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7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77화(78/412)
#77. NEW 워리어스
그로부터 2주 후.
“자, 오늘은 상진이가 선발 등판 하는 날이다. 다들 덕수 통해서 사인 나가는 거 잘 보고, 포메이션 수시로 바뀌어도 당황하지 말고.”
“네, 감독님!”
“좋아, 나는 지금 이 3위라는 순위에 만족할 생각이 없다. 너희들은 어떻지?”
“저희도 그렇습니다!”
“훌륭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자, 다들 나가보자. 파이팅!”
“파이팅!”
5월이 모두 지나가고 드디어 6월의 첫째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부상으로 빠졌던 주전선수들이 모두 복귀했다.
지난 5월 두 번째 주 경기에서 이창모와 최민석이 연달아 부상으로 쓰러질 때만 해도 모두들 워리어스는 이제 끝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태호와 현금 3억 원, 거기에 2라운드 지명권까지 주고 데려온 서형주가 그 자리를 완벽히 메우고, 기존 전력 구상에 없던 천상진과 양기철이 선발, 마무리에서 자리를 잡으며 오히려 팀이 더욱 단단해졌다.
6월의 첫 경기를 맞는 오늘, 26승 2무 22패, 승률 0.541로 인천, 수원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는 워리어스가 이제 2위 팀 수원과의 3연전에 돌입했다.
오늘 선발은 10개 구단 4선발 중 가장 강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거기에 잘생긴 얼굴로 팀내 유니폼 판매량 2위에 올라 있는 천상진 선배다.
이 투수가 등판하는 날이면 벤치에서 적극적으로 수비 시프트 사인이 나온다.
사실 시프트의 성공을 결정하는 건 수비보다는 투수의 두뇌 회전이 얼마나 빠른지, 그리고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을 갖고 있는지가 더 크게 작용한다.
현재 우리 팀 투수 중 거기 가장 부합되는 조건을 갖춘 게 바로 천상진 선배다.
“수혁아, 오늘은 좌타자 상대로 바깥쪽 싱커 비율을 좀 높여볼까 하는데.”
“괜찮은 생각이네요, 선배님.”
“좋아. 그럼 오늘도 잘 부탁.”
등판일이 가까워 오면 매일 밤 토끼 눈을 한 채 상대 타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SNS를 헤집고 다니던 천상진 선배는 이제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는다.
구단 차원에서 아예 전력분석팀 내 그 일을 전담할 직원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의 새로운 전력분석 방식이 9개 구단에 소문 나기 전까지는 꽤나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박재철 단장의 판단이었다. 뭐, 그게 쓸모 없어진 후에는 다른 방법이 생기겠지.
그렇게 시간적 여유가 생긴 천상진 선배는 그 여유시간을 그대로 영상 분석으로 돌려버렸다.
뭐라더라, 전력분석팀에서는 찾지 못하는 걸 자신은 볼 수 있다나.
열심히 하는 선수를 말릴 수도 없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다만 야간 스마트폰 사용은 조금 자제한다는 약속과 함께.
“꺄아아악!”
“천상진!”
“오빠! 여기 좀요!”
분명 여기는 커맨더스의 홈구장인 수원이건만, 천상진 선배의 등판일에 맞춰 저지까지 맞춰 입고 온 여성 팬들이 지정석 맨 앞자리에 모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던 안치욱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부럽다…….”
“너도 야구만 잘하면 여자 팬 생길 거야.”
“야구만 잘하면? 얼마나?”
“천상진 선배랑 네 외모 차이를 감안하면 음… 한 4할쯤 치면 되려나?”
“…나쁜 새끼.”
예전 같으면 여기서 끝났을 안치욱과의 대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꼭 끼어드는 놈이 하나 추가되었으니까.
“꿈 깨. 내가 보기에는 4할 쳐도 상진 선배처럼 될 일은 없으니까. 애초에 종족 자체가 다른데 비교가 되냐?”
“종족?”
“천상진 선배는 하프엘프, 너는 음… 잘 쳐줘야 지리산 반달곰 정도?”
“…해보자는 거지?”
“뭐, 얼마든지.”
지난 달까지만 해도 팀내 주전 중 나와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안치욱이 유일했다.
사실 편하다는 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주관이고, 안치욱 저놈은 생각이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음.
사실 그게 다 저놈 잘되라고 하는 건데.
아무튼 트레이드 되어 온 서형주가 가세하면서 상황이 조금 변했다.
툭하면 내 주위로 둘이 몰려들어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최민석 선배가 지나가면서 왕의 간택을 기다리는 후궁 둘이라고 말할 때는 하마터면 선배고 뭐고 주먹이 날아갈 뻔했다.
“징그럽다, 이것들아. 왜 내 주변에서 그러는데? 저리들 가서 싸우든지.”
“싸우긴 무슨, 저런 곰탱이랑?”
“쯧, 아직 2할 2푼밖에 못 치는 놈이.”
“글쎄, 한 달만 지나면 네가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대전에서 1할대의 빈타에 허덕이다 쫓겨나다시피 워리어스로 온 서형주는 보름간 안타를 몰아치며 시즌 타율을 2할 2푼까지 끌어올렸다.
다른 건 몰라도 서형주의 재능 하나만큼은 인정하고 있는 안치욱이 더 이상 반발하지 못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두고 봐라. 잘 봐라……. 내가 제대로 보여준다.”
“그래, 뭐가 됐든 빨리 보여줘라. 그거 기다리다 우리 다 은퇴하게 될지도 모르잖냐.”
“…….”
이런 구도를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꾀 많은 여우 놈에게 매일 당하기만 하면서도 계속 덤벼드는 곰탱이…….
뭐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데.
음.
내가 잠깐 쓸데없는 고민에 빠진 사이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라운드 정리가 끝나고 심판의 경기 개시 사인이 떨어지고, 오늘도 여전히 안색이 안 좋은 최경재가 마운드 위에서 굳은 표정으로 어깨를 빙빙 돌리고 있다.
처음 볼 때는 그래도 국대급 투수다운 포스가 넘치던 양반인데, 이제는 우리 팀만 만나면 이상하게 겁먹은 시골집 누렁이 같은 얼굴이 된다.
아무튼 오늘 이대준 감독이 내놓은 라인업은 이창모와 최민석의 복귀 후 거의 고정되어 가고 있는 새로운 라인업이었다.
1번 타자 중견수 서형주
2번 타자 3루수 안치욱
3번 타자 유격수 한수혁
4번 타자 1루수 조성오
5번 타자 포수 장덕수
6번 타자 우익스 맥스 워커
7번 타자 2루수 이창모
8번 타자 지명타자 김수학
9번 타자 좌익수 최민석
선발투수 천상진
이창모 선배와 최민석 선배가 부상으로 빠진 동안 외야수와 내야수를 오가며 구멍 난 자리를 열심히 메우던 서형주는 두 사람이 복귀한 후 중견수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2루와 유격수, 3루수, 심지어 외야수까지 모두 커버 가능한 서형주의 수비 재능은 나조차도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수비 위치를 바꾼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단순히 내야, 외야용 글러브만 바꿔 끼고 나가면 되는 게 아닌 것이다.
기본적인 포구와 송구 등의 플레이는 물론이고 상황에 따른 포메이션 변화, 거기에 순간 판단력까지.
서형주가 저렇게 여러 포지션을 커버할 수 있다는 건 저 녀석이 갖고 있는 야구에 대한 재능의 크기를 말해주는 증거다.
저런 녀석이 대전에서는…….
음, 그러고 보니 박재철 단장은 지난 보름간 스마트폰도 꺼버린 채 사무실에만 틀어박혀 일체의 외부 활동을 중지한 상태다.
뭐라더라, 대전 단장으로부터 100통이 넘는 저주성 메시지가 날아왔고, 거기에 팔콘스 구단주 비서실에서도 부재중 통화가 왔다나.
개인 경호원이라도 붙여줘야 하는 걸까.
설마 2027년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대전으로 트레이드되어 간 정태호 선배도 제법 잘 던져주고 있다는 거다. 물론 대전 홈경기에 한해서라는 단서가 붙지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전으로 돌아가 행복하다더라.
그래.
행복하면 된 거지, 뭐.
“플레이!”
주심의 콜 사인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1번 타자 서형주.
6월 첫주 현재 타율 0.219, 출루율 0.302, 홈런 2개, 12타점, 5도루를 기록 중인 워리어스의 새로운 리드오프.
처음 트레이드 되어 왔을 때 1할을 조금 넘던 성적을 생각하면 꽤 많이 지표가 올라왔다. 물론 저 녀석의 진가는 눈에 보이는 타율 같은 게 아니다.
“볼.”
초구에 녀석이 기습 번트 자세를 취하자 깜짝 놀란 최경재의 밸런스가 흐트러지며 존 밖으로 한참 벗어나는 공이 들어왔다.
수원 포수 정대한이 뭔가 서형주에게 말을 한 듯싶지만 녀석은 그걸 못 들은 척 얼굴에 철판을 깐 채 홈플레이트의 흙을 툭툭 긁어내며 포수의 신경을 건드렸다.
바로 저게 녀석의 장점 중 하나다.
그동안 워리어스 타자들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타석에서의 끈끈함, 잔재주, 다른 이름으로는 다양성.
이제 막 데뷔한 놈이 어디서 저런 짓을 배웠나 물어봤더니, KBO 최고의 리드오프 중 하나인 서울 파이터즈 이찬호의 영상을 계속 돌려보며 어떻게 하면 상대 배터리 신경을 건드릴 수 있는지 연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가 한 대 맞으면 어쩔 거냐고 했더니, 뭐라고 했더라.
누가 덤벼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장덕수 선배한테 도망갈 거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렇게 최경재의 신경을 계속 건드리던 녀석은 결국.
따아악!
“와아아!”
“서형주! 서형주! 서형주!”
“워리어스의 톱타자! 서형주!”
깨끗한 우전안타를 뽑아내고는 1루로 진출했다.
베이스에 발을 올린 녀석이 보호대와 장갑을 코치에게 건네주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기 타석을 향해 손가락을 쭉 뻗어 보인다.
그 손가락의 끝에는 동기의 활약에 잔뜩 자극받은 안치욱이 서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대준 감독이 짠 새로운 라인업의 1, 2, 3번이 모두 신인이다. 물론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건 진짜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시도할 수 없는 타선이다.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이대준 감독이 아주 감이 좋은 타입이라는 것.
그렇게 선두 타자로 나선 서형주가 안타로 1루로 출루한 가운데 타석에 2번 안치욱이 들어섰다.
사실 서형주의 입단으로 인해 여러 선수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
일단 자기 자리인 중견수에서 좌익수로 밀려난 최민석 선배가 그렇고, 아예 수비 포지션을 잃고 지명타자로 밀려난 김수학 선배도 있다.
거기에 서형주가 내야 수비도 커버 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이창모 선배조차도 적지 않게 신경을 쓰는 눈치다.
하지만 그런 선수들을 다 합쳐도 안치욱만은 못 할 것이다.
고교 시절부터 자신보다 한참 높은 곳에 이름을 올려 두었던 동갑내기 신인.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을 갖춘 데다가 여차하면 3루 수비까지 가능한 탓에 언제든 자신을 지명타자로 몰아낼 수 있는 친구이자 라이벌.
사실 말로 한 적은 없지만 안치욱이 내게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나를 뛰어 넘겠다고 큰소리 치던 놈이 언제부터인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다는 것 말이다.
누군가의 뒤를 쫓는 것도 그리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 입단 1년 차에 불과한 신인에게는 그보다 조금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야 뭐… 솔직히 저 녀석이 따라가기에는 너무…….
어쨌든 동기 서형주의 활약에 자극을 받은 안치욱 역시 타격에서 꽤나 힘을 내고 있다.
타율 0.288에 출루율 0.342, 장타율 0.405, 거기에 네 개의 홈런과 스물여덟 개의 타점까지.
한때 박재철 단장의 골머리를 썩게 했던 워리어스의 새로운 3루수는 이제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따아악!
몸쪽 공을 냅다 잡아당긴 강한 타구가 수원 2루수의 다이빙 캐치에 걸려 들었다.
“아웃!”
아쉽게도 타자는 1루에서 아웃되었지만 자연스럽게 진루타가 되며 1사 주자 2루.
안치욱이 2번 타순에 고정된 건 바로 저 이유다.
녀석의 타격 매커니즘상 좌우 투수를 가리지 않고 저렇게 1-2루간 타구가 많이 나온다. 때문에 진루타를 만들기 아주 용이하다.
최근에는 그런 타구에 대응하기 위해 시프트가 걸리는 일이 늘어나 타격 코치와 함께 밀어치는 연습을 시작했다고 한다.
좋다. 어쨌든 신인으로 구성된 테이블 세터가 내 앞에 먹음직스러운 밥상을 차려놨다.
그럼 이제 내 차례다.
– 1사 주자 2루 상황에서 타석에 한수혁 선수가 들어섭니다! 아, 1회부터 최경재 선수의 안색이 너무 안 좋은 거 같은데요.
– 쫄았네요.
– 네? 위원님, 방금 뭐라고…….
– 흠,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라 겁먹었네요. 하긴 최경재 선수가 그동안 한수혁 선수에게 큰 걸 얼마나 많이 맞았습니까? 저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제가 현역일 때 1군 경기에 딱 30게임 정도 등판하고 은퇴했는데요.
– 30경기요?
– 네, 야구 진짜 더럽게 못… 아무튼 그때 딱 세 번 상대해서 그 세 번 연속 홈런을 맞은 타자가 있었습니다.
–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 뭘 어떻게 됐겠습니까? 저는 그 타자만 만나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벌벌 떨다가 결국 은퇴했고, 지금은 이렇게 한수혁 선수를 빨… 죄송합니다. 워리어스의 전문가가 되어 마이크를 잡고 살아가고 있지요.
– 위원님.
– 네?
– 제가 보기에는 그 타자분한테 한 턱 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한 턱을 쏘라고요? 턱을 날려버리는 게 아니라?
– 그분 덕에 위원님이 이렇게 천직을 찾으셨잖습니까? 제가 보기에 위원님은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나신 분 같습니다.
– 이 사람이…….
– 흠흠, 첫 타석부터 찾아온 득점 찬스를 한수혁 선수가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지, 여기는 수원야구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