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6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62화(63/412)
#62. 안경과 렌즈
프로야구 팀의 승패에 일희일비하게 되는 건 비단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그리고 팬들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절박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모기업의 총수로부터 올 시즌 세상이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5위 안에 들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구단 사장과 단장 같은 사람들이라든지.
에이스 류한결이 투입된 경기에서 단 한 번도 리드를 잡지 못하고 계속 끌려다닌 대전 팔콘스.
그렇게 끌려만 다니던 경기가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경기 끝났습니다! 서울 워리어스가 초반 한수혁 선수의 석 점 홈런 등으로 만든 4점 차 리드를 끝까지 지켜내며 최종 스코어 4 대 0으로 대전 팔콘스를 눌렀습니다.
– 이야, 오늘 진짜 대단하네요. 대전 팔콘스의 에이스 류한결 대 서울 워리어스의 5선발 정태호. 선발투수의 이름값만 봐서는 대전의 일방적인 우세가 점쳐졌는데 말이죠.
– 오늘 경기 승리의 일등공신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 요즘 들어 워리어스가 승리한 경기에는 거의 대부분 한수혁 선수의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오늘만큼은 정태호 선수를 꼽지 않을 수 없군요. 데뷔 4년 만에 첫 완봉승이니까요.
– 그렇군요. 저 역시 비슷한 생각입니다. 대전에만 오면 에이스가 되는 정태호 선수가 환한 표정으로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습니다.
– 5년 만에 가을야구를 꿈꾸는 워리어스로서는 정말 든든하겠어요. 5위 라이벌인 대전을 상대로 이렇게 극강의 모습을 보여줄 투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이죠.
– 네, 동의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정태호 선수의 인터뷰 장면 보시면서 오늘 중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딸깍
“흠.”
“…죄송합니다, 사장님.”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어? 한수혁, 정태호 저 두 놈이 미쳐 날뛴 게 문제지.”
“다 제 불찰입니다.”
“괜찮아. 나야 이 자리에서 잘리면 어디 가서 공공근로라도 하면 되고, 자네야 아직 한창이니 열심히 몸 굴리면 굶기야 하겠어?”
사장의 자학성 멘트에 단장의 고개가 더욱 깊이 숙여졌다.
“됐고, 아무튼 올 시즌에 5위 못 하면 자네나 나나 실업자 되는 건 확정이야. 회장님이 직접 말씀하신 거니 무를 수도 없다고, 이건.”
“잘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한번 얘기해 보자고. 류한결 저 친구가 오늘 진 건 그렇다 치자고, 뭐 특급 투수라고 매번 이길 수는 없으니까.”
“송구합니다.”
“문제는 정태호 저놈인데… 대체 왜 저러는데? 통산 방어율이 거의 5점대에 달하는 놈이 왜 대전에만 오면 류한결보다 더 잘 던지냐고.”
“…모르겠습니다. 친한 선수들 말로는 대전 출신인데다가 이 동네를 워낙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게 원인 같다고만…….”
“그게 말이 돼? 그럼 대전 출신인 우리 팀 애들은 왜 저렇게 못 던지는데?”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고, 답답해서 그래, 답답해서. 우리가 올해 가을야구 나가려면 워리어스 쟤들은 무조건 밟고 넘어서야 하는데 이러다가 정태호한테 호구 잡혀서 망하게 생겼어. 대책을 강구하라고, 대책을!”
“알겠습니다. 코칭스태프들과 다시 한번 방안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휴… 좋아. 일단 그건 그렇게 하고, 아, 우리 팀 1라운더 서형주, 그 녀석은 지금 뭐 하는데?”
“2군에서 열심히 훈련을…….”
“단장아,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어요. 그 녀석 2군에서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린다며. 아니, 성격이야 그렇다 치고 왜 야구까지 못하는데? 좌 형주, 우 수혁이라며?”
“여기저기 알아보고 심리상담도 받아봤는데… 한수혁에 대한 지나친 라이벌 의식에 향수병이 겹쳐서 우울증으로 번진 거 같다는 진단이…….”
“라이벌 의식은 그렇다 치고, 향수병? 여기가 무슨 유럽이야? 미국이야? 이 좁아터진 나라에서 고작 서울, 대전 거리만큼 떨어졌다고 향수병? 미치겠네, 정말.”
“그것도 죄송합니다.”
“됐어! 나가 봐! 어떻게든 정태호 저놈 공략법 찾아내고, 서형주도 빨리 고쳐서 1군으로 올려 보내! 그놈한테 들어간 계약금이 5억이야, 5억! 한수혁 절반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 * *
문제 해결을 위한 키는 아주 가까운 곳에 놓여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이런 건 말로만 들어서는 절대 체감할 수 없다.
직접 몸으로 느낀 후에야 아, 그렇구나 깨닫게 된다고 해야 할까.
어제 경기를 이기면서 서울 매지션스를 끌어내리고 3위로 한 계단 올라선 워리어스, 그리고 에이스 류한결을 내세우고도 패배하면서 간신히 5위 자리를 지켜낸 팔콘스.
양팀 간의 2차전이 예정된 대전 베이스볼 드림파크에서 원정팀 워리어스의 타격 훈련이 한창이다.
딱
틱
따악
틱
따악
“그만, 덕수는 그만 됐고, 다음 수학이!”
배팅볼 투수의 볼을 상대하던 장덕수 선배가 코치를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이고는 배팅게이지를 벗어났다.
그가 워리어스의 안방마님이 된 지도 벌써 한 달여가 다 되어간다.
현재 그가 기록 중인 수비 지표를 보면 프레이밍 수치는 1.9로 10개 구단 주전포수 중 중간 정도는 되고, 9이닝당 블로킹도 0.551로 중간 정도, 거기에 도루 저지율은 26%로 상위권을 기록 중이다.
주전포수로 뛰는 첫 시즌인 데다가 백업포수의 기량 부족으로 거의 풀타임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수비 면에서는 뭐라 지적할 부분이 없다.
흠.
거기에 눈에 보이는 지표는 아니지만 벤치클리어링 억제 능력은 리그 최고라고 봐야겠지.
장덕수 선배가 포수 마스크를 쓴 이후 사구를 맞은 타자가 마운드로 뛰어올라가는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수혁아, 이거 어여 마셔봐. 새로 들어왔나 본데 맛있네.”
“네, 선배님.”
문제는 타격이다.
방금 배팅 연습에서도 드러났지만 장덕수 선배의 타격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물 흐르듯 아주 자연스러운 스윙을 갖고 있고, 일단 배트 중심에 걸리기만 하면 담장 밖으로 넘어갈 정도로 힘도 좋다.
선구안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포수답게 나쁜 공을 골라내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타석에서 참을성도 충분한 편이다.
그래, 분명 여기까지만 보면 아주 좋은 타자가 될 조건은 다 갖춘 셈인데…….
이상하게 배트 중심에 공을 맞추는 걸 힘들어한다고 해야 할까? 코치들이 나서서 이리저리 교정을 해보아도 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시즌 개막 한 달이 흐른 지금 그가 기록한 타격 성적은 타율 0.236, 출루율 0.315, 장타율 0.389, 홈런 1개, 16타점.
포수라는 포지션 특성과 그의 수비 기여도를 생각하면… 만족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성적이다. 특히 찬스에 꽤 강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뭔가 아쉽다.
빅리그에서 15년을 구른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뭔가 더 있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장덕수 선배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인공눈물이 든 약병을 들어 눈에 넣었다.
맞다. 이 선배 렌즈 낀다고 했지?
어, 잠시만, 설마?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선배님.”
“어, 수혁아.”
“그거 렌즈… 혹시 안 불편하세요?”
“불편하지, 그래도 어쩌겄어. 이거 없으면 너무 안 보여.”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음… 지난번에 구단 신체검사 때 시력 관련해서 별 얘기는 없었나요?”
“없었는디.”
음, 그럼 아닌가?
내가 굳이 이걸 확인하는 이유는 예전 빅리그에서 뛰던 시절 난시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놈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력 자체는 괜찮은데 난시가 일찍 생겨서 렌즈도 껴보고, 안경도 껴보고, 결국 시력교정수술까지 받았었지, 그놈.
옆을 돌아보니 장덕수 선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으음… 이거 이상하게 그냥 넘어가기 찜찜하네. 혹시 모르니 한번 체크해 볼까?
“트레이너님, 잠시만요. 여기 경기장 바로 앞에 안경점 있었죠?”
“네, 왜요? 한수혁 선수, 혹시 어디 눈이라도 불편하세요?”
선수들의 몸 상태를 관리하는 트레이너가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아뇨, 저 말고…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지만 아직 경기 시작 전까지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장덕수 선배님 간단한 시력 검사 좀 받아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
* * *
“으음… 그러니까 덕수가 지금까지 시력에 좀 문제가 있었다는 거지? 이상하네, 신체검사 데이터에는 별 이상 없었잖아? 본인도 별 말 없었고.”
“그게 본인은 렌즈 낀 지가 오래되어서 대충 익숙해졌고, 시력 검사에서도 큰 이상이 있기보다는 미묘하게 난시가 좀 있는 정도였는데… 실제 경기에서는 난시에 렌즈 빛 번짐에, 이것저것 겹치면서 포커싱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던 거 같습니다, 감독님.”
“허어, 그런데 저 녀석은 왜 한 번도 그런 얘기를 안 한 거지?”
“…올해 초에 예전 배터리 코치와 트레이너에게 몇 번 얘기하기는 했답니다. 렌즈가 불편한 거 같으니 안경을 쓰면 안 되겠냐고.”
“그래? 그런데?”
“안경 낀 포수는 절대 사람 구실 못 한다고 닥치고 렌즈 끼고 공이나 잘 받으라고 했다던데요?”
“미친 새끼들…….”
이대준 감독이 이미 이 팀에서 쫓겨난 배터리 코치와 트레이너 놈들을 향해 욕설을 퍼부어준 후 다시 장덕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앞으로 선수들 상태에 대한 기록은 아무리 사소한 것도 빼놓지 말고 다 기록해서 남겨.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후임자가 놓치는 부분 없게.”
“네, 안 그래도 전체적으로 다시 조사를 한 후에 DB에 업데이트 할 생각입니다.”
“좋아. 아무튼 그래서 임시로 맞춘 안경은 어떻다는데? 본인은 뭐래?”
“네, 새로 태어난 거 같은 기분이랍니다.”
* * *
따아아아악!
– 어, 어, 어, 넘어가느냐, 가느냐, 가느냐, 넘어, 갔습니다! 장덕수 선수가 친 타구가 좌측 담장을 넘어갔습니다! 투런 홈런! 장덕수 선수의 선제 홈런으로 워리어스가 두 점을 앞서 갑니다!
– 아, 제대로 맞았어요! 보세요, 장덕수 선수의 타격 폼을 보면 힘보다는 자연스러운 스윙으로 타구를 날리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워낙 타고난 힘이 좋아서 그런지 저렇게 배트에 정확하게 맞추기만 해도 담장을 넘겨버리네요. 대단합니다!
“와아아!”
“장덕수! 장덕수!”
“그래! 네 덩치면 이 정도는 쳐야지!”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터진 8번 타자 장덕수의 투런 홈런에 대전 야구장 원정 응원석이 한껏 달아올랐다.
“잘했어! 자식!”
“덕수 선배님!”
“좋아!”
오랜만에 손맛을 본 장덕수 선배가 상기된 표정으로 포수 장비를 착용했다.
방금 타격은 정말 느낌이 좋았다.
타고난 힘이 워낙 대단하기에 저런 부드러운 스윙에서도 홈런이 나올 수 있는 거다.
나와는 달리 발사각 자체가 높지는 않아 홈런보다는 2루타가 더 많이 나올 것 같지만.
흐흐.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2할에도 못 미치는 타격에 포크볼만 던지면 얼굴이 뻘개지던 놈이 주전 포수였는데, 이 정도면 정말 대만족이다.
난시 교정용 안경을 쓰는 것만으로 저렇게 타격감이 좋아지다니.
혹시나 해서 검사를 받아 보길 정말 잘했다.
그나저나, 장덕수 선배한테 포수는 안경 쓰면 안 된다고 한 그 배터리 코치는 대체…….
안경 끼고도 야구 잘한 포수가 얼마나 많은데.
당장 일본 역대 최고 포수라 불리는 후루타도 있고, 노다 같은 선수도 있고.
아, 후자는 만화 캐릭터였나.
아무튼.
워리어스 타선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가 중심타선에 좌타자가 너무 많다는 거였는데, 만약 장덕수 선배의 저 타격감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면.
풀 시즌 기준 2할 중반대의 타율에 두 자리 수 홈런만 쳐줄 수 있다면.
타선의 짜임새가 훨씬 좋아질 거다.
중심타선에 좌우좌우 지그재그 타선도 가능하고, 혹은 좌타자 중 하나를 2번으로 보낼 수도 있고 말이지.
물론 일단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타자에게 있어 시력과 관련된 문제는 상당히 골 아프면서도 민감한 문제이니까.
안경과 렌즈, 시력교정술.
예나 지금이나 저 문제에 정답이란 건 없다.
교정술이 많이 발전하면서 상당수의 선수들이 렌즈나 안경 대신 수술을 선택하긴 하지만, 일단 행해지면 되돌릴 방법이 없기에 몸이 곧 자산인 프로 선수들 입장에서는 최후의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시즌이 끝나고 장덕수 선배가 자신의 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다.
그냥 저 안경을 계속 낄 수도 있고, 어쩌면 다시 렌즈로 돌아갈 수도 있다.
혹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교정술을 선택할 수도 있을 테고.
나는 신이 아니기에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오랜 시간 힘든 삶을 감내해온 장덕수 선배에게 작은 축복이 내리기를 빌어볼 뿐이다.
“상진아, 다음 이닝부터는 공을 조금만 더 낮게.”
“네, 선배.”
홈런을 치자마자 곧바로 다음 이닝 수비를 위해 포수장비를 착용하던 장덕수 선배가 오늘 선발인 천상진 선배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팀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던 두 사람.
한 사람은 투수코치의 외면과 방치 속에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왔고, 또 한 사람은 인간 쓰레기의 정치질과 폭행, 협박 때문에 만년 백업에 머물며 묵묵히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와아아!”
이닝이 끝나고 다시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나가야 하는 시간.
지난 등판에서 엄청난 투구와 함께 인상적인 인터뷰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천상진 선배를 향해 원정 응원석 팬들의 환호가 쏟아진다.
웬만한 야구팬들은 이름조차 알지 못하던 완전한 무명에서 이제는 워리어스의 당당한 4선발이 된 미남 투수가 마운드에 서고, 그와 함께 배터리를 이룬 거구의 포수가 힘차게 함성을 지른다.
“천상진, 가자! 할 수 있다!”
“파이팅!”
“우와와!”
천상진을 향해 환호하던 팬들이 이번에는 그런 장덕수를 향해 또 다시 박수와 갈채를 보내주었다.
나는 알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지금 저 두 사람이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는지.
야구란 정말 근사한 스포츠다.
유니폼을 벗으면 정말 별 것 아닌 우리 같은 놈들이 수만 명을 기쁘게 하고, 또 그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야구는 우리들에게 인생이며, 또 꿈이다.
다만 한 가지.
예전에는 그걸 모르고 살았다는 것, 그게 조금 아쉬울 뿐이다.
“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