타자로 출장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를 놓고 말이 많았죠? 아무리 한수혁이라 해도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유격수까지 하는 건 무리가 있을 거라고요?
– 맞는 말입니다. 물론 무리가 있겠죠. 하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정말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잊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그게 뭘까요?
– 현대야구에서 불가능할 거라 여겨진 투웨이를 20년 가까이 계속해온 게 바로 한수혁이라는 걸 말이죠. 그런 선수가 가능하다고 했으면 정말 가능한 것 아닐까요? 우리는 야구의 신에 대한 믿음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 * *
“젠장, 왜 이렇게 난리야? 그냥 야구 경기일 뿐이잖아.”
“차라리 개막전이 원정경기라서 다행이군. 빌어먹을, 내 SNS를 봐. 경기에서 지면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니, 이거 우리 팬은 맞는 거야?”
“십 몇 년 전 얘기를 왜 우리한테 하는 건데… 난 그때 코흘리개 어린애였다고…….”
시애틀 매리너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간의 관계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과거의 원수, 그리고 현재의 지구 라이벌 정도로 할 수 있겠다.
한수혁이 미국에서 뛰던 당시 시애틀에게 오클랜드는 그야말로 보약, 그 자체였다. 몇 차례의 벤치 클리어링으로 인해 완전히 기가 꺾인 오클랜드는 시애틀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지만 한수혁이 한국으로 떠난 후 두 팀 간의 관계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윈나우 정책을 시행 중인 시애틀, 반면 예나 지금이나 최소한의 자본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머니볼 정책을 고수 중인 오클랜드.
팀 운영방침은 정반대이지만 성적 자체는 비슷했다. 지난 3시즌 동안 두 팀 간의 상대 전적은 시애틀의 근소한 우위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현재 오클랜드에서 뛰고 있는 평균 연령 24세의 루키들의 머릿속에는 과거 시애틀과 있었던 악연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올 시즌 가을야구 진출을 다투게 될 지구 라이벌, 딱 그 정도가 보편적 인식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팬들이었다. 십 수 년 전의 원한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오클랜드의 팬들.
└ 다른 놈도 아니고 한수혁한테 또 치욕적인 모습을 보일 거면 그냥 거기서 죽어버려!
└ 갖고 있는 걸 모두 때려 박아! 어떻게든 시애틀, 아니, 한수혁 그놈을 박살 내라고!
└ 아주 오래 전 시애틀 놈들과의 경기를 보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셨지. 그때부터 내 원수는 시애틀이 되었어.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냐고? 젠장, 다행히 살아계셔. 지금 옆에서 소리를 지르며 너희들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지.
└ 이겨! 무슨 수를 쓰든 이기라고!
“빌어먹을… 진짜 지면 큰일 나겠는데?”
“이겨야지. 어떻게든.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인데 아무리 한수혁이라 해도 나이가 서른여덟이야. 투타 겸업은커녕 원래대로라면 지명타자로 가야 했을 나이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최대한 공을 오래 보자고. 공 하나라도 더 던지게 말이야.”
“좋아, 그리고 만약 그가 베이스에 출루하게 되면 계속 견제구를 던지는 거야. 첫 경기에서 한수혁의 체력을 최대한 소진시키면 나머지 3경기도 편하게 치를 수 있지 않겠어?”
“멋진 생각이군. 그래, 그렇게 해보자고.”
젊음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루키들이 희망회로를 태우는 가운데 시애틀 매리너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간의 개막 4연전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1회 초 오클랜드의 공격, 8년 만에 빅리그에 복귀한 한수혁이 마운드에 올랐다.
* * *
“한, 오늘 사인은 네가 내도록 해. 오랜만에 복귀전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좋아, 레너드. 그나저나 그 무릎으로 브레이킹 볼은 잡을 수 있겠어?”
“젠장, 쓸데없는 참견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생각해보니 네가 내 보스군. 문제없어. 작년에도 이 무릎으로 130경기나 출장했으니까, 그냥 좀 불편할 뿐이야.”
“그렇군. 그럼 최대한 무릎에 무리가 안 가는 로테이션으로 가보자고.”
“그냥 마음 편하게 던져도 된다니까.”
오래 전 브루스와 함께 내 공을 받아줬던 애송이가 중년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나를 바라본다. 자글자글한 눈주름, 탄력을 잃은 피부, 세월의 무게를 담은 눈빛.
옛 친구이자 동료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끼며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파앙
파아앙
꽤나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딸과 함께 내 피지컬을 관리하고 있는 제이콥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 아무리 자네라 해도 1선발 겸 유격수로 뛰면서 풀 시즌을 치르는 건 무리야. 중간 중간 휴식은 필수라고.’
‘명심하지.’
‘그리고 설사 휴식을 취한다 해도 분명 문제가 발생할 거야. 이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문제야.’
‘그것도 이해했어.’
‘젠장… 솔직히 말하면, 올 시즌이 자네의 은퇴 시즌이 아니라면 이런 미친 짓은 무조건 말렸을 거야. 하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최고의 은퇴 시즌을 보내겠다는데 그걸 말리는 건 무리겠지. 좋아, 어떻게든 자네가 풀 시즌을 치를 수 있게 돕지. 뒤가 없다는 생각으로 한번 달려보자고.’
‘그래,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거야. 나중 따위는 생각지 말자고, 중요한 건 바로 지금이니까.’
‘후… 어쩌면 난 몇 년 더 뛸 수 있었을 한수혁의 은퇴를 앞당긴 미친 트레이너로 기억될지도 모르겠군.’
‘아니, 자네는 한수혁의 위대한 마지막 시즌을 함께한 최고의 트레이너로 기억될 거야.’
‘말은 잘하지, 말은……. 흐흐, 내가 그 말에 넘어가 여기까지 왔지만.’
제이콥의 말처럼 아무리 나라 해도 서른여덟의 나이에 1선발 겸 주전 유격수로 풀 시즌을 치르는 건 무리다. 아니, 불가능이다.
내가 몇 년 더 선수로 뛸 생각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준비가 되었다. 내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이 그라운드를 떠날 준비가,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불태울 준비가.
그렇기에 나는 후회하지 않고 마지막을 향해 당당히 걸어갈 것이다.
스륵
지난 두 시즌 동안 나는 선발 로테이션의 3분의 1 정도를 건너뛰었다.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 휴식으로 인해 내 육체가 일시적으로나마 최상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다는 거다.
이런 가벼운 몸으로 개막전을 맞이한 게 얼마 만인가.
자꾸 올라오는 웃음을 참아내며 투구동작에 들어갔다.
천천히, 부드럽게, 하지만 힘차게,
타앗
온 몸에서 응축된 에너지가 어깨로 전달되고, 팔 스윙을 따라 그 에너지가 일순간에 폭발했다.
그리고,
뻐어어어어어엉!
“스트라이크!”
– 커헉! 배, 배, 백팔마일! 맙소사! 한수혁 선수가 던진 초구가 108마일을 기록했습니다! 오 마이 갓! 이게 정말 내후년이면 마흔이 되는 선수가 맞습니까!
포수 미트를 찢는 굉음과 함께 내 마지막 은퇴 시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