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5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58화(59/412)
#58.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딸깍
“한결아, 본 소감이 어떠냐?”
“잘하네요. 안치욱, 쟤 갑자기 왜 저래요?”
“그래, 인천 애들이 한수혁은 잘 피해 나갔는데 안치욱 저놈하고 성오한테 죽어라 두드려 맞았네.”
5월의 첫째 주, 워리어스와의 3연전을 앞둔 대전 팔콘스 전력분석실.
전력분석팀 직원, 그리고 투수코치 등과 함께 어제 워리어스가 인천을 8 대 3으로 이긴 영상을 본 류한결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치만 뭐… 그래 봐야 워리어스는 좌타자가 너무 많아요.”
“그치, 다른 건 몰라도 좌타자들이 네 공 치는 건 사실 쉽지 않지.”
“너무 걱정은 마세요. 중심타선에 좌타자가 셋이나 있는 이상 쟤들은 제 밥이에요. 그렇다고 그 셋 빼고 다른 후보들 넣어주면 더 고맙고.”
에이스 류한결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투수코치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류한결이 누구인가?
대전을 넘어 국가대표에서도 1선발로 꼽히는, 라이벌인 임준영에 비해서도 항상 조금씩 앞서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
지난 4년간 대전이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매년 2점대의 평균자잭점을 기록한, 팔콘스의 막장 수비에 단련되어 웬만한 상황에서는 눈 하나 꿈쩍 않는 강철 멘탈의 소유자.
그것이 바로 류한결이다.
더군다나 지난 시즌 류한결의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불과 0.125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좌타자를 상대로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물론 워리어스가 그걸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워리어스에는 그들을 대체할 우타자가 전무한 상황.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게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마음의 평온을 되찾은 투수코치가 다시 류한결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도 일단 인천처럼 한수혁은 최대한 피하면서 다른 타자들을…….”
“코치님.”
“응?”
“저 류한결이에요.”
“알지. 그런데?”
“이제 메이저리그 도전만 남겨둔 제가 데뷔 1년 차 애송이한테 볼넷만 내주면 스카우터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뿔싸. 류한결의 굳은 표정을 본 순간 투수코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 맞는 말이기는 하다.
지난 몇 년간 팀의 소년가장 노릇을 한 류한결에게 구단 단장과 사장, 심지어 구단주까지 입을 모아 한 약속이 있지 않은가.
해외 진출 자격 조건을 채우는 즉시 미국 진출에 협조하겠다는 약속.
KBO 7년 차를 맞은 류한결은 올 시즌만 무사히 보내면 그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류한결에게 올해는 정말 중요한 시즌이었다. 그를 따라다니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역시 그가 등판하는 모든 경기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볼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데 한결아. 정면승부하다가 한수혁한테 맞으면 그게 더 문제가 되지 않을까?”
“제가요?”
류한결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 류한결이에요. 두고 보세요. 내일 한수혁 그놈, 한 번도 1루를 밟지 못할 겁니다.”
지난 달 치러진 워리어스와 팔콘스 간의 첫 번째 3연전에서 한수혁은 출장 정지로 인해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때 3차전에 등판해 상대 에이스 라이언 스타크를 누르고 완봉승을 거둔 류한결은 워리어스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단장과 사장, 구단주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대전의 황태자 류한결.
더 이상 그를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투수코치가 결국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결아. 너만 믿는다. 그럼 최대한 조심해서 승부하는 걸로.”
“아, 글쎄,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 * *
“내일 상대할 류한결의 주무기는 포심과 싱커, 체인지업, 커브로, 좌타자를 상대로는 주로 포심과 커브를, 우타자에게는 포심과 체인지업, 커브를 섞어 던지는데…….”
“코치님. 우타자에게 커브는 잘 안 던질 겁니다. 싱커가 들어올 확률이 훨씬 높을 거예요.”
“어? 아, 아, 미안하군. 그래. 커브가 아니라 싱커야.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네. 그런데 챔피언, 그걸 어떻게 알았지? 미리 자료를 본 건가?”
팔콘스와 마찬가지로 워리어스에서도 주축 타자들과 코치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내일 상대할 선발 투수에 대한 전력분석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타격코치인 노아 앤더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네, 뭐, 자료도 보고… 영상도 보고. 제가 류한결 선배에 대해서는 좀 관심이 많거든요.”
“흠, 그렇군. 좋아. 좋은 자세야. 그럼 계속 하지. 가장 큰 문제점은 상대 선발인 류가 좌타자를 상대로 극강의 피안타율을 보인다는 건데, 일단 보스의 생각은 우리가 굳이 그걸 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내일 라인업에는 별다른 변동은 없을 것이다.”
웅성웅성
지난 달 류한결과의 첫 대결에서 나란히 4타수 무안타로 물러났던 좌타자 3인방이 서로를 바라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자신들 대신 우타자가 선발로 출장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이대준의 선택에 조금 놀란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내일 경기에서는 우타자들이 더욱 더 분발해 줘야 할 거야. 내 말 이해했지?”
“네, 코치.”
“좋아, 그럼 다시 류의 투구 패턴을 살펴보면…….”
타격코치의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선수들이 집중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음.
국가대표 에이스 류한결, 올 시즌을 마치면 해외 진출 자격을 얻게 되는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
국제대회에서도 일본이나 미국 같은 가장 중요한 팀을 상대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국가대표 1선발.
하지만 빅리그에서 뛰던 시절 나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
홈런 자판기.
7년간 한국야구를 평정하고 미국 진출을 선언한 류한결.
그가 선택한 팀은 공교롭게도 내가 속해 있던 시애틀의 지구 라이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였다.
내가 마이너리그에서 재활을 마치고 빅리그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는 오클랜드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었다.
처음 그와 만났던 날이 기억난다.
아마 내가 우익수로 출장했고, 그가 선발투수로 마운드를 밟았었지.
경기 전에는 따로 만나서 밥을 먹기도 했다.
사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성훈이 형이 전화로 같은 나라 선수들끼리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하도 성화를 하길래 마지 못해 결정한 일이다.
별다른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바로 건너왔고, 그는 한국에서 7년을 뛴 베테랑이었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의례적인 이야기가 오가고, 오늘 잘 해보자는 인사도 건네고,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경기에서 류한결을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때려냈다.
“류의 특징 중 하나가 우타자 상대 시 볼카운트가 불리해질 경우…….”
타격코치의 설명이 마치 자장가처럼 지루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굳이 듣지 않아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우타자를 상대로 볼카운트가 불리해지면, 정확히 말하면 뭔가 위기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면 습관처럼 체인지업을 던진다는 것.
그래, 이상하게도 내 극단적인 어퍼스윙의 궤적과 그의 체인지업은 찰떡궁합이었다.
어느 해설자의 말을 빌리자면 원래 한 세트로 만들어졌다가 각기 다른 두 선수의 몸으로 나눠져 들어간 것처럼.
따아아아악!
치면 넘어가고.
따아아아악!
또 치면 넘어가고.
류한결 선배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겠지만 나는 그해 시즌 그를 상대로 타율 6할에 홈런 6개를 뽑아내며 천적 이상의 천적으로 군림했다.
그냥 뭐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있는 거다.
이상하게 합이 잘 맞는다거나, 혹은 반대로 잘 안 맞는다거나.
가만, 이 경우에는 잘 맞는 건가, 안 맞는 건가? 헛갈리네.
아무튼 내일 선발이 류한결이라고 하니 마음이 한층 편해진다.
올 시즌이 끝나고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고?
어디, 빅리그 선배로서 인생의 쓴맛을 한번 가르치러 가볼까?
* * *
“헤이, 다니엘, 자네도 왔나?”
“제임스, 반갑군. 이게 얼마 만이야? 여전히 류한결 저 친구를 따라다니는 건가?”
“그거야 뭐 나 말고 다른 스카우터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저길 보라고. 말린스, 내셔널스, 흠, 텍사스 놈들도 왔군.”
“일단 이거나 하나 받아. 도너츠 맛이 꽤 괜찮군.”
“고마워. 다른 곳에 비해 여기 구장은 꽤나 시설이 괜찮은 거 같아.”
“그야 지어진 지 몇 년 안 됐으니까.”
“자, 도너츠가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솔직히 말해봐. 자네는 누굴 보러 온 거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아시아 담당 스카우터인 제임스 블레이크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옆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한수혁을 데려가려다 실패한, 하지만 여전히 그를 포기하지 못하고 망령처럼 그 주변을 떠돌고 있는 시애틀의 스카우터 다니엘 미첼이었다.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해두지. 류, 저 친구에게는 관심 없어. 우리 팀에 좌완 투수 유망주가 너무 많거든. 그러니 그 눈에 들어간 힘은 그만 풀어도 돼.”
“흠. 그런가.”
다니엘의 말에도 제임스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서로를 속고 속이는 게 일상인 곳이 바로 이 빅리그 스카우터들의 세계다. 심지어 다니엘 저놈은 그중에서도 특히 사기꾼으로 소문이 난 놈이다.
비록 얼마 전 한수혁이라는 유망주를 놓치면서 업계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일 하나만으로 우습게 볼 인간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정말 류한결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가져온 한수혁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다니엘.”
“으응?”
“정말인가? 자네가 저 선수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소문 말이야.”
제임스가 그라운드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한수혁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다니엘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아직 7년, 만약 소문대로 KBO의 해외 진출 규정이 바뀐다 해도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저 친구를 기다릴 생각이거든.”
“흠, 그 정도로 좋은 선수라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지.”
“지금 저 친구의 기록… 확실히 엄청나긴 해.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알잖아? 이런 성적을 오래 지속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 선수의 몇 년 후 모습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라고. 조금 더 지켜본 후 판단해도 늦지 않아. 왜 이렇게 서두르나?”
그나마 이 바닥에서 서로 안면이 있는 편인 제임스가 진심으로 다니엘을 걱정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제임스의 말에도 다니엘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다른 얼간이들도 자네처럼 생각해주면 좋을텐데…….”
“뭐라고?”
“제임스.”
“음?”
“내가 자네에게만 특별히 말해주지.”
“뭘 말인가?”
“내가 한수혁 저 친구를 따라다니기로 마음먹은 건 그런 성적 같은 것 때문이 아니야.”
“그럼?”
“NPB도 아니고, 겨우 KBO 리그에서 4할을 치고 홈런 70개를 친다 해도 빅리그에 던져 놓으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야.”
“음?”
다니엘이 머릿속으로 한수혁의 얼굴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시즌 개막 후 지금까지 한수혁의 주위를 떠돌며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 다니엘은 어쩌면 지금 이 지구상에서 한수혁이라는 야구선수의 본질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래서일까, 다니엘의 목소리에는 완벽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까 말하고 싶은 건…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모든 야구 선수들 중에서…….”
“중에서?”
“가장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선수가 바로 저 루키라는 것.”
“허어…….”
“그리고.”
“또 있나?”
“혼자서 게임을 이끌어 나가는 에이스의 마음가짐과, 다른 동료들을 활용해 경기를 풀어나갈 줄 아는 리더의 덕목을 동시에 갖췄다는 것. 물론 본인은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엄청난 칭찬이군.”
“그래, 맞아. 누가 들으면 미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다니엘이 입이 갑자기 닫혔다.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어쩌면 저 한수혁이라는 루키가 먼 훗날 빅리그의 모든 선수들 앞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단단히 빠졌군.”
“맞아, 제임스. 어쩌면 내가 시애틀의 스카우터가 된 건 바로 저 친구를 우리 팀으로 데려오기 위해서였는지도 몰라. 운명 같은 거지.”
“허어…….”
“그러니까 내 말은…….”
뭔가를 한참 동안 생각한 다니엘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 선수가 미국 진출을 결심하는 날,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친구를 시애틀로 데려갈 거라네.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