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6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63화(64/412)
#63. 팀내 포지션 경쟁
[운은 계획에서 비롯된다]1900년대 초반 세인트루이스에서 선수로 데뷔해 그 팀의 감독을 거쳐 결국 단장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웨슬리 브랜치 리키가 한 말이다.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중 하나로,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스프링캠프 개념, 마이너리그 팀들로 이루어진 팜 시스템을 고안한 게 바로 그다.
거기에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의 데뷔를 돕는 등 사실상 현재의 메이저리그를 완성시켰다 평가받는 인물이다.
어쨌든 그가 남긴 말의 요지는 이것이다.
계획을 짜 놓고 실행하다 보면 운이 따를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운이 따를 거라 믿고 대충 계획을 짜서는 안 된다는 것.
평생 철저한 계획 하에 움직이며 메이저리그의 기틀을 마련한, 만약 야구에 미치지만 않았다면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평을 받던 인물다운 생각이다.
브랜치 리키 정도는 아니지만 워리어스의 이대준 감독 역시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철저하게 계획을 짜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느슨한 모습.
그러니까 선수들에게 친근하게 대하고, 경기 중 자율권을 부여하고, 코치들에게도 최대한 많은 권한을 주는 것 역시 이대준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장덕수의 홈런으로 팔콘스와의 2차전을 잡아낸 이대준 감독은 그날 밤, 다음 경기 라인업을 작성하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조성오와 맥스 워커, 안치욱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의 좌타 라인.
특정 상황에서 지나치게 유연성이 떨어지는 타선의 약점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우타 거포가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새롭게 안경을 장착한 장덕수가 엄청난 홈런을 날렸다.
어쩌면 우연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대준 감독의 감은 장덕수의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거라 말하고 있었다.
라인업 용지에 장덕수의 이름을 적었다 지웠다, 다시 적었다 지웠다 수십 번 반복했다.
과연 장덕수의 타선을 올려도 될까? 그게 맞을까?
혹시 내가 지금 요행을 바라는 건 아닐까? 중심을 잡아줄 우타자가 너무 필요해서 나도 모르게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수십 차례 반문을 해봐도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이 팀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보스인 자신이니까.
결국 이대준 감독은 새벽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대전과의 3차전에 나설 선수들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작성한 라인업 용지 6번 타자 자리에는 포수 장덕수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 * *
서울 워리어스(원정) VS 대전 팔콘스(홈) 3차전
스코어 2 : 1
팔콘스 투수 라파엘 블랑코
4회초 – 서울 워리어스 공격
3번 타자 한수혁
1구 타격
좌익수 앞 안타
주자 1루까지 진루
└류한결이 아니라 라파엘이 에이스네
└뭐가?
└한수혁한테 홈런 안 맞고 단타로 막은 거 보니 에이스임
└ㅋㅋㅋ
4번 타자 조성오
1구 스트라이크
2구 스트라이크
└정신 차려라, 주장이라고 봐주는 거 없다
└적당히 해라. 요즘 우리 애들 중에 제일 잘 치는 게 한수혁하고 주장인데
└그래 봐야 삼진 먹으면 바로 욕할 거면서 ㅋㅋ
3구 타격 1루수 앞 땅볼
1루 주자 2루로 진출
타자 1루에서 아웃
원아웃 주자 2루
└좋아, 나쁘지 않아. 진루타도 괜찮지
└좋기는 미친 병신 새끼들아. 4번 타자가 안타를… (매니저에 의해 퇴장당했습니다)
└요즘 여기 관리 빡시게 하네. 욕하니까 바로 퇴장이네
└ㅇㅇ 욕하려면 갤러리로 꺼지라고 매니저가 대놓고 말했음
5번 타자 맥스 워커
1구 볼
2구 볼
3구 스트라이크
4구 스트라이크
└얘 요즘에 자꾸 스윙이 커지는 거 나만 느낌?
└아니, 맞음. 홈런 안 나와서 좀 초조한 듯
└주장한테 4번 뺏긴 것도 한몫하겠지
└홈런 필요 없으니까 적시타라도 하나 쳐봐라, 외노자야
5구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투아웃 주자 2루
└씹 ㅋㅋㅋ 진짜 어이가 없네
└ㄴㄴㄴ 방금은 대전 외노자 공이 좋았음
└인정. 서클체인지업 같은데 각이 미쳤네
└무사 주자 1루에서 2타자 연속 범타라… 하아…
6번 타자 장덕수
└얘 어제 홈런 하나 쳤다고 8번에서 바로 6번임? 이대준 미친 거임?
└장덕수 통산타율이… 0.225, 득점권 타율 0.241… ㅋㅋㅋ
└확실히 이대준이 괜찮긴 한데 이런 데서 초보 감독 티가 나긴 함
1구 타격
└좌익수 방면 2루타
└2루 주자 홈인
└타자 주자 2루까지
서울 워리어스 3 : 대전 팔콘스 1
└????
└방금 갓덕수 님 욕한 놈들 나와서 대가리 박아라
└누가 갓덕수를 욕함? 그런 머저리가 아직도 살아 있음?
└갓대준 감독님도 잊지 마라. 그분의 통찰력이시다
└와… 방금 거는 진짜 지렸다. 몸 쪽으로 완전히 붙은 공을 저렇게 때려내네?
└ㅋㅋㅋ 진짜 툭 맞은 거 같은데 원바운드로 펜스 맞히는…
└힘 하나는 진짜 제대로다
└우리도 드디어 중심타선에 우타자 하나 추가되는 거임?
└설레발 ㄴㄴ
* * *
“덕수 선배님, 나이스!”
“잘했어, 덕수야.”
직전 이닝 1타점 적시타를 치고 다시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나가는 장덕수 선배를 향해 동료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전날 경기장 앞에서 급하게 마련한 임시 안경을 쓰고 홈런을 쳐냈던 장덕수 선배는 오늘도 그 안경을 그대로 쓰고 경기에 임하는 중이다.
임시로 맞춘 안경이라 좀 불편한 거 같지만 그래도 타격에서 워낙 큰 효과를 본 터라 아주 만족하는 눈치다.
아무래도 시력에 맞춰 특수 고글을 마련하는 게 도움이 되겠지.
그보다 진짜 재미있는 건 이대준 감독의 과감한 선수기용이다.
아무리 장덕수 선배가 전날 홈런을 쳤다 해도, 그리고 렌즈를 빼고 안경을 끼게 됨으로써 포커싱 문제가 개선되었다고 해도.
전날까지 타율 0.236에 홈런 2개, 17타점이 전부인 타자를 6번에 과감하게 배치할 줄이야.
오늘 이대준 감독이 선택한 라인업은 이랬다.
1번 타자 2루수 이창모(우)
2번 타자 3루수 안치욱(좌)
3번 타자 유격수 한수혁(우)
4번 타자 1루수 조성오(좌)
5번 타자 우익스 맥스 워커(좌)
6번 타자 포수 장덕수(우)
7번 타자 중견수 최민석(우)
8번 타자 지명타자 강진석(우)
9번 타자 좌익수 김수학(우)
한때 내 바로 뒤 4, 5, 6번 타선에 좌타자 3명이 연속으로 들어서던 때가 있었다.
우릴 상대하는 팀에서는 투수 운영이 아주 편안했을 거다. 나를 상대한 후 곧바로 좌타자 전문 계투를 투입하면 되니까.
그런데 우타자이면서 장타력을 갖춘 장덕수 선배의 타순이 위로 올라오자 라인업이 훨씬 풍성해졌다.
일단 1번 타자는 여전히 이창모 선배다.
기동력은 전혀 없지만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출루율이 높은 이창모를 감독은 전형적인 1번 타자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창모 선배 바로 뒤 2번 타순에는 안치욱이 나선다.
대부분의 타구가 1, 2루 간으로 향하는 좌타자이기에 최소 진루타를 때려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물론 시즌이 계속되면 그쪽으로 수비 시프트가 걸릴 수도 있다는 게 문제지만…….
해결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안치욱이 그 시프트를 힘으로 깨버리거나, 혹은 1루에 나간 이창모 선배가 함부로 시프트를 걸지 못하도록 주루 플레이를 해주거나.
현재로서는 둘 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일단 넘어가자. 이대준 감독도 생각이 있겠지.
이어 3번에는 우타자인 내가, 4번에는 현재 팀에서 가장 방망이가 잘 맞고 있는 좌타자 조성오 선배가, 그리고 5번에 좌타자 맥스 워커, 다시 6번에는 우타자 장덕수…….
하위 타선에 줄줄이 우타자만 있는 게 마음에 걸릴 정도로 우타자 라인이 풍성해졌다.
음.
이렇게 되면 긴장해야 할 건 강진석 선배다.
타격 하나만 보고 쓰는 지명타자 자리인 만큼 쓸 만한 좌타자가 나오면 곧바로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
시즌 초만 해도 라인업을 채우기도 바빴던 우리 팀이 이제는 포지션을 놓고 경쟁을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
그래, 여기에 박재철 단장이 진행 중인 계획만 성공한다면.
그 녀석만 우리 팀으로 데려올 수 있다면.
정말 이번 시즌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을 거다.
* * *
–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스포츠 초대석입니다. 프로야구가 개막한 지도 벌써 한 달이 흘렀습니다. 오늘은 시즌 초반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새로운 얼굴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제 옆에는 오늘도 고동식 해설위원님 나와 계십니다.
– 안녕하세요, 고동식입니다.
– 위원님,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선수 개개인을 살펴보기에 앞서 팀 순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위 인천부터 최하위 대구까지, 시즌 초반 판도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 일단 다른 팀들은 대부분 시즌 전 예상과 비슷한 성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3위에 오른 서울 워리어스와 6위 대전 팔콘스의 선전이 눈에 띕니다.
– 어제 끝난 워리어스와 팔콘스 간의 3연전이 생각나네요. 1차전에서는 대전의 에이스 류한결을 워리어스 5선발 정태호가 잡아냈고, 2차전과 3차전에서는 장덕수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워리어스가 3연승을 달렸습니다.
– 네, 그 바람에 대전이 6위로 한 계단 내려앉기는 했지만 5위 창원 역시 최근 페이스가 별로 좋지 않거든요. 때문에 대전의 가을야구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좋습니다. 그럼 이제 시즌 초반 활약 중인 선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선수’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실 테니 맨 마지막으로 미루고, 다른 선수들부터 살펴보죠. 누구부터 살펴볼까요?
– 일단 워리어스의 4선발 천상진 선수와 5선발 정태호 선수를 주목해야 합니다.
– 저기… 위원님, 다른 팀 선수도 좀.
– 아차차, 죄송합니다. 대전의 주전포수 안철용 선수와 4번 타자 양승준 선수도 빼놓을 수 없겠죠?
– 감사합니다. 그럼 워리어스의 두 선발투수부터 살펴보죠.
– 일단 정태호 선수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대전 킬러, 그 한마디면 충분하겠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평범한 5선발급 성적을 보이고 있지만 대전 마운드에만 서면 에이스급이 되거든요. 어쩌면 올 시즌 팔콘스가 5위 자리를 노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 2승째를 거둔 천상진 선수는 어떤가요? 일각에서는 아직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다, 플루크다 이런 얘기도 있는데요.
– 그건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고요. 왜 그런 말이 나오냐 하면 이 선수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평범해서 그렇거든요. 체구도 평범하고, 구속도 평범, 변화구 각도 평범. 아, 얼굴이 정말 잘생겼습니다만 그건 야구 실력과는 상관없으니까요.
– 그런데요?
– 천상진 선수를 상대한 타자들을 만나봤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마치 자기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같다고. 승부를 가려고 하면 귀신같이 볼을 빼고, 진득하게 지켜보려고 하면 바로 승부가 들어오고.
– 그것 참 신기하군요. 덕아웃에서도 천상진 선수가 등판한 날에는 되도록 사인을 배터리에게 맡긴다고 하던데요. 그런 이유일까요?
– 네, 아직까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는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천상진이 정말 괜찮은 투수라는 겁니다. 워리어스가 좋은 선발을 하나 건졌습니다.
– 좋습니다. 다음으로 대전 선수들을 살펴보죠.
– 안철용 선수와 양승준 선수는 한마디로 그냥 잘합니다. 지난 시즌까지도 괜찮은 선수였지만 올해 타격 포텐이 확 터졌죠. 대전이 9년 만에 가을야구 진출의 꿈을 꾸게 된 데는 그 두 선수의 지분이 가장 큽니다.
– 끝인가요?
– 끝인데요?
–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워리어스의 한수혁 선수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실 말씀이 많으실 텐데요. 차근차근 부탁드리겠습니다.
– 드디어…….
– 네?
– 아닙니다. 일단 한수혁 선수의 성적부터 살펴보죠. 시즌 28경기 중 출장 정지로 빠진 4경기를 제외하면 24경기에 모두 선발 유격수로 출전했습니다. 매지션스와의 경기에서 투수로 잠깐 등판했는데 그건 일단 논외로 하고요.
– 아, 저도 기억납니다. 충격적인 1이닝 투구였죠?
– 네, 인간 같지도 않았죠. 아무튼 투수 쪽 이야기는 나중에 한수혁 선수가 정식으로 마운드에 서는 날 하기로 하고, 타격만 살펴보면 현재 성적이 타율 0.423, 출루율 0.525, 장타율이 무려 0.999, 거기에 홈런 18개에 41타점, 도루도 6개를 기록 중입니다.
– 솔직히 말하면 현실감이 없는 성적이네요.
– 그렇죠. 물론 최근 9개 구단의 견제가 심해지면서 홈런을 추가하는 속도가 줄어들고 있고, 어쩔 수 없이 나쁜 볼에 배트를 내밀다 보니 지표는 점점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엄청납니다.
– 음, 여기서 이런 질문 드리는 게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야구팬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한수혁 선수가 정말 시애틀에 입단했다면 어떤 성적을 거뒀을까입니다. 위원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 최소 신인왕, 최대 MVP.
– 네?
– 말 그대로입니다. 빅리그 콜업 시기라든지, 선수 기용 문제 같은 변수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최소 신인왕은 따 놓은 당상이고, 잘만 하면 MVP도 가능했을 겁니다.
– 위원님, 채팅창에 그건 너무 국뽕 아니냐는 지적이…….
– 천만에요. 국뽕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자는 겁니다. 당연히 빅리그로 바로 갔으면 지금보다 성적은 떨어졌겠죠. 그래 봐야 얼마나 떨어졌을까요? 0.423이던 타율에서 1할이 뚝 떨어졌다 쳐도 0.323입니다. 출루율이요? 그것도 1할 깎아보죠. 0.425이네요. 좋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떨어질 것 같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쳐보죠.
– 음.
– 홈런 개수요? 24경기 만에 18개를 쳤지만 딱 절반만 쳤다 해도 9개입니다. 메이저리그가 시즌당 162경기를 치르니 단순 계산하면 60홈런 페이스군요. 지금 절반만 쳐도 말이죠.
– 뭔가 설득력이 있긴 하네요.
– 설득력이요? 하, 지난번 대전 구장에 빅리그 스카우터들이 모두 모였었죠. 물론 류한결 선수를 보려고요. 그런데 그 경기가 끝난 후 스카우터들이 그러더군요. 한수혁 같은 선수가 도대체 왜 미국으로 안 오고 한국에 남은 거냐고.
– 저도 듣기는 했습니다.
– 자,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겁니다. WBC 대표팀 명단에 한수혁 선수의 이름을 올리는 걸 아직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분들에게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빠진 자리에 대체 누굴 넣으려고 그러는지 모르…….
– 방금 발언은 해설위원 개인의 의견이므로 저희 방송국의 편집 방향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서 스포츠 초대석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