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화(5/412)
#4. 블랙리스트
<초고교급 투수 한수혁, 메이저리그 아닌 서울 워리어스 유니폼 입다>
<박성훈 대표, 한수혁 지명은 구단 인수 후 결정된 것. 사전 논의 없었다>
<일부 구단 관계자 지명과정에 의혹 제시··· KBO “절차적으로 아무 문제없어”>
<잠실야구장으로 뛰쳐나온 워리어스 팬들, 갓성훈을 찬양합니다 팻말 들어>
<최하위에도 마냥 기쁜 워리어스 팬들, 야구장 외벽에 걸린 한수혁 플랜카드 앞은 인산인해>
<한수혁 지명 후 본격적인 구단 체제 정비에 나선 워리어스, 감독 교체설 솔솔>
<내년 시즌 한수혁의 포지션은 어디? 워리어스, 행복한 고민>
야구팬들에게 새로운 선수의 입단만큼 즐거운 소식이 또 있을까?
특히나 그 선수가 존재만으로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거물급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음.. 이게 대체···”
“야, 수혁아! 일단 들어가. 내가 정리 좀 되면 부를 테니까.”
“저기, 한수혁 선수! 한수혁 선수! 한 말씀만 좀!”
워리어스 입단이 공식 발표된 후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지금 나는 집 앞에 몰려든 팬과 기자들로 인해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휴우···”
“다 갔어?”
“어, 경찰서에서 와서 도와주셨어. 급한대로 사인볼도 좀 집어드렸고.”
“잘했네. 그보다 내가 말한 야구연습장은?”
“어, 알아보는 중이야. 아니, 그보다 내가 말한 대로 큰 집 사서 이사 가라니까? 500억이나 있는 놈이 뭐가 부족해서 여기 계속 살겠다는 건데? 그냥 야구 연습장 딸린 큰 저택 하나 사. 재테크도 할 겸 내가 좋은 데로 알아봐줄까?”
“아니, 그 돈은 따로 쓸데가 있어. 그리고 난 이 오피스텔이 제일 편한데.”
“이런 미친···”
연습장 딸린 대저택, 내가 벌써 살아봤지.
막상 살아보니 별로더라. 쓸데없이 넓어서 사람 외롭기만 하고, 관리하기도 힘들고.
그런 내 마음을 알 턱없는 성훈이 형은 계속 내게 이런 저런 제안을 해왔다.
“아무리 그래도 집은 따로 구해. 예전에는 에이전시였지만 이제는 아니잖아. 구단주랑 선수랑 한 집에 사는 거 소문나서 좋을 거 하나 없다.”
“알았어, 그럼 야구장 근처에 적당한 집으로 알아봐 줘. 연습장도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 내로.”
“너 걸어 다니게? 차는? 차는 안 살 거야?”
“차는 뭐하러 사. 괜히 운전하다 사고 나면 부상이나 당하지.”
“···거 진짜 별난 놈일세. 너 진짜 열아홉 맞아? 계약금 받으면 슈퍼카부터 사고 싶다던 한수혁은 어디 가고 웬 애늙은이 하나가 내 집에 앉아 있는 건데?”
슈퍼카, 좋지. 한때는 그거 모으는 게 취미였으니까.
근데 그것도 다 부질없더라. 시끄럽고 기름 많이 먹고, 방지턱 넘을 때마다 엉덩이만 아프고.
“됐고, 잠실야구장 가까운 곳에 조용한 아파트나 빌라 하나, 그리고 근처에 개인연습실 하나. 그거면 충분해.”
“···알았다. 빨리 처리해줄게. 그보다 이제부터 진짜 내가 알아서 구단 운영하라는 거지?”
“당연하지. 나 야구선수야, 형. 당장 내년 시즌 주전경쟁부터 걱정해야 할 신인 선수.”
“네가 무슨 주전경쟁··· 됐고, 그나저나 이 명단은 뭔데? 믿을 만한 거야?”
“출처는 비밀, 하지만 신뢰도는 100%.”
“신뢰도 100%라··· 대체 어디서 난 정보이길래. 그래, 다 좋은데, 이 내용이 사실이면 워리어스 이거 정말 가망 없는 거 아니냐? 단장이랑 스카우트 팀이 완전히 개판이라는 거잖아.”
“형이 알아서 해줘. 거기 진짜 쓰레기들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어영부영 시류 타고 흘러 다닌 사람들은 고쳐서 써먹던지 알아서 해. 난 오늘부터 선수 한수혁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하아··· 그래, 이게 무슨 팔자에도 없는 구단주 놀이인지 모르겠다만 한 번 해보자.”
“잘 할 거야.”
“아무튼 나 회의 있어서 먼저 나간다. 끝나고 바로 본가에 내려가서 주말 보내고 올라올 거야. 엄마가 얼굴 좀 보자고 성화라.”
“알았어. 어머니, 아버지한테도 대신 인사 좀 전해드리고.”
“오케이, 그럼 며칠 후에 보자.”
오늘부터 정식으로 구단주 겸 사장으로 구단에 출근하게 된 성훈이 형이 정장을 갖춰 입고 구단 사무실로 출근했다. 내가 건네 준 메모를 손에 꼭 쥔 채.
그것은 일종의 살생부이자 블랙리스트였다.
회귀 전 이 워리어스라는 팀은 2026 시즌을 끝으로 해체되었다.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 팀 저 팀으로 옮겨갔고, 직원들 역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미국 야구에 적응하기 바빴던 나는 한국야구에 대해 잠시 신경을 끌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해체된 워리어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말이다.
하지만 2028년쯤이었던가.
워리어스 프런트 출신 누군가의 양심고백이 유튜브에 업로드되며 추악한 진실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전직 프런트의 고백 – 워리어스는 이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내 배다른 형이 구단주로 취임한 2022년경부터 시작된 팀 내 파벌싸움과 권력다툼, 특히 선수 선발 과정에서 스카우트 팀이 벌인 추악한 짓거리들.
실력보다는 인맥과 학연, 그리고 어느 선수의 부모가 얼마를 더 집어줬느냐에 따라 결정된 신인선수 지명, 외국인 선발 과정에서 있었던 불법 커미션까지.
이미 해체된 팀이기에 망정이지, 그 전에 공개되었다면 최소 몇 사람은 형사처벌을 받았을 엄청난 내용이었다.
문제의 영상을 업로드한 전 워리어스 직원의 정체, 그가 바로 이번 드래프트장에서 내 이름을 호명한 공승찬 차장이었다.
썩어 문드러진 스카우트 팀에 남아 있던 유일한 양심.
영상을 통해 공개됐던 스카우트 팀 쓰레기들의 이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중에는 한때 워리어스의 레전드이기도 했던 이들도 섞여 있었기에 쉽게 잊을 수조차 없었다.
그 쓰레기들의 이름이 지금 성훈이 형의 손으로 넘어갔다.
‘음’
나는 알고 있다.
평소에는 착하고 순해 보이는 저 형이 중요한 순간에는 얼마나 독하게 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실은 나만큼이나 워리어스라는 팀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당장은 그 이름과 죄목이 확실한 스카우트 팀부터 시작해 앞으로 구단 조직 전체에 엄청난 피바람이 불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경험과 기술은 그대로 갖고 왔지만 육체적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몸에 적응하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잘 해야 한다.
내년 목표는 우승이라고 큰 소리까지 쳐 놓았으니 책임을 져야겠지.
솔직히 팀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절망적이기는 하지만.
‘드르륵’
그런데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받을까 말까 잠깐 고민하던 나는 결국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오! 한수혁 선수, 저 워리어스 정민식 단장이에요
이 인간이 왜 나한테 전화를?
“네, 안녕하세요. 단장님. 그런데 어쩐 일이신가요?”
– 캬, 직접 들으니 목소리도 좋네. 그래, 바쁠테니 본론으로 들어가죠. 다름이 아니라 오늘 혹시 시간 괜찮으면···
“아뇨, 오늘은 많이 바빠서요.”
– 아, 그래요? 그럼 내일은···
“다음 주에 계약서 도장 찍기 전까지는 계속 바쁠 것 같은데요.”
– ······
구단이 매각된 후 입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정민식 단장이 최대한 화를 눌러 참는 듯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 아, 다른 건 아니고 혹시 마무리 훈련부터 합류가 가능할지 해서요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힘들 것 같습니다. 올해 너무 많이 던져서요.”
– 음,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본격적인 훈련은 안 하더라도 팀 선배들하고 인사도 좀 하고, 서로 안면도 트고 하면 좋지 않을까요?
이 양반 보게. 아직 포기를 안 한 모양인데?
지금이라도 나를 자기 라인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인가? 생존본능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네.
“구단주님하고 사전에 논의한 스케줄이라서요. 팀 합류는 스프링 캠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 계약할 때 뵐게요. 단장님.”
– 아니, 그래도 선후배들끼리 미리···
“여보세요? 아, 전화가 잘 안 들리네요. 여보세요?”
‘뚜우뚜우’
잽싸게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 나는 아예 핸드폰 전원을 꺼버리고 책상 위에 던져버렸다.
지금 이런 인간하고 상대해줄 시간이 없다.
시덥잖은 놈들에 대한 정리는 성훈이 형이 알아서 해주겠지.
‘어디 보자···’
복잡한 머리속을 깔끔히 비워낸 나는 스스로의 상태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게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회귀 전 나는 마이너리그에서 투수로 시작했다.
싱글A에서 1년, 더블A에서 1년을 보낸 나는 3년차가 되어서야 메이저리그에 입성할 수 있었다.
당초 1년 안에 승격이 가능하리라던 예측이 빗나간 건 내 투구 폼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나를 처음 담당했던 트레이너가 수차례 경고했다.
그 누구보다 강하고 유연한 신체를 갖고 있지만 계속 스스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면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고.
그때는 헛소리라 생각했다.
고교 시절 이미 비공식으로나마 167km/h를 던졌던 나였기에, 매 경기 완봉을 하면서도 어깨 부상 한 번 없던 나였기에 말이다.
마이너리그 코치나 감독 역시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괜히 몸값 비싼 신인에게 손을 댔다가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는 걸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방치와 외면, 혹은 배려 속에 내 멋대로 야구를 했다.
오만하고, 무지하고, 너무 내 자신을 과대평가했다.
인종과 상관없이 최고 수준이라 평가받던 내 몸을 너무 믿었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터졌다.
170km/h에 도전하기 위해 계속 투구폼을 수정한 나는 더블A 시절 첫 번째 부상을 당했고, 이후 메이저리그에 올라선 후에도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아야 했다.
167km/h에 달했던 최고 구속은 153km/h까지 떨어졌다.
위력이 급감한 패스트볼 대신 변화구와 컨트롤을 올리는데 주력한 끝에 두 차례 사이영 상을 받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에 선발 등판한 나는 불과 3이닝을 견디지 못하고 마운드 위에 쓰러졌다.
회복이 불가능한 어깨 부상, 그렇게 나는 투수를 완전히 포기하고 타자로 전향해야만 했다.
이번 생, 또다시 그런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아직 성장중인 육체에 적합한, 그리고 부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투구폼 장착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일단 이 일부터 해치우자.
‘띠리리’
“성훈이 형.”
– 어, 왜? 나 아직 회사 도착 전인데. 뭐 빼놓은 것 있나?
“그게 아니라 나 미국 좀 다녀오려고.”
– 뭐? 미국? 거긴 왜?
“누구 좀 만나야 할 것 같아서.”
– 만나다니, 누굴? 네가 미국에 아는 사람이 시애틀 스카우터 말고 누가 있다고?
“어, 그 사람 좀 만나려고.”
– 다니엘을···? 왜?
“자세한 건 다녀와서 말할게. 미국에 며칠 있다 올 거 같으니까 형도 본가에서 빨리 올라올 생각 말고 천천히 다녀와. 그럼 계약할 때 구단에서 봐.”
– 아니, 너 미국은 어떻게 가는지 알고나··· 여보세요?
어차피 시애틀 입단을 위해 비자는 미리 발급받은 상태다. 전화를 끊은 나는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미국행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급하게 예매를 하느라 가격이 좀 비싸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돈 몇 푼이 아니니까.
이틀 후 내가 탄 비행기가 시애틀을 향해 출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