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5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56화(57/412)
#56. 숨 쉬어! 숨!
예상 몸값만 최소 120억에 달하는 S급 선수를 영입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 120억이 한 번에 나가는 돈은 아니다. 그랬다면 정말 구단 기둥뿌리를 뽑아야 했겠지.
기본적으로 4년 계약이라고 가정할 때 계약금은 대략 40억 원 정도, 다행히 이 계약금은 선수와의 협의에 따라 분할 지급이 가능하다.
여기에 옵션 포함 매년 나가는 연봉이 20억.
음.
젠장.
내가 미국에서 3,500만 달러를 연봉으로 받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고작 4년 총액 120억 원에 손을 부들부들 떨어야 한다니.
민예린 씨의 아버지, 그러니까 투자 전문가인 민태현 씨가 구단 자금 운영을 맡아주면서 좀 여유가 생기기는 했다.
리스크가 거의 없는 안정적인 투자처에 자금을 분산시키고, 혹시나 자금경색이 일어나지 않도록 여러 겹의 방어막을 만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민태현 씨를 직접 만나고 온 성훈이 형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내가 보기에는 자기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거다.
물론 내가 직접 들었어도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투자는 투자 전문가가, 야구는 야구 전문가가.
어쨌든 그런 민태현 씨의 도움과 최근 들어 계속 증가 추세인 관중 수입 등을 감안하면 그럭저럭 임준영 영입에 필요한 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좌절하거나 뭐 그런 건 아니다.
그냥 현타가 온 것뿐이다.
새삼 내가 예전에 얼마나 많은 돈을 받고 야구를 했는지 실감이 난다고 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우리는 일단 임준영 선배가 국내에 남는다는 전제 하에 그를 영입하는 데 구단의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다른 건 몰라도 팀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중심이 되어줄 에이스가 있어야 하니까.
내가 잠시 구단주 모드로 돌아와 팀의 장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이 인천과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우리 팀은 이만식 선배, 그리고 인천에서는 올해 입단한 새로운 용병인 데릭 벨을 선발로 내세웠다.
듣자 하니 오늘이 한국 무대 데뷔전인 모양이다.
“야, 쟤 덩치 봐라. 거의 덕수만 한 거 같은데.”
“덕수 밥 좀 더 먹어야겠다. 잘하면 KBO 최고 피지컬 타이틀 넘겨주게 생겼는데.”
“그럴까유.”
한번 화가 나면 흉신 악귀가 되면서도 평상시에는 여전히 부처님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덕수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포수 장비를 착용했다.
지금도 저 선배가 먹어 치우는 음식의 양도 어마어마한데 거기서 더 먹으라고?
임준영을 영입하려면 지금부터 다들 허리띠를…….
…그만두자.
큰돈이 나갈 생각을 하니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거다.
오늘 인천과의 2차전에서 이대준 감독이 선택한 라인업은 이랬다.
1번 2루수 이창모
2번 중견수 최민석
3번 유격수 한수혁
4번 1루수 조성오
5번 우익수 맥스 워커
6번 3루수 안치욱
7번 지명타자 강진석
8번 포수 장덕수
9번 좌익수 김수학
선발 투수 이만식
이제는 제법 타격 라인업에 무게가 잡혀가고 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늘 상대 투수인 데릭 벨이 좌완인 점을 감안하면 4번부터 6번까지 이어지는 좌타 라인이 얼마나 상대 투수의 공에 대응하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
“플레이!”
경기가 시작되었다.
“볼.”
“볼.”
“볼.”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내가 이만식이라는 투수를 높게 평가하는 게 바로 저런 부분이다.
볼 세 개를 먼저 던지고도 당황하지 않고, 저렇게 자기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아니, 자신의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아무리 경력이 많은 베테랑이라고 해도 저건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지표와는 상관없이 그는 감독과 동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투수다.
저건 단순히 경험이 많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저 선배는 투수가 아닌 다른 포지션을 했어도 아주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1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이만식 선배는 2번 타자와 3번 타자를 좌익수 플라이와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간단하게 1회를 마무리했다.
“안치욱, 잘 보고 배워라.”
“뭘?”
“이만식 선배님 플레이 말이야.”
“그게… 잘하시기는 하는데 뭘 배우라는 거야? 투수시잖아?”
쯧.
내가 지금 핏덩어리를 붙잡고 무슨 소리를.
이 애송이가 내 말뜻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몇 년은 이 바닥에서 굴러야 하겠지.
따악!
1회말 우리 팀의 공격.
리드오프로 나선 이창모 선배가 8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물러난 후 2번 최민석 깨끗한 좌전 안타를 뽑아냈다.
대기타석에서 본 데릭 벨이라는 투수는 전형적인 성질 급한 파이어볼러였다.
방금 전 던진 우리 팀의 이만식 선배와는 정확히 반대되는 대척점에 있는.
제구를 신경 쓰지 않고 던지면 158㎞/h까지도 나오는 포심과 그럭저럭 괜찮은 체인지업, 그리고 승부구로 쓰기에는 완성도가 낮아 보이는 커브.
마이너리그에 가면 한 팀에 너댓 명씩은 꼭 존재하는 그런 투수다.
두 타자를 상대로 볼을 14개나 던지고, 거기에 안타까지 맞아서 그런 걸까.
검은색 피부가 벌겋게 보일 정도로 흥분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 저렇게 커다란 덩치와 빠른 볼만 믿고 설치는 애들일수록 참을성이 부족하고, 다혈질인 건 국룰인가 보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타입의 투수가 바로 저런 놈들이다. 물론 타자로서 하는 얘기다.
자신의 공을 믿고 거침없이 덤벼드는 불나방 같은 놈들.
그런 애들한테는.
따아악!
몸쪽으로 파고 들어오는 포심을 냅다 후려쳐 좌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타구가 너무 빨랐던 탓에 최민석 선배는 2루에서 멈췄다.
그렇게 1사 주자 1, 2루.
“Fuck!”
“헤이, 데릭, 괜찮아? 아유 오케이? 하아, 1회부터 이게 뭐야.”
1회말이 시작되자마자 위기를 맞은 투수를 달래기 위해 인천의 포수 손영진이 마운드로 올랐다.
재빠르게 달려 나온 통역이 중간에서 열심히 포수와 코치의 말을 전달했지만 저놈 상태를 보아 하니 지금 귀에 아무것도 안 들리는 게 확실하다.
이러면 승부는 쉬워진다.
툭툭
대기타석에 있는 조성오 선배를 향해 우리만의 사인을 보냈다.
포심을 노리고 초구에 강하게 타격을 해도 좋을 거란 신호다.
내 사인을 본 조성오 선배가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시치미를 떼며 은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건 벤치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준 감독은 선수들끼리 이런 플레이를 하는 걸 오히려 좋아한다.
뭐라고 했더라. 감독이 직접 나서기 전까지는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끼리 소통하며 판단하고 플레이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했지, 아마.
그게 꼭 정답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유연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 이대준은 좋은 감독이다.
“플레이!”
마운드에 올라갔던 포수와 코치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자기들끼리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투수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안 좋아졌다.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조만간 인천이 새로운 용병 투수를 영입한다는 뉴스를 보게 될 것 같다.
따아악!
“MotherFucker!”
데릭 벨의 초구 포심을 조성오 선배가 냅다 후려 갈겼다.
우익수 앞에 깨끗한 우전 안타.
2루에 있던 최민석 선배가 재빠르게 3루를 돌아 홈으로, 그리고 나는 3루에서 멈춰 섰다.
가볍게 선취득점, 그리고 원 아웃 주자 1, 3루.
데릭 벨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모자가 덮고 있는 머리에서 당장이라도 김이 뿜어져나올 것만 같은 기세다.
사실 용병이 저렇게 막무가내로 성질을 부리면 다루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저놈들도 알고 있는 거다. 웬만해서는 구단에서 자신을 내쫓지 않을 거라는 걸.
성질을 좀 부리고 사고를 쳐도 성적만 그럭저럭 나오면 버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거기에 미국에서처럼 눈치를 볼 베테랑도 없고, 주변에는 전부 국적이 다른 선수들뿐.
이래서 용병을 뽑을 때는 인성을 꼭 봐야 한다. 우리팀의 맥스처럼 말이다.
저놈이 큰 거는 좀 못 쳐도 그래도 타점은 꼬박꼬박 잘 먹고, 우럭 매운탕도 타점만큼 잘…….
따아악!
아무래도 오늘 날인가 보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맥스 워커가 또 데릭 벨의 초구를 밀어 쳐 깨끗한 좌전 안타를 뽑아냈다.
거의 걷다시피 홈으로 들어오는데 투수의 입에서 나조차 알아듣기 힘든 엄청난 욕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신기하네.
저 정도면 인천 프런트에서 몰랐을 리가 없는데. 설마하니 160을 던지는 좌완 파이어볼러라고 일단 데려오고 본 건가?
뭐, 상대하는 우리야 고마울 따름이지만.
아웃 카운트는 하나뿐이고 점수는 2 대 0. 주자는 또 1, 3루.
이쯤 되면 아무리 저놈이 돌머리라고 해도 초구에 또 포심을 던질 리는 없을 테고…….
툭
아무래도 이대준 감독은 1회에 저 용병을 강판시켜 버릴 생각인가 보다.
벤치의 사인이 떨어졌다.
크게 방망이를 휘두르며 데릭 벨을 도발하던 안치욱이 언제 그랬냐는 듯 초구 커브볼에 번트를 대 버린 것이다.
“어어!”
“Fuck!”
미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1회 스퀴즈 번트에 투수는 아예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뒤늦게 3루수가 달려와 1루로 송구했지만 타자와 주자 모두 세이프.
순식간에 3 대 0. 아웃카운트는 여전히 하나뿐이고 주자는 또 1, 2루.
원정팀 관중석에서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씨발 저딴 걸 용병이라고 데려온 거냐, 어?”
“당장 저런 멍청이는 내려보내고 제대로 된 투수를 올리라고!”
“데릭 벨? 자동 벨은 아니고?”
저놈이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서 다행이다.
자칫했으면 제2의 관중석 배트 투척 사건이 벌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 * *
안치욱의 스퀴즈로 3 대 0을 만든 후 강진석 선배가 병살타를 치는 바람에 우리 공격은 거기서 끝났다.
덕아웃으로 돌아간 데릭 벨이 글러브를 패대기치는 모습이 여기서도 보일 정도다.
인천이 지난 시즌 매지션스를 4승으로 가볍게 누르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용병이 저런 식이면 올해는 좀 고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용병이 저렇게 난동을 피울 때는 팀의 간판선수가 조용히 데리고 가서 정신교육을 시켜줘야 한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고?
그렇다고 물러서면 저런 놈들은 더욱 날뛸 뿐이다.
놈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줘야 한다.
그 따위로 야구를 할 거면 지금 당장 짐 싸서 너희 나라로 꺼져 버리라고.
아쉽게도 지금 인천에는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베테랑이 없는 듯하다. 임준영 선배가 덕아웃에 있었다면 혹 모르겠지만 오늘 가벼운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다고 하니 뭐…….
아무튼 놈이 난동을 피우든 말든 경기는 계속되었다.
“아웃!”
1회에만 해도 조기강판의 냄새가 풀풀 풍기던 데릭 벨은 2회 또 주자를 내보냈지만 어찌어찌 막아내며 목숨줄을 이어갔다.
문제는 3회말 워리어스의 공격 때였다.
선두타자로 나서 공 10개를 보기는 했지만 바깥쪽 높은 곳으로 들어오는 포심에 그만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뭐, 나라고 모든 공을 다 쳐낼 수는 없는 거니까.
확실히 컨트롤이 되기만 하면 꽤 위력적이기는 하다. 물론 컨트롤이 안 되어서 문제지.
어쨌든 내 뒤를 이어 조성오 선배마저 삼진으로 물러난 가운데 맥스 워커가 볼넷을 골라 1루로 출루했다.
마운드에 선 데릭 벨의 얼굴이 또다시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 *
‘빌어먹을 놈들.’
3회말 투아웃 주자 1루.
데릭 벨의 시선이 타석에 들어서고 있는 상대팀의 6번 타자에게로 향했다.
지난 2년간 빅리그의 문턱에서 계속 쓴맛을 본 그는 더 이상 무모한 도전을 포기하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연봉 70만 달러.
마이너 시절 받던 11만 달러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돈이다.
그래서일까, 데릭은 이 한국 무대에서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빅리그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한국에서 왕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 원대한 꿈을 향해 나아갈 첫 무대였다.
그런데 저 빌어먹을 놈들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계속 공을 커트해내던 1번 타자도 마음에 안 들고,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포심을 받아 친 괴물 같은 놈도 신경을 건드린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신경을 거스른 건 바로 저놈이다.
얼굴은 앳되어 보이지만 덩치는 꽤 큰 상대팀의 3루수.
1회부터 번트 따위를 대서 심기를 거스른 1년 차 애송이.
‘시건방진 옐로 몽키.’
경기 전 이 팀에서 유일하게 언어가 통하는 푸에르토리코 국적 용병 타자의 말이 떠올랐다.
‘이봐, 다른 건 아무 상관없지만 저놈들하고 벤클은 할 생각 마. 음…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들군. 그냥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려면 저놈들은 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뭔 헛소리를 하냐고 말을 끊어버렸다.
덩치가 큰 놈들이 몇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 봐야 동양인이다. 애초에 종족 자체가 다르다.
게다가 데릭 벨은 고등학교 때까지 미식축구를 병행하며 몸싸움에는 도가 튼 몸이다.
아주 잠깐 망설임이 들기는 했다. 혹시나 구단 차원의 징계를 먹지 않을까 고민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넘어가는 건 아니었다. 그의 고향에서는 이런 일을 그대로 넘기면 바보 취급을 받았다.
‘Fuck!’
마음을 굳힌 데릭 벨이 천천히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원하는 곳 근처까지 던지기 위한 최소한의 제구력만 유지한 채 나머지는 모두 구속에 올인하는 투구.
155㎞/h에 달하는 포심이 안치욱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으악!”
딱
데릭 벨의 손끝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모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누가 봐도 빈볼임이 분명한 엄청난 강속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안치욱이 재빠르게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공은 머리가 아니라 들고 있던 배트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저런 미친 새끼가!”
“수혁아! 수혁아! 잠깐! 야, 수혁이 잡아!”
정말 머리에 맞은 줄 알았다.
데릭 벨 저 좆 같은 새끼가 던진 공이 안치욱의 머리에 맞았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눈에 보이는 게 하나도 없어져 버렸다.
여기서 또 한 번 사람을 패고 출장 정지를 먹으면 어쩌나 하는 갈등, 팀 순위에 대한 걱정 같은 건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안치욱 저 바보 같은 놈에 대한 걱정과 그런 좆 같은 볼을 던진 투수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수혁이 잡으라고! 쟤 주먹질 하면 안 돼!”
덕아웃을 박차고 나가는데 등 뒤에서 조성오 선배의 외침이 들려왔다.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은 그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싶은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저런 좆 같은 새끼한테는 제대로 된 교훈이 필요하다.
남의 머리를 노리고 공을 던지다가 자기 대가리가 터져 죽을 수도 있다는 그런 교훈.
저 멀리 데릭 벨 놈이 주먹을 들어 올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 이로써 저놈이 고의로 빈볼을 던졌다는 게 확실해진 거다.
죽여버릴 거다.
그렇게 내가 또 한 번의 출장 정지를 각오하고 마운드를 향해 달려가던 그 순간.
슈욱
무언가 거대하고 빠른 물체가 내 옆을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물체가 마운드 위에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데릭 벨을 그대로 덮쳐 버렸다.
얼마나 순식간이었는지 놈은 주먹질은커녕 아예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미친 개잡넘의 새끼가!”
“커헉!”
도무지 사람의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신장 198㎝에 달하는 데릭 벨의 모가지를 잡아채 그대로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어디서 이런 개백정 같은 놈의 새끼가 야구를 헌다고!”
쑤욱!
“끄어억!”
자신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데릭 벨의 목을 잡아 들어올린 건 장덕수 선배였다.
평소에는 순한 누렁이 같던 눈동자에서 시뻘건 광망이 흘러나오는데…….
솔직히 밤길에 마주치면 냅다 도망가야 할 것처럼 무서웠다.
“선배……?”
“이리 와. 이 개 잡넘의 새끼, 내가 아주 버릇을 단단히 고쳐줄 텡게.”
“끄으으으.”
퍼어억!
놈의 목을 잡아 공중으로 들어올린 장덕수 선배가 그대로 놈을 마운드에 처박아버렸다.
“야! 덕수 말려! 저러다 사람 죽겠다. 빨리!”
“덕수야! 야, 장덕수! 그만해! 여기서 살인자 될 거야?”
“놔! 씨벌, 저 잡넘을 내가 죽여버릴 거여.”
“덕수 선배님! 하지 마세요! 그만!”
워리어스 선수들이 장덕수 선배에게 매달려 그의 다음 행동을 막아내는 동안 기가 질려 아무것도 못 하던 인천 선수들이 우르르 달려와 마운드에 반쯤 박혀 있던 데릭 벨의 머리를 뽑아내었다.
“…죽었나?”
“헤이, 데릭. 아유 오케이?”
“얌마, 숨 쉬어! 숨! 포기하면 안 돼!”
워리어스 선수 십여 명이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 장덕수 선배를 묶어 두는 동안 들것이 들어와 데릭 벨을 실어 나갔다.
뭔가 엄청난 것을 본 것 같다. 세상에 저 덩치를 한 손으로 들어올리다니.
“죽여! 죽여버려! 국제변호사 내가 선임해줄 테니 죽여버려!”
고개를 돌려보니 1루 측 관중석에서 민예린이 다 죽여버리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다.
이 와중에 국제변호사는 또 뭐야… 설마 미국 선수니까 미국에 가서 재판이라도 받으라는 걸까?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는 장덕수, 거기에 호응하듯 같이 미쳐 날뛰는 관중들.
잠실 야구장이 또 한 번 광기로 물들어갔다.
음.
그나저나 장덕수 선배가 출장 정지 먹으면 우리 포수는 누가 보지?
…그냥 말렸어야 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