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8화(9/412)
#8. 쓰레기는 단번에 쓸어버려야
경기가 없는 비시즌이 되면 야구팬들의 관심은 온통 새로운 선수, 혹은 코칭스태프의 교체 등에 쏠리게 마련이다.
어느 선수가 어느 팀이랑 계약 논의중이라더라. 누구누구 감독 사단이 통째로 다른 팀으로 옮긴다더라 등등.
그렇게 새로운 전력의 합류를 기대하며 행복회로를 돌리는 것이야 말로 야구팬들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근데 스토브리그 시작됐는데 우리 너무 조용한 거 아니냐
﹂그러게, 단장 바꾼다, 감독 바꾼다 난리치더니
﹂FA 3인방 트레이드 소식도 전혀 없음
﹂걔들 데려가려는 팀이 없어서 그럴걸
﹂빨리 윗대가리부터 정리해야 용병도 뽑고, 트레이드도 할텐데
﹂코치 쪽도 얘기 없지?
﹂ㅇㅇ 거긴 아마 더 건드리기 힘들 것 같은데. 워낙 뿌리 깊은 나무들이라
﹂난 솔직히 단장, 감독보다 코치들이 더 겁난다. 괜히 한수혁 건드려서 망쳐놓을까봐
﹂일단 투수는 올해 안 한다고 했으니 타격코치부터 교체해야 함. 안 그러면 방망이 짧게 잡고 밀어치는 한수혁을 보게 될 수도 있음
﹂야;;; 쓰바, 생각만 해도 무서운 소리 하지 마라. 요즘 누가 결대로 밀어치느니 그딴 소리 한다고
﹂농담 아님. 우리 팀 타격코치는 혼자 90년대에서 야구하는중
﹂하아···
유난히 시끌벅적했던 2026 시즌이 종료되었다.
시즌 전부터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인천 레인저스가 서울 매지션스를 4승 무패로 가볍게 누르며 한국시리즈 위너가 되었다.
지난 94년 이후 32년만에 우승에 도전하던 매지션스의 침몰.
라이벌 팀의 불행에 대해 기뻐하던 워리어스 팬들은 이제 조용하기만 한 스토브리그에 대해 성토하는 중이었다.
모기업이 바뀌었으니 숙청 작업은 당연했지만,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 손을 댈 수 있을 지가 관건이었다.
대부분의 팬들과 전문가들은 워리어스의 조직개편이 소폭에 그칠 것이라 예상했다. 45년간 고여 있던 조직을 쉽게 건드리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1월의 첫 번째 월요일,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서울 워리어스 새 단장에 한국 야구 레전드 박재철 선임>
<메이저리그 통산 140승 대 투수 박재철, 왜 서울팀 단장에?>
<박재철에게 감독직 제안했던 대전 팔콘스 당황>
<워리어스 박재철 신임 단장 “워리어스의 목표는 우승”>
﹂씨바, 이건 또 뭐야··· 진짜임?
﹂놀랍게도 실화임
﹂박재철··· 이 양반이 왜 여기서 나오냐
﹂난 괜찮은 거 같은데? 이름값 하나는 최고잖아
﹂이름값으로 단장 하나? 아니, 서울에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이 대체 뭘 하겠냐고. 파벌 사이에 짓눌려서 아무 것도 못할 걸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박재철 정도면 함부로 못 건드릴 것 같은데
﹂건드리진 못하겠지. 문제는 박재철도 워리어스 고인물들 못 건드린다는 거잖아
﹂어쨌든 지금 단장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냐?
﹂그야···
박재철 단장의 선임에 대해서는 팬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확히 반반으로 갈렸다.
신선하다, 이름값만으로는 역대 최고다 라는 반응과, 연고도 없는 구단에 와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으로 나뉜 것이다.
“야, 정민식 단장. 울더라. 나이 쉰 넘은 양반이.”
“울어···?”
“너무 아쉽고 억울하다고, 올해야 말로 우승 적기인데 이대로 떠날 수는 없다고 책상 붙잡고 울더라. 간신히 달래서 집으로 보내드렸다.”
“흠.”
이래저래 대단한 양반이다. 눈치가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건 워리어스에서 해임된 정민식 단장이 불과 사흘 후 라이벌 매지션스 단장으로 취임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워리어스의 최대 라이벌 팀으로 옮겨간 것이다.
같은 잠실야구장을 사용하기에 오늘 아침에도 성훈이 형과 복도에서 마주쳤다고 했는데, 아무 사심 없는 표정으로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하드란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이미 팀을 떠난 양반이 아니고 새로 팀의 단장이 된 박재철이다.
이제 막 스토브리그가 시작된 것뿐인데 성훈이 형의 얼굴이 벌써 5년은 늙어 보인다.
“왜, 또 뭐가 잘 안돼?”
“···말이 너무 많아.”
“아···”
“어제 첫 출근해서 사장실에서 나랑 두 시간, 그리고 팀장들 모아 놓고 또 세 시간, 토탈 다섯 시간 동안 혼자 떠들고 갔다.”
“굉장하네···”
“아무튼 네 말대로 열정이 철철 넘치더라. 몇 년 동안 꼴찌 한 건 까맣게 잊었는지 내년 목표는 우승이라고, 무조건 우승시킬 거라고 큰소리 땅땅 치대.”
“흠.”
의욕이 넘치는 건 좋은 일이다.
워리어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좀 전투적이고 적극적인 단장이 필요했는데 역시 박재철이 적임자였다.
그나저나 이 형, 혼자서 많이 힘든가보네. 얘기라도 열심히 들어줘야지.
“어묵 탕이라도 하나 더 시켜줘?”
“야, 나 혼자 술 마시는데 무슨 안주··· 아니다. 그래, 하나 더 시키자. 내일 아침 것까지 다 먹어놔야지.”
금세 끝날 것 같던 저녁 식사 자리가 길어지고 있다.
나야 제이콥이 짜준 식단 외에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기에 이 자리에서도 닭가슴살과 오이, 당근으로 허기를 채우고 있지만 말이다.
“독한 놈··· 너 원래 그렇게 독했냐? 닭꼬치랑 어묵탕을 앞에 두고 그게 넘어가?”
“뭐, 그냥 저냥 먹을 만 한데.”
“그래? 어디··· 뭐야, 이거 진짜 완전 순살이네? 양념도 전혀 없는?”
“양념된 건 닭가슴살이 아니지.”
“···그래, 네가 다 해먹어라. 올해 신인상, MVP 다 타 먹어.”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메이저리그 시절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습관일 뿐이다.
인종에서 오는 벽을 뛰어 넘기 위해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맛있는 식사에 대한 욕심을 깨끗이 놓아버렸다.
음식이란 내게 그저 야구를 하기 위한 에너지를 채워주는 딱 그 정도 의미에 불과했다.
어쩌면 나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 자체를 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닭 가슴살을 씹으며 형의 푸념을 들어주었다.
생각 외로 쌓인 게 많았나 보다.
힘들겠지. 아직 스물 중반에 불과한 나이에 프로야구단을 운영한다는 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거다.
성훈이 형도, 그리고 나도.
* * *
“네? 박 단장님. 지금 뭐라고···”
“이 팀은 썩었습니다.”
“아니, 일단 흥분부터 좀 가라 앉히시고···”
“2년 연속 꼴찌를 한 팀에 파벌이 세 개나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아니, 그래서 꼴찌를 한 거겠군요. 아무튼 싹 갈아엎어야 합니다.”
단장으로 취임한 지 불과 일주일.
프런트 직원들과 코칭스태프, 선수단에 대한 대략적인 파악을 끝낸 박재철이 벌개진 얼굴로 사장실을 찾았다.
그런 신임단장을 보며 박성훈이 인상을 푹 찡그렸다.
맞는 말이다.
단일 기업 아래에서 45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보낸 워리어스의 내부는 그야 말로 오염된 개미굴 그 자체였으니까.
학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친 집단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이뤄 서식하고 있는, 그러면서도 서로 생존을 위해 연계하고 있는 그런 엄청난 집단에 이제부터 손을 대야 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거 시절부터 모든 일에 진심인, 하다못해 수다를 떠는 데조차 진심인 이 남자는 이번 일에 목숨을 걸 기세였다.
“싹 다 갈아엎겠습니다!”
“그, 의욕은 좋은데···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면.”
“아뇨, 이건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가 만들어가려는 팀은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 정도 각오였으면 차라리 야구단을 하나 사서 구단주를 하지 그랬냐는 말이 박성훈의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다가 쑥 들어갔다.
뭐 좋다. 어차피 그에게 바란 게 이런 거였으니까.
생각보다 훨씬 많이 일이 과격해질 것 같기는 하지만.
“1차적으로 감독, 타격코치, 투수코치, 배터리코치, 퀄리티코치, 그리고 2군 코칭스태프 전원, 다 교체해야 합니다!”
“저기··· 그러면 야구는 누가?”
“차라리 제가 혼자 다 하겠습니다. 그래도 지금 있는 사람들보다는 나을 걸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박성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안 될 말이다. 동네 야구도 아니고 말이다.
자신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걸 아는지 박재철 역시 굳이 말을 더하지 않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일단 감독부터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단주님.”
“감독이요?”
“네, 프로야구에 있어 감독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하지 않아도, 아, 제가 저번에 말씀드린 적이 있나요? 제가 처음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의 일인데 말이죠···”
“스탑!”
“···마이너리그에서 처음 만난 감독이, 흠, 아쉽군요. 일단 이 이야기부터 듣고 나면 좀 더 이해가 쉬우실텐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는 감독이 아니라 단장을 또 한 번 교체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박성훈이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아무튼 감독은 무조건 교체해야 합니다. 조직개편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올해 팀에 좋은 선수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한수혁 선수야 뭐 말 할 것도 없고, 그 외에도 잘만 가르치면 즉시 전력이 될 선수들이 몇몇 보입니다.”
“다행이군요.”
“고로 시즌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 저 허수아비 감독부터 쳐내고 코칭스태프 전체를 물갈이 해야 합니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
“단장님이 생각하는 감독 후보는 누구입니까?”
“일단 워리어스 출신이면서 기존 구성원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그런 인물이 필요합니다.”
“그런가요?”
“네, 생각해보십시오. 저나 구단주님이나 워리어스에 어떤 연고도 없습니다.”
“그야 그렇죠.”
“그러니 신임 감독은 능력보다는 지금 우리에게 없는 정통성을 갖춘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원칙적으로 맞는 얘기네요.”
박성훈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장실 의자에 몸을 기댔다.
스물 중반에 불과한 풋내기 구단주에, 이 팀에는 전혀 연고가 없는 메이저리거 출신 단장.
그런 프런트와 선수단 사이를 조율할 감독에게는 정통성과 힘이 필요했다.
또한 워리어스의 기존 썩은 물들과 한통속이 될 만한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워리어스에 영향력이 있으면서, 또 기존 파벌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있죠.”
“누구···?”
“그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제가 한국야구에 대해 처음으로 공부를 했을 때로 돌아가야 하는데···”
“박 단장님, 제발···”
“흠, 네, 알겠습니다. 아쉽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해드리는 걸로 하고, 아무튼 제가 생각하는 감독은 단 한 명뿐입니다.”
오늘따라 박재철이 순순히 말을 줄이는 게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대준, 지금은 해설자군요. 그가 필요합니다. 구단주님.”
신임 단장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박성훈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이대준, 입단 첫해 신인왕을 시작으로 무려 15년 간 워리어스 한 팀에서만 뛴 레전드.
전성기만 해도 매년 3할 30홈런 100타점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워리어스의 1루를 10년 넘게 지키며 팬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전설적인 선수.
분명히 실력이나 이름값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는, 아니, 비교할 대상조차 없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저기··· 이대준 씨가 워리어스랑 어떻게 헤어진지는 아시죠? 단장님?”
“물론이죠.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독야청청하다가 정치 싸움에 휘말려 은퇴한 것으로 압니다.”
“그 과정에서 팀 내 모든 선수, 코칭스태프, 프런트와 척을 졌다는 것도 아시고요?”
“당연하죠.”
“그때 일 때문에 은퇴 후에 워리어스에도 코치 제안조차 못 받은 건요?”
“정신나간 짓이죠. 제가 뛰던 메이저리그에서는···”
“자, 잠깐. 일단 하던 얘기부터. 그런데 그런 사람을 데려온다는 건 지금 워리어스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면전을 선포하는 셈인데요?”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싹 다 갈아엎을 건데?”
“네에?”
“말씀드렸잖습니까, 구단주님. 전 지금 이 구단에 빌붙어 있는 쓰레기들을 일거에 다 쓸어버릴 생각입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단 한 번에.”
한때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호령하던 박재철이 눈에서 불을 뿜으며 구단주를 바라보았다.
‘뭔 놈의 눈빛이···’
그의 눈에 흐르는 광기를 본 순간 박성훈은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그의 온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수혁아··· 어쩌면 우리가 열면 안 되는 봉인을 열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