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5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55화(56/412)
#55. 이 구단의 소유주로서…
예나 지금이나 나는 운동선수가 경기 후 혹은 연습 후 음주를 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반대하는 편이다.
야구라는 게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다 보니 경기 후 가벼운 맥주 한잔 정도는 괜찮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전부 개소리다.
그럴 거면 그냥 프로 유니폼을 벗고 동호인 야구를 하면 된다.
격렬한 운동 후 알코올을 섭취하면 정상적인 근육의 회복을 방해해 손상을 야기하기도 하고, 신체성능을 저하시키며, 대사 저해, 탈수, 호르몬 변화 등 갖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음.
하지만 오늘만은 예외다.
오늘 경기로 인해 내 위시리스트 맨 첫 번째 칸에 이름을 올리게 된 투수 임준영.
그 임준영과 우리 팀 선배들이 경기 후 이야기를 나눈다는데 안 따라올 재간이 없다.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열심히 들어봐야지.
“야, 마셔. 한 잔 하고 다 잊어버려. 뭘 아직도 꽁해 있어. 크크.”
“형님들…….”
“준영이 너 뒤끝 있는 건 알았지만 이 자식 이거 안 보는 새 더 심해졌네.”
“아니, 그게 아니라…….”
“자, 됐고 일단 마시고. 수혁아, 너도 탄산수 한 잔 받아.”
“네, 선배님.”
“흐흐, 자, 끝내기 안타 맞은 놈하고, 그걸 친 놈이 같이 있어서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우리 일단 건배부터 한 번 할까?”
“…….”
잠실야구장 인근에 위치한 조성오 선배의 단골술집. 사장의 배려로 가장 안쪽 외부에서 잘 안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탄산수가 가득 담긴 잔을 앞으로 내미니 아직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한 임준영 선배가 마지못해 잔을 들어 마주 부딪혀왔다.
“자, 그럼 첫 잔은 원샷, 알지? 쭈욱, 쭈욱, 옳지.”
방금 전 끝난 인천과의 경기에서 우리는 결국 4 대 3, 짜릿한 한 점 차 승리를 거뒀다.
쉽게 말하면 내가 끝내기 안타를 쳐냈다는 소리다.
사실 좀 어색하기는 하다.
오늘 자리를 주선한 조성오, 이만식 두 선배야 임준영 선배와 친한 사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와 완전히 초면.
거기에 저 사람을 상대로 홈런 두 방 포함 4타점.
임준영이 내준 4점은 결국 모두 내게 허용한 것이다.
음.
에라, 모르겠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걸 따졌다고.
“선배님, 한 잔 드리겠습니다.”
“응? 어어, 그래.”
“흐흐, 수혁이 쟤는 안 그런 듯하면서도 가끔 사회성이 좋고, 참 묘해. 안 그래요, 성오 형님?”
“맞아, 나이 스물밖에 안 된 놈이 어떨 때는 저런 애늙은이가 없다니까.”
그야… 내가 당신들보다 더 오래 살았고, 야구도 더 오래 했…….
그만두자. 괜히 기분만 꿀꿀해지네.
내가 따라준 맥주를 임준영이 단번에 목 안으로 털어 넣었다.
흠.
가까이서 보니 더 탐이 난다.
이 남자, 정말 얼마면 되는 걸까?
“크, 시원하다. 형님, 저 한 잔만 더 주세요. 갈증이 가시질 않네.”
“어, 어, 그럴래?”
원샷에 이어 곧바로 두 번째 잔을 재촉하던 임준영을 내가 막아섰다.
“안 됩니다. 100구가 넘는 투구를 하고 술을 많이 마시면 신체의 회복 기능에 악영향을 주게 되니까요. 자칫하면 어깨 주위 조직이 손상될 수도 있습니다. 선배님, 이제 저 따라서 탄산수로 드세요.”
“뭐? 뭐 이런…….”
그의 잔에 맥주 대신 탄산수를 가득 부어주자 그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프로에서 10년 넘는 시간을 보낸 사람이다. 내 말이 맞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속이 답답한지 한숨을 짧게 쉰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맥주 대신 탄산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사실 탄산수도 저렇게 많이 마시면 식도 조직과 점막에…….
그만두자.
아직 우리 선수도 아닌데 너무 갖고 싶은 마음에 조금 오버를 한 것 같다.
“야, 한수혁.”
“네, 선배님.”
“너 솔직히 대답해봐.”
“뭘요?”
“너 인생 2회차지?”
“네에?”
뜨끔.
설마 내가 달러 빚을 내서라도 데려오고 싶은 미래의 워리어스 에이스에게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초능력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그런 부가 옵션은 필요 없는데.
“씨발, 그게 아니면 몇 달 전에 고등학교 졸업한 놈이 뭐 그렇게 잘 쳐?”
“아하하…….”
“야, 준영이 진짜 열받았나 보다. 쟤 욕하는 거 진짜 오랜만에 본다.”
“흐흐, 얼굴 벌개진 거 봐요. 열받은 거 맞아.”
“아니, 진짜 형님들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올해 데뷔한 신인한테 한 경기에 홈런 두 개 처맞고 졌다니까요? 저 임준영이?”
“그래, 마지막에 맞은 끝내기 안타도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지.”
“나 그때 준영이 저놈 스머프 된 줄 알았잖아. 얼굴이 완전 파랗게 질려서는.”
“아, 진짜 그만 놀리라니까요. 저 그냥 가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알았어, 흐흐. 일단 앉아봐.”
“나 참, 진짜 내가 이런 대우받으면서 여기서 노친네들 상대해줘야 하나.”
주고받는 말은 조금 험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믿음이 가득하다.
조성오와 이만식, 임준영.
워리어스의 황금기와 쇠락기를 고스란히 경험한 그들 셋은 비록 입고 있는 유니폼은 달라졌지만 아직도 그때의 추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농담은 그만하고, 수혁아. 아, 수혁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그럼요, 선배님.”
“좋아, 그럼 너도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
“네, 형.”
“…이놈 이거 처음 봤을 때는 인상도 그렇고 꽤나 무뚝뚝한 줄 알았는데 붙임성 장난 아니네.”
“그렇다니까? 내가 아까 말했잖아. 애늙은이라고.”
“아무튼 한수혁. 너 솔직히 말해봐. 내가 아까 마지막 타석에서 초구에 포심 던질 거 어떻게 알았어?”
이 양반 보게. 어디 함부로 남의 영업 비밀을.
사실대로 말하자면 포심을 던질 때 손목의 각도가 변화구 던질 때와 살짝,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주 살짝 다르기 때문이지만.
여기서 굳이 그걸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아직 우리 팀 선수가 된 것도 아닌데.
흠, 그나저나 성훈이 형한테 임준영을 FA로 잡자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안 그래도 요즘 계좌에서 돈 빠져나가는 게 무서워 죽겠다고 엄살이던데.
아무튼.
역시 이런 자리에서는 립 서비스가 최고지.
“선배님 눈빛이요.”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아무튼 눈빛? 무슨 눈빛?”
“에이스의 눈빛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그런 에이스의 눈빛? 그걸 보고 알았죠. 아, 저 사람은 여기서 무조건 빠른 공 승부를 할 거다 하고 말이죠.”
“…그래? 에이스의 눈빛이라고?”
“네, 지금까지 좀 던진다는 투수들 꽤 만나봤지만 그런 눈빛은 형이 처음이었어요.”
“그래? 흐음, 그렇단 말이지. 흐으음…….”
뭐, 아주 거짓말도 아니지. 그 눈은 분명 도망 따위는 모르는 그런 눈빛이었으니까.
내 말을 들은 임준영의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하늘로 치솟는다.
역시 투수란 놈들은 이렇게 단순하다니까.
가만, 나도 원래는 투수인데.
“제가 보기에는 선배, 아니, 형이 우리나라 최고 투수가 맞는 거 같아요. 류한결 선배는 아직 상대 못 해봤지만 영상으로만 봐도 형이 더 나아요.”
“진짜? 그렇단 말이지?”
“야, 만식아. 준영이 얼굴 좀 봐라. 좋아 죽을라고 한다.”
“아이구, 우리 준영이. 방금 전까지는 경기 졌다고 세상 다 산 얼굴 하고 있더니 칭찬 몇 마디 들었다고 그새 다 풀어진 거야?”
“형님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 시점 리그를 폭파시키고 있는 슈퍼 루키가 제가 최고 투수라고 하는데 기분 안 좋을 수가 있겠습니까? 네?”
“하긴, 그것도 그렇지. 야, 솔직히 난 아직도 가끔 꿈을 꾸는 거 같다.”
“뭐가요, 성오 형님?”
“경기 시작 전에 전광판에 라인업을 딱 보는데 3번 한수혁, 타율 4할이 떡하니 박혀 있는데 그게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는 거야.”
“아하.”
“원래대로면 이 팀의 구멍이었을 유격수 자리에 저런 선수가 서 있다는 게… 뭐랄까,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메이저리그 현역 선수를 몰래 데려다가 쓰는 기분이랄까?”
“에이, 아무리 수혁이가 잘해도 그건 너무 나갔네요.”
사실 그냥 메이저리거가 아니고 MVP인데.
일단 좀 더 들어보자.
“그리고 생각해봐. 아직 초반이기는 하지만 언론에서 막 우리가 가을야구 진출을 하냐 못 하냐, 이런 얘기를 막 떠든다? 예전 같으면 부산하고 대전, 우리들 중에 누가 꼴찌냐 그게 전부였는데.”
“하기사.”
그 말을 마친 조성오 선배가 목이 타는 듯 맥주 한 잔을 또 쭉 들이켰다.
“수혁아, 이게 막잔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자리 끝나면 연습실 가서 어떻게든 땀으로 다 배출할 테니까.”
“연습장을 간다고요?”
“응, 준영이 너한테는 말 안 했구나. 수혁이 저놈 개인연습실 갖고 있거든. 그 김에 나도 거기서 매일 개인 연습 중이다.”
“네, 대신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선배님. 전 오늘 일 있어서 못 갈 테니 제이콥하고 상의하고 진행하셔야 해요.”
“알았어, 제이콥이 짜준 대로만 딱 할 테니까 너무 걱정말고. 야, 그나저나 수혁이 너 왜 준영이한테는 형이라고 하고 우리는 선배님이냐, 늙은 것도 서러운데 차별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됐어. 지금 이 시간부터 나랑 만식이한테도 형이라고 불러. 알았냐?”
“네, 그럴게요. 형님들.”
“흐흐, 역시 시원시원해서 마음에 들어. 아무튼 준영아.”
“네, 형님.”
“이제 다른 팀 선수가 된 너한테 이런 말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 그런 생각이 자꾸 들더라.”
“무슨 생각이요?”
“이럴 때 네가 우리 팀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
잘한다, 우리 성오 형. 시키지도 않았는데 영업을 뛰어 주시네.
“예전에 너 우리 팀 떠날 때는 진짜 나도 잘됐다 싶었거든. 팀은 계속 추락 중이지, 미친 구단주 새끼는 황성민이랑 송기태 잡는다고 너한테 오퍼도 안 넣었지… 어휴.”
“…….”
“그런데 구단주 바뀌고 수혁이 들어오고 이제 다시 살 만해지니까 다시 슬슬 네 생각이 나더라고. 이럴 때 준영이도 같이 있었으면 진짜 우승까지는 아니어도 가을야구는 한번 노려봤을 텐데 하고 말이야.”
“형님…….”
“후, 아니다. 그냥 못 들은 걸로 해라.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이런 얘기는 함부로 하는 거 아니지. 자, 우리 이제 마실 만큼 마셨으니 막잔으로 탄산수 한 잔씩 하고 일어나자. 응?”
“성오 형님.”
“어, 왜. 준영아.”
“올해 인천하고 계약이 끝나면…….”
“응?”
“물론 저 혼자 모든 걸 결정할 수는 없겠죠. 가족하고도 상의해야 하고, 에이전트도 걸려 있고, 그리고 세상 일이란 게 어떻게 흘러 갈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
“아무튼… 네, 아직 빅리그 도전할지도 결정 못 했고, 가족들이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인천하고도 얘기를 해봐야겠지만…….”
임준영이 감정이 벅차오르는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만약 워리어스가 저를 불러준다면… 그래요, 그러면 아마 저는 또 그곳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임준영 선배의 그 담담한 한마디에 조성오 선배와 이만식 선배의 입이 약속이라도 한 듯 굳게 닫혔다.
그들 역시 임준영 선배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워리어스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마음.
임준영 선배가 돌아온다면 그 누구보다 격하게 환영해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몸값이 100억이 넘어갈 저런 초특급 선수의 계약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하는 건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걸 이 두 베테랑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만약 빅리그 진출을 포기하고 국내에 잔류하게 된다 해도 예상 몸값은 최소 4년 120억.
솔직히 말하자면 들어오는 돈 없이 있는 자산으로 야구단을 길게 꾸려 나가야 하는 워리어스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조성오 선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오늘 자리를 마무리해 버렸다.
“자, 아무튼 우리 이제 일어나자. 내일도 경기 있는데 너무 오래 있었다. 다들 각자 돌아갈 곳으로 해산!”
“준영아, 그럼 다음에 경기하게 되면 또 한 잔 하자. 숙소 조심해서 들어가고.”
“네, 형님들도 절대 운전하지 말고 조심해서 가세요. 수혁이 너도.”
“쟤도 그렇고 우리도 이제 운전 안 해. 서울에서는.”
“네?”
“괜히 운전하다가 부상당할 수도 있고, 음주운전 같은 구설수 오를 수도 있어서 흐흐, 그냥 걸어 다니거나 지하철 탄다. 의외로 편하더라.”
“그거 괜찮네요. 그럼 저 먼저 갑니다, 형님들.”
한때 이 팀의 암흑기를 지탱했던 젊은 에이스가 활짝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만약 이 자리에 내가 없었다면 방금 전 저 세 사람이 나눈 대화는 아무 의미 없는 선수들 간의 푸념으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고 들었다.
임준영이라는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알게 되었고, 그가 아직도 워리어스에 돌아오고 싶어 한다는 것 역시 확인했다.
자, 그럼 이제 구단의 소유주로서…….
저 선수를 데려올 방법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