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0화(41/412)
#40. 말로 해서 들어먹질 않는다면
어쩌면 몇몇 사람은 황성민이 야구계로 복귀하리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번 사건이 구단 내부 일로 규정되면서 KBO로부터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빠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한 듯하다. 놈을 방출한 게 불과 한달도 안 됐으니 말이다.
뭐가 어찌되었던 이제 와서 따져봐야 아무 소용없겠지.
중요한 건 지금 눈 앞의 이 경기를 치르는 거니까.
“앜!”
첫 시작은 1회말 워리어스의 공격 때였다.
1번 이창모 선배가 유격수 앞 땅볼로 물러난 가운데 타석에 들어선 2번 타자 최민석.
매지션스 출신이기도 한 그의 엉덩이에 상대 투수 최동석이 143km/h짜리 포심을 꽂아버렸다.
“야! 이 새끼야!”
“뭐요! 뭐!”
가식적이기는 하지만 최동석이 모자를 벗으며 최민석에게 사과를 했다. 움찔했던 주심도 그 광경을 보고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그냥 경고만 주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대기타석에 있던 조성오 선배가 폭발했다. 그가 고함을 지르며 마운드 쪽으로 걸어가자 최동석이 발끈하며 거기에 맞섰다.
덕아웃에 있던 양팀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나왔지만 빈볼을 맞은 최민석 선배가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자 금세 분위기는 사그러들었다.
1루에 나간 최민석 선배에게 매지션스 1루수 놈이 뭐라 중얼거리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발끈하려는 내 어깨를 이만식 선배가 잡아챘다.
“수혁아, 가만 있어.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래, 이런 게 한국 야구의 벤치클리어링이지. 툭하면 주먹이 오가는 메이저리그에서만 뛴 나는 이 분위기가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여기가 미국이었다면 저 투수 놈은 벌써 마운드 위에 깔아 뭉개져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을 거다.
“네, 선배님. 저 괜찮아요.”
“그래, 오늘 분위기가 좀 그러네. 내가 경기 끝나고 철환이랑 한번 더 얘기 좀 해야겠다.”
글쎄, 그렇게 평화롭게 일이 마무리될 수 있을까?
아무튼 첫번째 충돌은 그렇게 유야무야 마무리되었다.
매지션스에서 옮겨온 최민석 선배가 타겟이 됐기에 양 팀 모두 입장이 애매한 것도 있었고, 양팀 코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분위기를 진정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직감 같은 거다.
0대 0으로 맞선 가운데 3회초 매지션스의 공격, 볼넷으로 나간 송기태가 도루를 성공시키며 원아웃 주자 2루가 되었다.
따아악!
매지션스의 9번 타자가 때린 공이 1-2루 사이로 날아갔다. 온 몸을 던진 조성오 선배가 그 공을 낚아 챘고 그 사이 2루 주자 송기태가 3루를 향해 질주했다.
촤라락.
“으읔!”
그 순간이었다. 송구를 받기 위해 3루 베이스를 밟고 있던 안치욱의 왼발을 향해 송기태가 스파이크를 들어올렸다.
“야이 씨발!”
“그게 무슨 개 좆 같은 플레이야!”
“뭐! 내가 뭐!”
“송기태 너 이 새끼야!”
“말 조심합시다! 내가 왜 당신 새끼야!”
“뭐?”
그나마 다행이었다. 큰 덩치에 비해 순발력이 제법 괜찮은 안치욱이 재빠르게 피하며 송기태를 태그 아웃시켰다.
문제는 완전히 피하지 못한 탓에 스파이크에 발목이 긁히며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다는 점이다.
1루에 있던 조성오 선배가 달려와 송기태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놈이 그 손길을 확 뿌리치며 맞대응을 했다.
양팀 선수들이 또 우르르 그라운드로 뛰쳐나왔다.
의외인 것은 매사 시큰둥하던 이창모 선배가 유독 크게 흥분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너 이 씨발놈아! 두고 봐라! 내가 네 발목을 박살내 줄 테니까!”
“해봐! 이 개새끼야! 어디 야구도 좆도 못하는 게!”
워리어스에 있을 때만 해도 서로를 소닭 쳐다보듯 하던 동갑내기 내야수가 눈에서 불을 뿜으며 격돌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이창모 선배가 안치욱 놈을 이뻐하긴 했다. 같은 내야수라는 공통점도 있고 글러브질을 배우겠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게 귀엽다나.
“그만! 그만! 더 이상 하면 퇴장시킬 거야! 다 물러서!”
“아니, 저 새끼들 오늘 하는 거 좀 보라고요!”
“우리가 뭐!”
“그만하라고! 그만!”
심판들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다. 충돌을 일으킨 선수들에게 경고가 주어졌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퇴장을 외칠 것 같은 심판의 태도에 양팀 선수들이 씩씩거리며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저 멀리 송기태와 황성민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 진짜 열 받네. 어디 저런 꼴 같지도 않은 것들이.
내가 또 한 번 화를 참지 못하고 발끈하려던 순간.
“수혁아.”
“네?”
“안돼.”
“뭐가요?”
“아무튼 안 돼. 감독님이 그랬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이상한 짓 못하게 막으라고. 여기서 너 놓치면 나 2군 갈지도 몰라. 그래도 1군에 한국인 코치 한 명 정도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니?”
이번에는 이만식 선배에 이어 수비코치였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한국인 수비 코치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무게가 깊게 느껴지는 그런 눈빛이었다.
음.
이건 너무 치사한 거 아닌가?
* * *
그렇게 두 차례 충돌이 있은 후 경기는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우리 팀이 조성오 선배의 적시타와 김수학 선배의 스퀴즈 번트로 2점을 먼저 냈고, 이후 매지션스 고철환이 두 점짜리 홈런을 날리며 동점을 만들었다.
스코어 2대 2, 경기는 이제 7회말로 접어들었다.
한계투구수가 거의 임박한 최동석이 포수 황성민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제 곧 자신은 강판당할 것이다. 그 전에 해치워야 한다.
‘지금?’
‘오케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둘은 프로에 입단해 팀이 갈린 후에도 자주 술자리를 가지며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 친구가 후배들에게 얻어터지고 방출되었다는데 대해 최동석은 크게 분노했다.
최동석이 특히 분노한 건 한수혁이었다.
장덕수야 그간 쌓인 게 있다 치더라도, 아무 상관없는 새까만 신인이 끼어들어 그 난리를 쳤다는데 최동석은 진노했다.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으르렁거렸다.
그런 마음을 눈치챈 건지 이대준 감독은 한수혁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시켰다.
짜증이 확 오른 최동석은 한수혁 대신 최민석에게 빈볼을 던졌다. 주자로 나선 송기태는 워리어스 야수들을 향해 스파이크를 치켜들었다.
오랜 동안 한국야구에서 뛰어온 이 베테랑 투수는 오늘 주심이 어지간 해서는 퇴장을 내리지 않는 성향이란 걸 꿰고 있었다. 선만 넘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워리어스 선수들을 괴롭혔고 자신은 이제 한계 투구수에 도달했다.
그 순간 황성민과 미리 약속했던 마지막 순간이 떠올렸다.
타석에는 오늘 1타점 적시타를 친 조성오가 들어서고 있었다.
4년 선배이기는 하지만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인간이다. 실력적으로나 인맥으로나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변방의 비주류다.
그럼에도 올해는 뭘 잘못 먹었는지 이리저리 날뛰며 꽤나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렇기에 가장 적절한 타겟이다.
이 좆 같은 기분을 풀고 워리어스 놈들에게 타격을 주기 딱 좋은 타겟.
슈웅!
퍼어억!
“아아앜!”
타자의 어깨에 142km/h 포심이 작렬했다.
빈 볼을 맞은 조성오 선배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최동석 놈은 그런 조성오를 보며 비웃듯이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어차피 퇴장을 당해도 손해볼 게 없다는 표정이었다.
황성민 놈은 쓰러진 조성오 선배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고, 2루 베이스 위에 선 송기태는 짝다리를 짚고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참고 있던 울화가 단번에 터져버렸다.
이만식 선배와 수비코치의 팔을 휙 뿌리치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를 막아서는 존재가 있었다.
“이 개새··· 읔! 놔요, 이거! 놓으라고!”
“안돼.”
“장덕수 선배, 이거 놓··· 으, 놓으라고! 이 곰탱이 같은 인간아! 놓으라니까!”
“절대 안돼. 감독님 명령이여.”
이대준 감독은 알고 있었다.
황성민과 장덕수, 한수혁이 얽힌 그 사건에서 막내가 얼마나 막무가내로 일을 저질렀는지.
한수혁이 나이나 경력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눈치챘다. 여차하면 터질 핵폭탄이라는 걸 머리 속에서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선발 라인업에서 뺐다. 그리고 이만식과 장덕수, 수비코치 등에게 명령을 내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수혁이 벤치클리어링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고.
현재 팀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핵심타자를 겨우 이런 사소한 시비로 인해 잃을 수는 없다.
여기서는 자신이 대신 나서야 한다.
“야, 이 씨발놈아!”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이대준 감독의 호통에 최동석이 움찔했다. 현역 시절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면 누구도 막지 못했던 남자다.
그런 이대준 감독의 호통과 동시에 워리어스 선수들이 마운드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투수를 보호하기 위해 매지션스 선수들도 튀어나왔다.
“제발 이것 좀··· 놓··· 아으!”
“안돼.”
그 와중에도 뒤에서 나를 안고 있는 장덕수 선배의 손은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뒤통수 쪽에 장덕수 선배가 뿜어내는 엄청난 콧김이 전해졌다. 그 역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참아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런 개 씹··· 읔!”
“놔! 이거 안 놔! 아앜! 물지 마! 물지 말라고!”
“저 새끼 내가 죽··· 어엌!”
그렇게 내가 장덕수 선배의 손에서 바둥거리는 사이 그라운드 위에서 양팀 선수들이 뒤엉켰다.
아까부터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이던 김수학 선배가 최동석에게 보디체크를 먹였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그만! 그만! 퇴장!”
참다 못한 심판이 선수들 사이에 끼어 들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러 댔다.
관중석에서 두루마리 휴지와 먹다 남은 닭다리가 그라운드로 날아들어왔다.
민예린이라는 가수는 대체 뭘 어떻게 한 것인지 기어코 안전망을 타고 올라가 그 꼭대기에서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다 죽여버려! 깽값은 내가 문다!”
“와아아! 여신님이 다 죽이시란다!”
민예린의 투혼에 고무된 관중들이 안전망을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안됩니다! 여러분! 그거 무너지면 큰일 납니다! 뒤로 물러서세요!”
그렇게 10분 넘게 소요가 계속되었다.
심판들이 적극적으로 선수들을 떼어놓고 양팀의 코치들이 나서며 간신히 그라운드가 정리되었다.
“이런 개새끼들!”
상대 투수 최동석에게 보디체크를 먹이고 퇴장을 당한 김수학 선배가 헬멧을 집어 던지며 욕설을 내뱉았다.
“저 형, 작년에 최동석한테 빈볼 맞아서 한달 동안 쉬었대.”
“음.”
안치욱이 대단한 걸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내게 속삭였다.
이번 벤치클리어링으로 인해 매지션스에서는 최동석이, 그리고 워리어스에서는 김수학 선배와 이대준 감독이 각각 퇴장을 당했다. 매지션스 편을 들던 3루심을 배로 밀어 그라운드에 자빠트린 죄였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매지션스 놈들의 수작질에 휘말려 동료와 감독을 잃게 된 선수들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때였다.
퇴장당한 이대준 감독을 대신해 임시 지휘봉을 잡게 된 벤자민 레이놀즈 수석코치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괜찮은가, 루키?”
“네, 전 괜찮습니다. 장덕수 선배한테 잡혀서 묶여 있었으니까요.”
“좋아. 혹시 자네 좌익수 수비도 가능하다고 했지?”
“네, 가능합니다.”
“그럼··· 다음 수비 이닝부터 킴 자리에 자네를 넣을까 하는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한수혁을 아예 명단에서 제외했던 이대준 감독과 달리 임시 지휘봉을 잡게 된 이 백발의 미국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거친 미국야구에 익숙한 사람이다. 학연, 지연이 아닌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이다.
이왕 상대와 시비가 붙었으면 경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완벽히 눌러버려야 한다는 게 그의 평소 철학이었다. 감독에게 나중에 잔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그게 맞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런 수석코치에게 대답했다.
“그보다 코치님. 제가 다른 제안을 드려도 될까요?”
“제안이라고?”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15년을 뛰며 배운 건 이 운동선수라는 놈들은 절대 말로는 들어 처먹질 않는 종자라는 것이다.
이런 놈들에게는 말보다는 행동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머리를 노리면 지들 대가리도 터질 수 있다는 그런 간단한 교훈 말이다.
“다음 이닝에 절 마운드에 세워주시면 저 머저리들에게 제대로 된 교훈을 주고 오겠습니다.”
“뭐? 마운드?”
“네.”
“자네··· 올해 투수는 힘들다고···.”
“무리하지 않겠습니다. 힘 빼고 딱 한 이닝. 저 덜 떨어진 놈들이 앞으로 우리 팀만 보면 오줌을 질금질금 싸게 만들어 놓겠습니다.”
“흐음···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만.”
오랜 시간 빅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해온 벤자민 코치다. 이런 상황에서 100마일을 던지는 파이어볼러를 등판시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가 감독이 물러난 덕아웃 뒤쪽 문을 몇 번 흘긋거리더니 뭔가를 결심한 듯 대답했다.
“좋아, 루키. 대신 직접 맞히는 건 안 돼.”
“물론이죠. 저도 살인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내 말을 잘 이해한 것 같군. 젠장, 그래. 나중에 보스가 내 멱살을 잡을 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자고. 저런 놈들을 그냥 두고 보는 건 말이 안 되지.”
수석코치의 허락을 받은 난 투수용 글러브를 집어 들고 불펜으로 향했다. 아직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 팀원들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오늘 경기는 내 예상대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 가서야 투수 데뷔를 하겠다는 내 계획도 함께 어긋나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 계획을 망쳐버린 저 애송이들에게 인생의 쓴맛을 보여줄 생각이다.
야구가 뭔지 제대로 알려주마. 이 핏덩이들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