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9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92화(93/412)
#92. 대전의 착각
“정태호 파이팅!”
“태호야, 잘하자!”
“오늘 완봉 한번 가자!”
서형주와 트레이드 되며 대전 유니폼을 입게 된 정태호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팔콘스 코칭스태프는 철저하게 홈 경기에만 그를 등판시켰다.
트레이드 후 중간계투로 한 번, 그리고 선발로 두 번, 총 12이닝을 던지며 실점은 단 3점뿐.
자신과 유니폼을 바꿔 입은 서형주가 워리어스의 새 리드오프로 맹활약을 하며 주변이 시끄러웠지만 정태호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알게 뭔가. 지금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편한 것을.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것에 지쳐 있던 그에게 부모님이 기다리는 고향집,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구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드나들던 팔콘스의 홈구장은 너무나 큰 안식을 주었다.
그런 정태호가 오늘 세 번째 선발등판에서 친정팀 워리어스를 만나게 되었다.
1회초 워리어스의 선공
타석에 들어선 건 자신과 트레이드 된 신인, 서형주였다.
팔콘스에 1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했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나듯이 다른 팀으로 떠난 선수.
하지만 팀을 옮긴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날아다니며 워리어스의 새로운 리드오프로 자리 잡은, 팔콘스 프런트와 팬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기도 한 선수.
오늘 경기 전 덕아웃에서 느낀 분위기는 이랬다.
‘서형주, 저 자식 암만 봐도 우리 팀에 있을 때는 일부러 태업한 거 같은데.’
‘설마, 태업하다가 지 인생 좆 되면 어쩌려고 그런 짓을 했겠어. 운이 좋아 트레이드 되면서 그나마 일이 풀린 거지.’
‘논리적으로는 그게 맞는데… 하아, 이상하게 꼴 보기 싫으네.’
‘꼴 보기 싫으면 뭐 어쩔 건데? 시비라도 걸어보게? 아서라.’
딱 거기까지만 듣고 덕아웃을 빠져나왔다. 더 이상 듣다 보면 자기에게 빈볼이라도 던지라 할 것 같아서.
애초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신인에게 빈볼을 던질 이유도 없지만, 설사 누가 시킨다고 해도 절대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장덕수와 한수혁, 저 두 녀석이 얼마나 위험한 놈들인지는 같은 팀이었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설마하니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자신을 쥐어 패지는 않겠지만…….
‘으……!’
세상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다. 설사 감독이 지시하더라도 그런 위험 부담은 감수하고 싶지 않다.
‘야구나 열심히 하자.’
* * *
좌타석에 들어선 서형주가 배터박스의 흙을 툭툭 골라내며 타격 자세를 잡았다.
7월 첫주 현재 타율 0.257, 출루율 0.343, 장타율 0.388, 홈런 3개, 20타점, 18도루를 기록 중인 워리어스의 톱타자.
워리어스 유니폼을 입은 후 플레이 스타일이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서형주라는 타자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바로 팔콘스였다.
수년간 그를 지켜보고 1라운드에서 지명을 한 게 바로 팔콘스이니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코스의 공에는 초구부터 배트가 나오지만 필요할 때는 풀카운트까지 기다릴 줄 아는 참을성과 선구안을 가진 선수.
단 하나의 약점은 바로 장타력. 빠른 배트 스피드를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배트를 짧게 잡고 간결하게 끊어치는 선수인지라 맞아도 장타는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서형주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쪽 포심.’
‘끄덕’
한번 볼카운트가 불리해지기 시작하면 오히려 투수만 더 힘들어진다.
어차피 맞아봐야 단타. 도루 능력이 있다는 게 문제이지만 그건 볼넷으로 내보냈을 때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정태호의 몇 안 되는 장점이 바로 묵직한 포심의 구위다.
그렇기에 팔콘스 배터리는 몸쪽 포심을 초구로 삼아 빠른 승부를 유도했다.
아직까지도 얼굴에 웃음기가 남아 있는 정태호의 손에서 힘차게 공이 뿌려졌다.
슈웅
그리고 다음 순간.
따아아아악!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서형주의 방망이가 돌았다. 스트라이크 존 가장 안쪽에 거의 걸치다시피 들어오던 배트와 공이 한 점에서 만났다.
– 아앗! 이거 큽니다! 정태호 선수가 던진 초구를 서형주 선수가 제대로 받아쳤습니다! 우익수가 뒤로, 뒤로, 뒤로, 담장 앞에서 점… 프까지 해봤지만 잡지 못했습니다! 서형주 선수가 선두타자 홈런을 기록합니다!
– 제대로 맞았네요! 느린 화면 보시죠. 좌타자 몸 쪽으로 들어오는 잘 제구된 포심이었는데 서형주 선수가 이미 그 코스를 예측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즌 4호 홈런, 서형주 선수가 활짝 웃으며 그라운드를 돕니다!
– 서형주 선수로서는 오랜만에 장타가 터졌군요. 아, 이적 후 처음으로 친정팀을 상대하게 된 정태호 선수로서는 뭔가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많이 아쉬워하는 표정입니다.
– 괜찮습니다. 이제 1회잖아요? 지금부터 잘 던지면 됩니다.
“봤지? 봤지?”
“…두고 봐라. 나도 친다.”
“흐흐, 글쎄. 그게 네 맘대로 잘 될까?”
홈런을 치고 들어온 서형주가 안치욱의 어깨를 툭툭 치며 도발했다.
저 두 녀석은 같은 좌타자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을 거의 찾기 힘든 선수다.
서형주가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타격법으로 바꿔가는 타입이라면, 안치욱은 자신만의 정형화된 타격 자세에서 나오는 강한 타구를 그라운드 우측으로 날릴 수 있는 타자다.
아, 공통점이 하나 있긴 하구나.
나만 보면 자꾸 넘어서겠다느니 그런 소리를 해대는 거.
특히 이놈 서형주는 증상이 조금 심각한 편이다.
“딱 기다려라, 한수혁. 내가 금방 따라잡을 테니까.”
“나 홈런 스물아홉 개, 넌 이제… 몇 개더라. 4개짼가?”
“…그건 내가 시즌 초반을 날려 먹어서.”
“그럼 한 열 개쯤 더해 줄까? 그렇게 계산하면 14개네?”
“…….”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할 수 있는 거부터 해.”
“젠장.”
덩치 큰 삽살개를 연상시키는 안치욱과 달리 서형주 이놈은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 여우같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가끔 선을 넘으려는 경향이 있다.
녀석의 헛소리를 가볍게 차단해준 후 다시 타석에 선 안치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즌 초반만 해도 장타와 정교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타격 매커니즘이 이제 완전히 제 자리를 잡았다.
시즌 타율 0.295, 출루율 0.352, 장타율 0.421, 거기에 6개의 홈런과 35개의 타점까지.
OPS만 놓고 보면 0.773으로 그다지 뛰어나 보이지 않지만 그건 안치욱이라는 타자의 정체성이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인 타격을 한다는 것, 그렇기에 출루율에서 조금 손해를 본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생산성 측면에서 보면 별로 대단할 것 없을지 몰라도, 1번과 3번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기에는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심지어 타구의 대부분이 1-2루간 깊은 코스로 형성이 되기에 범타로 물러날 때도 진루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안치욱이 정태호의 초구를 받아쳤다.
따아악!
1루 베이스 옆을 스치고 간 타구가 우측 파울라인 안쪽에서 바운드 된 후 외야로 굴러간다.
주력만 놓고 보면 선발 라인업에 들어간 타자들 중 가장 느릴지도 모를 안치욱이 죽을 힘을 다해 2루를 향해 뛰었다.
“세이프!”
요즘 야식 관리를 안 해서 그런지 뱃살이 출렁거리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다시 한번 고삐를 조여야 할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만들어진 무사 2루 찬스.
경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불긋불긋 혈색이 돌던 정태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수도 없이 본 익숙한 얼굴이다. 대전이 아닌 다른 구장 마운드에서 섰을 때의 바로 그 얼굴이니까.
“타자, 타석으로.”
잡생각은 이쯤에서 그만.
이제 안치욱, 저 녀석을 홈으로 불러들일 시간이다.
* * *
– 아! 정태호 선수가 친정팀을 상대로 등판한 경기에서 1회부터 큰 위기를 맞습니다. 선두타자 서형주 선수에게 홈런, 그리고 2번 안치욱 선수에게 2루타를 허용한 후 이제 한수혁 선수를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 좆 됐… 죄송합니다. 대전으로서는 큰 위기네요. 한수혁 선수의 기록을 보시죠. 타율 0.424, 출루율 0.527, 장타율 0.977, 거기에 홈런 29개, 55타점을 기록 중인 타자입니다. 저 같으면 이거 승부 못 합니다. 심장 떨려서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 그렇다고 거르자니 그 뒤 타자도 만만치 않죠?
– 맞습니다. 타율 0.310에 13홈런 41타점을 기록 중인 조성오 선수가 뒤에서 기다리고 있고, 그 위기를 넘어선다 해도 장덕수와 월터 스미스, 두 우타 거포들을 또 상대해야 합니다.
– 끔찍하네요. 고동식 위원님, 워리어스 타력이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걸까요? 제가 투수라고 생각하니 식은 땀이 절로 나는군요.
– 네, 지금 정태호 선수 얼굴을 보세요. 허옇게 질린 것이 당장이라도 쓰러… 흠, 사실 시즌 초반에 비해 크게 선수가 보강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중심타선에 들어서고 있는 장덕수 선수나 조성오 선수는 오래전부터 워리어스에서 뛰던 선수이니까요.
– 쉽게 말하면 기존 선수들의 기량이 동시에 올라왔다, 이렇게 보면 되겠군요?
– 제가 몇 번 말씀드렸듯이 이 모든 게 한수혁 선수의 입단으로부터 시작된 나비효과입니다. 중심타선도 그렇지만 1, 2번 타자들을 보세요. 한수혁 선수가 뒤에서 버티고 있으니 투수들이 못 피해 가죠? 그러니 마음 놓고 치는 겁니다.
– 예전에 위원님께서 개인 방송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 제가요? 무슨 말을 했죠?
–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하지만 어쩌면 처음으로 그런 선수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던 그 말 말입니다.
– 하하, 네, 제가 처음에 그 말을 했을 때만 해도 모두가 절 비웃었죠. 하지만 어떻습니까? 빈약한 선수단 뎁스와 여전히 부족한 투수력을 갖고도 워리어스가 계속 3, 4위 싸움을 이어가는 걸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나운서가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아나운서국에서 온 메시지에는 ‘좋아, 조금 더 강하게’라고 쓰여 있었다.
이보다 더 강하게 하라고? 마음 속으로 뭔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그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월급쟁이에 불과했다.
– 위원님, 그럼 위원님께서는 이번 시즌 워리어스가 계속 이런 성적을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하시는 건가요?
– 만약 거기에 돈을 걸 수 있다면 제 전 재산을 배팅하겠습니다.
– 음, 지금 그 말씀은 듣기에 따라 상당히 위험하게 들릴 수 있는…….
–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나갔군요. 아무튼 저는 확신합니다. 올 시즌 가을 야구 판도의 가장 큰 변수가 워리어스가 될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한수혁 선수가 자리 잡고 있을 거고요.
* * *
“플레이!”
서형주와 안치욱, 그 이전까지 이 팀의 1, 2번을 맡던 이창모, 최민석 선배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테이블 세터.
저 조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다.
최근 들어 이대준 감독이 이창모나 최민석을 2번으로 올리고, 대신 안치욱을 6번 정도에 배치하는 걸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 초반에만 해도 좌타자 일색이던 중심타선이 우타자로 도배되는 데 따른 즐거운 고민일 것이다.
일단 그건 나중 일이고, 당장 중요한 건 오늘 이 경기다.
“볼.”
평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얼굴, 그러니까 불안감과 초초함에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을 한 정태호의 초구가 어이없이 높은 코스로 들어왔다.
“볼.”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던진 포심이 하마터면 폭투가 될 뻔했다. 2루 주자가 안치욱이 아니라 서형주였다면 3루까지 갔을 법한 그런 공이었다.
“타임, 마운드 좀 다녀오겠습니다.”
“너무 시간 끌지 말고.”
“네, 네.”
대전의 포수 안철용이 안 되겠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마운드로 올라갔다.
나도 모르게 양팀 덕아웃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대전 덕아웃에 감도는 무거운 침묵, 반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워리어스 덕아웃의 분위기.
대전은 오늘 경기를 준비하며 여러 모로 칼을 갈았을 것이다.
지난 트레이드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면 정태호가 활약해 줘야 했다. 비록 그 결정을 내린 건 구단주이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책임을 지는 건 결국 실무진이니까.
대전 마운드를 세상 어느 곳보다 편안하게 느끼는, 그리고 그만큼 강해지는 정태호 선배를 믿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저들이 하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
정태호가 이곳 대전 마운드를 편하게 느끼는 만큼, 워리어스 선수들 역시 정태호를 편하게 느낀다는 것.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주 만만하게 본다는 것.
“흐압!”
슈웅
정태호가 살짝 맥 빠진 기합소리와 함께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
노아웃 주자 2루, 내 뒤에는 최근에도 맹타를 이어가고 있는 조성오 선배, 우타 거포인 장덕수, 월터 등의 타자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볼 카운트 투 볼 노 스트라이크로 몰린 투수가 던질 공은?
뻔한 거지.
따아아아악!
– 쳤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친 타구가 새까만 점이 되어 솟구쳤습니다! 좌익수 뒤로! 뒤로! 뒤로! 넘어 갔습니다! 홈런! 투런 홈런! 한수혁 선수가 마침내 7월 첫째 주 3연전 첫 경기에서 시즌 30호 홈런을 기록합니다!
– 대단합니다! 방금 공은 거의 예측하고 받쳐 놓고 쳤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네요. 아! 아직 전반기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30호 홈런! 정말 멋집니다! 한수혁 선수의 홈런 신기록 도전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