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6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67화(68/412)
#67. 박재철의 진면목
많은 사람들이 워리어스 박재철 단장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같은 게 있다.
외부로 알려진 그의 이미지.
그러니까 메이저리거 출신으로 돈을 아주 많이 벌었고, 그렇기에 세상 아쉬울 게 별로 없고, 감독이나 코치 경험 없이 곧바로 단장 자리에 올랐고, 마이크만 보면 미쳐 날뛴다는 그런 편견.
음, 말해놓고 보니 마지막은 편견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면모 뒤에 숨겨진 그의 진가 중 하나는 바로 그가 한때 전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전국구급 스타였다는 것과, 특히 고향인 대전에서만큼은 대통령 부럽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똑똑
“대표님, 저 왔습니다.”
홈 경기 직관 차 대전에 머물고 있던 팔콘스의 구단주.
그를 만나기 위해 대전으로 출발했던 박재철이 돌아왔다.
어떤 결과를 가져온 것인지, 평소답지 않게 비장한 표정을 한 박재철 단장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 단장을 본 박성훈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어서 오세요, 단장님. 어제 하루는 잘 쉬셨고요?”
“휴우, 네,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오니 만나야 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 이거 쉬기는커녕 더 바빴던 것 같네요. 아, 제가 이걸 잊을 뻔했군요. 한번 드셔보시죠. 요즘 대전에서 아주 유명한 빵집이라고 해서 들러봤는데 어찌나 줄이 길던지, 정말 상상 이상이더군요. 아, 글쎄 빵집 하나 때문에 그 주변에 교통이 통제되더니 급기야 인근 도로가 차 없는 거리가 됐다지 뭡니까? 자,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여기 세 가지 맛이 있는데 말이죠. 첫 번째 이 빵부터 설명을 드리자면…….”
“하하, 단장님. 빵이 다 빵이죠, 뭐. 기왕 사 오신 거 점심 때 맛있게 먹겠습니다. 일부러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그래도 빵을 먹으려면 제빵사의 의도와 철학을 먼저 이해해야…….”
“아뇨, 그보다는 저희가 나누기로 한 이야기가 더 급해서요. 빵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듣겠습니다.”
조금씩 이 말 많은 단장을 상대하는 법을 깨우쳐가고 있는 박성훈이 능숙한 말솜씨로 본론을 유도해냈다.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한 번 쩝 다신 박재철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 그럼 그래야겠군요. 아, 제가 없는 동안 매지션스에 2연승을 거두었더군요.”
“짜릿했죠. 음, 매지션스 구단주가 진노해서 직접 사장 조인트를 깠다는 말도 들리던데요.”
“그런가요? 그 양반이 성격이 좀 급하기는 해도 나름 점잔을 떠는 분인데…….”
단장의 말에 박성훈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가끔은 이 말 많은 단장이 한때 대한민국 전국민의 사랑을 받던 최고의 스타였다는 것, 그렇기에 각 구단의 구단주와 직접 친분을 쌓을 정도의 거물이라는 걸 자꾸 망각하게 된다.
‘입 때문에 평판을 깎아 먹는 타입이랄까…….’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을 얼른 주워 담으며 박성훈이 다음 말을 이었다.
“본론으로 넘어 가죠. 팔콘스 구단주님은… 뭐라 하시던가요?”
“자기 구단으로 오라던데요?”
“네?”
“하하, 걱정 마세요. 워리어스 우승시키기 전에는 저도 움직일 생각 없습니다. 그리고 팔콘스에서 제안한 건 단장이 아니라 감독이었고요.”
박성훈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 그래도 대전의 레전드인 박재철에 대한 팔콘스의 러브콜은 예전부터 계속되어 왔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구단주가 직접 러브콜을 보낼 줄은 몰랐다.
다행인 것은 현재 팔콘스의 단장이 구단주의 심복 중 하나라는 점이다. 자신이 직접 임명한 심복을 아무 명분 없이 자른다는 건 의리를 중요시하는 그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 속으로 팔콘스 단장의 만수무강을 빈 박성훈이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서형주 선수에 대해서는 얘기를 꺼내보셨나요?”
“네, 물론이죠.”
묻고 싶은 건 바로 이거였다.
얼마 전 박재철과 오랜 시간 상의한 결론은 이랬다.
절대 정상적인 루트로는 서형주를 데려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폐급 취급을 받고 있다 해도 1라운드 신인을 1년도 지나지 않아 푸는 건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들을 수 있는 데다가, 구단주가 직접 임명한 이번 사장과 단장이 제법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도 그런 판단에 한 몫을 했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구단주를 직접 설득하는 방법.
아니, 구단주를 앉혀 놓고 트레이드 흥정을 할 수는 없으니, 적당한 말로 그를 유혹해 그의 입에서 먼저 서형주를 내놓겠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것.
그런 임무에 세상 그 누구보다 적합한 사람.
특명을 받은 박재철 단장은 대전으로 내려갔고, 결국 팔콘스의 구단주와 독대를 하는 데 성공했다.
과연 거기서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지 박성훈은 그것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분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음, 이상하게도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은 긴 얘기를 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시더군요. 말을 줄이고 줄여서 핵심만 뽑아내느라 그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과연 그렇겠군요.”
긴 이야기를 싫어하는 게 단지 높은 사람들뿐만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네, 그분은 정말로 올해 팔콘스가 5위에 드는 걸 세상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려는 모양입니다. 1라운더 신인을 내보내는 데 대한 부담감, 그 선수에게 내준 계약금 5억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시더군요.”
단장의 말에 박성훈의 안색이 밝아졌다.
얼마 전 한수혁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수혁아, 그런데 출혈을 감수하고 서형주를 데려온다 치고, 그 녀석 얼마나 해줄까?’
‘타석에서 기대치는 이창모 선배의 전성기 수준? 중견수로서 수비는 최민석 선배 이상.’
‘진짜?’
‘어쩌면 그 이상으로 성장할지도? 물론 나보다는 못하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야구에 대해서는 한수혁의 판단을 철석같이 신봉하는 게 바로 박성훈이다.
그 녀석이 정말 그 정도로 성장할 수 있다면 워리어스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과연 그 대가로 뭘 내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지난 시즌 8위였지만 올해 5할에 가까운 승률을 유지하며 9년 만에 가을야구를 꿈꾸고 있는 팔콘스.
그런 팔콘스가 5억이나 되는 계약금을 주고 야심차게 영입한 1라운더 신인 서형주.
어떤 카드를 내밀어야 대전에서 고개를 끄덕여줄까?
고민하는 박성훈에게 한수혁이 작은 팁 하나를 주었다.
‘일단 정태호 선배를 질러보자고.’
‘정태호?’
그 순간 박성훈 역시 뭔가를 깨달았다.
올 시즌 1승 4패, 평균 자책점 4.7를 기록 중인 워리어스의 5선발 정태호.
시즌 초에는 주로 4선발로 나서다가 천상진이 등장하며 5선발로 밀려난, 하지만 유독 팔콘스를 상대로는 에이스급 활약을 보여주는 선발투수.
정태호가 팔콘스를 상대로 강한 건 정확히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그는 팔콘스에 강한 게 아니다. 그저 대전 마운드에 서면 강해지는 것뿐이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가 대전 출신이라는 것과 가족, 친구들이 모두 그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팔콘스의 오랜 팬이라는 점 등등.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올해 무조건 가을야구 진출을 선포한 대전으로서는 그를 데려감으로써 자신들의 천적 하나를 치울 수 있고, 홈 경기 위주로만 등판시킬 경우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반면 워리어스 입장에서도 그를 내주고 서형주를 받아온다면 큰 타격이 없다. 대전에 유독 강하다는 걸 제외하면 그보다 더 잘 던질 5선발 후보는 제법 많으니까.
뭔가 여기저기 허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얼핏 듣기에는 굉장히 달콤한 미끼다.
‘그런데 어떻게… 정태호랑 서형주랑 바꾸자고 하면 과연 그러자고 할까? 새로 임명된 팔콘스 단장, 예전 호구 단장들하고는 좀 다르다던데…….’
‘당연히 거절하겠지. 나같아도 그럴 거니까.’
‘그럼 어떻게……?’
‘박재철 단장 보내 봐. 단장, 사장, 다 건너뛰고 구단주를 만나보라고 해.’
‘오… 그런 방법이?’
‘뱀의 혓바닥을 제대로 써먹어 보자고.’
그렇게 해서 박재철은 팔콘스의 구단주를 만났고 지금 긍정적인 답변을 들고 돌아왔다.
구단주와의 식사 자리에서 박재철은 결코 서형주에 대한 이야기를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저 근 10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고향팀에 정태호 같은 투수가 영입된다면 얼마나 큰 시너지를 낼 것인지, 그리고 그 투수가 대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런 정보들을 하나둘 흘렸다.
그냥 그렇게 된 거다. 식사 내내 그 이야기를 들은 팔콘스 구단주의 귀가 팔랑거렸고, 그의 입에서 혹시 정태호를 데려오려면 누구를 주면 되겠냐는 말에 박재철은 이렇게 답했을 뿐이다.
‘아… 워리어스 입장에서도 정태호를 내주는 건 엄청난 타격인지라… 타선도 이미 완성된 상태고, 그래도 굳이 뽑자면 대수비 요원으로 활용 가능한 신인 서형주 정도면 적당할 수도 있겠군요, 회장님.’
‘서형주? 그 모자란 놈?’
거기서 게임은 끝났다.
구단주는 자신의 비서를 통해 팔콘스에 트레이드 지시를 내린다 했고, 박재철은 만족스러운 식사였다고 감사하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하, 이제 곧 대전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물론 서형주-정태호 일 대 일 트레이드는 불가능하겠죠. 거기에 이것저것 좀 얹어줘야겠지만…….”
“잘하셨습니다, 단장님. 잘했어요.”
“어쨌든 서형주는 제가 데려옵니다. 마지막 협상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박성훈은 하마터면 이 사랑스러운 단장을 힘껏 안아줄 뻔했다.
* * *
“스윙! 아웃!”
“…….”
워리어스와 매지션스의 3연전이 진행 중인 잠실야구장.
어제까지 워리어스가 2연승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3차전의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이만식이 상대팀 리드오프 양선우를 삼진으로 잡아낸 후 마운드를 내려왔다.
“와아아!”
“만식이 성! 살아 있네!”
“이만식! 이만식!”
본래 부산 출신인 이만식에게는 아직도 자신을 따라다니며 사투리로 응원을 해주는 몇 안 되는 고향 팬들이 남아 있다.
그런 이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이만식이 벤치에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어? 어, 그래. 고맙다. 수혁아.”
음료수를 내미는 한수혁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방금 전 자신이 삼진으로 잡은 매지션스의 리드오프 양선우.
엄청나게 다혈질이고 말이 많은 놈이다. 좀만 기분이 상해도 선배를 향해 삿대질까지 서슴지 않는 시한폭탄 같은 놈이다.
쉽게 말하자면 워리어스에서 매지션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정기호, 그놈의 강화판이라고 해야 할까?
네 살이나 어린 놈에게 몇 번이고 망신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
실력적으로도, 그리고 기세적으로도 이만식, 아니, 워리어스는 양선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랬던 놈이 방금 삼진을 먹고도 찍 소리 못 하고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걸 보니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기가 질린 거다. 한수혁을 중심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는 워리어스라는 팀 앞에서 말이다.
“수혁아.”
“네, 만식이 형님.”
“우리 팀에 와줘서 고맙다.”
“네?”
“진짜로.”
“……?”
이런 속마음을 수혁이 저놈은 알까?
아니, 굳이 알 필요 없겠지. 그 창피했던 과거의 기억 같은 건 자신 같은 노장들이 다 싸 안고 가는 게 맞겠지.
이제 막 워리어스의 새 시대를 열려는 저 파릇파릇한 후배들에게는 좋은 것들만 물려주고 싶다.
따아악!
그 순간 선두 타자로 나섰던 4번 조성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유일한 선배인 그가 상대 투수의 초구를 담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순간 이만식이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
“아니, 그냥 그렇다고…….”
6회초 워리어스의 공격, 스코어는 1 대 0, 이만식은 다른 동료들을 신경 쓰느라 아직 자신이 매지션스 타자 중 누구에게도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