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9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93화(94/412)
#93. 많이 컸네
쾅!
꼴 보기 싫은 서형주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내준 걸로도 모자라 다시 한수혁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한 정태호.
지난 트레이드로 인해 엄청나게 손해를 본 느낌이지만 그래도 정태호가 생각보다는 잘 던져준다는 것에 안도하던 팔콘스의 사장이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안 아프세요?”
“시끄러…….”
“거기 피도 나는 거 같은데…….”
“…대일밴드 좀 가져와. 거기 책장 밑에 두 번째 서랍.”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팔콘스 단장 양두석이 서랍을 뒤져 밴드를 가져와 사장에게 내밀었다.
“사장님도 참, 연세를 생각하셔야지.”
“시끄럽고! 하아, 미치겠네. 오늘 경기 회장님도 보고 계시려나?“
“저야 모르죠.”
“정태호 저놈, 오늘 경기 자신 있다고 했다며? 그런데 왜 저 모양인데? 어, 어, 저거 또 크다!”
그 말을 하는 순간 4번 조성오가 친 타구가 우측 담장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안 돼!”
“오 노!”
팔콘스 사장과 단장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비명을 지르던 그 순간.
“하아…….”
“휴우….”
담장을 넘어가려던 타구가 펜스 바로 앞에서 팔콘스 우익수에게 잡혔다.
십년 감수했다. 저거마저 넘어갔으면 보나마나 1회 강판 각이다.
“양 단장아.”
“네, 사장님.”
“우리 그냥 같이 사이좋게 사표 던지고 어디 가서 치킨이라도 튀길까?”
“진심이세요?”
“이거 심장에 너무 안 좋은 거 같다. 나 가뜩이나 혈압 높은 거 알지? 이러다 진짜 죽겠다.”
“아들 유학비랑 딸 결혼식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게, 그러니까… 허억! 안 돼!”
이제는 끝난 줄 알았던 정태호의 위기는 계속되었다.
4번 조성오를 간신히 잡아낸 정태호가 다시 5번 장덕수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그리고 다음 타자인 월터 스미스 역시 안타. 원 아웃 주자 1, 2루.
팔콘스 사장과 단장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고, 결국 정태호가 7번 이창모와 8번 김수학을 범타로 잡아낸 것을 확인한 후에야 밀렸던 숨을 몰아 쉴 수 있었다.
“후우… 진짜 거지 같아서 못 해먹겠네.”
“사장님, 오늘 끝나고 한 잔 하실래요? 제가 사겠습니다.”
“…진짜 그래야겠네. 이거 워리어스만 만나면 하루하루가 지옥이네, 정말.”
* * *
길었던 워리어스의 1회초 공격이 끝나고 1회말 팔콘스의 공격 차례.
우리 팀의 선발인 천상진 선배가 천천히 마운드를 향해 걸어갔다.
구단에서 전력분석팀의 전담 직원을 붙여준 후에도 여전히 천상진 선배는 그들의 SNS를 돌며 자신만의 염탐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떻게 아냐고? 밤에 또 스마트폰 하다가 나한테 딱 걸렸으니까.
그에게 물었다.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냐고, 어차피 구단 직원이 알아서 해주지 않냐고.
기껏 구단 예산을 사용해 신규 인력까지 채용했건만 선수가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나로서는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천상진 선배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그냥, 사람들을 알아가는 게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네.’
‘사람들을 알아간다고요?’
‘응, 요즘은 SNS만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현재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 무얼 하고 살고 싶은지 그런 게 다 보이잖아? 이게 진짜 재미있는 일이거든.’
그딴 게 재미있다고?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나처럼 인간관계를 지극히 제한하며 살아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 선배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어쩌면 저 선배는 타고난 인싸일지도 모르겠다.
얼굴 잘생겨, 말도 잘해, 거기에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니 뭐.
이거 말하다 보니 딱 바람둥이의 조건을 완벽히 갖춘 거 같은데.
“스트라이크!”
그런 천상진 선배가 오늘 대전의 1번 타자를 상대로 처음 선택한 공은 한가운데 포심이었다.
신기하다.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한가운데 들어오는 142㎞/h짜리 평범한 포심에 타자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게 만든 걸까?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천상진 선배가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의 입가에 맺힌 선명한 웃음이 뭔가 의미심장하다.
“볼.”
“볼.”
“스트라이크!”
볼 카운트 투 볼 투 스트라이크, 지난번 내게 시비를 걸었던 대전의 3루수이자 리드오프인 김세준이 입술을 꽉 깨물고 투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천상진 선배의 손 끝에서 공이 떠났다.
슈웅
“스트라이크! 아웃!”
“…….”
시속 115㎞/h짜리 슬로우 커브.
그 공을 그저 멍하니 쳐다보기만 한 김세준이 한숨을 푹 쉬며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뭐지, 방금 저 공을 던진 이유는 뭘까?
뒤에서 투수를 지켜보며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건 저 선배가 유일하다.
나중에 꼭 물어봐야지. 대체 왜 저런 공에 김세준이 배트도 내밀지 못한 건지.
따악!
다섯 개의 공을 던지게 했던 리드오프와 달리 대전의 2번 타자는 천상진 선배의 초구를 바로 공략했다.
존 바깥쪽에서 역 회전하며 들어오는 싱커가 방망이 끝에 걸렸고, 그 타구를 조성오 선배가 잡아 가볍게 베이스를 밟으며 투 아웃.
천상진 선배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월터에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방금 공은 투수가 아닌 포수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월터 역시 좋은 포수다. 그가 빅리그에 정착하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를 오르내린 건 수비의 문제라기보다는 타격, 그리고 부상에 의한 것이었다.
만약 그가 부상 없이 포수로 한 시즌을 풀로 뛸 수 있다면?
글쎄, 장덕수 선배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을 거다. 물론 지금 팀 사정상 월터는 포수가 아닌 주전 외야수를 맡아줘야 하지만.
언제든 투입될 수 있는 주전급 백업 포수를 보유하게 됐다는 건 장기 레이스에서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도리도리
끄덕
대전의 3번 타자 양승준이 타석에 들어섰다.
월터의 첫 번째 사인에 고개를 가로저은 천상진 선배가 두 번째 사인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덕수 선배와 호흡을 맞췄을 때와는 뭔가 다르다.
기본적으로 장덕수라는 포수가 투수의 판단을 존중하는 타입이라면, 월터 스미스는 그 인상이나 말투에서도 연상되듯이 조금은 독재자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마운드 위에 선 투수는 포수가 리드하는 대로 따라오는 게 옳다는 야구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생각한 공이 아니면 던지려 하지 않는 천상진 선배와 호흡이 어떨지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일단 첫 스타트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슈웅
따아악!
대전의 2번 타자에 이어 3번 타자 역시 초구에 방망이가 나왔다.
3루수와 유격수 사이, 정확히 말하면 3루수에 보다 가깝게 날아오는 타구.
“안치욱!”
애매한 코스로 타구가 날아올 때는 아직도 멈칫하는 버릇이 있는 놈이다.
그럴 때는 이렇게 콜업을 해주는 게 도움이 된다.
내 목소리에 즉각 반응한 안치욱이 망설임 없이 앞으로 한 발자국 전진하며 타구를 낚아챘다.
최근 녀석은 홈 경기가 끝난 후에 제이콥에게 송구 동작 교정을 받고 있다.
강한 어깨를 가진 탓에 저도 모르게 들어버린 나쁜 버릇 몇 가지를 지적 받았기 때문이다.
훈련의 효과가 있는 걸까, 예전보다 훨씬 가볍고 부드러워진 송구가 1루를 향해 날아갔다.
“아웃!”
“좋았어!”
스스로도 뭔가 달라진 것을 느끼는지 안치욱이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좋냐?”
“뭐?”
“이제 겨우 출발선상에 선 건데 그렇게 좋냐고.”
“뭐래…….”
* * *
천상진 선배가 1회를 가볍게 막아낸 가운데 다시 2회초 워리어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방금 전 호흡을 맞춘 월터와 천상진 선배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영어 공부에 열심이라는 천상진 선배는 통역 없이도 제법 대화다운 대화가 가능한 모양이다.
“이봐, 마지막 공은 좋았어. 왜 그 코스를 던지려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네 판단이 맞았군.”
“조금만 천천히 말할 수 있을까? 그럼 통역이 없이도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데.”
“아, 이런, 미안. 내 실책이군. 어쨌든 좋아. 내 말은 바로 이거야. 조금 더 네 판단을 믿어보겠다는 것.”
“다행이네.”
이번 시즌 저 두 사람이 몇 경기나 더 호흡을 맞추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배터리 간의 신뢰가 쌓여 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맥스와 장덕수 선배가 거의 동시에 부상을 당했을 때만 해도 앞이 깜깜했는데, 이게 이런 식으로 전화위복이 되다니.
그렇게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9번 타자 최민석 선배가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7월 첫주 현재 0.285의 타율에 출루율 0.359, 장타율 0.395, 거기에 홈런 4개와 29타점, 11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타자.
어쩌면 우리 팀의 타선이 힘을 내고 있는 데는 9번에서 저런 성적을 거두고 있는 최민석 선배의 지분이 상당할지도 모르겠다.
당장 1번이나 2번으로 뛰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성적.
누군가는 얘기한다.
그가 매지션스에서 몇 년간 제자리를 잡지 못한 건 놀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 탓이라고.
지금 당장은 그럴듯한 성적을 내고 있지만 딱 저기까지일 거라고, 바로 저기가 최민석이라는 선수의 한계라고.
내가 해줄 말은 딱 하나다.
헛소리하지 말고 꺼지라는 말.
트레이드 전에 그런 소문이 있기는 했지만 실제 팀에 합류한 이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최민석이라는 선수는 타순이나 수비 위치와 상관없이 자신의 몫을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놀기 좋아한다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자신의 할 일을 다 한 후에 노는 건 그 선수의 자유다. 예전에는 그저 주전이 아니어서, 성적이 생각보다 잘 안 나와서, 그래서 필요 이상의 욕을 먹은 것뿐이다.
원래대로였다면 매지션스의 3번 타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선수가 지금 워리어스의 9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대준 감독의 구상처럼 안치욱이 다시 중심타선으로 돌아온다면 저 선배가 2번으로 서는 그림도 괜찮을 거 같다.
따아악!
아,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잊고 있던 게 있었다.
매지션스에서 뛰던 당시 최민석 선배가 정태호를 상대로 12타수 8안타를 기록했었다는 것.
1회에 이어 또다시 무사에 주자가 1루로 나갔다.
그리고 서형주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정태호의 멘탈이 흔들리는 게 여기 대기타석에서도 보일 정도다.
투수의 머릿속에는 첫 타석에서 서형주에게 얻어 맞은 홈런의 잔상이 남아 있을 것이다.
“볼.”
그걸 의식해서인지 초구 바깥쪽으로 많이 빠지는 공이 들어왔다.
서형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타석에서 한 발 물러서 크게 스윙을 해본다.
누가 봐도 또 한 번 큰 것을 노리는 타자의 자세다.
“볼.”
대전 마운드에 서며 간신히 진정되었던 정태호의 제구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다.
투 볼 노 스트라이크에 몰린 정태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바깥쪽 가장 낮은 코스로 포심을 뿌렸다.
그 순간 최민석 선배가 움직였다.
탓.
“어어!”
투수의 손 끝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최민석 선배가 바로 스타트를 끊었다.
순간 대전의 내야가 크게 출렁거렸다. 유격수가 자동으로 2루 베이스 커버를 위해 움직이고, 3루수가 빈 공간을 커버하기 위해 살짝 무게 중심을 좌측으로 옮기는 순간.
툭.
서형주가 댄 기가 막힌 번트 타구가 그 빈 공간으로 굴러 갔다.
투수가 잡기 힘든, 하지만 도루 때문에 몸의 중심을 이동시키던 3루수와 유격수 역시 반응하기 힘든 그런 코스로.
“세이프!”
1루 주자는 2루에서, 그리고 타자 주자는 1루에서 올 세이프.
발 빠르고 재치 있는 타자 둘의 시너지가 바로 이런 거다.
대전 배터리와 내야진을 완전히 갖고 논 최민석과 서형주가 서로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권총 세레머니를 해댔다.
내가 봐도 진짜 얄미운데, 저거.
어쩌면 다음 타자인 안치욱에게 빈볼이 날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한때 같은 유니폼을 입었던 선배의 얼굴에 펀치를 날리기는 싫으니까.
애초에 대전 선수였던 서형주, 그리고 매지션스에서 오래 뛴 최민석과 달리 데뷔 전부터 워리어스의 팬이었던, 그래서 정태호라는 투수와도 나름 정이 들었던 안치욱이 신중한 자세로 타석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헬멧을 벗고 투수를 향해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였다.
“많이 컸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안치욱에 대한 칭찬이 흘러나왔다.
방금 저 행동은 안치욱이 옛 동료이자 선배에게 보내는 인사이자, 쓸데없는 짓 말고 야구만 하자는 무언의 압력과도 같은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던 애송이 주제에 저런 계산까지 할 줄 알다니.
그렇게 자칫하면 달아오를 뻔하던 분위기를 차분하게 진정시킨 안치욱이 투수를 노려보았다.
날아가려는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고 버티던 정태호가 안치욱을 향해 초구를 던졌다.
그리고 엄청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따아아아악!
팔로스로우를 마친 안치욱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이 날린 거대한 타구를 바라보았다.
– 무사 1, 2루 찬스에서 안치욱 선수가 친 타구가 멀리, 멀리, 계속 날아가서, 넘어갔습니다! 넘어갔습니다! 석 점 홈런! 3 대 0에서 다시 6 대 0으로 점수를 벌리는 거대한 홈런이 터졌습니다!
– 대단하네요! 이로써 오늘 워리어스의 1년 차 신인 트리오, 1번 서형주, 2번 안치욱, 3번 한수혁, 세 선수가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2회초 스코어 6 대 0,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정태호가 쓸쓸히 마운드에서 강판당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