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8화(49/412)
#48. 투수인가, 스토커인가
KBO에서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질 경우 대부분은 나이와 서열에 따라 그 결과가 이미 결정되게 마련이다.
실수로 선배의 몸을 맞춘 투수가 반항 한 번 못하고 따귀를 맞는 경우도 있고,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선수가 상대팀 선배의 말 한 마디에 순한 양이 되기도 한다.
뭐, 전국적으로 다 뒤져봐야 80여개밖에 안 되는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하고, 청소년대표부터 시작해서 계속 얽히고 설켜온, 거기에 현역 은퇴 후에는 언제 같은 팀에서 코치 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를 선배에게 대든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니까.
“씨이발!”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 언제나 상식을 깨는 존재는 나타나는 법이다.
지난 황성민 사태의 CCTV가 공개된 후 다른 팀 선수들이 그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신장 2미터, 몸무게 120kg에 달하는 거인, 싸대기 한 방으로 건장한 남자를 기절시킬 수 있다는 걸 입증한 괴물에게 함부로 들이대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다.
나이나 경력이 눈 앞으로 날아오는 펀치를 막아주지는 않을 테니까.
생각해보면 그런 괴물을 몇 년 동안 괴롭혀온 황성민 쪽이 진짜 대단한 거다.
뭐, 사실은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해서라는 게 문제이지만.
아무튼.
머리로 날아오는 공에 당장이라도 마운드로 뛰어올라가려던 이태웅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실투여. 여기서 마운드로 뛰어올라가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겨.”
상무 시절 아주 잠깐 같이 뛰었던 포수 장덕수의 목소리였다.
그때만 해도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세상 착하고 순한 사람인줄 알았건만.
‘음’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이태웅이 저 멀리 2루 베이스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수혁과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마 전 매지션스와의 벤치 클리어링에서 저 한수혁이라는 놈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솔직히 같은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장덕수는 논외로 치더라도 주먹 네 방으로 황성민을 완전히 개 박살낸 핵 주먹 한수혁의 존재도 부담스럽다.
설마 선배한테 그렇게 또 덤벼들까, 징계가 풀린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그럴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자신이 나서서 저 놈의 인내심을 시험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흠흠.”
헛기침을 한 번 한 이태웅이 굳은 표정으로 다시 타석에 섰다.
그나저나 진짜 깜짝 놀라기는 했다.
최근 들어 그가 바깥쪽 코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야구판의 모든 인간들이 알고 있기에 초구에는 무조건 그쪽으로 공이 들어올 거라 생각하고 타석에 붙어 있었건만.
포심이 머리로 날아오다니.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
‘아, 속도 안 좋고, 미경이랑 화해도 해야 하고··· 빨리 끝내고 싶은데’
지금 이태웅의 머릿속에 있는 건 오직 하나, 당장이라도 자신 곁을 떠날 것 같은 미경이와 화해하는 것뿐이었다.
덤으로 어제 저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먹은 매운 닭발 때문에 부글부글 끓는 속도 진정시키고 싶었고.
어차피 팀은 최하위 경쟁을 벌이는 중. 이래저래 의욕도 나지 않는 상황이다.
‘나 하나라도 빨리 승부를 끝내자. 다음 공은 바깥쪽이겠지’
생각을 정리한 이태웅이 다시 타석에 바싹 붙어 섰다.
몇 차례 포수를 향해 고개를 젓던 투수가 다시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대기타석에서 저 선수가 연습투구를 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폼만 봐서는 어떤 구종을 던질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가는 투수다.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한 데다가 디셉션까지 좋아 생각보다 투구 예측이 까다롭다.
슈웅
“흐억!”
“스트라이크!”
또 한 번 머리 쪽으로 날아오는 공에 이태웅이 기겁을 하며 엉덩방아를 찌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던 공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그대로 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낙폭이 엄청나게 큰 115km/h짜리 커브였다.
“이런 씨발···”
자신이 괜히 똥볼에 겁을 집어먹고 추태를 벌였다는 걸 깨달은 이태웅이 욕설을 내뱉으며 타석으로 돌아왔다.
진짜 생각도 못했다. 거기서 그런 공을 던질 줄은.
얼마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부글거리던 속이 그대로 폭발해 배터박스에 똥을 지릴 뻔했다.
마운드에 선 저 중고신인이 생각보다 만만한 놈이 아니란 걸 깨달은 이태웅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다음 공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볼 카운트 1볼 1스트라이크.
좋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이번에는 몸쪽 공을 노려주마.
투수의 몸쪽 공을 유도하기로 마음먹은 이태웅이 다시 한 번 타석에 섰다.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살짝 오픈 스탠스를 취한 후 언제라도 몸의 중심을 뒤로 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어차피 최고 구속이 140km/h 언저리에 불과한 투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몸쪽으로 들어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받아쳐도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게 이태웅이 다음 공을 기다리던 그때.
퍼엉
“스트라이크!”
“······”
이번에는 바깥쪽 높은 코스에 꽉 찬 140km/h짜리 포심이 들어왔다.
몸쪽 공만을 노리고 있던 이태웅이 아예 배트를 내지도 못할 그런 코스였다.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혼란에 빠진 이태웅은 결국 다음에 이어진 몸 쪽 낮은 곳에서 땅으로 처박히는 체인지업에 어이없이 헛스윙을 하며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 * *
“음.”
천상진이라는 투수를 보고 있노라니 느낌이 좀 이상하다.
이건 투수를 해본 사람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런 감각이다.
뭐랄까, 천상진이라는 투수가 상대 타자를 완벽하게 갖고 논다는 느낌? 이상하게 타자가 승부에 집중을 못한다는 그런 느낌?
아, 이거 궁금해 죽겠네.
“아웃!”
“아웃!”
까다로운 1번 타자 이태웅을 삼진 처리한 후 2번 타자를 상대로 바깥쪽 낮은 코스 싱커만 주구장창 던져 볼넷으로 내보낸 천상진이 이어지는 3번 타자를 보더라인을 넘나드는 공으로 살살 유인해 기어코 병살타를 만들어냈다.
인상적이다. 1군 무대에 처음 올라온 주제에 엄청나게 승부에 능숙하다.
나만 그걸 느낀 게 아니었는지 저 멀리 덕아웃에 감독과 투수코치 역시 눈빛을 반짝거리며 천상진 선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마운드를 내려와 덕아웃으로 향하는 천상진 선배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선배님, 어떻게 하신 거예요?”
“응? 뭐가?”
“타자들이 이상하게 좀 말리는 거 같아 보이던데.”
“아, 그거. 흐흐, 그게 궁금했구나.”
“네, 아무리 봐도 이유를 모르겠어서요.”
“별 거 아냐. 그냥 오늘 나온 버팔로스 타자들에 대해서 연구를 좀 많이 한 것뿐이야.”
“무슨 연구요?”
“자기도 모르게 드러나는 행동 같은 거 있잖아. 자료에는 안 나오는 그런 것들이 영상을 계속 돌려보다 보면 보이거든. 전력분석팀에서도 그걸 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업무량의 한계라는 게 있고, 찾아낸 정보가 나한테 유용하리란 법도 없고. 아무튼 한 3년치 정도 영상을 싹 다 뒤져서 그걸 찾아내고, 통계를 내고···“
허어··· 이 양반 보게.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게 아니잖아.
당장 내일 상대할 타자들의 자료도 외우기 급급한 게 보통의 투수들인데.
어이없어 하는 내 표정을 본 천상진 선배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건 저 타자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하는 거지. 사람의 마음이란 게 컨디션뿐만 아니라 플레이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는 법이잖아?”
“심리상태라··· 그런 걸 어떻게 분석하는데요?”
“그거야 SNS만 뒤져봐도 다 나오잖아. 방금 마지막에 상대한 타자 같은 경우에는 최근 와이프하고 애들 교육 문제로 갈등이 좀 있었던 거 같더라고. 부인 SNS를 뒤져보니까 용서받고 싶으면 오늘 경기 끝내고 일찍 와서 대화 좀 하자던데? 태그에는 와인하고 케이크가 막 박혀 있고. 저러면 사람인 이상 승부를 좀 빨리 가고 싶어하지 않겠어? 그럴 때는 유인구로 슬슬···”
···봐, 봐. 이것 봐. 역시 SNS는 인생의 낭비가 맞다니까.
내 약점을 적에게 고스란히 알려주는 셈이잖아.
하긴, 다른 선수 심리상태를 분석하겠다고 애인, 가족, 거기에 일가친척의 SNS까지 싹 다 뒤지고 다니는 미친 인간이 또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흠.
사실 천상진 선배가 오늘 호투를 하는 데는 방금 그가 말한 것들 외에도 다른 여러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투수들의 구속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시대에 빈말이라도 빠르다 말할 수 없는 140km/h대의 포심이지만 생각보다 무브먼트가 좋고, 변화구 각은 별로지만 릴리스 포인트가 좋아 타자들이 잘 속아 넘어간다.
연습투구 때와는 달리 실전에 들어간 천상진은 분명 자신도 모르는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는 투수였다.
거기에 방금 전 말한 개인적인 노력들이 시너지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실전에 아주 강한 타입의 투수랄까.
아무튼.
머리 속에 상대 타자의 최근 3년 타격기록과 패턴을 저장하고, 거기에 본인과 가족, 애인, 친지의 SNS까지 다 털어서 심리 상태까지 분석하는 투수라…
이건 음···
일종의··· 스토커형 투수라고 부르면 되는 걸까?
* * *
서울 워리어스(원정) VS 대구 버팔로스(홈)
스코어 0 : 0 노아웃
워리어스 투수 천상진
6회말 – 대구 버팔로스 공격
1번 타자 이태웅
1구 볼
2구 볼
3구 볼
4구 스트라이크
5구 스트라이크
6구 타격
포수 파울플라이 아웃
2번 타자 윤성재
1구 스트라이크
2구 스트라이크
3구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3번 타자 리암 앤더슨
1구 볼
2구 볼
3구 볼
4구 타격
2루수 플라이 아웃
– 씨발 뭐하냐···
﹂타자 새끼들 스윙 꼬라지봐라
﹂이상하게 뭔가 말리는 기분인데
﹂천상진인지 뭔지 저거 어디서 튀어나온 놈임?
﹂몰라 나도 오늘 처음 봄. 뉴스 검색해보니까 현역으로 군대 다녀온 거 같은데, 그것도 최전방.
﹂워) ㅋㅋㅋ 버팔로스 좆밥들
﹂워) 게임 전에 그렇게 듣보잡이라고 설레발치더니
﹂꺼져 이 새끼들아 왜 남의 초상집에 와서 지랄임?
﹂같이 바닥 벅벅 길 때는 동맹이라고 그렇게 아양떨더니 한수혁 하나 들어왔다고 이러기임?
6회초 서울 워리어스 공격
1번 타자 이창모
1구 스트라이크
2구 볼
3구 볼
4구 스트라이크
5구 볼
6구 볼
볼넷
2번 타자 최민석
1구 볼
2구 볼
3구 스트라이크
4구 타격
우익수 앞 안타
타자 주자 1루, 선행 주자 2루
﹂아앜! 한수혁 앞에 장작 쌓지 말라고!
﹂유세준 저 새끼도 이제 퇴물 다 됐네
﹂애초에 이창모 저놈한테 볼넷을 왜 줌?
﹂이창모 저거 요즘 눈깔야구 장난 아니네
﹂아니 애초에 칠 생각이 없는 놈한테 왜 볼만 던지냐고
﹂무사 주자 1, 2루 한수혁··· 씨바 ㅠㅠ
﹂야 저 새끼 표정 봐라. 무슨 악당 같지 않냐?
﹂저게 무슨 신인이야? 몇 달 전까지 저놈이 고등학생이었다는 게 믿어져?
﹂차라리 걸러! 그냥 다음 용병 놈하고 승부를 하라고!
3번 타자 한수혁
1구 타격
중견수 앞 안타
1루 주자 이창모 홈인
2루 주자 최민석 홈인
송구 실책, 타자 주자 2루까지
서울 워리어스 2 : 대구 버팔로스 0
﹂ㅋㅋㅋ 씨발···
﹂미친 그냥 거르라니까 왜 거기서 한 가운데 포심을
﹂유세준 저 정신 나간 새끼 왜 거기서 정면승부를 해?
﹂투수 미친 거임? 투수 미친 거임? 투수 미친 거임? 투수 미친 거임? 투수 미친 거임?
﹂걍 경기 내주고 꼴찌 가자. 내년에 한수혁 같은 놈 나오면 잡게
﹂미친 놈아 저런 괴물이 어디 매년 나오는 줄 아냐?
﹂아아앜! 좆같아!
* * *
따악
“아웃!”
“아웃!”
“씨발!”
보면 볼 수록 진짜 신기하다.
아니, 본인에게 설명을 듣고 나니 더 기가 막히다.
투수로서는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던 내게 이 선배의 투구는 굉장한 영감을 준다.
“자, 이제 하나만 더!”
“파이팅!”
내가 친 2타점 적시타와 안치욱의 희생플라이, 맥스 워커의 홈런을 묶어 워리어스가 9회말 현재 4대 2로 앞서고 있는 상황.
이제 아웃 카운트 하나만 잡으면 완투승이다.
생애 첫 완투승을 앞둔 투수치고는 표정에 여유까지 넘치는 게 멘탈도 아주 튼튼하다.
아니, 그냥 표정 때문에 그래 보이는 건가?
아무튼.
따악
“아웃!”
“와아아!”
대구의 마지막 타자가 힘없는 1루수 땅볼로 물러나며 경기가 그대로 끝났다.
해냈다.
정말 그가 해냈다.
완투승이다.
천상진이라는 무명 투수가 어이없게도 생애 첫 1군 선발 등판에서 완투승을 기록했다.
이런 투수가 오늘 처음 1군 무대를 밟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워리어스 전 투수코치가 멍청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눈이란 건 달려 있었다.
문제는 천상진 같은 타입의 투수는 실제 1군 무대에 올려 보기 전까지는 그 진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연습투구만 볼 때는 그저 포심 무브먼트가 좀 좋은 것 외에는 별다른 장점이 없는 투수로 보일 테니까.
저 투수가 타자들에 대한 정보를 달달 외우고, 그들의 신상정보를 털고 다닌다는 걸 세상에 누가 짐작할 수 있었을까. 하루 종일 상대 타자를 상대할 생각만 할 정도로 야구에 진심이라는 걸 누가 알아볼 수 있었을까.
“흠···”
확실히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공을 던질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공을 던지냐라는 걸 오늘 이 선배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상진아! 축하한다!”
“헤이, 천. 좋아. 잘했어. 오늘은 자네가 챔피언이군.”
“천상진 선수, 오늘 수훈선수 인터뷰 준비해주세요.”
1군 무대 첫승이자 생애 첫 완투승을 따낸 천상진 선배가 동료들과 코칭스태프들에게 축하를 받은 후 인터뷰를 위해 리포터 쪽으로 걸어갔다.
난생 처음 그의 앞에 인터뷰용 마이크가 놓였다.
그의 외모에 호감을 느낀 리포터가 자꾸만 농담을 걸고, 여러 대의 카메라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떨림조차 없었다..
“천상진 선수,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생애 첫 1군 무대에서 완투승이라니, 혹시 예상은 하셨습니까?”
“전혀 못했습니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대구 타자들을 상대로 9회까지 단 두 점만 내준 비결을 물어도 될까요?”
캐스터의 질문에 천상진 선배가 잠시 멈칫하며 말을 멈췄다.
순간 나는 마음 속으로 제발 저 선배가 대구 버팔로스 선수들과 그 일가친척들의 SNS를 모두 털었다는 말만은 하지 않기를 빌었다.
아직 이 세상은 저 선배의 기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행이 천상진 선배의 입에서는 그와는 전혀 다른, 제법 그럴 듯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제게는 재능이 없습니다.”
“네?”
“투수에게 가장 좋은 무기인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좋은 변화구를 던지기 위한 길고 튼튼한 손가락도 없습니다. 그나마 왼손으로 공을 던진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기는 하네요.”
“아, 네···”
“그래서 더욱 노력했습니다. 잠을 줄이고, 휴식을 줄이고, 대신 다른 팀 타자들의 타석을 하나라도 더 보고 외우고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완투승의 비결이요? 글쎄요. 어쩌면 이번이 제 마지막 완투승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렇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선수라도 1군 무대에서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상태 팀 선수들과 주변 인물들의 SNS를 다 턴 사람 치고는 너무나 정직하고 올곧은 답변이었다.
듣고 있던 리포터가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그때였다.
뒤에서 음료수 통을 들고 대기하고 있던 안치욱과 맥스 워커, 최민석 선배가 천상진의 머리 위로 물벼락을 내렸다.
“으앗차차! 깜짝이야!”
“천상진 선수, 괜찮으세요?”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당한 천상진이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리포터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천상진은 그런 것 따위 아무 관심 없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한 발 더 앞으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오늘 완투승의 비결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 저는 오늘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지금까지 천상진이라는 야구 선수가 오랫동안 마음 속에 간직해온 멘트였을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