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2화(43/412)
#42. 광란의 도가니
그래, 생각해보면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였다.
서로를 죽이고 싶을 만큼 감정이 쌓인 남자 놈들 수십을 좁은 그라운드에 몰아넣고 때리지 마라, 빈볼 던지지 마라, 발 들면 안 된다, 이렇게 구속을 시킨다는 게 애초에 가능한 일인가.
인정한다.
내가 한국야구를 너무 말랑하게 봤음을, 그리고 황성민이라는 인간에 대해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걸 말이다.
저런 짓까지 할 수 있는 놈이란 걸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정말 이제는 아무 거리낌없이 저놈을 죽여버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슈웅!
나를 향해 날아오는 배트를 스텝을 밟으며 가볍게 피해냈다.
“황성민!”
내가 그걸 피해내는 건 계산에 없었는지 황성민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런 놈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상황을 눈치 챈 양팀 선수들이 우리를 향해 우르르 몰려 들었다.
우측에서 무언가 시꺼먼 것이 나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 경기 내내 틈만나면 나를 노려보던 매지션스의 유격수였다.
“이 새파란 신인새끼가!”
“넌 수혁이 말고 나한테 와! 이 새끼야!”
퍼억!
내게 태클을 먹이려던 놈에게 이창모 선배가 달려 들었다. 순식간에 엉켜버린 두 사람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수혁!”
몇 걸음 앞에서 송기태 놈이 소리를 지르며 내 쪽으로 달려들려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가 그 앞을 가로 막았다.
“미친겨?”
퍼어억!
“끄르륵···”
장덕수 선배가 놈의 모가지를 잡아채더니 그대로 백네트 쪽으로 집어 던져버렸다.
뒤엉킨 선수들 때문에 교묘하게 시야가 가려져 있어 카메라에 잡히기에는 갑자기 사람들 속에서 송기태가 쑥 뽑혀져 나와 벽에 부딪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어 이름이 뭔지 기억도 잘 안 나는 매지션스 선수 둘이 내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그 앞으로 달려간 장덕수 선배가 둘의 뒷덜미를 잡아채며 말했다.
“한 발만 더 움직이면 나한테 뒤질겨.”
“······”
누군인지 모를 매지션스 선수의 손이 내 유니폼을 잡아채려 했지만 가볍게 피해냈다.
그렇게 황성민 놈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드디어 놈과의 거리가 코 앞으로 좁혀졌다.
나를 보호하기 위래 달려온 이만식 선배와 조성오 선배가 등뒤를 막아서자 황성민과 내게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황성민!”
분기점이다.
여기서 내가 이 놈을 박살내면 앞으로 귀찮은 일들이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 그리고 프로까지 얽히고 설켜 한 다리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게 한국야구판이다.
그런 곳에서 한때 같은 팀이었던 선배를 대놓고 쥐어 팬다는 건 아무 상관없는 다른 선배들까지 자극하게 될 것이다. 그들 모두가 합심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내가 아주 잠깐 생각했던 평온하고 화기애애한 야구 생활은 완전히 물 건너 갈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징계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8경기? 10경기? 아니, 어쩌면 그보다 긴 출장정지를 먹을 수도 있다.
······
···그래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씨발, 이런 좆 같은 새끼를 가만 놔두라고?
집어 쳐라. 일단 좀 맞자.
“황성민! 내가 한 번만 더 걸리면 죽인다고 했지?”
“이게 어디서 새까만 후배··· 커헉!”
내게 복싱을 가르쳐줬던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복부를 단련한 게 아닌 이상 첫 방으로 간장을 후려 갈기면 아무리 덩치가 큰 놈이라도 단번에 넘어가게 되어 있다고.
갈비뼈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놈의 오른쪽 복부에 내 바디샷이 틀어박혔다. 살짝 빗맞았는지 뭔가 부러지는 듯한 감촉이 함께 느껴졌다.
퍼억!
“크헉!”
그 한 방에 얼굴이 허옇게 질려버린 황성민이 그대로 무너지듯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런 놈의 멱살을 잡아채고 다시 대가리를 연달아 후려갈겼다.
“좆 같은 짓을 하면!”
퍼억!
“니가!
퍼억!
“좆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콰직!
“끄르륵···”
주먹 한 방에 이빨 하나.
놈의 입에서 허연 게거품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튀어나온 누런 치아들이 그라운드 위에 후두득 떨어졌다.
사람한테 야구 배트를 던져 놓고 겨우 이정도에 기절?
머리 끝까지 분노가 차오른 내가 놈을 향해 다시 주먹을 들어올리려던 순간, 중계카메라가 나를 향해 있는 게 느껴졌다.
완전히 놓아버렸던 이성이 간신히 돌아왔다.
“후우···”
크게 한 숨을 쉬어 보았다.
그제야 내 시야에 황성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여기저기 뒤엉켜 있던 양팀 선수들이 하나같이 기가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억지로 남은 감정을 추스른 나는 기절해버린 놈을 발로 툭 밀어버리고 심판에게로 걸어갔다.
그 누구도 내 앞을 막아서지 못했다.
“배트에 맞을 뻔해서 너무 흥분했습니다. 반성합니다.”
“퇴, 퇴장!”
하필이면 그때, 1루측 익사이팅 존을 막고 있던 안전망이 관중들의 힘에 무너져 내렸다.
그 안에 있던 관중들이 우르르 그라운드로 난입하자 기겁을 한 양팀 선수들이 덕아웃으로 도망쳤다.
그 와중에 경기 전 민예린 공연을 위해 설치했던 폭죽 몇 발이 오작동을 하며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파바방!
들것이 들어와 기절한 송기태와 황성민을 실어 나갔다.
잠실야구장이 광기로 물들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 * *
<네 번에 걸친 벤치클리어링, 광기로 물든 야구장. 잠실라이벌 전 3차전 결국 무승부>
<워리어스 한수혁, 김수학, 매지션스 최동석, 황성민 등 양팀 선수 네 명 퇴장>
<올시즌 첫 투수 데뷔한 한수혁 167km/h 포심 선보인 후 황성민 때려 눕히고 퇴장>
<한수혁 “머리로 배트가 날아왔을 때 고의적임을 직감했다. 순간 흥분했다”>
<영상 분석 전문가 “황성민이 날린 배트는 100% 고의적”>
<송기태, 집단 몸싸움 중 벽에 충돌, 병원에서 의식 찾은 후 “여긴 어디?”>
<한수혁에게 배트 집어 던진 황성민, 갈비뼈 골절과 치아 파절로 장기 결장 불가피>
<야구계 원로들 “있어서는 안 될 하극상이 벌어졌다. 화 나더라도 후배들이 더 참았어야”>
<워리어스 팬들 어이없어, “배트가 날아오는데 참으라고?”
– 이봐 친구들, 이걸 한 번 보라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인데 말이야
﹂뭔데? 빌어먹을, 그런 변방 리그에 뭐 볼게 있다고?
﹂아냐, 조금만 더 지켜보라고. 여기 ‘한’이라는 선수가 나올 때를 봐
﹂오··· 커브가 92마일? 슬라이더가 96마일? 젠장, 우리 팀 마무리 투수 포심보다 빠르군
﹂저 낙차 좀 봐. 타자 놈 아무래도 오줌을 지린 것 같은데?
﹂자, 진짜는 이제부터야
﹂배트를 집어 던지네? 미친? 저거 자기도 죽을 각오는 한 거겠지?
﹂’한’이라는 친구 스탭이 그냥 아마추어가 아닌데? 저걸 저렇게 피해?
﹂오오! 펀치 좀 봐! 주먹 한 방에 이빨 한 대씩! 저건 제대로 배운 펀치인데?
﹂정교해! 앞으로 치과의사라고 부르면 딱이겠군
﹂그런데 저기 불꽃은 뭐야? 한국에서는 벤클 때 폭죽도 터뜨리는 건가?
﹂역시 KPOP의 나라답군
﹂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방금 마운드에서 104마일짜리 포심을 던지고, 상대 타자 이빨을 세 개나 발치 해 낸 친구가 우리가 원래 데려오려던 신인이라는 거지
﹂뭐? 저 친구가 그 친구라고? 350만 달러를 거절했다는?
﹂그래, 참고로. 저 경기 전까지 홈런을 10개나 쳐냈더군. 겨우 14경기에서 말이야
﹂이런 젠장. 이 멍청한 스카우터들은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저런 선수에게 고작 350만?
﹂이런 식이니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못 나가는 거야! 빌어먹을 매리너스!
주먹 한 방에 이빨 하나씩, 황성민의 치아를 발골해 낸 나는 시애틀 팬들 덕분에 치과의사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한수혁 선수.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일단 구단에서는 어떤 징계가 내려오더라도 무조건 항소할 겁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런 쓰레기를 때리다가 주먹을 다칠 수도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가급적 손 사용은 자제해주세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좋아요. 그러고 보니 기왕 이렇게 시간이 난 김에 제가 처음 메이저리그에서 뛰었을 때, 그러니까 마이너 코치로부터 미국 야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군요. 그 사람 이름이 밥 말린이었는데 참 인자한 분이었습니다. 경기 전에 베이글에 땅콩버터 잼을 발라먹는 걸 좋아하는 분이었죠. 자,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차부터 일단 한 잔 드실까요? 제가 어디까지 얘기했죠? 음, 그렇군요. 처음 벤치클리어링 때문에 퇴장당했을 때 그 분이 그러더군요 ··· 저기, 한수혁 선수?”
날 앞에 앉혀 놓고 뭔가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려는 박재철 단장을 간신히 밀어내고 구단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퇴장당하고 황성민이 실려 나간 후 엉망이 되어버린 경기는 결국 12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게 매지션스와의 잠실 3연전에서 2승 1무를 거둔 우리팀은 10승 1무 4패를 기록하며 전체 1위를 유지했다.
이제 전체 일정의 10%를 치룬 초반이기는 하지만 무척 고무적인 성적이다.
문제는 지난 3차전에서의 벤클로 인해 우리 팀에 큰 구멍이 생길 거라는 점이다.
내일 휴식일에 KBO에서 상벌위원회가 열릴 것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이번 벤치클리어링에 연관된 선수들에 대한 징계수위가 결정되겠지.
모르겠다. 사실 팀 성적만 놓고 생각해보면 그냥 참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출장정지나 성적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법이다.
앞으로 우리 팀의 성적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좆 같은 짓은 하려는 놈들은 계속 늘어날 거다.
스타급 베테랑 플레이어가 전무하다시피 하고,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신인, 아니면 무명인 점을 다른 팀에서는 계속 파고들 것이다. 우리 선수단을 자극하려 할 것이다.
이럴 때 황성민 같이 개판을 치고 나간 놈이 우리 팀 선수에게 헛짓을 하려는 걸 그냥 두고 본다는 건 스스로 호구임을 인증하는 짓이다.
그렇기에 보여줘야 한다.
우리 팀을 대상으로 좆같은 짓을 하려거든 자기들도 목을 걸어야 한다는 걸.
황성민 그 새끼가 갈비뼈 골절에 이빨 세 대가 나갔다고?
많이 참은 거다.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으로 내게 덤볐던 놈이 안와골 골절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렸던 걸 생각하면 고작 이빨 몇 대 빠지고 갈비뼈 좀 나간 것 정도야.
“흠.”
경기 후 만난 이대준 감독은 한숨을 한 번 푹 쉬더니 내일 휴식일까지 야구장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팀 훈련에도 나오지 말고 컨디션 조절에 힘쓰라는 뜻이었다. 어쩌면 감독 허락없이 갑자기 마운드에 올라 투구를 한 것에 대한 질책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렇게 뜻하지 않게 휴가를 받게 된 나는 구단 사무실을 빠져 나와 집으로 향했다.
일단은 좀 자야겠다. 오랜만에 날뛰어서 그런지 좀 피곤하다.
* * *
‘띵동’
현관 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또 꿈이다.
클리블랜드로 팀을 옮긴 후 첫번째로 맞은 시즌, 내 어깨가 완전히 박살 났던 그때로 돌아갔다.
주치의의 입을 통해 더 이상 투수를 할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들은 날이었다.
의료진이 나간 후 단장과 프런트 직원 몇이 찾아와 의례적인 위로를 전하고 갔다. 타자로 전향해도 최고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의미없는 얘기가 오갔다.
병상에 누운 나는 그냥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간 후 아무도 내 병실을 찾지 않았다.
팀 동료, 코칭스태프, 구단관계자, 그 누구도 나에게 연락해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연락을 해온 건 내 몸값이 떨어질 걸 걱정한 에이전트와, 날 1년 동안 따라다녔던 이름도 기억 잘 안나는 팝스타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커다란 VIP 병실에 누워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았다.
“후···”
예전 꿈을 꿀 때마다 지독한 무기력감이 온 몸을 짓누른다.
‘띵동띵동’
그나저나 누가 이런 아침부터 우리 집을··· 성훈이 형인가?
이 시간에 벌써 징계수위가 결정된 건가. 그런 건 전화로 알려줘도 충분한데.
“누구세요?”
– 어! 수혁아! 나다!
“조성오 선배님?”
– 그래, 문 좀 열어봐. 여기 만식이도 같이 왔어
“만식 선배님도요?”
– 안녕, 수혁. 팔 아프다. 문 좀 열어도
“네, 잠시만요.”
마른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급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문 앞에는 조성오 선배와 이만식 선배가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선배님들, 그런데 그건 다 뭐예요?”
“야, 일단 받아봐. 와이프가 너 주라고 음식 좀 만든 건데 입에 맞을라나 모르겠네.”
“난 갓김치 좀 가져왔다. 입맛 없을 때는 이거 만한 게 없거든.”
“아니, 뭘 이런 걸··· 그리고 저희 집은 어떻게 아시고.”
“운영팀에 물어봤지. 어, 그런데 여기 문 앞에 또 뭐가 있는데?”
“네? 뭐가요?”
그러고 보니 현관문 옆에 뭔가 정체모를 아이스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건 또 뭐지?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빼꼼이 열린 옆집 문 뒤에서 정체불명의 눈동자 한 쌍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민예린···씨?”
“···헉!”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