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4화(45/412)
#44. KBO 폭발
대부분의 조직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나 한국 프로야구를 주관하는 KBO 내부의 권력 역학관계는 복잡함 그 자체였다.
틈만 나면 영향력을 행사하려 드는 정치권, 10개 구단의 소유주인 대기업 오너들, 사내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야구원로들, 거기에 선수들을 대변하는 선수협, 야구팬들을 중심으로 한 국민들의 여론까지.
이들 한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KBO 총재의 머리 속은 단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직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는 원로들에 의해 벌어진 일 앞에서는 더더욱.
<썩어빠진 KBO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휴식일인 월요일 아침, 벤치 클리어링에 관여된 선수들에 대한 징계수위가 발표되었다.
그러자 워리어스의 팬들 몇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어차피 시위대 규모라봐야 수십 명에 불과했기에 그냥 두면 얼마 가지 않아 자연스럽게 해산될 분위기였다.
하지만 민예린이라는 거물이 갑자기 건물 앞에 돗자리를 깔고 1인 시위를 시작하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그녀의 초췌한 모습에 자극받아 몰려든 팬들, 먹이감을 찾아 눈을 번뜩이는 취재진과 유튜버들, 그 모습을 구경하는 일반 시민들까지.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아주 잠깐, 경찰을 불러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방법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면 당장 저기 모여 있는 워리어스 팬들 정도는 쫓아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1인 시위중인 저 민예린이라는 거물한테 가서 어서 썩 꺼지라고 호통이라도 쳐볼까?
수많은 팬들과 시민들, 기자들, 유튜버들이 모두 쳐다보는 앞에서?
정말 어렵게 이 자리에 오른 야구인 출신의 총재는 그런 모험 따위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아···”
“총재님, 빨리 결정을···”
“나보고 대체 뭘 어쩌라고요? 내가 말만 총재지,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는데요?”
“일단 뭐라도 해야 합니다. 지금 국민들의 시선이 지나칠 정도로 저희에게 쏠리고 있습니다. 이 틈을 타고 이름값을 올리려는 정치인이 끼어들 수도 있습니다. 얼마 후면 국정감사입니다. 총재님”
“국정감사가 나랑 뭔 상관인데요? 내가 뭔 범죄라도 저질렀습니까?”
“예전에 국정감사 끌려 나간 야구 대표팀 감독을 벌써 잊으셨나요? 죄가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원래 정치란 게 그런 거잖습니까, 총재님.”
“······”
현재 KBO 내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심복의 말에 총재의 입이 굳게 닫혔다.
그의 말이 맞다. 안 그래도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의 몫이었던 KBO 총재 자리에 아무 배경도 없는 야구인 출신이 앉았다고 말들이 많은 상황이다.
이 자리를 노리는 인간들이 한 줄로 세워놓으면 연병장 열 두바퀴다.
‘안돼!’
갑자기 국정감사에 끌려가 국회의원들 앞에서 공개처형을 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닦아낸 총재가 사무총장을 향해 말했다.
“뭔 수가 있겠습니까? 올해부터 상벌위 독립성이 강화돼서 내가 뭘 어떻게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잖습니까.”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총재님. 단, 이 방법을 시행하려면 저희도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위험이요? 아니, 일단 무슨 방법인지부터 들어봅시다.”
“상벌위에서 황성민을 지지한 원로들, 아니, 사사건건 저희들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인사들 말입니다.”
“네,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그 사람들 명단, 민예린 측에 제가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네에?”
“단, 저희가 연관되었다는 건 절대 비밀로 하는 조건으로 말이죠. 민예린이 먼저 일을 벌이면 우리는 그 뒤에 숨어있다가 곧바로 수습하면 어떻겠습니까?”
“호오···”
“어차피 지금 민예린 때문에 불어오는 거대한 파도는 절대 저희 힘으로 못 막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 파도에 몸을 실어보죠.”
“흐음···”
“그 김에 한수혁 코인에 탑승도 하고요. 요즘 그 친구 인기 생각하면 10경기 출장정지 내리면 관중동원에도 엄청나게 마이너스입니다.”
“오오···”
총재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만에 하나 명단을 넘겨 받은 민예린이 그 출처에 대해 입을 열기라도 하면 자신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총재의 결단이 내려졌다.
“사무총장, 그 계획 바로 실행합시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리고 은밀하게.”
“네, 총재님.”
* * *
<황성민 선처 주장한 상벌위 원로들 실명, 인터넷에 공개>
<블랙리스트에 이름 올린 야구계 원로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법적조치 취하겠다”>
<최초 명단 유포자로 의심받은 민예린 “내가 했다는 증거는?”>
<국내 최대 로펌 강천, “지금부터 민예린 씨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에 대해 단 하나도 빠짐없이 강력 대응할 것”, 악플러들 일제히 활동중지>
프로야구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45년 간 한국 야구를 지배해온 카르텔.
이번 사태에서 자신들의 라인에 속한 후배 황성민을 감싸고 돌던 원로들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KBO를 장악하려는 신임 총재와 민예린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물이었다.
관련 기사가 나가고 불과 1시간 후 KBO에서는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저희 KBO에서는 국민 여러분의 지엄한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한편 이번 기회를 빌어 조직 운영을 보다 투명하게 쇄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총장님! 방금 그 말씀은 이번에 문제가 된 상벌위원회 구성을 다시 하시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
“네, 지금 KBO가 받고 있는 의혹을 씻으려면 그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수고하신 원로들에게 그간 수고했다는 말씀 전하며, 회견이 끝나는 즉시 조직을 재구성하고 징계수위를 다시 논의할 생각입니다.”
“질문 하나만 더···”
기자회견을 마친 KBO는 기다렸다는 듯 새롭게 구성된 상벌위원회 명단을 전격 발표해버렸다.
기존 황성민을 두둔했던 원로들뿐만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에 얽혀 있던 나이 든 인사들이 모두 해임되고 대신 새로운 얼굴들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순식간에 자리에서 쫓겨난 원로들이 반발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국민들의 여론은 이미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 상태였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상벌위원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난 벤치클리어링 사태에 대한 징계수위 조절이었다.
이 모든 게 휴식일 단 하루 동안 진행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일 처리였다.
<워리어스 “아쉽지만 받아들이겠다. 다시는 야구장에서 이런 일은 없어야 할 것”>
<진노한 해임 원로들, 기자회견 자청했지만 싸늘한 무관심 속에 흐지부지>
<매지션스 “황성민 즉시 방출, 정민식 단장도 곧 해임 예정” 물의 일으켜서 죄송>
모든 것이 깔끔히 정리되었다.
10경기 정도는 예상했는데 4경기면 대만족이다. 사회봉사야 뭐 시즌 끝나고 애들 좀 가르치러 다녀오면 되는 거고.
그보다 정말 중요한 건 황성민 그 빌어먹을 놈은 이제 정말 끝이라는 거다.
선 긋기에 나선 매지션스에서 즉시 방출을 결정한 가운데 150경기 출장정지다.
언제라도 분위기를 봐서 해제가 가능한 선수자격정지 따위보다 훨씬 더 무거운 징계다.
영입을 해도 한 시즌 이상 써먹을 수 없는, 이미 수차례 문제를 일으킨 선수 따위를 누가 데려갈까. 그동안 뒷배가 되어주던 정민식 단장조차 야구계에서 퇴출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5년 전, 황성민에게 시달리다가 야구를 그만둔 2군 선수 두 명이 개인적으로 놈에게 소송을 하고 싶다길래 구단 차원에서 변호사를 지원해줬다.
그놈은 이제 야구가 문제가 아니라 인생 자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제 그 잡스러운 놈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잊기로 하고.
그나저나 민예린 그 여자는 진짜···
여기가 헐리우드도 아니고, 저렇게 아무 거침없이 하고 싶은 거 시원하게 다 하고 사는 연예인은 난생 처음 본다.
그날 저녁, 집 앞에서 마주친 그녀가 내게 조용히 말해줬다.
‘사실··· 그 명단 제가 인터넷에 흘린 거 맞아요’
뭔가 그런 고백을 하는 것 치고는 엄청나게 해맑은 표정이었다.
‘네에? 그럼 그 루머가 진짜···?’
‘쉬잇··· 전 워리어스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여자랍니다’
‘그러다 진짜 고소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그녀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이러고 살려고 가수해서 뼈 빠지게 돈 벌어 놓은 거니까요’
음.
엄청나게 큰 빚을 진 기분이다.
그걸 생각해서라도 우리 팀이 힘을 내야 할텐데···
그러려면 나를 포함해 3명이나 빠져나간 팀 전력을 추스르는 게 관건이다.
일단 최동석에게 보디체크를 날린 김수학 선배는 3경기 출장정지가 확정되어 이번 대전 팔콘스 원정 3연전에 뛰지 못하게 되었다.
빈볼을 맞은 조성오 선배는 아예 대전 원정에서 빠져 서울에서 컨디션 조절을 하기로 했다. 이 부분은 제이콥이 도와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대전 원정 3경기와 수원과의 홈경기 1차전에 결장하게 되었다. 2군 선수단에 합류해 훈련이라도 할까 생각해봤지만 그보다는 팀의 사기를 위해 원정에 합류하기로 했다.
아무튼 나와 조성오 선배, 김수학 선배까지.
세 명이 빠진 가운데 대전과의 1차전이 진행되었다.
* * *
<한수혁 빠진 워리어스, 대전 팔콘스와의 원정 1차전에서 11대 2 대패>
<투타 양면에서 끔찍한 모습 보여준 워리어스, 한수혁의 공백이 너무 컸다>
<백업 멤버에서 약점 보인 워리어스, 하루 만에 2위로 내려 앉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돌아가는 듯했다.
매지션스와의 벤클 이후 눈에 띄게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이창모 선배가 3번 자리에서 안타 두개를 치고, 리드오프로 나선 최민석 선배 역시 2번이나 출루하며 제 몫을 했다.
하지만 대전 팔콘스의 선발 투수는 우리 상위 타선을 철저히 피하는 대신 백업 및 2군 선수들로 짜인 하위 타선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며 단 2점으로 틀어막았다.
반면 2군에서 급하게 올라온 우리 팀 임시선발은 팔콘스 타자들에게 난타를 당하며 조기 강판을 당했고 말이다.
사실 이게 바로 우리 팀의 가장 큰 약점이다.
주전과 백업 간의 기량 차이, 부실한 4선발과 5선발.
이게 다 실력이 아닌 학연과 지연으로 선수를 뽑아 온 스카우트 팀 버러지들 때문이다. 2군에서 누굴 올리려 해도 올릴 선수가 없다는 게 박재철 단장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따악!
따아악!
그렇게 1차전에서 대패를 당한 우리는 2차전을 앞두고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경기중에는 덕아웃 출입조차 불가능한 나는 유니폼 대신 트레이닝복을 그대로 입은 채 동료들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 팔콘스 유니폼을 입은 놈 하나가 나를 바라본다.
음, 쟤는 왜 또 저리 죽을 상이야?
<시즌 초반 4위를 유지중인 대전 팔콘스, 9년만에 가을야구 청신호>
<팔콘스 구단주 “올해는 무조건 가을 야구 갈 것” 그룹 차원의 총력전 선포>
<투타 양면에서 안정적인 전력, 대전의 가장 큰 고민은 1라운드 지명 신인 서형주>
<입단 전 큰 기대 받은 초특급 신인 서형주, 1할대 타율에 허덕이다>
<서형주 부진의 이유는? 전문가들, 프로레벨의 플레이가 아니다 혹평>
내가 회귀 전처럼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아마 나 대신 1순위로 지명을 받았을 서형주.
입단과 동시에 대전 팔콘스의 2루와 유격수 자리를 오가며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녀석이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다.
시범 경기 때만 해도 나와 서형주를 비교하는 기자들이 제법 많았다.
뭐라더라, 장타력에서는 내가 앞서고 정교함과 기동력에서는 서형주가 앞선다나 뭐라나.
물론 시즌이 시작되자 마자 몽땅 헛소리인 걸로 판명났지만.
“서형주라···”
시즌 16경기 동안 타율 1할 2푼에 홈런은 하나도 없이 도루 3개가 전부.
1라운드 지명자라는 타이틀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2군에 쳐박혔을 게 분명한 성적이다.
그런 서형주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돌리지 않았다.
다들 저 녀석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뭐라더라, 팔콘스가 완전히 속아서 계약금 5억만 날렸다고 했던가.
프로에서는 도저히 통할 재능이 아니라는 말도 나왔지, 아마.
음.
저거 진짜 잘할 놈인데.
어떻게 쟤 좀 싸게 주워 올 방법 없을까.
아무리 그래도 1라운더인데 대전이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지?
* * *
어제에 이어 오늘도 9번 유격수 자리에 이름을 올린 서형주가 저 멀리 원정팀 덕아웃 앞에 있는 한수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선배를 쥐어 패고 4경기 출장정지를 먹은 놈이 뭐가 그리 신나는지 웃음까지 띄운 얼굴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뭐해! 서형주! 정신 안 차려?”
“···죄송합니다.”
“쯧, 요즘 것들은 빠져 가지고. 내가 신인일 때는 선배들 옆에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이 팀에 입단 한 뒤부터 계속 따라붙어 귀찮게 하는 3년 선배 하나가 또 으름장을 놓는다.
눈만 마주치면 나 때는 안 그랬다느니, 5억이나 받았으면 몸값을 좀 하라느니, 말만 많은 놈이다. 아마도 자신이 하위 라운드 출신인 거에 대한 자격지심인 것 같다.
대충 수긍하는 척하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한수혁···’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우타자는 한수혁, 좌타자는 서형주라 불리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물론 저 놈은 투수로서도 굉장한 실력을 가졌기에 항상 자신 앞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지만 적어도 타격에 있어서만큼은 꿀릴 게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 성적도 그랬다. 저 놈이 고교리그 통산 62경기에서 타율 4할 8푼 25홈런 55타점 8도루를 기록하는 동안 자신은 59경기 타율 4할 1푼 9홈런 32타점 40도루를 기록했다.
수비에 있어서도 2루와 유격수, 거기에 외야까지 오가며 한수혁보다 오히려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내심 메이저리그 직행을 꿈꿨다.
하지만 한수혁에게 350만 달러를 제안한 미국 팀이 자신에게는 15만 달러라는 돈을 내미는 순간 메이저리그에 대한 생각은 깨끗이 접기로 했다.
그렇게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을 접고 신인 드래프트 결과를 기다렸다.
한수혁이 빠진 2027 신인 드래프트의 주인공은 자신일 거라 생각했다.
꼴찌팀 워리어스의 지명을 받는 게 걱정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1순위 지명의 영광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수혁이 또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갑자기 등장해 1순위 지명을 빼앗아가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해버렸다.
워리어스 대신 팔콘스가 자신을 지명했다.
신인이기는 하지만 야수 뎁스가 깊지 않은 팀 사정상 곧바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했고, 시범경기를 거쳐 2루와 유격수를 오가며 선발 출장을 이어갔다.
<괴물 한수혁, 시즌 개막과 동시에 KBO 무대 평정>
<메이저리그 대신 워리어스 우승 선택했다던 한수혁, 실력으로 그 말을 입증하다>
하지만 아무도 서형주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관심은 한수혁에게로 쏠렸다.
그 놈이 열 몇 경기만에 10호 홈런을 쏘아 올렸을 때는 솔직히 절망스러웠다.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거의 손에 잡힐 듯했던 라이벌이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 있었다.
그래서일까. 몸에 힘이 들어가고 자꾸 무리한 플레이를 하게 되었다.
팀보다는 개인의 성적을 올리는데 더욱 온 신경을 집중했다. 옆에 다가오는 동료들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그럴수록 폼은 더욱 망가져갔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점점 서형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들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듯 팔콘스가 또 1라운드 지명권을 날렸다고, 저놈은 애초에 프로에서 통할 놈이 아니었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전의 애물단지가 된 서형주가 퀭한 눈으로 저 멀리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원정팀에게 주어진 연습시간이 끝나고 워리어스 선수들이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한수혁의 주위로 워리어스 선수들이 몰려 들었다.
동갑내기 안치욱, 저 팀의 최고참인 조성오, 용병 타자와 투수, 매지션스에서 이적해온 최민석까지.
여러 선수들에 둘러싸인 한수혁이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저 녀석과 나의 차이점은 뭘까?
나도 저런 환경에서 뛰었으면 지금보다 나은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후우···”
서형주의 머릿속이 한수혁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같은 시각, 한수혁의 머리속에도 서형주에 대한 생각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대전이면 박재철 단장 앞 마당이기는 한데··· 그 양반이 아마 팔콘스 구단주랑 일대 일 독대도 가능하다고 했지? 프런트 안 거치고 구단주를 바로 구워 삶으면 쟤 좀 싸게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1라운더를 풀어줄리는 없지만 그래도 팔콘스잖아?’
팔콘스 팬들이 들으면 뒷목을 잡고 뒤로 넘어갈 그런 소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