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6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68화(69/412)
#68. 대기록의 냄새
워리어스에게 2연패를 당하고, 진노한 구단주에게 사장과 단장이 줄줄이 끌려가 조인트를 까이고, 그 여파로 선수단 전체에 암울한 기운이 감도는 매지션스 선수들은 지금 반쯤 넋이 나간 채 시합을 뛰는 중이었다.
원래 흐름대로라면 우리가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경기.
하지만 운이 없게도 오늘은 매지션스 선발 히메네스가 제대로 긁히는 날이었다.
침울해진 팀 분위기 속에서도 히메네스는 꿋꿋이 자신의 공을 던졌고 결국 6회말까지 우리는 조성오 선배의 홈런 외에 단 한 점도 내지 못한 채 1 대 0, 아슬아슬한 리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7회초 워리어스의 공격.
7번 지명타자로 나선 강진석 선배가 매지션스 선발 히메네스를 상대로 깨끗한 좌전 안타를 터뜨리며 마침내 무사 1루 상황이 만들어졌다.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표현이 거의 없는 그가 1루 베이스 위에서 포효했다.
현 시점에서 주전 야수 중 가장 입지가 불안한 게 아마 저 강진석 선배일 것이다.
가끔 좌익수로 출전하기는 하지만 차마 프로 레벨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의 수비 실력.
그렇다면 공격력이라도 압도적이어야 하는데 현재 2할 5푼 내외의 타율에 홈런은 겨우 2개뿐.
냉정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한 팀의 지명타자로 나서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성적이다. 어쩌면 그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주전이 아닌 오른손 대타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쳐낸 안타는 그의 생명 연장에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어렵게 만들어진 무사 1루 찬스, 워리어스 응원단 쪽에서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치어리더들이 일제히 입을 맞춰 강진석의 이름을 외쳤다.
“강진석! 강진석! 사랑해요! 강진석!”
“…우와, 강진석 선배 좋겠다. 나도 안타 치고 나가면 사랑한다고 말해주려나?”
“병살타를 치면 죽여버린다고는 해줄걸?”
“왜 그런 살벌한 소리를…….”
“똑바로 하란 얘기야.”
이상한 소리를 하려는 안치욱을 가볍게 눌러준 후 다시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중요한 건 이놈의 헛된 망상 같은 게 아니다.
7회초 한 점 차 리드 상황, 거기에 노아웃에 주자가 나갔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 이대준 감독의 선택은 보내기 번트였다.
“스트라이크!”
번트 사인을 받은 김수학 선배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배트를 내밀었다가 거둬들였다.
아마도 볼이라고 판단한 모양인데 주심의 선택은 스트라이크였다.
저 선배도 요즘 표정이 별로 안 좋다. 시즌 초에 비하면 더더욱.
지난 해까지만 해도 김수학 선배는 워리어스 부동의 좌익수였다.
타력과 주력, 수비력을 A부터 E, 다섯 등급으로 분류한다면 그는 아마도 CCC, 혹은 DDD로 평가할 수 있는 선수일 것이다.
모든 면에서 무난한, 그래서 장점도 단점도 찾기 힘든 그런 타자.
하지만 워리어스 야수진이 점점 업그레이드되면서 그가 가진 평범함이 단점이 되고 있다.
“김수학 파이팅!”
“파이팅!”
현재 워리어스의 외야진은 김수학, 최민석, 맥스 워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용병이면서 타점도 잘 먹는, 거기에 어깨까지 좋은 맥스 워커는 부상이 없는 한 붙박이 우익수다.
중견수인 최민석 선배는 팀 내에서 1, 2위를 다투는 빠른 주력과 수비 센스를 갖췄고, 타석에서는 가끔 나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창조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문제는 김수학 선배가 맡고 있는 좌익수다.
수비 부담이 적은 대신 공격에서 팀에 공헌해야 하는 포지션인데 솔직한 말로 그의 공격력은 현재 주전 야수들 중에서도 최하위권이다.
만약 박재철 단장이 추진 중인 서형주 영입이 성공하게 되면 가장 먼저 주전 자리를 위협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툭
“아웃!”
그 사이 김수학 선배가 3루 쪽 보내기 번트를 무사히 성공시키고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안 그래도 생각이 많아진 건지 고작 보내기 번트 성공에도 얼굴색이 왔다 갔다 한다.
모르겠다.
우리 팀의 모든 선수들이 행복해지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적을 내야 하고, 그러려면 더 좋은 선수들이 주전을 차지해야 한다.
나는 선수로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지만 구단주로서는 초보일 뿐이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 같은 건 알지 못한다.
“워리어스의 최강 9번 타자~ 최! 민! 석!”
“와아아!”
잠실 라이벌전을 치를 때 좋은 점 중 하나가 우리가 원정팀일 때도 응원 앰프를 쓸 수 있다는 거다.
예전에는 그 문제를 놓고 몇 차례 찬반논의가 있었나 본데 어쨌든 지금은 우리가 홈인지 원정인지 구분이 안 되는 환경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
솔직히 내 개인적으로는 정신 사나울 때가 종종 있지만 다른 선수들이 좋다는 데야 뭐.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힘찬 응원과 함께 최민석 선배가 타석에 들어섰다.
저 선배의 최대 장점은 빠른 발이나 수비력 같은 게 아니다.
기세를 탈 줄 안다는 거다.
팀이 잘 나갈 때 평소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최민석이라는 선수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반대로 팀의 기세가 꺾였을 때는 함께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게 단점이지만.
음.
뭐, 그건 그때 일이고.
“최민석! 최민석! 최민석!”
벌써 두 번째 맞상대하게 된 매지션스의 히메네스라는 놈은 꽤 좋은 투수임에 분명하다.
그런 투수를 상대로 1사 2루 상황을 만드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오늘 나를 거의 없는 선수처럼 피해 다니는 놈을 잡으려면 바로 이럴 때 꼭 점수를 내야 한다.
“볼!”
“스트라이크!”
“볼!”
따악!
“파울!”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최민석 선배가 끈질기게 히메네스를 물고 늘어졌다.
안치욱이 2번으로 올라가며 갑자기 9번 타순을 맡게 되었지만 그는 타순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좋은 선수다. 실력이나 멘탈이나 모든 면에서.
따아악!
“오오!”
히메네스가 던진 바깥쪽 투심을 최민석 선배가 제대로 받아쳤다.
모두가 적시타라 생각했다.
하지만 매지션스의 기둥 중 하나인 중견수 양선우가 그 타구를 기어코 쫓아가 슬라이딩하며 잡아냈다.
“아악!”
“그걸 왜!”
허둥지둥 2루로 돌아간 강진석 선배가 태그업을 하며 1사 주자 2루가 2사 3루로 바뀌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아직 기회는 살아 있다. 단타 하나만 쳐도 무조건 점수를 낼 수 있는 상황.
타석에 들어선 건 워리어스의 리드오프 이창모였다.
* * *
“타자, 타석으로.”
잠시 생각도 할 겸 배터박스에서 물러나 있던 이창모에게 심판의 지시가 떨어졌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이창모가 배터박스에 들어서 타격 준비를 시작했다.
1 대 0 한 점 차 아슬아슬한 리드, 2사 주자 3루, 거기에 투수는 상대팀의 에이스.
여러 모로 안타 하나가 절실한 상황이다.
“볼.”
히메네스의 슬라이더가 들어왔지만 잘 참아냈다. 우타자를 현혹시키기에 최적화된 공이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공이 잘 보인다.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존 중앙으로 오다가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이다. 한 번 쳐볼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공을 쳤을 때 땅볼이 될 확률을 떠올리며 간신히 참았다.
“볼.”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날아오다 휙 꺾어지는 투심. 다행히 구종을 어느 정도 예측했기에 코스만 보고도 골라낼 수 있었다.
상대 투수의 안색이 조금 안 좋아졌다. 그건 곧 자신이 타석에서 잘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창모 파이팅!”
“파이팅!”
덕아웃에서 이만식 선배가 선창을 하자 후배들이 뒤따라 자신의 이름을 연호한다.
자신이 현재 노히트노런을 진행 중이란 것도 모른 채 팀의 승리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선배. 그를 향해 고개를 슬쩍 숙여 보인 이창모가 다시 투수를 노려보았다.
느낌상 여기가 승부처다.
다음 타자인 안치욱의 최근 페이스가 상당히 좋기에 굳이 자신을 거르기보다는 승부를 걸어올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노린다.
슈웅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투심. 방금 전과 비슷하지만 보다 존으로 붙어 들어오는 공이었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그립의 위치를 낮게 조정하고, 어깨에 힘을 뺀 상태에서 가볍게 투욱.
따악!
이창모가 가볍게 밀어 친 타구가 매지션스 1루수 고철환의 키를 넘어 우익수 앞에 뚝 떨어졌다.
3루 주자를 불러들이며 2 대 0을 만드는 멋진 적시타였다.
“와아아아!”
“나이스!”
“이창모! 최고다!”
“이창모! 이창모! 이창모!”
빅리그에서 잠깐 뛰던 시절 타격코치는 이렇게 바깥쪽 공을 습관처럼 밀어 치는 이창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뭐라더라, 그런 타구는 병살타를 양산할 수 있으니 바깥쪽 공도 강한 타구로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지, 아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곳은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다. 투수의 구위도 빅리그보다는 못하고, 야수들의 수비 범위도 훨씬 좁다.
가볍게 밀어쳐서 내야수의 키를 넘길 수 있다면 굳이 그걸 마다할 이유는 없다.
“좋아, 멋진 플레이였어.”
“감사합니다.”
1루 주루코치에게 보호대를 넘기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예전 주력이 살아 있었다면, 그랬다면 여기서 멋지게 2루를 훔쳐 보였을 텐데.
하지만 한번 망가져버린 무릎이 이제 와서 다시 돌아올 리는 없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창모는 하루라도 빨리 자신이 1번 자리에서 밀려나길 바라고 있다.
뛰고 싶어도 부상 때문에 뛸 수 없는 자기 같은 가짜 리드오프 대신 팀을 위해 더 좋은 리드오프가 자리잡기를.
그래서 자신은 하위 타선에서 편하게 타격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 * *
가끔 다른 선수의 플레이를 보며 영감을 받을 때가 있다.
방금 전 이창모 선배가 때린 안타가 그랬다.
대기 타석에서 그가 어떤 식으로 타격을 하는지 똑똑이 보았다.
바깥쪽 투심을 밀어쳐 1루수 키를 넘기는 그 타격법은 상대 투수의 구위와 야수들의 수비 범위 등을 고려한, 그야말로 지금 상황에 최적화되었다 할 수 있는 그런 공략법이었다.
좋은 선수다. 확실히 이 팀에서 타격 기술 하나만큼은 상위 레벨에 속하는 타자다.
다만 1루에 나가도 상대 팀을 괴롭힐 수 없는 리드오프라는 건 본인에게나 팀에게나 상당한 마이너스 요소다.
매지션스의 양선우처럼 한 시즌 30개 이상의 도루를 하는 선수가 루상에 나가면 상대하는 팀의 수비 전체가 흔들거리게 마련이니까.
어쨌든 이창모 선배의 적시타로 스코어는 2 대 0으로 한점 더 벌어졌다.
다음 타석에 들어선 안치욱 놈은 분노한 히메네스의 3연속 체인지업에 속절없이 삼진을 당해버렸다.
“…….”
“바보냐? 그걸 당하게.”
“…젠장.”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히메네스의 투심과 체인지업은 빅리그에서도 먹힐 만한 수준이다. 그걸 받쳐줄 다른 부분들이 조금씩 부족해서 그렇지.
아무튼 그렇게 내 앞에서 공격이 끊어지고 다시 우리가 수비를 할 차례다.
“자자, 파이팅!”
“파이팅!”
덕아웃을 나서던 이만식 선배가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쳤다.
가끔은 그가 선배라기보다는 삼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회귀 전 그보다도 더 나이를 먹어 봤음에도 말이다.
어쩌면 이건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한국 프로야구가 가진 유일한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선배는 후배를 아끼고, 후배는 선배를 믿고 따르는 뭐 그런.
흠.
말해 놓고 보니 뭔가 오글거리기도 하고.
어느새 양키들이 득실거리는 빅리그보다는 KBO에 익숙해진 그런 느낌이다.
자, 그건 그렇고…….
7회초가 끝난 가운데 스코어는 2 대 0, 현재까지 이만식 선배의 기록은 볼넷 하나에 삼진 3개, 나머지는 모두 범타.
매지션스 타자들 기가 완전히 꺾여서 그런지 투구 수는 고작 62개.
냄새가 난다. 냄새가.
대기록의 냄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