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6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61화(62/412)
#61. 미스터 베이스볼
“흐흐, 제임스, 그 입 좀 그만 다물지 그래?”
“…방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저렇게 맞은 타구가 저기까지 날아간다고?”
“데이터를 똑바로 확인 안 했군. 저 친구 올 시즌 홈런 평균 비거리가 131m야. 평균 발사각은 30도를 넘고. 배트 윗부분에 맞더라도 담장을 넘기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이지.”
“그게… 말이 돼?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아시아인이?”
“뭐, 마음대로 생각하고. 아무튼 이제 내가 왜 저 친구를 계속 따라다니려는지 알겠지?”
“으음…….”
주자 1, 3루 상황에서 한수혁의 선제 홈런이 터지자 몇몇 빅리그 스카우터들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한수혁이 160을 넘게 던지고, 시애틀의 러브콜을 받았다 해도 빅리그 모든 구단들이 그를 정밀 관찰한 건 아니었다.
당장 마이너리그만 둘러봐도 103, 104마일을 던지는 젊은 투수들, 일단 방망이에 맞추기만 하면 모조리 담장 밖으로 넘겨버리는 거포 유망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
게다가 한수혁은, 빅리그 진출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신인에 불과했다. 그런 신인에게까지 전담 인력을 붙일 빅리그 구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스카우터들 중 몇은 지난 임준영과의 경기를 직접 본 후 한수혁에 대한 관찰 등급을 상향 조절한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또 거대한 홈런이 터졌다.
류한결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그대로 밀어 친 홈런 타구.
한수혁이라는 신인이 임준영에 이어 류한결까지 박살 내는 걸 본 스카우터들의 머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그들 중 누군가는 전화를 꺼내들어 어디론가 급하게 통화를 걸고, 또 어떤 이는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전자기기를 꺼내 뭔가를 열심히 입력했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작 홈런을 친 한수혁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돈 후 덕아웃으로 들어가 버렸다.
시애틀의 스카우터 다니엘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맺혔다.
오늘 류한결을 보기 위해 모여든 다른 팀 스카우터들이 한수혁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이들이 경쟁자가 될 수 있기에 달가워할 상황은 아니지만…….
‘어차피 몇 년 동안 한수혁을 숨기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숨긴다고 숨겨질 존재감이 아니다.
당장 올해 8월 예정된 WBC에 저 친구가 나와 빅리거들을 상대하는 걸 보면 아마 메이저리그 전 구단의 스카우트 명단에 한수혁이라는 이름이 등재될 것이다.
그럼에도 다니엘의 머릿속에 한수혁을 놓칠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었다.
아주 오래전 시애틀의 중심이 되어 주었던 전설적인 스타 켄 그리피 주니어를 떠올리게 되는 아름다운 스윙.
그리고 그 선수조차 이루지 못한 시애틀의 창단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가능케 해줄 슈퍼 루키.
다니엘은 생각했다.
저 선수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게 뭐든 들어줘야겠다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목을 걸고서라도.
‘아버지…….’
매리너스가 월드시리즈 우승하는 걸 보는 게 소원이라는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야구장에 드나들던 꼬마 아이는 이제 그 팀에 유망주를 공급하는 스카우터가 되었다.
어릴 때는 몰랐다. 대체 왜 아버지가 저렇게 야구에 집착하는지, 응원하는 팀의 승리에 열광하는지.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자신 역시 야구에 중독되고, 심지어 시애틀에서 일까지 하게 되며 다니엘의 인생 목표 역시 응원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저 친구, 우리 팀으로 제가 반드시 데려가겠습니다. 반드시.’
다니엘의 마음 속 깊은 각오는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 * *
“아깝다. 잘했어!”
“나이스 배팅! 맥스!”
“굿 잡!”
내게 석 점 홈런을 맞기는 했지만 역시 국가대표 에이스는 에이스였다.
흥분이 덜 가라앉았는지 조성오 선배에게도 안타를 허용했던 류한결은 이어진 강진석 선배를 삼진, 맥스 워커를 병살타로 처리하며 1회초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1회초 석 점은 크다.
경기 전만 해도 류한결이라는 이름값에 눌려 있던 선수들이 3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전광판을 보며 점차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아웃!”
그래서일까, 평소에도 대전에 아주 강했던 정태호 선배의 어깨가 오늘따라 더 가벼워보였다.
최근 다섯 경기에서 4할대 맹타를 휘두르던 대전의 1, 2, 3번 타자를 차례로 삼진과 땅볼로 잡아낸 그가 입가에 웃음을 매단 채 덕아웃으로 걸어갔다.
“선배님,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시네요.”
“응? 그래, 수혁아. 너도 방금 수비 좋았어.”
“어제는 좀 피곤해 보이시더니 혈색도 되게 좋으세요.”
“아? 그런가? 하하, 오랜만에 대전에 와서 그런가. 친구들도 만나고. 아무튼 오늘은 내가 최선을 다해 던져볼 테니까 점수 좀 더 내줘라. 오랜만에 승리투수 좀 되어 보자.”
이 양반 보게… 누가 들으면 대전이 홈인 줄 알겠네.
아무튼 선발투수 컨디션이 좋다니 다행이다.
그렇게 우리 팀이 3 대 0으로 앞선 가운데 다시 2회초 공격이 시작되었다.
“스트라이크!”
“볼.”
“스트라이크!”
“볼.”
평소 같으면 배트가 나갔을 공을 안치욱이 잘 참아냈다.
볼 카운트 투 볼 투 스트라이크. 안치욱의 집중도가 최대치로 올라갔다.
따아악!
“좋았어!”
“나이스!”
“안치욱 최고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 버릇처럼 모자챙을 한 번 만진 류한결. 그걸 확인한 안치욱은 머릿속에서 모든 잡념을 지우고 포심 하나만을 노렸다.
몸쪽으로 바짝 붙어 들어오는 좌투수 류한결의 포심을 좌타자가 때려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타자가 구종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안치욱은 팔꿈치로 몸통을 꽉 누른 채 이를 악물고 그 공을 잡아당겼고, 결국 1-2루 사이로 총알같이 빠져나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와아아!”
“이제 쟤도 꽤 치네?”
“우리 올해 신인 진짜 잘 뽑은 듯?”
수는 얼마 안 되지만 대전 원정 관중석에 앉은 관중들의 입에서 안치욱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인 놈이 3루 자리를 꿰차고 실책이나 하고, 안타도 못 친다고 얼마나 구박을 받았던가.
팬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팀 내에 안치욱만 한 3루수가 없다는 건 알 바 아니다. 그건 구단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니까.
아무튼 저렇게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이 하나하나 늘어나고, 그들과 교감하다 보면 저 애송이 놈도 점차 프로에 걸맞은 얼굴을 하게 될 것이다.
겨우 안타 하나 치고 맹구처럼 웃고 있는 저런 얼굴 말고, 진짜 프로의 얼굴 말이다.
그렇게 3 대 0으로 앞서가는 상황에서 선두타자 안치욱의 안타로 만들어진 무사 1루 상황.
타석에 들어선 건 용병들에게도 결코 밀리지 않는 거대한 체격을 가진 포수 장덕수였다.
사실 타자의 체격이 크다는 건 그다지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키가 크면 스트라이크존도 자동으로 넓어진다. 투수 입장에서는 던질 곳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투수들은 덩치가 큰 타자들에 대해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를 장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부웅
장덕수 선배가 타석에서 배트를 붕붕 휘둘러댔다. 뒤에 앉아 있던 팔콘스의 베테랑 포수가 인상을 확 쓸 정도로 위협적인 퍼포먼스였다.
사실 장덕수라는 선수는 겉으로 보이는 덩치와 달리 장타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분명 장타를 잘 칠 수 있는 피지컬과 타격 매커니즘을 갖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정타가 되는 타구가 적어서 그런지 뜬공이나 땅볼이 잘 나오는 편이다.
소위 말하는 잘 맞아서 빨래줄처럼 날아가는 타구가 적다는 뜻이다. BABIP의 행운이 따르기를 기도해야 하는 타입이랄까.
부웅
장덕수 선배가 또 한 번 배트를 휘둘렀다. 누가 봐도 큰 것을 노리는 타자의 태도였다.
대전으로서도 헛갈릴 거다. 그가 덩치에 비해 홈런이 잘 안 나오는 타입이라는 건 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백업으로만 뛰던 지난 시즌까지의 데이터다.
올 시즌 처음으로 주전으로 올라선 그가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지 아직은 미지수인 것이다.
물론 지금 장덕수 선배가 저렇게 과장된 모션을 취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사전에 논의된 것이지만.
‘선배님, 혹시나 안치욱 저놈이 1루로 출루하게 되면 이렇게 한번 해보실래요?”
‘응? 뭘? 수혁아?’
‘감독님한테도 허락받은 건데 그게 뭐냐 하면…….’
내 선제홈런으로 3점을 먼저 내기는 했지만, 그리고 우리 5선발인 정태호 선배가 대전에서는 꽤나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지만.
절대 여유 있는 점수 차가 아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상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이니까.
그래서 이닝이 시작되기 전 미리 장덕수 선배에게 말해두었다.
‘타석에 들어서면 몸을 푸는 척하면서 과장되게 큰 스윙을 몇 번 보여주세요. 큰 거를 노리는 걸로 보이게끔요.’
‘큰 거? 음, 할 수야 있지만 그건 왜?’
‘그러면 아마 바깥쪽 낮은 코스로 싱커가 들어올 확률이 40% 이상은 될 거예요. 선배님 번트 잘 대시잖아요? 그냥 가볍게 1루 쪽으로 툭.’
‘오…….’
장덕수 선배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팀에서는 잘 모르는 장덕수 선배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큰 덩치에 비해 보내기 번트에 상당히 능숙하다는 점이다.
홈런을 노리는 듯 방망이를 휘두르는 거대한 체격의 타자가 사실은 번트를 노리고 있다는 걸 누가 짐작이나 할까?
거기에 주자 1루 상황에서 장타력이 있는 우타자에게 류한결이 싱커를 던질 확률은 대략 30%에서 40% 정도.
다른 공이 들어온다면 별 수 없지만, 그 코스로 공이 들어온다면 장덕수 선배는 멋진 번트를 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툭
“뭐, 뭐야!”
“1루! 아니, 그냥 던지지 마! 던지지 마! 늦었어!”
역시.
풀스윙을 할 것처럼 위협하는 장덕수 선배를 상대로 류한결의 싱커가 날아들었다.
팀 내에서 보내기 번트라면 1, 2위를 다투는 장덕수 선배가 1루로 가볍게 번트를 댔고, 전혀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류한결이 뒤늦게 달려와 타구를 잡았지만.
“세이프!”
1루에 미처 던지지도 못한 탓에 주자 올 세이프.
순식간에 무사 1, 2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
“한결아, 괜찮아? 야, 류한결!”
상대팀 포수가 류한결을 진정시키기 위해 마운드 위로 올라가며 경기가 잠깐 중단되었다.
그 틈을 탄 나는 자기 타석을 준비 중이던 김수학 선배를 향해 손짓을 했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김수학 선배가 주심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후 내 쪽으로 다가왔다.
“왜? 수혁아, 뭔데?”
“아, 별 건 아니고요…….”
* * *
“흠, 저 친구 오늘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군.”
“내가 봐도 그래. 공 구위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뭐랄까,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랄까.”
“뭐, 오늘 한 경기로 저 친구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류한결을 노리는 빅리그 구단 중 가장 그에게 가까이 접근해 있는 오클랜드의 스카우터 제임스가 입맛을 다시며 들고 있는 스피드건을 내려 놓았다.
1회 한수혁에게 석 점 홈런을 내준 류한결은 다시 2회 안타와 기습번트, 그리고 다시 희생번트와 희생 플라이를 허용하며 추가로 한 점을 더 내줬다.
4회까지 경기가 진행된 가운데 스코어는 워리어스가 4 대 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
오클랜드에 데려가면 곧바로 2선발 정도는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류한결이 고전하자 제임스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 앉아서 오직 한수혁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시애틀의 스카우터 다니엘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이봐, 다니엘. 그렇게도 좋은가? 아직 해외 진출하려면 몇 년이… 아니, 그걸 떠나 시애틀에서 데려갈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 못 할 선수에게 너무 꽂혀 있는 거 아닌가?”
제임스의 말에 다니엘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한수혁이라는 선수는 남의 팀 선수이고, 빅리그 진출까지는 최소 수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데다가, 결정적으로 시애틀에서 그를 데려갈 수 있을 거란 그 어떤 장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빅리그 스카우터인 자신이 저 동양인 루키에 꽂혀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다니엘이 입을 다물자 제임스 역시 굳이 더 말을 건네지 않았다.
아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잠시 후 한수혁이 친 타구가 좌익수 옆을 꿰뚫으며 2루타가 되는 순간.
“예쓰!”
자리에 앉아 있던 다니엘이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오늘 류한결의 투구에 대한 자료를 기록 중이던 제임스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아, 내가 방해가 됐나? 미안하군. 저 친구가 시애틀 유니폼을 입을 걸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돋아서 말이야.”
“…자네.”
“제임스.”
“왜?”
“지금 이 내 심정을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못하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군.”
“무슨 심정 말인가?”
“제임스, 나는 저 친구가 전 세계에서 최고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네.”
“허어…….”
“그는 누구보다 빠르고 강하며, 그 어떤 선수보다 영리하고, 거기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야구에 대한 통찰력까지 갖춘 선수이니까.”
고작 KBO 리그의 1년 차 신인에 불과한 선수에게 붙이기에는 너무 과분한 칭찬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대답하는 제임스의 말에는 약간의 가시가 돋아 있었다.
“정말 엄청난 말들이군.”
하지만 다니엘은 그런 반응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은 내 말이 우습겠지. 하지만 난 믿는다네. 먼 훗날, 저 선수가 현역에서 은퇴하게 될 때쯤 세상 모든 야구팬들이 그를 이렇게 부르게 될 거야.”
“…….”
“미스터 베이스볼.”
그 말을 들은 제임스가 입을 떡 벌리며 대답했다.
“미쳤군, 미쳤어. 제대로 미쳤어.”
“흐흐, 그래. 제발 다른 친구들도 자네처럼 생각해줬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하는 내내 다니엘의 눈동자는 한수혁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