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6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59화(60/412)
#59. 국가대표 넘버 원 류한결
현 시점 리그 최강의 에이스, 그리고 데뷔하자마자 타격 거의 전 부문 1위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는 슈퍼 루키 간의 첫 만남.
거기에 수십 년 가까이 최하위권을 전전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5강 진출의 희망을 보이고 있는 대전 팔콘스와 명가 재건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난해 꼴찌팀 서울 워리어스 간의 맞대결.
흥미가 안 가려야 안 갈 수가 없는 경기다.
올해로 개장 3년 차를 맞은 대전 베이스볼 드림파크.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에 총 2만2천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형 최신 구장 앞 도로가 미어터질 듯 붐비고 있었다.
“와아… 여기 뭔 일이냐. 대전 야구장에 이렇게 사람 많은 거 처음 본다.”
“쟤들 10년 만에 가을야구 간다고 장난 아니에요. 팀 분위기도 엄청 좋다던데.”
“그래, 하기사 남 얘기 할 때가 아니지. 우리도 관중 엄청 늘었으니까.”
오랜만에 이런 최신식 구장에 오니 기분이 조금 묘해진다.
거의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던 내 옛 홈구장과는 비교하기 힘들겠지만 그거야 뭐 시장 사이즈 자체가 달라서 그런 거고.
“지난번에도 와봤지만… 아니다, 수혁이 너는 라커룸은 처음이겠구나. 어때, 진짜 끝내주지?”
“뭐, 괜찮네요.”
“넌 나이도 어린 놈이 뭐 이렇게 세상 만사에 시큰둥해. 야, 이 정도면 괜찮은 게 아니라 끝내주는 거지. 우리는 언제 이런 데 사용해 보냐.”
음.
아닌 게 아니라 잠실 매지션스와 함께 사용 중인 잠실야구장의 라커룸 환경이 개판이기는 하지.
신축 구장을 만들어주겠다던 서울시는 하루하루 일정을 계속 미루고 있고, 따로 구장을 지어 독립하겠다던 매지션스도 요즘 별 움직임이 없고.
45년 묵은 낡은 시설에는 나도 신물이 나긴 한다.
“오… 저도 대전은 처음인데 진짜 끝내줍니다, 형님!”
“그치? 그래, 그런 반응이 정상이지. 수혁이 저놈은 암튼 애늙은이 같아서…….”
평생 시골 초가집에서 키우던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아파트에 사는 친척집에 놀러 온 기분이다.
왜 내가 자괴감이 드는 거지?
구단의 소유주로서 최신형 돔구장이라도 하나 지어주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젠장, 이렇게 회귀할 줄 알았으면 미국에서 뛸 때 슈퍼볼 번호라도 하나 외워놨을 텐데.
아니, 대박 터질 주식 종목이라도 하나 외워놨으면 좋았을 거잖아.
기껏 안다는 게 애플, 아마존, 테슬라… 이딴 도움 안 되는 것뿐이니.
…어, 가만.
뭔가 떠오를 것 같기도 한데?
“수혁아, 뭐 하냐. 나가자. 감독님이 집합하란다.”
“네? 아, 네. 네.”
이 생각은 일단 나중에.
민태현 씨한테 연락 한번 해봐야겠는데, 이거.
* * *
“자, 오늘 선발 라인업이다. 어제 미리 통보를 해두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고.”
원정팀 덕아웃 한쪽 벽에 이대준 감독이 작성한 선발 라인업 용지가 붙었다.
오늘 이대준 감독이 내놓은 라인업은 이랬다.
1번 2루수 이창모 (우)
2번 중견수 최민석 (우)
3번 유격수 한수혁 (우)
4번 1루수 조성오 (좌)
5번 지명타자 강진석 (우)
6번 우익수 맥스 워커 (좌)
7번 3루수 안치욱 (좌)
8번 포수 장덕수 (우)
9번 좌익수 김수학 (우)
선발 투수 정태호
“아…….”
“음.”
선수들 사이에서 여러 의미를 담은 탄성과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오늘 선발 출장할 선수들에게는 어제 미리 통보가 가기는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졌던 선수도 있는 모양이다.
좌타자 킬러인 류한결을 상대로 이대준 감독은 좌타자 3인방 맥스 워커, 조성오 선배, 안치욱을 그대로 선발 라인업에 집어넣었다.
다만 우타자이면서 힘 하나는 진짜인 강진석 선배를 5번에 넣은 것 정도가 유일한 변경점이었다.
그동안 주로 지명타자로 뛰어온 동기 유인철의 고개가 푹 떨궈졌다.
시즌 초만 해도 빠른 발과 그럭저럭 괜찮은 선구안으로 지명타자에 자주 이름을 올리던 녀석이건만, 강진석 선배 같은 이들이 올라오며 출장 기회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뎁스가 얕은 팀 사정상 1군에서 지명타자로 나서고 있지만 사실 2군에서 주전 유격수로 뛰면서 경험치를 먹여야 할 놈이다.
그러려면 강진석 선배가 잘 해줘야 하는데…….
힘 하나는 진짜 제대로라 맞으면 넘어가긴 하는데 문제는 일단 맞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거다.
시즌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타율 2할에 출루율 2할 4푼, 장타율 4할, 홈런 4개.
전형적인 공갈포의 스탯이다.
음, 확실히 야수가 너무 부족하다.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저쪽부터 해결해야지.
“성오 형님, 그리고 맥스, 안치욱. 이쪽으로 좀.”
“응? 왜, 왜?”
“무슨 일이지, 친구?”
“…뭔가 또 갈구려는 건 아니지?”
류한결의 좌타자 피안타율보다도 훨씬 못한, 그를 상대로 통산 타율 0.108를 기록 중인 조성오 선배와 지난 첫 대결에서 나란히 4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맥스, 그리고 안치욱.
심각한 표정으로 오늘 경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좌타자 3인방을 한데 모았다.
“오늘 류한결 선배 공을 치려면 딱 하나만 명심하면 됩니다.”
“뭐? 혹시 뭔가 발견한 거야? 코치 님도 특별한 얘기는 없던데.”
“좋은 투수인 건 맞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볼을 충분히 보세요. 그리고 볼 카운트가 투 스트라이크가 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
“후에?”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으면서 류한결 선배가 모자 챙을 한 번 만지면 포심, 두 번 만지면 싱커가 들어올 거예요. 몇 번 맞다 보면 눈치챌 수도 있지만 적어도 오늘 경기에서는 절대 못 고칠 겁니다.”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니, 우리 전력분석팀에서 그런 얘기 안 하던데?”
“그냥요.”
제가 사실은 회귀를 했는데요. 저 양반이 빅리그 3년 차가 끝나갈 때쯤에야 그 버릇을 완전히 고치게 된답니다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허어… 그래? 그럼 다른 선수들한테도.”
“아뇨, 이건 좌타자 한정이에요. 우타자들한테는 다른 버릇이 있으니 그건 제가 따로 말해놓을게요.”
“그래, 그렇구나… 수혁아. 넌 대체 모르는 게 뭐냐?”
“안치욱 저놈이 언제 정신차릴지 그건 잘 모르겠네요.”
“왜 또 가만 있는 나를…….”
“잘 들어. 아무리 치기 좋은 공이 들어와도 일단 투 스트라이크까지는 기다려. 포심하고 거의 차이 안 나는 컷패스트볼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무턱대고 방망이 내지 말고 포심이냐 싱커냐 둘 중 하나 고를 수 있을 때까지 참으라고.”
“…….”
“대답.”
“…알았다고.”
“흐흐, 너희들 보면 동기가 아니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 동생 같기도 하고.”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맥스, 내 말 이해한 거지?”
“물론, 난 네가 말하는 거라면 뭐든 다 믿으니까. 고마워. 경기 끝나고 내가 이 대전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에 가서 가장 비싼 빵을 사다 주도록 하지.”
“거기 빵 사려면 줄 엄청 서야 할 텐데, 뭐 아무튼 이상 끝.”
좌타 3인방에게 내 노하우를 전수한 나는 이번에는 우타자들을 한데 모아 놓고 다른 비법을 또 알려줬다.
사실 내가 알고 있는 류한결 선배에 대한 정보는 전력분석팀의 공식 자료에 넣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들이다. 이걸 안다고 해서 다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야구는 10번 대결해서 타자가 3번만 쳐내면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스포츠다.
이런 사소한 정보들이 하나둘 모이면 모일수록 타자가 이길 확률이 급격하게 올라간다는 뜻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
그럼 어디 내가 KBO 시절 류한결 선배의 공은 어땠는지 직접 감상해볼까?
* * *
–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곳 대전 베이스볼 파크에서는 4위를 기록 중인 서울 워리어스, 그리고 한 게임 차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홈팀 대전 팔콘스와의 3연전 첫 경기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제 옆에는 해설을 맡은 고동식 위원님 나와계십니다.
–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들 덕에 근근이 먹고 살고 있는 해설위원 고동식입니다.
– 하하, 위원님이 현역 기자이시던 시절 몇 번 인터뷰를 한 기억이 나는데 그때에 비교하면 정말 재미있어지신 것 같습니다. 혹시 원래도 이렇게 입담이 좋으셨나요?
공중파로 생중계 되는 경기에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아나운서의 우회적인 경고였다.
하지만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알아듣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고동식의 입담은 거침이 없었다.
– 아뇨, 그때는 여기저기 눈치 볼 사람이 많아서 엄청 조심했습니다. 회사에서 월급 받으려면 함부로 입을 털 수는 없…….
– 자, 예전 얘기는 일단 접어두고 오늘 경기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죠. 양팀에서 제출한 라인업, 어떻게 보십니까?
– 돋보기 안경 쓰고 간신히 보고 있습니다.
– …….
– 죄송합니다. 최신 유행하는 개그 트렌드는 저에게 안 맞는 것 같아서 아재 개그 모음집을 열심히 보다 보니 그만…….
– 흠흠.
– 농담은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일단 워리어스부터 살펴보죠. 가장 주목할 점은 좌타자 킬러라고 알려진 류한결 선수를 상대로 조성오, 안치욱, 맥스 워커, 좌타자 3인방이 그대로 출전했다는 점입니다.
– 뭔가 복안이 있는 걸까요?
– 글쎄요. 사실 류한결 선수 정도 되는 투수를 상대로 복안 같은 게 있겠냐 싶지만… 일단은 이대준 감독이 뭔가 생각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 선발 투수인 정태호 선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실 제가 오래전부터 워리어스에서 제일 안타까워하던 선수 중 하나였습니다. 포심 구속도 148㎞/h 가까이 나오고 제구력도 괜찮고… 문제는 쓸 만한 변화구가 없다는 거였거든요.
– 네, 그렇군요.
– 다행히 워리어스의 새 투수코치가 능력이 좋은지 지난해와 비교하면 그 약점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특히 커브 각이 아주 좋아진 게 눈에 띕니다.
– 그리고… 한 가지 특이한 게 정태호 선수가 대전을 상대로 아주 강하다는 점이죠?
– 네, 통산 평균자책점이 4.75인데 반해 대전과의 원정에서는 통산 1.9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입니다. 한마디로 대전 킬러라고 할 수 있죠.
–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 글쎄요, 오늘 경기 전에도 또 한 번 물어봤는데 특별한 건 없다고 하더군요. 원래 대전 출신이라 이곳이 편하고, 또 이상하게 대전 야구장 마운드가 잘 맞는다, 뭐 그 정도?
– 하긴 정태호 선수가 신인 드래프트에 나왔을 때 대전에서도 노렸었죠?
– 맞습니다. 순번에 밀려서 워리어스에 가게 된 거죠.
–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대전 팔콘스 라인업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라인업입니다. 아무래도 에이스 류한결 선수가 등판하는 만큼 공격력보다 수비력에 중점을 둔 배치고요. 음, 얼마 전까지 중견수 자리에 이름을 올리던 서형주 선수가 2군으로 내려간 게 눈에 띄는군요.
– 서형주 선수를 보면 조금 안타깝죠? 아마 시절 좌 서형주 우 한수혁이라 불리던 최대 라이벌이었는데요
– 맞습니다. 동기 한수혁이 지금 KBO를 씹어, 아, 죄송합니다. KBO 타격 전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걸 보면서 서형주 선수 속이 말이 아닐 겁니다.
–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서형주 선수가 팀내 다른 고참들과 잘 융화되지 못한다는 소리도 들리던데요. 대전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있고요.
– 뭐, 신인 선수들 중에 가끔 그런 경우가 있긴 하죠. 서형주 선수야 서울 토박이니 대전 생활이 불편할 수도 있고, 개성이 강한 성격인 만큼 고참들하고 크고 작은 트러블이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인만큼 스스로 그런 걸 이겨내야겠죠. 프로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언제 자기 자리가 사라질지 아무도 장담 못 합니다.
– 프로야구 선수라면 한 번쯤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자, 야구팬 여러분. 드디어 류한결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서고 있습니다. 오늘 한수혁 선수와의 대결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관심있게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그거야 뭐 한수혁 선수가 이길…….
– 잠시 광고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여기는 대전 구장입니다.
* * *
“오늘은 제가 한 마디 해도 될까요? 성오 형님?”
“만식이, 네가? 그래. 얼마든지. 안 그래도 오늘은 또 경기 전에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잘됐네. 흐흐, 얼마든지요, 부주장. 말씀하시지요.”
“감사합니다.”
평소 어지간한 일은 주장에게 모두 맡겨 놓고 뒤에서 묵묵히 후배들을 챙겨오던 부주장 이만식이 선수들 앞으로 나섰다.
이 팀에서 오래 뛰어온 선수들은 이만식이 선수들 앞에 이렇게 나선 게 처음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놀라기도 했다.
“자, 얘들아. 심각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다들 알고 있는 얘기야. 지금까지 류한결 저 녀석이 우리 팀 상대로 몇 승이나 거뒀는지 아는 사람?”
이만식의 첫 마디에 선수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급속히 평균연령대가 낮아진 이 팀의 중견이 되어버린 외야수 김수학이 손을 들며 대답했다.
“올해 첫 게임까지 합치면 7년 동안 20승 1패일 겁니다, 만식 형님.”
“맞아. 20승 1패야. 평균자책점은 2.01, 그것도 한결이 저놈이 우리 팀 만나면 완봉 욕심내서 길게 던지다가 내준 점수가 대부분이지. 무슨 말이냐 하면…….”
선수들이 이만식의 다음 말에 신경을 집중했다.
“한마디로 밥이었다는 거지. 류한결 입장에서는 우리가 개좆밥이었다는 거야. 흐흐, 그 얘기 들었지? 쟤들도 몇 년째 하위권 벅벅 기면서 우리 팀 상대할 때는 서로 선발 등판하고 싶어서 난리였다는 거.”
“알죠.”
“자…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만식이 한차례 박수를 치며 마지막 말을 내뱉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6년 넘게 류한결이라는 절대적 존재에게 눌려온 꼴찌팀의 한이 맺힌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저 자식, 오늘 한번 제대로 혼내주자. 다시는 우리 팀 상대로 표적 등판 같은 건 하지 못하게, 워리어스를 상대하는 날 아침에는 갑자기 배가 아파올 정도로 본때를 보여주자고.”
“네! 부주장!”
“좋아, 그리고 저번에 우리가 준영이 박살 냈는데, 한결이한테 당해버리면 나 그 녀석 얼굴 못 본다. 국가대표 넘버 투를 박살 냈으니, 사이 좋게 넘버 원도 박살 내주자고, 자, 하나 둘 셋 하면 파이팅, 하나 둘 셋!”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