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7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78화(79/412)
#78. 10년 후 그는…
-저기 있는 저 선수가 보이는가? 그는 지금 스무 살이다. 10년 후 그는 스타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 옆에 같이 서 있는 선수도 스무 살이다. 10년 후 그는 서른 살이 될 가능성이 있다.
독설이 담긴 명언으로 유명했던 전설적인 감독 케이시 스텐겔이 1960년대 뉴욕 메츠의 감독으로 있던 시절, 두 명의 신인선수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그가 10년 후 스타가 될 것이라 말한 선수는 에드 크레인풀로, 실제 그는 메츠에서 18년간 뛴 후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반면 그가 그냥 서른 살이 될 거라 예언했던 그렉 구슨은 5년 후 은퇴해 야구계에서 영영 사라졌다.
언제 들었는지 기억조차 잘 안 나는 그 오래된 이야기가 수원 투수 최경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씨발…….’
상대팀 워리어스의 1, 2, 3번에 이름을 올린 세 명의 신인들.
서형주, 안치욱, 한수혁.
대전에서 폐급 취급을 받던 서형주는 워리어스 이적 후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리그에서도 손꼽히게 귀찮은 리드오프가 되었다.
그리고 시즌 초반 2땅 머신 취급을 받던 안치욱 역시 조만간 3할을 찍을 거란 예상이 들 정도로 타격 페이스가 괜찮다.
한수혁? 체감상 만나기만 하면 홈런을 맞는 것 같은 저 괴물?
저 세 놈을 보니 다시 한번 케이시 스탠겔의 그 말이 떠오른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경재는 저 세 놈이 10년 후 KBO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반면 10년 후 자신의 이름 옆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질지도 모르겠다.
[한수혁에게 가장 많은 홈런을 얻어맞은 멍청이]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경재야, 바깥쪽 투심으로 가자.’
‘싫어. 맞을 거 같아.’
‘오케이, 그럼 몸 쪽 높은 하이패스트 볼.’
‘거기 던지면 백퍼 홈런임.’
‘그럼 존 중앙에서 뚝 떨어지는…….’
‘미쳤어?’
투수가 사인을 계속 거부하자 포수 정대한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노려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경재는 진심 그 어떤 코스로도 공을 던지기 싫었다.
얼마 전 발표된 WBC 예비엔트리.
거기에 자신과 정대한의 이름이 동시에 올랐다.
당연한 일이다. 데뷔 2년 차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래 왔으니까.
저 워리어스 괴물 놈의 이름 역시 명단에 올라왔다.
대체 누구인지는 몰라도 한수혁의 대표팀 선발에 대해 일부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최경재가 생각하기에는 미친놈들이었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말도 안 된다.
지금 저 녀석이 기록하고 있는 성적만 봐도 알 수 있다.
타율 0.410에 출루율 0.517, 장타율은 무려 0.957, 거기에 25개의 홈런과 43개의 타점, 도루 10개는 덤이다. 이게 겨우 두 달 만에 올린 성적이다.
5월에 들어서면서 상대 투수들이 슬슬 도망 다녀서 저 정도다.
투수들은 죽어라 좋은 공을 안 주고, 뒤타자를 믿지 못한 한수혁이 어쩔 수 없이 그 나쁜 공까지 손을 댄 결과가 저 성적인 것이다.
만약 한수혁의 뒤를 받치는 타자들이 더 강했더라면 지금쯤 5할을 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저런 엄청난 괴물을 빼놓고 국제대회에 나가자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미국과 일본, 푸에트리코, 멕시코, 쿠바, 그곳의 빌어먹을 야구 괴물들에게 진짜 괴물이 뭔지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덩치 큰 양키들이 한수혁에게 얻어맞고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상상.
‘흐흐.’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수혁에게 홈런을 얻어맞은 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정말 저 녀석이 말도 안 되는 괴물이어서 그랬다는 게 증명되지 않을까?
그 생각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최경재가 포수를 향해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높은 포심? 흠, 좋아. 가보자.’
‘응.’
그래, 그냥 세상이 원래 이 따위인 거다.
자신 같은 평범한 사람은 평생을 노력해도 넘어설 수 없는 저런 괴물들이 가끔 등장하는 거다.
물론 다른 선수들이 보기에는 최경재 역시 천재에 가까운 존재였지만.
반쯤 해탈한 상태가 된 최경재가 한수혁을 향해 힘차게 공을 던졌다.
마음을 비워서일까, 평소보다 움직임이 더 좋은, 150㎞/h에 달하는 위력적인 포심이 바깥쪽 높은 코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따아아악!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그 공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그 순간 해탈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던 최경재의 의식이 순식간에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씨발.”
대충 던지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건만 역시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오늘도 결국 좆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최경재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 * *
└존나 시원하게 날아가는구나… 초여름에 피서가 따로 없네
└미친 ㅋㅋㅋ 인사이드 파크 홈런 될 뻔
└우익수 새끼 봐라. 넘어간 줄 알고 멍청하게 서 있다가 펜스 맞고 나오니까 허둥지둥
└워) 너희 수비 왤케 폐급임?
└워) 마운드에 서 있는 거 최경재 맞음? 어디 얼굴 비슷한 2군 투수 아니고?
└워) 그냥 포기하고 2위 자리 내놓지? 우리가 인천 한번 잡아볼 테니까
└하아… 오늘도 워리어스 저새끼들 분탕질 장난 아니네…
아쉽게도 홈런이 되기에는 살짝 모자랐다.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포심을 냅다 후려 갈겼는데 우측 펜스 최상단에 맞고 안으로 떨어져 버렸다. 오늘따라 강한 역풍이 한몫을 한 것 같다.
그럼에도 워낙 체공 시간이 길었던 데다가, 타구가 넘어갔다고 판단한 수원 우익수 덕에 3루까지 무난히 들어갈 수 있었다.
“한수혁! 이쪽 한 번만 봐줘!”
“수혁 오빠!”
“한수혁! 한수혁! 한수혁!”
3루 베이스를 밟고 숨을 돌리는데 원정 응원석에서 날 부르는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비록 홈구장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수원까지 그리 멀지 않아서 그런지, 제법 많은 수의 팬들이 원정 경기에 따라왔나 보다.
그나저나 저 여자… 아니, 민예린.
관중석에서는 나를 수혁 오빠, 수혁아, 한수혁, 아주 가끔 내가 실수를 했을 때는 야 이놈 새끼야! 라고 편하게 부르면서 왜 야구장 밖에서 만나면 수혁 님이라고 부르는 걸까?
눈도 못 마주치고 수혁 님, 수혁 님, 부르는 그 모습이 요즘 들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조만간 그 부분에 대해 대화를 좀 해봐야 하려나.
그렇게 관중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을 해주려는데, 내 3루타에 홈을 밟고 덕아웃으로 들어갔던 서형주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와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와… 와아!”
“서형주, 너도 잘했다!”
“잘했어! 그대로만 해!”
관중들의 환호가 나에게만 향하는 게 억울했나 보다. 아무튼 웃긴 놈이다.
그렇게 내가 서형주를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던 그때.
“적당히 까불어라.”
“네?”
“너희들 적당히 하라고. 그냥 두고만 보니까 이것들이 진짜 선배 무서운 줄 모르고. 조성오 선배가 그렇게 가르치던?”
수원의 3루수가 뜬금없이 시비를 걸어왔다.
자신들의 에이스가 나만 보면 벌벌 떠는 게 짜증이 났던 걸까, 아니면 정말 서형주 저놈과 내가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게 아니꼬웠던 걸까.
사실 지금까지 몇 번 이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대충 못 들은 척 넘어가곤 했다.
나야 상관없지만 서형주나 안치욱 같은 다른 선수들이 피해를 받을까 봐.
하지만 이제는 좀 다르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선배님들은 딱히 이런 거에 대해 교육시키신 적 없고요, 그리고 관중들이 제 이름을 부르는데 그럼 모른 척해야 할까요?”
“뭐?”
“저희 구단에서 제일 먼저 선수들에게 가르치는 게 팬들에게 잘하자라서요.”
생각지도 못한 1년 차 신인의 말대꾸에 민주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만, 거기까지. 야구나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심판이 끼어들어 중재하길래 바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나 역시 1회부터 벤클을 하고 싶지는 않다. 심지어 우리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씨발, 두고 보자. 이 건방진 새끼들.”
“그럴 기회가 된다면요.”
사실 내가 황성민, 그 빌어먹을 놈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회귀한 후 KBO 무대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게 바로 이 선후배 문화였다.
쉽게 말해 똥 군기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그냥 입 꾹 닫고, 무슨 말이 들리든 못 들은 척하고 야구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그 되도 않는 얌전한 후배 코스프레가 슬슬 지겨워지던 찰나, 시기 적절하게 황성민이 자청해서 제물이 되어주었고, 그 덕에 나는 9개 구단 선배들에게 상대하기 껄끄러운 후배가 되어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대부분의 다른 팀 선배들은 그냥 나를 무시하는 길을 택했다.
어차피 건드려봐야 이득 될 것도 하나 없고, 그러다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자기들 손해니까.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꼭 있는 법.
얼굴 생긴 것만 봐도 꼰대스러움이 철철 넘쳐나는 수원의 3루수가 바로 그 예외 중 하나인 모양이다.
뭐, 조만간 이 양반하고도 한바탕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
나도 이젠 모르겠다.
그냥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뭐.
알게 뭐야? 내가 다른 팀 가서 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은퇴 후에 어디 일자리 구걸하러 다닐 일도 없고.
난 잃을 게, 아니, 아쉬울 게 없는 몸이니까.
그냥 문제가 생기면 시원하게 두들겨패고, 출장 정지 좀 먹고, 어디 가서 애들 좀 가르치고.
…젠장, 빨리 신인 티를 벗든지 해야지 원. 개나 소나 다 시비를 걸어오네.
“플레이!”
그렇게 우리가 선취점을 올린 가운데 1사 3루의 찬스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타석에 조성오 선배가 들어섰다.
개막 후 두 달이 지난 지금, 타율 0.308에 출루율 0.385, 장타율 0.434, 거기에 우리 팀에서 나 다음으로 많은 8개의 홈런과 35개의 타점을 기록한 워리어스의 4번 타자.
이대로면 조성오 선배는 정말 오랜만에 3할 20홈런 타자에 복귀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 선배는 혹시 알고 있을까?
내가 처음 자기를 봤을 때 이것도 야구선수냐고 생각했…….
흠.
“볼.”
“스트라이크!”
“볼.”
조성오 선배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 공을 골라 칠 줄 안다는 거다.
이게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공을 골라낼 수 있는 선구안과 끈기, 그리고 이거다 싶은 공이 왔을 때 정확하게 때려낼 수 있는 타격 기술을 모두 갖춰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이콥의 손을 거친 조성오 선배는 기존의 어정쩡한 타격 자세를 버리고 거의 오픈스탠스에 가까운 폼을 고수하는 중이다.
몸쪽 공에는 아주 강한, 대신 바깥쪽에는 약간 약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약점을 조성오 선배는 강한 손목 힘으로 커버하고 있다.
좋은 접근법이다.
그리고 조성오라는 야구선수가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은…….
툭
“커헉!”
“홈! 아니, 1루, 1루!”
“아웃!”
상대방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플레이를 아주 시기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경재가 볼을 던지기 전 나와 잠깐 눈이 마주친 조성오 선배가 아무도 모르게 사인을 보내왔다.
벤치에서 나온 사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볼 카운트 투 볼 원 스트라이크,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가 들어올 확률이 높은 볼카운트에서 최경재가 몸쪽으로 바짝 붙는 투심을 던졌다.
그 순간 조성오 선배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플레이를 했다.
1루 쪽으로 향하는 스퀴즈 번트.
그 기습적인 플레이에 수원 내야가 흔들거렸고, 조성오 선배가 1루에서 아웃 되는 사이 나는 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1회초 스코어 2 대 0.
최경재의 안색이 이제는 하얗다 못해 투명하게 변해버렸다.
진심으로 그 모습이 걱정되어 홈을 지키는 정대한에게 말을 걸었다.
“경재 선배님, 괜찮으신 거 맞죠?”
“…그냥 가라. 더 보태지 말고.”
“네엡.”
뭐, 이 선배는 좋은 사람 같으니까.
대표팀에서도 같이 뛰어야 할 테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