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1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10화(411/412)
#410화. 외전10 – 얼마 남지 않았음을
“빌어먹을… 지긋지긋한 놈이군.”
오래 전, 그러니까 한수혁이 처음 빅리그에 발을 디뎠던 2030시즌,
뉴욕 양키스는 명실공이 아메리칸 리그를 대표하는 최강의 팀이었다.
2009년을 끝으로 맥이 끊긴 월드시리즈 우승, 그것을 되찾기 위해 수 년간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양키스는 타이슨 바샴과 샤킬 레너드로 대표되는 선발 투수진, 저스틴 자발라가 지키는 뒷문, 그리고 루카스 앤더슨과 잭 헤인즈, 트로이 버클리로 이어지는 핵 타선을 구축하며 우승 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멸망했다.
1억 7천만 달러에 육박하는 사치세를 감수하고 끌어 모은 선수단이 한수혁이 이끄는 시애틀 매리너스에게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 와중에 좌완 에이스 타이슨 바샴은 한수혁과 시비가 붙어 턱이 박살 났고, 자신은 사무국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한수혁의 뒷배에게 찍혀 사업이 날아갈 뻔도 했다.
이후 10년간,
양키스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시애틀, 아니, 한수혁의 장기집권으로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은커녕 리그 챔피언십도 통과 못 하는 오욕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무려 10년이나 말이다.
“구단주님, 이제 가시죠. 곧 경기가 시작됩니다.”
“좋아, 진짜 전쟁이군.”
거대제국 뉴욕 양키스의 주인인 요한 스타인브레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발걸음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VIP 스카이박스로 향했다.
한수혁에게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양키스는 그가 떠난 후 다시 전열을 추슬러 결국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2045년, 2046년 2년 연속으로 말이다.
“데이빗, 그 녀석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기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이제는 정말 양키스의 시대가 열릴 거라 생각했던 스타인브레너였지만,
생각지도 못한 폭탄이 떨어졌다. 한수혁이라는 이름의 핵폭탄.
그 폭탄을 막기 위해 데이빗 플레이크와 12년 8억 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규모의 연장 계약을 발동시켰다. 원래 예상했던 조건에서 20% 이상이 더 올라간 계약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수혁이라는 먼치킨에 대항할 카드는 그가 유일했으니까.
어디 그뿐인가, 시장에 나온 가장 비싸고 믿음직한 FA 투수 두 명도 영입했다. 애지중지하던 유망주 셋을 내주고 내셔널리그 최고의 포수까지 데려왔다. 그 모든 게 한수혁이 이끄는 시애틀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빅리그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2047시즌 양키스의 전력은 아마도 역대 최강일 거라고. 그 어떤 팀도 지금 양키스를 이길 수는 없을 거라고.
하지만 전혀 안심이 안 된다. 스타인브레너는 알고 있다. 저 한수혁이라는 괴물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그가 한번 움직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나이? 웃기는 소리다. 대외적으로는 그 역시 한수혁의 나이를 걸고 넘어지곤 있지만, 저런 괴물에게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어쨌든 구단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남은 건 자신이 구축한 저 악의 제국이 한수혁이 이끄는 시애틀 매리너스를 짓밟기를 기대하는 것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넘어 새로 양키스의 주인이 된 요한 스타인브레너가 침중한 눈으로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평균 6,600만 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연봉을 받게 된 뉴욕의 황제 데이빗 플레이크가 마운드에 올라서고 있었다.
* * *
“플레이!”
2009년 준공비만 15억 달러, 2047년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40억 달러가 넘는 돈이 투입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야구장 양키 스타디움.
야구의 역사이자 박물관이라 불러도 좋을 그 구장이 스트라이프 저지를 입은 5만 명의 팬들로 가득 들어찼다. 극성스럽기로는 컵스나 레드삭스 팬들보다 더 하다고 알려진 매리너스 팬들이 표를 구하지 못해 들어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으며 데이빗 블레이크가 첫 타자와의 승부를 시작했다.
‘노아 마르티네스, 애송이이긴 하지만 특별한 약점이 없는 만능형 타입의 좌타자.’
지난 시즌 9월 확장로스터를 통해 빅리그에 콜업된 후 곧바로 팀의 중견수 자리를 꿰찬 재능 넘치는 파이브툴 플레이어.
저런 타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힘, 압도적인 힘.
2010년대부터 시작된 구속 혁명과 트레이닝 기법의 발전으로 투수들은 자신의 육체가 가진 힘을 백이십 프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지난 2040시즌 KBO에 복귀한 한수혁이 110마일, 그러니까 170㎞/h의 공을 던진 이후 그 누구도 그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인간이 던질 수 있는 공의 한계는 110마일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뉴욕의 황제이며 양키스 역사상 최고의 재능, 나아가 한수혁의 뒤를 잇는 투웨이의 계승자라 불리는 데이빗이었지만 그에게도 110마일의 벽은 높고 또 높았다. 조금이라도 더 구속을 올리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한수혁의 복귀 이전 메이저리그 최고의 파이어볼러는 데이빗 블레이크였다는 것이다.
스륵
오버핸드보다는 살짝 팔 각도가 처진, 스리쿼터에 가까운 투구 폼이 가동되었다. 194㎝, 105㎏이라는, 투수로서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그의 육체가 타자를 잡아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우우웅
뻐어엉!
“스트라이크!”
“그렇지! 바로 그거야!”
“데이빗! 이 멋진 자식! 매리너스 놈들을 박살 내라고!”
전광판에 찍힌 자신의 구속을 보며 데이빗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105마일, 168㎞/h.
얼마 전 한수혁이 기록한 108마일에는 못 미치지만 자신의 최고 구속에 거의 근접한, 현재 그가 던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파고들었다.
그래, 구속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105마일이고 108마일이고 타자 입장에서 상대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니까.
투수에게 중요한 건 구속뿐만이 아니다. 그 외 여러 가지 조건들이 합쳐져 투수의 퀄리티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조건들 중 육체적인 부분에 관련된 건 모두 자신이 앞선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은 이제 전성기를 시작했고, 한수혁은 은퇴를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첫 번째 공으로 자신감이 한층 차 오른 데이빗이 두 번째 공을 뿌렸다.
뻐어어엉!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103마일 포심이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 가장 낮은 코스로 들어갔다.
전문가들이 데이빗 블레이크라는 투수를 한수혁의 후계자로 인정한 이유가 바로 저 제구력이다. 그는 단순히 공만 빠른 멍청이가 아니라 그 공을 존 안팎으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사실상 빅리그 첫 시즌을 보내게 된 애송이 타자가 입을 꾹 다문 채 배트를 잡았고, 그런 타자를 향해 데이빗의 승부구가 날아들었다.
부웅
“스윙! 아웃!”
어떻게든 커트해 내겠다는 각오로 휘둘러진 노아 마르티네스의 배트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체인지업이었다. 165㎞/h 포심에 타이밍을 맞춘 상태로는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140㎞/h의 낙차 큰 체인지업.
삼 구 만에 첫 타자를 삼진 처리한 데이빗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시애틀 덕아웃을 바라보았다. 오늘 3번 타자로 출전한 한수혁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기타석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야, 서형주. 배트 짧게 잡아라. 홈런 노릴 생각 말고.”
“…티 나냐?”
“장난할 때가 아니야. 저놈 진짜 공 좋네.”
“시발… 내가 몇 살만 젊었어도 저 정도 공은…….”
“헛소리 말고, 일단 출루에만 집중해봐. 내가 어떻게든 불러들일 테니까.”
“…좋아, 마음에 안 들지만 괴물은 괴물이 상대해야 하는 법이니까. 딱 봐라, 내가 어떻게든 살아나간다.”
실제 현장에서 본 데이빗 블레이크의 공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구속에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지 볼 끝이 조금 아쉽고, 포심과 체인지업의 릴리스 포인트가 미묘하게 다른 게 흠이긴 하지만 뭐… 저 정도면 내가 본 파이어볼러들 중에서는 손에 꼽힐 수준의 공이다.
그런 데이빗을 상대로 서형주가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따악!
“파울!”
파앙
“볼!”
조금 잔인한 말이긴 하지만 이제 저놈에게는 데이빗의 공을 때려 장타를 만들어낼 힘이 없다. 세월의 무게는 서형주라는 천재타자에게서 장타력과 기동성을 빼앗아갔다.
새파란 애송이에게 리드오프 자리를 내준 것에 자존심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2번 타자 자리가 매우 중요한 자리이긴 하지만, 서형주 저놈은 데뷔 이후 줄곧 1번 자리를 고집해온 그런 녀석이니까.
따악!
“파울!”
그럼에도 내가 녀석을 걱정하지 않는 건 서형주가 가진 재능 중 장타력과 기동성을 뺀다 해도 남아 있는 게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오랜 경험에서 나온 선구안이라든지,
파앙
“볼.”
애매한 존에 들어오는 공을 걷어낼 수 있는 컨택 능력,
따악
“파울!”
“Fuck!”
그리고 생각대로 일이 안 풀려 화가 난 투수를 상대하는 법 같은 것 말이다.
파앙
“볼. 베이스 온 볼스. 타자 1루로.”
삼 구 만에 리드오프를 처리한 데이빗이 결국 서형주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그것도 10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경기 시작과 함께 팽팽하게 조여졌던 투수의 긴장감 역시 이번 볼넷으로 많이 느슨해졌을 것이다. 역시 서형주 저놈은 좋은 타자이며 최고의 리드오프…….
아니, 더 이상 나가지 말자. 괜히 저놈 앞에서 이런 말을 꺼내 봐야 어깨에 쓸데 없는 힘만 들어갈 테니까. 지금 저 상태가 딱 좋다.
“우우우우우우-!”
“빌어먹을 자식! 왜 다시 돌아온 거야!”
“죽여! 한수혁 저 자식을 죽이라고!”
“이제 네 시대는 끝났어! 망할 놈아! 지옥으로 꺼져버려!”
미국에서 나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을 꼽으라면 아마 양키스 팬들이 첫 손에 꼽힐 것이다. 나 때문에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카디널스나 다저스, 혹은 같은 지구에서 매번 짓밟혀온 애슬레틱스 팬들 역시 나를 꽤나 싫어하는 편이지만,
“데이빗! 이겨야 해! 다른 놈은 몰라도 절대 한수혁에게는 맞아서 안 된다고!”
“무슨 수를 쓰던 이겨! 박살을 내라고!”
팀의 황금기가 될 수 있었던 시기를 나 때문에, 시애틀 때문에 망쳐버린 양키스 팬들의 증오심에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5만 명의 관중이 뿜어내는 야유를 들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이봐, 아메리칸 리그 공기는 어때? 새 팀은 마음에 들어?”
“…….”
“흠, 과묵한 친구군. 좋아,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레너드와 함께 메이저리그를 양분하는 포수라길래 말 한 번 걸어봤건만,
아무래도 메이저리그 전 구단 포수들에게 나와의 대화를 금지하는 법안 같은 게 발의된 것 같다. 지금까지 만난 어떤 포수도 내 말에 대꾸조차 않는 걸 보니 말이다.
굳이 시비를 걸려는 건 아니었는데.
뭐, 상관없겠지.
“플레이!”
입이 꽤 무거워 보이는 포수에게 신경을 끄고 마운드 위로 시선을 돌렸다.
뉴욕의 황제, 투웨이의 계승자, 2040년대 최강의 선수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주렁주렁 붙은 금발머리 백인 놈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듣기로는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는 여배우들이 저놈과 한번 사귀어보겠다고 별 짓을 다 하는 모양이다.
지난 삶까지 포함해 프로에서만 36년 가까이 뛰며 저런 혈기 넘치고 세상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애송이들을 상대한 게 몇 번이던가.
저런 애송이들을 참교육시켜 세상의 무서움을 알게 해주고, 나아가 자아성찰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베테랑의 의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노린다.
꾸욱
녀석이 던지는 공은 잘 감상했다.
최고 105마일 정도의 약간은 볼 끝이 밋밋한 포심, 그 포심과 15마일 정도 차이가 나는 꽤 괜찮은 체인지업, 그리고 서드피치로는 나무랄 데가 없는 슬라이더까지.
우완 파이어볼러의 교본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25세의 혈기왕성한 투수.
저런 녀석이 나를 상대로 어떤 초구를 던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포심, 그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른 공을 던져 스스로를 증명하려 하겠지.
스륵
치렁치렁한 금발을 뒤로 쓸어 넘긴 녀석이 천천히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1루에서 서형주가 계속 리드폭을 길게 잡고 있지만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분위기다. 도루를 하건 말건 나와의 승부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뜻일 거다.
파워 넘치는 투구 폼을 따라 녀석의 오른팔이 힘차게 스윙했다. 그리고 그 팔 스윙을 따라 하얀 공 하나가 나를 향해 발사되었다. 동시에 내 배트가 힘차게 앞으로 뻗어나갔다.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커헉!”
음, 솔직히 말하면…….
제법 괜찮긴 한데… 설마 이게 저 녀석이 가진 모든 건 아니겠지?
배트를 옆으로 집어던지고,
“우우우우우우우!”
“망할 자식아! 개자식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비이이이일어먹을!”
5만 명이 내뿜는 야유를 배경음 삼아,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천천히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괴물 자식!”
“너 뛰기 힘들까 봐 홈런 쳐준 거니 고마운 줄 알아라.”
“뭐라는 거야!”
자기가 홈런을 친 것처럼 기뻐하는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한! 역시! 당신은!”
“제길, 그래! 한! 이거지! 바로 이거야! 너무 오래 잊고 있던 맛이야!”
미쳐 날뛰는 동료, 감독들의 환대를 받으며,
“자, 일단 한 방은 먹였으니 다들 힘내봐. 저 애송이, 공만 빠르지 별 거 아냐.”
“알겠습니다! 한!”
덕아웃 내 지정석이 된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광판에 방금 전 내 타격 영상이 다시 재생되는 것을 보며 비로소 실감했다.
이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이제 정말 내 야구인생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