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9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97화(98/412)
#97. 또 다른 지원군
처음 이 꼴찌 팀의 단장을 맡아 부임하고, 팀 내 전력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을 때 박재철은 한수혁을 외야수로 기용하는 방안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재철이 생각하는 외야수의 첫 번째 덕목은 바로 공격력이었다.
일본 야구의 영향을 받은 전문가들 중 일부는 외야수의 주력과 수비력을 최우선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박재철은 좌익수와 우익수의 경우 적어도 1루수에 준하는 공격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중견수 역시 마찬가지다. 가끔 유격수와 2루수, 중견수를 한 카테고리로 묶어 공격력보다 수비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박재철은 이에 대해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스프링캠프 당시 워리어스의 외야진은 황폐함 그 자체였다.
용병이 맡았던 우익수는 논외로 하고, 주전 중견수는 2할 중반대의 타율에 별다른 장점 하나 없는 김수학이었으며, 좌익수는 수비력이 최악에 가까운 강진석, 혹은 지난 시즌 1할대의 타율을 기록한 하용대가 주전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박재철로서는 한수혁을 주전 좌익수, 혹은 중견수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매지션스로부터 최민석을 받아오고, 유격수 자리에서 한수혁이 맹활약을 하며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와아아!”
이제 1회말이 끝났건만 스코어는 벌써 4 대 3, 양팀 합쳐 일곱 점이 나버렸다. 박재철은 오늘 경기가 아주 길어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공격을 마친 워리어스 선수들이 이제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뛰어나가고 있다.
좌익수 최민석, 중견수 서형주, 우익수 월터 스미스.
시즌 초와는 전혀 달라진, 이제 어느 팀과 비교해도 전혀 밀릴 게 없는 워리어스의 외야진이다.
좌익수 최민석은 사실 다른 팀이었다면 주전 중견수이자 붙박이 리드오프가 되었을 그런 선수다. 잘 치고, 발 빠르고, 수비도 좋고, 거기에 단독 도루 능력까지 갖췄다.
장타력이 부족하다는 게 흠이지만 팀 타선의 밸런스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본래 공격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써야 할 유격수 자리에서 한수혁이 미친 듯이 장타를 쳐주고 있으니 오히려 최민석 같은 타입의 선수가 더 유용하게 느껴진다.
만에 하나 서형주가 부상으로 빠지면 대신 중견수 겸 1번 타자로 나설 수 있는 선수다.
중견수 서형주는 정말 만족스럽다. 저 선수를 데려오려고 자신을 이뻐하던 팔콘스 구단주의 뒤통수를 쳤다. 그 팀의 사장, 단장과는 웬수 지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박재철은 이 팀에서 단장으로 일한 후 야구계를 완전히 떠날 생각이니까.
감독이나 코치에는 별 흥미가 없고, 단장까지 해봤으니 남은 건 사장인데… 글쎄, 차라리 어디 가서 작은 구단을 하나 사서 구단주를 하면 모를까, 사장에는 별 관심이 없다.
“파이팅!”
“파이팅! 자, 다들 힘내고!”
워리어스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를 격려하는 소리에 잠깐 찾아 들었던 상념이 끝나버렸다.
‘최민석, 서형주, 월터 스미스 주전에 김수학, 강진석, 하용대 백업…….’
사실 좀 부족하다. 3명의 주전과 나머지 백업 사이의 기량 차이가 크다. 하지만 다행히도 2군에 외야 유망주들이 몇 명 있다.
잠깐 뭔가를 고민하던 박재철이 수첩에 뭔가를 또 적어내려갔다.
-외야 백업 멤버, 트레이드보다는 자체 육성 쪽으로 가닥.
다가올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야수진에 대해 보강할 계획을 대충 정리한 박재철이 양복 안 주머니에 수첩을 접어 넣으며 크게 소리쳤다.
“워리어스 파이팅!”
* * *
수원을 상대할 때 가장 까다로운 건 1번부터 4번까지 나서는 좌타 라인이 모두 각기 다른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다.
1번으로 나서는 유격수 안태규는 그라운드 이곳저곳으로 강한 타구를 보낼 수 있는 스프레이 히터에 가깝다. 시프트를 걸기도 힘들고, 루상에 나가면 단독 도루까지 가능해 투수의 신경을 자극한다.
그 뒤에 나오는 중견수 최연우의 경우에는 주로 잡아당겨 우측으로 보내는 타격을 즐긴다.
문제는 그쪽으로 시프트를 걸 경우 의식적으로 밀어 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팀의 안치욱과 비슷하면서 조금 더 발전된 타자라 할 수 있다.
3번 강태용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딱히 약점인 코스가 없고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할 줄 안다. 4번 피오 페르난데스의 경우 잘못 걸리면 바로 담장을 넘길 수 있는 파워히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팀에서는 되도록 수원과의 경기에 좌완 브룩스 파커나 천상진 선배를 매칭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5선발부터 시작되는 3연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중간계투진에 믿을 만한 좌완투수가 전무한 탓에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승부는 더욱 힘들어진다.
어쨌든 불평해 봐야 소용없다. 당장은 갖고 있는 전력으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볼.”
1회 석 점을 내준 이영주 선배가 다시 수원의 8번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환장할 노릇이다. 가뜩이나 제구에 어려움을 겪는 이영주 선배인데 오늘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상당히 좁다.
심판에 따라 달라지는 스트라이크 존.
이 문제 때문에 2024년부터 KBO에서도 AI 볼 판정 시스템 도입이 논의되었다.
이미 검증된 레퍼런스도 있었다. 2023 시즌부터 트리플A에서 AI 시스템을 도입했던 미국이 2026년부터 빅리그에도 그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낯설어했지만 도입 1년이 지난 지금 선수와 코치진, 감독, 팬들, 모두가 만족하는 성공 사례로 기록되었다.
선수와 코치, 팬들은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안 해서 좋고, 처음에는 자신들의 권위에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던 심판들도 스트라이크, 볼 판정에 대한 부담을 덜어서 좋고.
하지만 KBO에서는 아직도 AI 시스템의 도입을 망설이고 있는 모양이다. 내년, 내년 하면서 미루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다.
어쨌든 당장 불가능한 일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따아악!
수원의 9번 타자가 받아 친 타구가 2루 베이스 위를 타고 빠르게 날아간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나는 조금 뒤로, 그리고 2루 베이스 커버는 이창모 선배가 맡기로 사전 합의된 상황.
외야로 빠져나가려는 타구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가 슬라이딩.
턱
아슬아슬했다. 글러브 끝에 거의 걸치다시피 공이 걸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럴 때는 그 공을 다시 잡으려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 일단 몸을 일으켜 땅에 떨어진 공을 주워 들고 2루로.
“아웃!”
연계 플레이에 있어서는 어쩌면 10개 구단 2루수 중 최고일지 모르는 이창모 선배가 그 공을 잡아 베이스를 찍고 다시 1루로.
“아웃!”
“우와아아!”
야구장이 떠나갈 듯 터져 나오는 함성 소리에 온몸에 엔도르핀이 확 돋는다.
안치욱 놈이 살짝 입을 벌리고 박수를 치고 있고, 응원단상에 올라 있던 민예린은 그 위에서 텀블링을 하며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마운드에 서 있는 이영주 선배의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수혁아, 나이스.”
“선배님도요.”
“흐흐, 야구 재미있지 않냐?”
“진짜 재미있네요.”
공격에서 나와 콤비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가 서형주라면 수비에서는 단연코 이창모 선배다.
조금 아쉬운 것은 지금도 이렇게 대단한 이 선배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랬다면 좀 더 야구가 재미있었을 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
“아웃!”
무사 1, 3루가 될 뻔한 상황을 병살로 막아준 덕인지 다시 힘을 낸 이영주 선배가 수원의 리드오프 안태규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여전히 스코어는 4 대 3.
갈 길이 멀다. 오늘은 점수 차가 10점 이상 벌어지지 않는 한 절대 안심할 수 없는 날이다.
* * *
대부분의 팬들,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전문가들이 올 시즌 워리어스가 3위를 달리는 비결을 한수혁의 입단에 따른 타선의 업그레이드 덕분이라고 보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1번 서형주부터 시작해서 9번 최민석까지 이어지는 공격 라인업은 이제 나머지 9개 구단 어디와 비교해도 부러울 게 없는 응집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몇 가지 단점은 존재했다.
예를 들면 백업 멤버가 지나치게 약하다는 것, 그리고 한수혁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강하다는 것.
둘 다 당장 어쩔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선수단의 뎁스를 키우는 건 단시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수혁 같은 선수에게 나머지 선수들이 기대게 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 역시 한수혁의 존재에 의존하고 있는 마당에 누굴 탓하겠는가.
일단 야수 쪽은 그렇게 정리해 보자.
투수 쪽도 살펴봐야 한다.
누군가는 워리어스의 투수진을 허약하다 평가하지만 박재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동안 몇 차례 이 팀에 찾아온 위기, 그러니까. 한수혁이 출장 정지로 빠지거나, 혹은 다른 타자들이 부상으로 장기 결장을 당했던 시기를 생각해보자.
그럴 때마다 이 팀의 중심을 잡아준 건 다름 아닌 마운드 위의 투수들이었다.
라이언 스타크와 브룩스 파커, 이만식, 천상진, 이영주로 이어지는 선발 로테이션, 그리고 홍영식과 최정수 등의 필승조, 거기에 마무리 투수로 자리를 잡은 양기철까지.
누구 하나 특급이라 부를 수 있는 선수는 없지만 그래도 각자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팀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단 하나 아쉬운 것은 중간계투진, 정확히 말하면 필승조에서 뛸 만한 좌완 투수의 부재였다.
예전보다는 그 비중이 늘었다 해도 여전히 쓸 만한 좌투수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다.
웬만해서는 시장에 매물로도 잘 나오지 않는 데다가 FA로 풀리는 날에는 10개 구단이 전부 달라붙어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으음… 한수혁이 투타 겸업을 시작하게 되면 홍영식이나 최정수를 트레이드 매물로…….’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한수혁이 투수진에 합류하면 우완 투수 중 하나를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는 것.
얼마 전 박성훈 대표가 자신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수혁의 투수 데뷔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난 매지션스 전에서 보았던 그 말도 안 되는 강속구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정말일까? 올 시즌에는 힘들다고 했던 한수혁의 투타 겸업이 정말 현실로 다가오게 될까?
‘일단 그 생각은, 그래, 그건 나중에…….’
박재철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다시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수원의 용병 에이스와 워리어스 5선발 간의 맞대결로 진행된 오늘 경기.
수원의 우세일 거라 예상되던 경기가 한수혁의 활약으로 인해 난타전으로 변해버렸다. 그것은 워리어스가 무엇보다 바라던 것이었다.
그렇게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지며 8 대 8 동점이 만들어진 가운데 8회초 수원의 공격.
1번 안태규와 2번 최연우, 3번 강태용, 4번 피오 페르난데스로 이어지는 수원의 좌타라인.
오늘 경기에서 도합 7개의 안타를 터뜨린 수원의 좌타자들이 승리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워리어스의 덕아웃이 분주해졌다. 7회초를 무사히 막아낸 최정수가 마운드를 내려가고, 이제 새로운 투수가 불펜에서 나오고 있었다.
“킴, 오랜만에 1군 등판이군. 떨리지는 않나?”
“노 프라블럼, 잭슨.”
“좋아, 아주 바람직한 자세야. 자, 제군들. 오늘 이 자신만만한 친구를 승리투수로 만들어주자고.”
시범 경기 도중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던 트레이드.
정기호와 송기태를 내주고 대신 받아온 최민석은 이제 이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주전 외야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잊혀져 있던 또 다른 영입 선수 김두영.
박재철의 강력한 주장으로 트레이드 대상에 포함되었던 그 투수가 올 시즌 첫 번째 투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펑!
펑!
2군에서 오랜 시간 출격 준비를 해온, 투수 출신인 박재철이 오랜만에 선수 지도까지 하게 만든 좌완 계투요원.
남은 시즌 워리어스 성적의 열쇠를 쥐고 있는 그 좌완 스페셜리스트를 향해 박재철의 시선이 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