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7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72화(73/412)
#72. 결단
이만식 선배의 생애 첫 노히트노런, 그리고 잠실 라이벌 매지션스를 상대로 한 스윕.
그 경기가 3연전 마지막 경기였기에 불문율을 깨는 행위를 했던 매지션스에 제대로 된 경고를 날리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건 다음에 만났을 때 생각해볼 일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기분대로 행동하지 않은 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만식이라는 선수의 야구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노히트노런이 될지도 모를 경기를 감정 싸움 때문에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쨌든 여러모로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 채 우리는 다시 타이탄스와의 3연전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왔다.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타이탄스의 전력, 그리고 기세를 타기 시작한 우리 팀의 분위기.
모든 사람들이 워리어스의 우세를 예상했다.
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기쁨 뒤에는 불행이, 그리고 성공 뒤에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과의 1차전 시작부터 뭔가 삐걱거렸다.
대전 마운드가 아니면 그저 평범한 5선발에 불과한 정태호 선배가 1회말 투런 홈런 두 방으로 순식간에 4점을 내줘버렸다.
반면 우리 팀은 1회 만루, 2회 1, 2루 찬스에서 적시타가 쳐지지 않으며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기세를 탄다는 게 이렇게 힘들다. 연승을 이어간다는 게 이렇게나 힘든 거다.
순식간에 가라앉은 팀 분위기, 그 가운데 3회초 선두타자로 나서게 되었다.
넉 점 차이, 지금 필요한 건 큰 것 한 방이 아니라 루상에 주자를 쌓는 것이다.
평소보다 조금 신중히 볼을 골라냈다.
“볼.”
“볼.”
“볼.”
“볼.”
“흠…….”
“어라? 투수한테 한가운데 달라고 했는데… 수혁아, 이 형 믿지?”
“아뇨. 안 믿는데요.”
“흐흐.”
언제 봐도 능글맞은 포수 구재현의 능청을 들으며 볼넷으로 1루로 진출했다.
재미있는 사람이다. 수원의 포수 정대한과 뭔가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결이 다르다.
둘 다 친화력이 좋은 건 마찬가지인데, 뭐랄까, 이쪽이 좀 더 술주정뱅이 아저씨 같은 느낌이랄까.
예전에는 이렇게 주자로 나가도 뭔가 뒤끝이 찝찝했다.
내 뒤타자들에 대한 신뢰도가 거의 제로에 수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최근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조성오 선배가 바로 뒤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 초반 2할 중반대에 머물던 타율이 어느새 3할대까지 오르더니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모른다.
매일은 아니지만 제이콥이 짜준 프로그램에 따라 경기 후 추가 훈련까지 착실히 따르고 있는 그는 3할에 20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타자가 되었다.
따악!
그런 조성오 선배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우익수 앞에 뚝 떨어지는 깨끗한 안타.
타격음과 함께 곧바로 달리기 시작한 나는 무난하게 3루에 도착했고, 그렇게 무사 주자 1, 3루 상황이 만들어졌다.
4 대 0 점수 차를 좁힐 수 있는 찬스가 만들어진 가운데 타석에는 우리 팀 용병 타자 맥스 워커가 들어섰다.
“플레이!”
시즌 초만 해도 꽤나 유쾌하던 친구다.
스프링캠프에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타격폼을 따라하기도 했고, 가끔은 안치욱하고 어울려 같이 스테이크를 먹으러 다니기도 했지.
그러던 친구가 요즘은 심기가 좀 복잡한 모양이다.
말수가 엄청나게 줄은 데다가 가끔 가족하고 통화를 하고 난 후에는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는 걸 몇 번 보았다.
“스트라이크!”
“볼!”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원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되어버렸다. 오늘 타이탄스의 선발투수는 아무래도 빠른 승부를 가져가려는 모양이다.
망설임 없는 표정을 한 타이탄스 투수가 맥스를 향해 힘차게 공을 뿌렸다.
따아악!
몸 쪽으로 파고 드는 투심을 맥스가 받아쳤다.
우익수 쪽으로 뻗어가는 타구, 하지만 담장을 넘기기에는 힘이 조금 부족해 보였다.
“아웃!”
우익수가 공을 잡자마자 정석대로 태그업을 해 홈으로 들어왔다.
깔끔한 1타점 희생플라이.
비록 다른 팀 용병 타자들처럼 큰 거를 뻥뻥 때려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찬스 때마다 차곡차곡 타점을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맥스는 꽤 괜찮은 타자다.
정작 본인은 그걸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홈플레이트를 밟아 1점을 낸 후 덕아웃에 먼저 들어가 있던 맥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봐, 맥스. 타점도 먹어 놓고 왜 그렇게 울상이야?”
“오, 친구. 별 것 아니야. 그냥 좀 우울해서.”
“우울하다고? 뭐가?”
“아무래도 부모님의 병이 조금 심각한 것 같아. 병원비가 아주 많이 들 것 같군.”
“흠.”
이건 조금 의외인데. 어쨌든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구단주라 해도 자선사업가는 아니니까.
조금 안타깝기는 하지만 내가 세상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다.
그리고 50만 달러라는 그의 연봉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니다. 특히 그의 고향인 베네수엘라의 경제 사정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것뿐이야?”
“음, 그런 것도 있고… 뭐랄까, 내년에는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
“왜 그런 생각이 들지?”
“글쎄, 저기 타이탄스의 저 근육맨을 보라고. 벌써 홈런이 9개야. 매지션스의 그 대머리 놈도 펀치력이 대단하지. 그에 비하면 난…….”
“흠.”
아마도 이게 핵심일 것이다. 당장 돈 들어갈 일은 쌓였는데 내년 재계약이 불투명하다는 것.
용병 교체라… 글쎄, 그럴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겠지.
팔뚝 근육이 꽤나 인상적인 저 타이탄스 용병처럼 장타를 펑펑 쳐준다면 좋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저놈이 부러운 건 절대 아니다.
아무리 내가 예전 삶에서 한국야구에 관심 없어도 저놈 이름만큼은 기억한다.
자기 팀 팬들과 말싸움을 벌이다가 관중석으로 배트를 집어 던진 놈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아직은 그 일이 터지기 전인가 보지? 어쩌면 이번에는 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저런 놈은 거저 줘도 사양이다. 다른 건 몰라도 팬을 존중할 줄 모르는 선수는 우리 팀에 필요 없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맥스 워커의 인성적인 부분은 100점 만점에 100점에 가깝다.
조금만 방망이가 더 올라오면 정말 좋을 텐데.
“맥스.”
“응?”
언제 팀을 떠날지 모를 용병 타자를 안치욱처럼 질질 끌고 다니며 훈련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
몇 가지 조언,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의 전부다.
“굳이 장타를 의식하지 마. 이 팀에는 너 말고도 큰 걸 쳐줄 수 있는 타자들이 있잖아. 그보다는 차라리 타율을 좀 더 올리는 게, 음… 맞아. 그게 재계약에 더 유리할 거 같은데?”
“그래?”
물론 정답 같은 건 없다.
당장은 나와 조성오 선배, 그리고 장덕수 선배의 장타가 터지며 팀 타선의 밸런스가 유지되고 있지만, 만에 하나 그런 기조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맥스 대신 장타력을 갖춘 용병으로 교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저 지금 당장은 그런 식으로 일이 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맞아. 그러니 너무 장타 의식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거부터 하라고.”
“흠, 그런가.”
내 말에 맥스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용병에 대한 문제는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자. 아직 교체를 고민할 타이밍은 아닌 것 같으니까.
아무튼 그날 경기에서 우리는 6 대 8로 패했다.
맥스 워커가 희생 플라이로 2타점을 올리고 안타도 하나 쳤고, 뒤늦게 내가 솔로 홈런을 하나 보태기는 했지만 1회 4실점을 따라잡는 건 역부족이었다.
오늘도 5이닝을 채 버티지 못하고 강판당한 정태호 선배가 창백한 얼굴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대전이 편해… 역시 나는 대전에서만 던져야…….”
그냥 못 들은 척해 주었다. 뭐, 생각이야 본인 자유고, 지금은 멘탈이 단단히 무너진 모양이니까.
[워리어스 패배의 원인은 화력 부족, 타선의 집중력을 보강해야] [두 번의 1, 3루 찬스에서 모두 희생플라이에 그친 워리어스 용병, 자격 논란?] [대전 구장 평균자책점 1점대, 타 구장에서는 5점대, 정태호의 문제는 무엇인가?]그날 경기가 끝난 후에는 언론에서 맥스와 정태호 선배를 공격했다.
두 번의 1, 3루 찬스에서 모두 희생플라이로 물러났다고 하면 상당히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반대로 두 번의 1, 3루 찬스에서 모두 희생플라이로 타점을 올렸다고 하면 또 전혀 다르게 들린다.
별 의미는 없다. 기자는 그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통역을 통해 그 기사를 검색해본 맥스의 표정은 더욱 우울해졌다.
[워리어스, 부산 타이탄스에 충격의 2연패] [매지션스에 노히트노런 승리 후 힘 다한 워리어스, 부산에 무릎 꿇다]그리고 다음 날, 타이탄스와의 2차전에서 우리는 또 패배했다.
내가 안타 2개를 기록하며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나머지 타자들이 상대 용병 투수의 구위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2연패다.
그새 매지션스가 반 게임 차로 쫒아오며 3위 자리를 위협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워리어스 중견수 최민석, 경기 중 발목 부상… 최소 2주 이상 결장?] [외야 백업 부족한 워리어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8회말 수비에서 주전 외야수 최민석 선배가 발목을 다쳐버렸다.
운이 없었다. 경기 전에 비가 조금 온 탓에 잔디가 미끄러웠고, 멀리 뻗어가는 타구를 잡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하다가 그렇게 되어버린 거다.
주전 선수의 부상, 그리고 부재는 언젠가 한 번은 터질 문제이기는 했다. 우리 코칭스태프들도 나름 대안을 갖고 있었고 말이다.
최민석 선배를 제외한 새로운 라인업이 짜여졌다.
다음 날 치러진 타이탄스와의 3차전.
그동안 지명타자로 뛰던 강진석 선배가 좌익수로 들어가고, 대신 좌익수이던 김수학 선배가 중견수로 들어가 친구의 빈자리를 메웠다.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다. 아니,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워리어스에게 또 하나의 시험과제를 던졌다.
[워리어스, 부산에 3연패… 중견수 최민석에 이어 2루수 이창모도 부상] [고질적인 무릎 부상 재발? 워리어스 측 “자세한 건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주전 중견수에 이어 2루수까지 잃은 워리어스, 대책은 있는가?] [매지션스에 3위 내주고 4위로 내려앉은 워리어스]일시적으로 3위 자리를 빼앗긴 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매지션스 역시 최근 페이스가 좋지 않기에 팀 전력만 추스르면 언제든 탈환이 가능하니까.
진짜 문제는 또다른 주전 타자의 부상이었다.
최민석 선배에 이어 이번에는 이창모 선배의 무릎에 이상이 발생했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명단에서 내리지 않고 일주일 정도 휴식과 치료를 병행하면 회복이 가능한 수준. 하지만 부상은 부상이다.
그렇게 우리는 주전 중견수와 2루수를 잃었고, 타격에서는 1번 타자와 9번 타자가 사라지게 되었다.
워리어스 선수단이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나는 미뤄두었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형, 바로 도장 찍어서 팔콘스로 보내야겠다. 지명권 아낄 때가 아니네.”
“알았어, 박재철 단장에게 바로 도장 찍으라고 지시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