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7화(8/412)
#7. 근본
절대 밝혀져서는 안 될 기밀이 밖으로 새는 건 대부분 내부자의 소행일 경우가 많다.
먹이감을 찾아 24시간 구단 주변을 맴도는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 조회수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각오가 된 유튜버들까지.
내부 상황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비밀을 퍼뜨릴 루트는 널리고 널렸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 “한수혁이 투수로 뛰는 걸 거부한다”>
누구인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익명을 요구한 구단 관계자의 입을 통해 내가 투수로는 뛰지 않겠다고 한 말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아마 투수코치일걸? 아니다. 수석코치려나? 혹은 타격코치일지도.”
“하아, 팀 꼬라지보게나. 정말.”
“형, 웃어. 기자들 본다.”
그리고 다음 날, 입단 기자회견장에서 그 문제에 대한 질문들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투타 겸업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던 유망주가 대체 왜 한국야구에서는 타자만 하겠다고 선언한 건지 말이다.
왜긴 왜겠어. 더 오래 안정적으로 해먹으려는 거지.
“한수혁 선수, 질문 드리겠습니다. 절대 투수로는 뛰지 않겠다고 하신 게 사실입니까?”
“절대는 아니고, 당분간입니다.”
“그럼 중요한 순간에는 투수로도 나올 수 있다는 뜻인가요?”
“한국시리즈 7차전이라고 하면 고민해보겠습니다.”
“…절대 안 하겠다는 뜻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단장님에게 묻겠습니다. 올해 한수혁 선수의 포지션은 어떻게 될 예정인지요?”
“감독님하고 상의해봐야겠지만 최대한 한수혁 선수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자리를 줄 예정입니다. 우리 팀의 보석 같은 존재이니까요.”
대답을 마친 단장이 눈에서 꿀을 뚝뚝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와, 이 인간 진짜 대단하네. 이 정도면 그냥 배우를 하지, 왜 야구단장을.
“한수혁 선수, 원론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왜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신 건가요?”
“워리어스에서 뛰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왜 워리어스에서 뛰고 싶으셨던 거죠?”
“워리어스니까요.”
“……”
너무 당연한 질문에 아주 당연한 대답을 돌려준 나는 기자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때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던 성훈이 형이 마이크를 잡고 대신 대답했다.
그래, 안 그래도 워리어스와 내가 다른 팀 지명순서를 꼬이게 하려고 작당을 했다는 둥 자꾸 이상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 기회에 확실히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낫겠지.
“제가 답변 드려도 될까요, 기자님?”
“네, 구단주님. 부탁드립니다.”
“아시다시피 한수혁 선수와 저는 초등학교 야구부 선후배라는 개인적인 친분과 에이전시 대표와 소속선수라는 공적인 관계를 동시에 갖고 있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 구단과 계약을 코앞에 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그러더군요. 워리어스 유니폼을 입는 꿈을 꿨다고 말이죠.”
“음.”
“그 말에 제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저도 한때 워리어스 유니폼을 입는 게 소원이던 선수였으니까요. 이제는 무릎 때문에 다시 선수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워리어스 인수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제 질문은 구단 인수과정이 아니라 한수혁 선수가 왜 메이저리그 대신 워리어스 입단을 결정했는지…”
“제 말 더 들어보시라니까요? 그래서 한수혁 선수에게 무릎을 꿇었죠. 워리어스로 와 달라고, 대답하지 않더군요. 생각해보세요. 야구 선수에게 메이저리거보다 더 큰 꿈이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이 형, 의외로 연기에도 소질이 있네.
“결국 전 수혁이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거죠. 다들 그 기적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셨을테고요. 신인 드래프트장에 갑자기 나타난 한수혁 선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수혁이가 우리를 구원하러 와줬다는 걸, 워리어스를 위해 큰 결심을 내렸다는 걸.”
흠, 뭔가 위인전같은 분위기로 흐르는데.
“기자님도 잠깐 생각해보시면 금세 결론이 나실 겁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제의했던 계약금 350만 달러만 해도 저희가 준 돈의 3배가 넘습니다.”
그거야 계약금 많이 받아봤자 어차피 돌고 돌아 내 돈인데 세금만 더 낼 것 같아서 그런 거고.
“물론 10억이라는 돈이 적다는 건 아닙니다. 엄청난 돈이죠. 하지만 한수혁 선수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당장 내 통장에 그 돈의 50배가 넘는 돈이 들어있는데. 회귀 전에는 거기에 공 하나가 더 붙어 있었고.
일단 계속 들어보자.
“자, 그런 겁니다. 한수혁 선수는 정말 순수한 야구를 위해, 본인의 오랜 꿈을 위해 워리어스를 선택했다는 거죠. 충분한 설명이 되었을까요?”
“……”
성훈이 형의 말에 기자들의 입이 동시에 닫혔다.
뭔가 거창하기는 한데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그 말에 반응한 건 오직 한 사람, 모가지가 간당간당한 단장뿐이었다.
“역시! 대스타가 될 선수는 뭐가 달라도 다르죠? 기자님들, 박수 한 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짝짝…’
고맙게도 기자 몇 사람이 단장의 안쓰러운 표정을 보더니 마지못해 박수를 쳐주었다.
좋은 사람들이다. 기억해둬야지.
하지만 대부분의 기자들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듣고 싶은 대답을 아직 못 들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포기하고 워리어스를 선택한 건 워리어스라서 그런 거고, 투수는 때려 죽여도 안 하시겠다는 거죠?”
“…팀이 한국시리즈 7차전에 오르면.”
“그게 안 하겠다는 거잖아요!”
흠, 이 사람들 이거 선입견이 엄청나네. 때려 죽여도 워리어스는 한국시리즈는 못 간다는 거잖아?
* * *
<워리어스 유니폼 입은 한수혁, 잇몸미소 활짝>
<투수로도 뛰겠냐는 질문에 “한국시리즈 7차전이라면…” 농담인가, 진담인가>
<메이저리그 대신 한국 야구 선택한 이유는? 워리어스가 거기에 있었으므로…>
<말끝마다 워리어스, 워리어스, 한수혁, 알고 보니 워리어스 어린이 회원 출신?>
﹂근본
﹂크, 어린이 회원 출신이면 인정이지
﹂한수혁이랑 박성훈 구단주랑 초등학교 때부터 워리어스 팬이었다고 함. 둘이 나중에 워리어스 우승시키자고 약속했다 함
﹂이미 급식 때부터 도원결의를 한 거였군. 박성훈이 유비고, 한수혁이 관우쯤 되는 건가?
﹂그때만 해도 워리어스가 엄청 강팀이었으니까
﹂꼴) 애들한테 사기 친 거지. 한수혁은 거기에 낚인 거고. 솔직히 너희 팀에 한수혁이 어울리기는 함? 저 정도면 조직적인 계획범죄임
﹂나쁘다 너희들;;;
﹂그나저나 고작 신인 선수 하나 입단한 건데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님? 쟤 타자로 뛰면 당장 주전은 가능함?
﹂ㅇㅇ 쌉가능. 어느 포지션을 고르셔도 편안히 내드릴 수 있음
﹂ㅋㅋ 야, 암만 그래도 황성민, 송기태 있는 포수랑 유격수는 빼줘야지. 걔들 연봉이 5억이 넘는데
﹂어! 걔들 아직도 안 팔림?
﹂아직 스토브리그 시작도 안 했는데 팔리긴 뭘 팔려;;;
﹂한수혁한테만 신경쓰느라 걔들 이미 다 팔린 줄
﹂엌ㅋㅋㅋ
﹂얘들아, 그나저나 요즘 왜 여기 한수혁한테 패드립 박던 애들이 안 보이냐?
﹂걔들 다 경찰서에서 정모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여론이야 어쨌든 시간은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입단 계약이 끝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 살 집을 고르는 일이었다.
“여기 층이 원래 어떤 회사에서 직원들 숙소로 쓰다가 동시에 나갔다네. 그래서 세 집이 다 비어···”
“여기로 하자.”
“응? 집안도 안 보고?”
“응, 집이야 뭐 아파트인데 다 똑같겠지. 최고층이라 층간소음 없고, 양 옆에 집도 비어 있고. 귀찮아. 그냥 바로 계약할래.”
“…넌 평생 처음 내 집 마련하는 놈이 뭐 그렇게 감흥이. 야 그래도 잠실 한복판에 아파트인데.”
내가 원래 살던 집 구경시켜주면 놀라서 뒤집어지겠군. 소시민이여.
“아, 그리고 제이콥은 이 아파트 말고 다른 델 원한다고?”
“딸 입원한 병원 바로 앞에 빌라로 구해줬으면 하더라.”
“음, 그래. 그렇게 해줘.”
“야, 그런데 그렇게 병원비에 집까지 렌트해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야?”
“당연하지. 제이콥이 얼마나 해주냐에 따라 내 투수 데뷔 시기가 달려 있는데.”
“…빨리 가서 빌라 계약서 도장 찍어줘야겠네. 알았다. 그럼 나는 사무실로 간다. 네 짐은 이삿짐센터에서 알아서 옮겨 놓을테니까 걱정 말고.”
“어, 알았으니까 가봐. 나도 바로 연습장 가봐야 하니까.”
그렇게 한국에 내 첫 집이 생겼다.
혼자 살기에 충분한, 아니, 넓기까지 한 32평 아파트.
예전에는 몰랐다.
이정도 크기면 충분하다는 걸.
굳이 큰 집이나 좋은 차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세상에는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많다는 걸.
20대의 혈기로 가득한 나는 그런 인생의 지혜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흠.”
그나저나 좌우 집이 동시에 비어 있다는 건 정말 마음에 든다.
성훈이 형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층간소음 때문에 꽤나 신경이 거슬리던 참이다.
어떤 사람들이 이사를 올지는 몰라도 당분간은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다 생각하며 연습장으로 이동했다.
‘뚜벅뚜벅’
집에서 나와 연습장까지 걸은 시간을 측정해보니 대략 15분. 자연스럽게 몸을 풀기에 딱 좋은 거리다.
나중에 유명세가 더 심해지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잠실 한복판을 오가는 사람들은 일개 야구선수에게 신경을 쓰기에 너무 바빠 보였다.
“헤이, 제이콥.”
“어서 와. 걸어온 건가?”
“몸도 풀 겸.”
“좋아. 빠르게 걷는 것만큼 좋은 워밍업은 없는 법이지. 지난 번 피지컬 테스트 결과 나온 거 보면서 얘기하자고.”
“오케이.”
제이콥이 건네준, 온통 영어로 가득 찬 문서를 단숨에 읽어 내렸다.
“예상대로군요. 지구력하고 회복력, 유연성은 괜찮은데 근력 수치가 많이 떨어지네요.”
“…이걸 다 이해한 건가?”
“네, 이 정도야 뭐.”
“좋아, 말한 대로야. 아직 성장기가 끝나지 않아서 신체 밸런스가 불안해. 지구력과 회복력은 최상에 가까울 정도로 좋지만 근력은 좀 부족한 감이 있고.”
“나 아직 스무 살도 안 됐어요, 제이콥.”
“젠장, 이런 피지컬을 갖고 스무 살도 안 됐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군. 아시아인이 맞긴 한 건가?”
“물론이죠.”
“좌우간 오늘부터 내가 만들어준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하루도 빼놓지 말고 반복해. 명심해. 시간, 순서, 그리고 횟수, 뭐 하나라도 틀리면 안 돼. 기계처럼 매일매일 정확하게, 식단도 내가 짜준 대로만 먹어야 해. 이해했나?”
“당연하죠. 10만 불을 넘게 주고 모셔온 코치님의 지시인데 무조건 따라야지.”
“이해했으면 됐어. 일단 신체 밸런스부터 완벽하게 잡고 난 후에 피칭을 시작하자고. 그런데 구단에 출근은 언제부터 할 거지?”
“스프링캠프 전에는 갈 일 없어요.”
“문제없군. 그럼 시작하자고.”
그렇게 제이콥과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근육과 힘줄, 뼈마디 하나하나까지 오직 나만을 위해 고안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따라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던 서른 중반의 병든 육체 대신 젊고 싱싱한 새 육체를 갖게 되었다.
좋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반길 일 만은 아니었다.
일단 바뀐 육체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관건이었다.
이만큼 몸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훨씬 큰 반발력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힘이 부족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제이콥, 역시 내년에는 타자에만 집중해야겠어요.”
“당연하지. 지금 이 상태로 투타 겸업을 하려했다가는 무조건 부상을 당하게 될 거다.”
“좋아요. 그나저나 애니는 잘 지내죠? 가보고 싶어도 매번 시간이 너무 늦어서 들를 시간이 없네요.”
“아주 잘 지내. 친구, 덕분이야.”
“다행이에요. 제게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고마워. 받은 게 있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군. 나만 믿어. 내년 스프링캠프 전까지 완벽한 밸런스를 찾아줄 테니까.”
그렇게 내가 새로운 몸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이 스프링캠프가 코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