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1화(42/412)
#41. 167km/h
야구중계를 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위원들의 가장 큰 고충 중 하나가 바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계속 필터로 걸러내야 한다는 거다.
그나마 방송국 직원으로 상사들의 눈치를 보는데 익숙해진 아나운서들은 사정이 좀 낫지만, 선수 출신이 많은 해설위원들 중에는 그런 필터링이 잘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언제 잘릴지 모를 계약직 해설위원 자리에 하루라도 더 붙어 있으려면.
그들에게 허락된 진실의 시간은 오직 단 한 순간, 마이크에 불이 꺼지고 광고가 송출될 때뿐이다.
“하··· 최동석 저 또라이 새끼 미쳤네. 진짜?”
“쟤 왜 저런데요? 진짜 심하네.”
“아니, 저건 심한 정도가 아니라 진짜 맞고 뒈져라 하고 던진 거야. 내가 투수 출신이라 알거든.”
“조성오랑 뭐 맺힌 거라도 있었을까요?”
“뻔하지 뭐. 황성민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아까 조성오한테 멱살 잡힐뻔 한 것도 있고. 아우, 저 양아치 새끼들 진짜.”
“그나저나 이러면 아무래도 워리어스가 불리해지겠죠? 최동석이야 어차피 교체될 상황이었고, 워리어스에서는 주전 1루수랑 좌익수가 한 번에 날아갔네요.”
“최동석 저 새끼, 아마 그것까지 계산했을 거야. 사인도 잘 못 외우는 놈이 저런 머리는 또 잘 돌아가요. 아유··· 내가 진짜 현역 때였으면 그냥 확!”
“아, 위원님. 불 들어왔습니다. 방송 15초 전.”
“흠흠.”
광고가 나가는 사이 잠깐 속내를 털어놓던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이 언제 그랬냐는 듯 직장인 모드로 돌아왔다.
– 잠실입니다. 2대 2로 양팀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워리어스의 김수학 선수와 매지션스의 최동석 선수, 그리고 이대준 감독이 퇴장을 당했습니다. 지금 그라운드에서는 내야 정리가 진행중입니다
– 아, 안타깝네요. 만원 관중이 모인 앞에서 양팀 선수들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공에 맞은 조성오 선수가 부디 큰 부상이 아니길 빕니다
– 방금 플레이는 확실히 워리어스가 오해할 만했죠?
– 그렇기는 하죠. 앞선 이닝에서도 이미 사구가 한 번 있기도 했고요. 매지션스가 더 조심했어야 해요. 안 그래도 황성민 선수 방출과 영입으로 인해 양 팀 간에 안 좋은 감정이 쌓인 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말이죠
– 자, 그래도 경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제 8회초 매지션스의 공격이 시작되는 가운데 워리어스의 1루수와 좌익수가 교체되었습니다
– 네, 조성오 선수가 빠진 자리에 용지훈 선수가 들어왔습니다. 포수와 1루를 모두 볼 수 있는 선수죠. 그리고 퇴장당한 김수학 선수 대신 하용대 선수가 좌익수로 들어왔습니다
– 최동석 선수가 한계 투구수에 가까웠다는 걸 감안하면 어차피 투수는 교체되었을테고··· 이렇게 되면 주전 선수 두 명을 잃은 워리어스가 손해를 본 느낌입니다
– 결과론적인 얘기죠. 설마 매지션스가 그런 것까지 계산했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 말씀드리는 순간, 불펜에서 워리어스의 새로운 투수가 나오고 있습니다. 7회까지 잘 던진 베테랑 이만식 선수가 물러나고 대신··· 어? 저게 누군가요?
멘트를 이어가던 아나운서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목소리마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라운드 쪽으로 시선을 돌린 해설위원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 한수혁? 한수혁 선수가 나오네요?
– 제가 잘못 본 것 아니죠, 위원님?
– 아닙니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8회초에 한수혁 선수가 마운드로 올라서고 있습니다!
– 아··· 한수혁 선수 하면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초특급 투수 유망주로 불리기도 했지만··· 부상 위험때문에 올 시즌에는 투수로는 안 뛰겠다고 선언한 상태인데···
– 그렇죠. 그런데 정말 던질 모양입니다. 한수혁 선수가 연습투구를 시작합니다. 이제는 저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팬 여러분, 한수혁 선수가 공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잠깐 화장실 다녀왔는데 무슨 일? 한수혁이 공을 던진다고?
﹂올해는 못 던진다며··· 괜히 어깨 다치는 거 아냐? 우리 그렇게 던질 투수가 없나?
﹂던질 애들은 있지. 인간답게 던질 애들이 없어서 그렇지
﹂뭐지? 혹시 빈볼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
﹂화끈하네! 그래 씨발, 경기고 뭐고 다 죽여버려!
﹂매) 이건 반칙이지. 유격수가 왜 투수를 함?
﹂매) 진짜 한 번 해보겠다는 거?
﹂매) 여기서 빈볼 던지면 진짜 오늘 한쪽 죽는 거다
﹂매) 존나 치사한 새끼들이네 그거 한 번 맞았다고 한수혁을 마운드에 올릴 생각을 해?
﹂그래 이 새끼들아 한 번 해보자. 누가 죽나
﹂애초에 빈볼 던진 놈들이 미친 거지
﹂165짜리 대가리에 꼽히고도 개소리할 수 있나 어디 한 번 보자고
조성오가 실려 나간 후 잔뜩 기가 죽어 있던 워리어스 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매지션스 놈들을 죽여버리라고 꽥꽥 고함을 질러댔다.
그리고 매지션스 선수놈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퍼억!
퍽!
퍼억!
어깨에 힘을 빼고 정말 연습을 하듯 몇 개의 공을 던졌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145에서 148km/h 내외.
생각도 못한 상황에 놀란 얼굴이 되었던 다음 타자 송기태 놈이 대기타석에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구속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한 눈치였다.
그래, 그러고보니 너는 기억하겠구나. 스프링캠프 때 한 번 봤으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슈웅
퍼어억!
– 배, 배, 배, 백육십오! 한수혁 선수가 연습투구에서 165km/h를 기록했습니다!
– 위원님! 이거 국내 신기록 맞죠?
– 아, 네, 이게 그러니까 연습투구니까 기록으로는 안 잡히지만요. 일단 기존 최고구속 기록은 2012년 매지션스의 용병 투수가 던진 162km/h였습니다. 오늘 무려 15년만에 그 기록이 갱신될 것 같습니다. 그것도 국내 선수 손에서요!
– 대단합니다! 자, 말씀드리는 동안 한수혁 선수가 드디어 몸을 다 풀고 투구 준비를 시작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과연 국내 최고 구속 신기록이 15년만에 갱신될지, 다 함께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놈의 머릿속에 잠들어 있는 공포를 깨우기 위해 마지막에 165km/h 포심을 한 번 박아주니 그제야 송기태의 표정이 내 마음에 들게 변했다.
저 개새끼의 얼굴에 피어 오른 당혹감과 공포의 감정이 나를 끓어 오르게 만든다.
“플레이!”
빅리그에서 뛰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내 주위에는 친구라 부를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빅리그에서 친분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내 성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 생각했다.
팀 내에서도 그럴 정도니 다른 팀 놈들과의 사이는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몇 달에 한 번씩은 꼭 싸움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중 몇 번은 꽤 긴 출장정지를 먹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꽤나 싸움에 자신이 있었지만 인종의 차이에서 오는 벽 같은 걸 느낀 후에는 아예 권투를 배우기까지 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에서도 지기 싫었다.
그렇게 한 놈 한 놈 때려 눕히다 보니 내게 미친개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벤치 클리어링 때 아무도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대놓고 빈볼을 던져도 덤비는 놈이 없어진 후에야 나는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배우던 권투를 그만두었다.
하아.
그때 생각하니까 갑자기 빡 치네.
놈과 눈이 마주쳤다.
한 놈 한 놈이 괴수와도 같았던 빅리그의 괴물들을 떠올리다 송기태의 왜소한 체구를 보니 나도 모르게 콧방귀가 나왔다.
그걸 또 용케 봤는지 송기태 놈이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본다.
정말 기도 차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120kg이 넘는 덩치들도 감히 내게 저런 눈빛을 보내지 못했건만.
세상 무서운 것 모르는 놈에게 인생의 쓴 맛을 보여줄 때가 왔다.
저 빌어먹을 놈에게 165km/h 포심을 꼽아줄 거냐고?
아니, 겨우 그거 한대 맞히고 출장정지를 먹으면 내가 너무 손해지.
송기태와 황성민, 이 개 같은 놈들에게는 좀 더 근원적인 처벌이 필요하다.
투구를 시작한다.
다리와 엉덩이의 회전을 이용해 힘을 한 번 축적하고, 그렇게 모인 힘을 허리로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그 힘을 어깨로 보내 단번에 폭발.
슈웅
하체와 허리, 그리고 어깨까지 3번의 회전축을 이용해 응축되고 폭발된 공이 공기를 찢는 굉음을 내며 송기태 놈의 머리 쪽으로 날아갔다.
“으허허헉!”
머리 속에 방금 전 본 165km/h 포심의 잔상이 남아 있었는지 기겁을 한 송기태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으며 턱을 벌벌 떨었다.
하지만 놈의 머리 쪽으로 날아가던 공은 큰 궤적을 그리며 스트라이크 존으로 크게 휘어 들어갔다.
“스, 스트라이크!”
이런 건 처음 봤을 거다. 148km/h짜리 커브 말이다.
– 아아! 저게 대체 뭔가요? 위원님! 분명 머리 쪽으로 공이 날아갈 때만 해도 볼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확 꺾이면서 존 안으로 파고드네요?
– 네··· 저건··· 제가 보기에는 파워 커브의 일종으로··· 아니, 슬러브··· 하아, 모르겠습니다. 진짜 보고도 믿어지지 않네요. 148짜리 커브라는 게 대체 말이나 됩니까? 저런 건 진짜 난생 처음 봅니다!
– 타석에 있던 송기태 선수가 얼빠진 표정으로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있습니다
– 많이 놀랐을 거예요. 150에 가까운 공이 저런 궤적을 그리고 날아들면 진짜 엄청난 공포감이 들거든요. 한수혁 선수! 진짜 대단하네요! 말 그대로 미쳤습니다!
– 씨발··· 내가 뭘 본 거냐···
﹂148 커브··· ㅋㅋㅋ ㅋㅋㅋ ㅋㅋㅋㅋㅋ
﹂무슨 커브가 148이 나옴? 우리 만식이 형은 커브가 120인데?
﹂저 공 나한테 던지면 그대로 오줌지리고 기절할 자신 있음
﹂매) 좆 같은 신인 새끼가 같은 팀 출신 선배한테 저런 빈 볼을 던져?
﹂응 스트라이크임 빈 볼 아님
﹂매) 아우 진짜 저 새끼 야구 좀 한다고 뵈는 게 없나 보네
﹂뵈는 게 없는 건 최동석이지. 조성오 맞추고 욕하던 거 벌써 잊은 듯?
﹂근데 진짜 쟤 왜 메이저 안 가고 우리 팀 온 거냐,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야구장이 팬들의 욕설과 함성으로 뒤덮였다.
선수 두 명을 잃고 잠시 시무룩해져있던 워리어스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쏟아져 나왔다. 안전망에 달라붙어 있던 관중 몇 명이 안전요원들에게 질질 끌려 갔다.
그 사이, 간신히 정신을 차린 송기태가 벌개진 얼굴로 다시 타격자세를 잡았다.
병신 같은 놈이지만 의외로 용기가 가상하다. 나 같으면 그냥 죽은 척 계속 누워 있었을텐데.
좋아, 그럼 이번에는.
슈웅!
퍼어억!
“커헉!”
무릎 쪽으로 150이 넘는 공이 들어오자 또 한 번 기겁을 한 송기태가 제자리에서 펄쩍 뒤로 뛰며 엉덩방아를 찌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은 크게 안쪽으로 휘며 존 안으로 휙 말려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
– 아, 이건 또 뭡니까!
– 스, 슬라이더에요! 156km/h짜리 고속 슬라이더!
– 슬라이더가 156이 나온다고요? 그거 반칙 아닙니까?
– 몰라요! 이젠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저런 공을 보는 건 여러분들이나 저나 다 처음이니까요.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처음 보는 광경을 함께 관전중입니다!
– ㅋㅋㅋ 기도 안 찬다. 156짜리 슬라이더··· 이거 혹시 만화냐?
﹂저번에 캠프에서 한수혁 165 던진다고 했을 때 헛소리라 했던 놈들 자진신고
﹂나 지금 대가리 박고 키보드 치는중임
﹂나도 이마로 스마트폰 누르는중
﹂진짜 저 정도인줄 몰랐음··· 아니··· 이러면 그냥 투수를 하지
﹂부상 위험 때문에 올해는 힘들다잖아. 내년에는 던지겠지
﹂그럼 내년에 우리 1선발 겸 4번 타자 생기는 거임?
﹂진짜 꿈만 같다··· 매지션스 새끼들 때문에 좆같던 게 싹 날아가네
인터넷창이 활활 불타오르던 순간.
“으허헉!”
“스트라이크! 아웃!”
몸을 바들바들 떨며 간신히 타석에서 버티던 송기태가 머리 쪽으로 날아오다 존안으로 휘어 들어가는 99km/h 초 슬로커브에 지 혼자 놀라 뒤로 벌렁 넘어져 버렸다.
그리고는 추태를 깨달았는지 벌떡 일어나 덕아웃으로 들어가버렸다. 도망치는 놈의 얼굴에서는 핏기를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와아아!”
“한수혁!”
“미친! 진짜! 미친! 넌 미쳤어!”
장담한다.
앞으로 최소 몇 달, 저 놈은 몸 쪽 공만 들어오면 아무 것도 못하고 벌벌 떨게 될 거다.
방금 내 공들은 놈을 타자로서 완전히 망가뜨리기 위한 그런 공들이었으니까.
“우와와!”
“한수혁! 한수혁!”
“최고다! 네가 최고야!”
그렇게 송기태 놈을 처리하고 나니 드디어 문제의 황성민이 타석에 들어섰다.
생각해보면 모두 이놈에게서 비롯된 일이다.
장덕수 선배를 괴롭히고, 고의삼진을 강요하고, 나를 배트로 치려 했던, 그러고도 뻔뻔하게 매지션스 유니폼을 입고 복귀해 또 최동석과 빈 볼 장난을 친.
야구판에 별의 별 쓰레기가 다 있다지만 이놈처럼 치졸하고 더러운 인간은 난생 처음 본다.
그래, 어쩌면 이놈은 뒤틀린 한국 야구판과 그놈의 선후배 라인 문화가 만들어낸 괴물일지도 모르겠다.
이놈은 그냥 갖고 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야구를 그만두고 싶게 만들어줘야 한다.
놈의 머리를 향해 전력을 다해 공을 던졌다. 이번에는 파워커브 같은 게 아니었다.
쐐애액
퍼어어어억!
황성민 놈의 얼굴 앞을 스쳐 지나가는 포심. 놈은 아예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보, 볼!”
뒤늦게 심판의 입에서 볼 판정이 나오는 순간 관중석에서 갑자기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방금 던진 공의 구속이 이제야 전광판이 찍힌 것이다.
– 167km/h! 167km/h가 나왔습니다! 한국야구 최고 구속 신기록이 방금 갱신되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15년만의 신기록이 국내 선수의 손에 의해 새롭게 쓰여 졌습니다!
– 아! 방금 공은 자칫했으면···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엄청나네요!
– 한수혁 선수가 모자를 벗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군요. 아마도 너무 힘을 줘서 손에서 빠진 모양입니다!
– 네, 그럴 수 있죠. 그나저나 하아··· 진짜 한국야구에서 167이라뇨! 흥분이 가라 앉질 않습니다. 정말 엄청납니다!
야구란 참으로 신기한 스포츠다.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동료, 혹은 상대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얼굴이 허옇게 질린 채 그대로 굳어 있던 황성민 놈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방금 전 머리 쪽으로 날아간 공이 고의적이었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그래서 뭐, 뭐 어쩌라고?
142짜리 똥볼을 남의 어깨에 던질 때는 자기 머리통에 165짜리 공이 날아올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플레이!”
회귀 후 잠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성오 선배나 이만식 선배 같은 사람 좋은 베테랑들, 그리고 안치욱 같은 귀여운 놈들과 상대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물러진 적이 있다.
이번 삶에서는 한 번 둥글게 살아볼까?
어차피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고,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학교 선배들이 이 팀 저 팀에서 뛰고 있을테니까.
같이 어울려서 밥도 먹고, 가끔은 술도 한 잔 하고.
그렇게 모두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살아볼까?
“지랄.”
얼마나 헛된 꿈이었던가.
내가 세상을 너무 말랑말랑하게 봤다.
지난 삶이 너무 치열했기에 모두와 함께 웃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역시 이 바닥에 친구 같은 건 없다. 아니, 적어도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는 놈들은 모두 적일 뿐이다.
슈우웅
아까 송기태 놈에게 던졌던 것과 똑같은 고속 슬라이더가 놈의 무릎 쪽으로 날아간다.
투구 동작의 끝에 황성민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생각인지 놈이 둔탁한 허리를 돌리며 어설픈 스윙을 시도한다.
그런 놈의 입가에는 지금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릿한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황성민 놈의 표정에서 나는 뭔가를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스윙을 하던 놈의 손에서 방망이가 빠져나왔고, 그것이 맹렬히 회전하며 내 쪽으로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