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Regressor Makes Mythic Items RAW novel - Chapter (503)
제503화
503화. 죄악 (4)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헤르메스.
시문은 그의 추론에.
“뭐, 그렇게 됐어.”
별다른 부정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우호적 관계인 올림포스에 새삼 숨길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런 시문의 태도 때문일까?
“뭐야? 설마 제우스가 이놈한테 칠 죄악을 양보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손오공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반대로.
“흐음…… 그래. 대충 짐작이 가는군.”
헤르메스의 눈은 작은 이채가 어렸다.
“칠 죄악은 사용의 유무를 떠나, 우리 성좌들에게도 귀중한 신물이지.”
칠 죄악의 가치를 너무나도 잘 아는 그였기에.
“이는 반대로 갤럭시 아레나에게도 똑같이 통용되는 가치이니까…….”
팔짱을 낀 헤르메스는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아무리 기간토마키아의 승리라 해도, 일개 플레이어가 보상으로 받기에는 과분한 물건일 테고.”
시문을 바라보았고.
“심지어 기간토마키아와는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물건이니. 더더욱 보상으로 받긴 힘들 터. 그러니…… 아버지를 이용해 직접 받아낸 거다?”
그가 내놓는 답안에.
“그게 서로에게도 좋은 방법이니까.”
시문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이에.
“서로에게라…… 그래. 그렇겠네.”
눈썹을 까딱이는 헤르메스.
무리도 아니었다.
“칠 죄악은 분명 누구나 욕심낼 신물이지만…….”
칠 죄악.
기간토마키아에서 티폰이 직접 보여주기도 했지만.
실로 강대한 힘을 가진 신물이긴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거기까지.
“그 빌어먹을 죄악의 주인들 말곤 제대로 된 사용이 불가능하니까.”
정작 온전한 사용은 칠 죄악의 옛 주인인 칠 마제 말고는 불가했으니까.
실제로.
“그 티폰마저도 온전한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였으니.”
티폰 역시 분노의 죄악을 일종의 에너지 발전기로 사용하지 않았던가?
모든 성좌가 우러러보는 태초신.
그 영역에 한 발 걸친 티폰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신물이니.
당연히 올림포스의 신왕인 제우스라 한들.
이는 티폰과 다를 바가 없을 터.
하지만.
“그렇다고 다차원적 공익 재물로 갤럭시 아레나. 그 음흉한 것들에게 넘기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무슨 국고 회수도 아니고.
다차원적 공익이라는 명목하에 갤럭시 아레나에 넘기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애당초 명분만 그러할 뿐.
갤럭시 아레나가 칠 죄악을 ‘공익적’으로 사용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결정적으로.
“정작 칠 죄악 때문에 피 보고 고생한 건 너와 우리인데 말이지.”
분노의 죄악으로 손해를 본 것은 다름 아닌 올림포스와 참가자인 시문 아니던가?
기간테스들에게 부여했던 그 막강한 재생력과 신력 등.
아마 여러 부분에서 분노의 죄악이 알게 모르게 사용되었을 터였다.
그러니 칠 죄악의 대단한 유명세와 다르게.
‘분노의 죄악이 이리 텅 비어버린 거겠지.’
스어어어…….
분노의 죄악이 지닌 기운이 이토록 미세한 것이겠지.
헤르메스의 추론에 긍정하듯.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일 줄 알았어.”
작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문.
하나.
“같은 생각이라?”
이는 시문만의 생각이었던 것일까.
“김시문. 솔직히 말해서 난…….”
잠시 말끝을 흐린 헤르메스는.
“너에게 칠 죄악을 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지막이 본심을 내뱉었다.
물론.
“단순히 칠 죄악이 지닌 가치 때문만이 아니야.”
부정적인 형태의 것은 아니었다.
“넌 우리 올림포스를 구원했고, 덕분에 우린 멸망을 극복하고 최상위 신계로 자리매김했으니. 이 정도야 못 줄 것도 없지.”
어떻게 따지든 시문은 올림포스의 은인 아니던가?
단지.
“네가 대단한 플레이어라는 것도 익히 알지만, 결국은 필멸자.”
현 시문의 위치인 필멸자라는 존재.
그로 인해.
“아무리 신물을 보관할 제단까지 있다고 한들. 이건 필멸자인 너에게 여러 방면으로 독만 될 것 같거든.”
칠 죄악이 끼칠 악영향 때문이었다.
그 염려 어린 마음이 느껴진 것일까?
“이거 참…… 설마 이렇게까지 날 생각해 줄 줄은 몰랐는데.”
피식 웃음을 흘리는 시문.
당연했다.
무릇 정상적인 존재라면.
자신을 걱정해 주는 마음이 달갑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또한.
‘아무래도 제우스가 헤르메스에게…….’
현재 헤르메스의 저 태도로 보건대.
‘내가 루시퍼의 계승자라는 걸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네.’
자신이 칠 죄악의 주인인 루시퍼.
그의 정당한 계승자라는 걸 아예 모르는 상황일 터.
그러니 악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칠 죄악은 시문 자신에게 독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는.
“뭐, 저 뺀질이 놈의 말이 맞기는 해.”
손오공 역시 마찬가지인지.
“김시문. 네가 악기도 다루고 루시퍼놈과 친분이 있다는 건 알지만, 칠 죄악은 아예 다른 이야기야.”
평소의 그답지 않게 무척이나 진중한 얼굴로 말해오는 손오공.
“우리가 죄악을 다룰 수 없는 건 둘째치더라도, 죄악은 항시 악감정을 뿜어내. 당연히 필멸자에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고.”
하나 그런 손오공의 경고와 다르게.
“손오공…….”
시문의 미소는 한층 더 짙어질 뿐이었고.
그에.
“이게 왜 자꾸 실실 웃어? 야! 너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는 거 맞냐? 그거 위험하다고 인마!”
눈매를 꿈틀하는 손오공을 보고.
“실은 말이야…….”
시문이 입을 열려던 순간.
-형. 그만.
왼쪽 눈으로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안에 깃들어 있는 존재.
‘루시퍼?’
악기의 창조자 루시퍼였다.
그는.
-굳이 형이 내 계승자라는 건 언급하지 않는 편이 좋아 보여.
평소와 다르게 다소 진지한 목소리로 말해왔고.
‘어째서?’
시문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시문이 손수 석가의 허락을 받아 봉인을 풀어주고.
우마왕의 파편까지 건네주었던 손오공.
그리고 제우스와의 친밀한 관계도 그렇지만.
이번 기간토마키아로 우호적인 관계가 된 헤르메스까지.
심지어 저 둘이 죽마고우처럼 친하다면야.
‘저 둘은 믿을 만하잖아.’
시문 입장에선 자신의 신왕들만큼이나 믿을 만한 성좌들이지 않은가?
이는 시문과 마찬가지인지.
-그건 나도 잘 알아. 애당초 배신을 할 만한 지능을 지닌 놈들도 아니니까.
시문과는 조금 다른 견해로 인정을 해오는 루시퍼.
-단지…… 굳이 형이 내 계승자라는 걸 아는 자들을 늘릴 필요가 있냐는 거야.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러니까. 아무리 믿을 만해도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을 줄이자?’
시문은 루시퍼의 속내를 유추해 냈고.
정확했던 것인지.
-바로 그거야.
곧바로 긍정을 표해오는 루시퍼.
그는.
-뭐, 저 둘은 상위서열치고도 한가락하는 놈들이긴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상위서열이잖아?
올림포스의 12신과 선계의 투선.
두 상위서열 성좌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려치며.
-혹여라도 악랄한 것들한테 잘못 걸리게 되면, 우리 정보도 그대로 털릴 수 있다고.
말을 이었고.
전 칠 마제의 우두머리이자 신성 찬탈자.
‘으음. 과연…….’
그 위명에 걸맞은 배포에 작은 놀라움을 표함도 잠시.
‘악랄한 거라면 루시퍼. 너 같은 애들한테 걸리는 걸 말하는 거지?’
자연스레 되묻는 시문에.
-그럼! 나 같은 놈한테 걸려봐. 저런 멍청한 것들은 아주 그냥 속옷까지 탈탈…….
다소 으스대는 목소리 변하는 루시퍼.
하지만 잠시일 뿐.
-야이 씨! 형!!
‘하하! 농담이야. 농담.’
대번에 성을 토해오는 루시퍼에 시문은 슬쩍 웃고는.
“너 이 새끼. 왜 계속 실실 웃어? 내 말 안 듣는 거 맞지!”
“아아. 듣고 있었어.”
점차 일그러지는 손오공을 향해 고개를 주억거려 주었다.
물론 그 속은.
‘하긴. 제우스도 아들인 헤르메스한테 다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생각으로 돌아가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제우스와 루시퍼.
두 신왕급 성좌들의 의중을 이해한 시문은.
“둘 다 칠 죄악에 대해 걱정해 주는 건 너무 고마운데. 난 정말 괜찮아.”
부드럽지만 단호한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하나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손오공과 헤르메스의 입장에서야.
“하지만…….”
“야 김시문. 우리 지금 진지하다니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니고!”
그저 힘에 눈이 먼 필멸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시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후후. 걱정 말렴? 우리 철부지들.
칠 죄악의 악기.
그것에 밀리지 않는 시커먼 기운을 지닌.
-너희가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이 닉스가 장담하지.
닉스가 확언을 내뱉었으니까.
그 때문일까?
“으음…….”
“태초의 할…… 아니, 누님의 말씀이라면 뭐.”
떠오르던 우려를 빠르게 털어내는 헤르메스와 손오공.
‘큰 조모님이 계시면, 칠죄악도 큰 문제는 없겠지.’
‘닉스가 지X 맞긴 해도, 명색의 태초신이니까.’
태초신 닉스가 이 차원의 제단에 똬리를 틀고 있으니.
칠 죄악의 악영향 정도는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터.
“알겠습니다. 큰 조모님.”
닉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헤르메스는 칠 죄악을 시문에게 건네는 대신.
“그래도 직접적인 접촉은 위험할 순 있으니. 제단엔 내가 올려주지.”
저벅.
제단으로 다가가, 몸소 분노의 죄악을 내밀었다.
그러자.
드드득.
기다렸다는 듯.
밤의 기운이 흘러나오는 제단 옆으로 또 다른 제단이 솟아난다.
그 위로.
톡.
헤르메스가 분노의 죄악을 올리는 순간.
번쩍!
시커먼 빛이 번쩍거리며.
[심드라실의 제단에 ‘분노의 죄악’이 장착되었습니다.]성공적인 장착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분노의 죄악’이 지닌 분노가 너무나도 희박합니다.] [‘분노의 죄악’이 차원 에메랄드 트리와 공명합니다.]잇따른 내용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동시에.
스아아아아!
심상치 않은 악기가 제단에서 넘실거리더니.
[차원 에메랄드 트리가 주기적으로 분노에 물듭니다.] [차원 에메랄드 트리에서 발산되는 모든 분노는 ‘분노의 죄악’에 깃듭니다.]‘뭐?’
심상치 않은 내용들까지 이어졌다.
딱 봐도.
‘이건 디버프 같은데…….’
좋지 않아 보이는 내용.
아니나 다를까.
“어머.”
“으음…….”
시문의 뒤편에 있던 두 엘프.
에르넨과 데이나가 즉각적인 반응을 내비친다.
하이엘프라서일까?
“이거 참…… 곤란하네요.”
에르넨은 다소 난처한 미소만을 머금었으나.
“…….”
다크엘프인 데이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치 무언가를 참으려는 듯.
뿌득!
앙다문 입으로 이를 갈며,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데이나 뿐만이 아니었다.
-이씨! 너 저리 안 가?!
-아까부터 거슬렸어! 왜 자꾸 얼쩡거려!
-내가 언제! 네가 먼저 들이댔잖아!
이곳 심드라실의 중심부로까지 들려오는 고성들.
심드라실의 영역을 노닐던 정령들이었다.
또한.
-츠츠측! 방금 날 노려본 건가?
-너 날갯소리. 시끄럽다!
특유의 이명을 지닌 목소리.
-네가 더 시끄럽다! 짜증 난다고!
-키릭! 그럼 그 귓구멍을 쑤셔버리면 되겠군!
-츠르륵! 덤벼라!
인섹티아와 연결로 노닐던 인섹터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를 들은 시문은.
‘역시 디버프가 맞는구나.’
다소 난감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의 경험까지 있는 시문이 보아도 어째 느낌이 싸하다 했음은 물론.
‘색욕의 죄악을 벨리알한테 맡길 때부터 대충 짐작은 했다만…….’
이미 마계의 무력 서열 2위.
벨리알에게 색욕의 죄악을 맡긴 시점 아니던가?
해서 칠 죄악이 미칠 악영향 정도야.
어느 정도 예상해 두긴 했으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런 시문의 왼쪽 눈으로.
-형. 일단 진정하고. 이 차원의 관점에서 분노의 죄악에 집중해 봐.
루시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시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파앗.
주변의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밤의 기운이 어린 부분을 제외하곤.
모든 세상이 몽롱한 연녹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분노의 죄악에 시선을 집중하자.
꿈틀.
시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보인다.’
감각에 포착된 것이다.
밤의 기운 옆으로 어린 또 다른 흑색 기운.
그것이 내뿜는.
파앙.
미세하지만 뚜렷한 흑색의 파동이 말이다.
연녹색 영역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검은 파동에 시문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저게 분노의 죄악이 펼치는 영향력이구나.’
이를 증명하듯.
-맞아. 닿는 모든 것들의 원천적인 분노를 자아내거든.
왼쪽 눈으로 루시퍼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뭐, 이쯤 되면 뭘 해야 할지. 형은 말 안 해도 알겠지?
그렇게 물어오는 루시퍼의 말에.
“물론.”
시문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곧 제단에 놓인 분노의 죄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륵.
그리고 무언가를 쥐듯.
꽈악!
뻗은 손을 강하게 움켜쥐는 순간.
우우웅…….
분노의 죄악이 내뿜던 파장이 일정 영역 투명한 벽에 막힌 것처럼.
흑색의 파장은 일정 영역 이상으로 뻗어나가지 못했고.
당연하게도.
-어, 어라?
-키릭?!
-내가 왜…….
죄악의 영향으로 극심한 감정 기복을 겪던 정령과 인섹트들은 물론.
“후우…….”
“데이나. 괜찮아요?”
데이나와 에르넨 역시 한결 가라앉은 모습을 보여왔다.
하나 시문은 그들의 인기척과 목소리만 듣고 있을 뿐.
“시문 님께서 어떻게 하신 모양…… 어머? 시문 님?”
“김시문. 너 괜찮나?”
“힘들면 말해. 이 제천대성께서 도와줄 테니.”
시문은 분노의 죄악을 쥔 상태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야. 루시퍼. 이거…….’
루시퍼의 말대로 영향력을 억제시킨 분노의 죄악.
그 상태를 유지하는데.
‘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냐?’
꽤나 힘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파르르…….
움켜쥔 시문의 손이 작게 떨리고 있지 않는가?
이에.
-으음. 그동안 형의 악기나 격이 꽤 성장했는데도 좀 빡센가 보네? 그렇다면…….
생각이라도 하듯.
말끝을 슬쩍 흐리며 침묵해 버리는 루시퍼.
덕분에 슬슬 손아귀가 저려오기 시작한 시문이었으나.
다행히도.
-쓰읍……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조건이 좀 있어.
루시퍼의 해결 방안은 금방 튀어나왔다.
시문은 여전히 분노의 죄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조건? 뭔데?’
루시퍼가 언급한 조건에 대해 물었다.
-간단해. 지금 형이 하고 있는 이 짓을 대신해 줄 존재를 찾으면 돼. 정확히는 품어줄 존재라고 해야겠지.
그러곤 고개를 갸웃하는 시문.
당연했다.
분노의 죄악을 억제하는 건, 루시퍼의 계승자인 자신도 힘든 짓이거늘.
‘분노의 죄악을 대신 억제해 줄 존재라고?’
이를 대신해 줄 존재가 세상 어디 있단 말인가?
이내.
‘잠깐. 그런 존재라면…….’
시문의 시선이 분노의 죄악 옆에 있는 밤의 기운을 향했으나.
이를 진즉 알아차린 듯.
-참고로 저 할망구는 절대 안 돼.
곧바로 부정해 오는 루시퍼.
-죄악이 많이 약해진 상태라 태초신의 격과 접촉하다간 손상될 수도 있어. 저 할망구의 인과 소모도 막심할 테고.
그 말에.
‘그러면 안 되겠네.’
두말없이 납득하는 시문.
죄악의 손상도 그렇지만.
‘더 이상 닉스 님께 신세를 질 순 없으니까.’
이미 앞서 닉스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상태 아니던가?
물론 자신이 부탁한다면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매번 남에게 기대서야, 나아갈 수 없지.’
그런 시문의 마음가짐이 든 것일까?
-역시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작게 웃음을 흘리는 루시퍼.
이내.
-또 그와 같은 이유로 다른 성좌들도 안 돼. 그러니, 분노의 죄악을 버틸 만한 필멸자로 찾아야 하거든?
이어지는 그의 말에.
‘필멸자라니…….’
시문은 다소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은가?
‘칠 죄악을 나 말고 버틸 만한 필멸자가 있겠어?’
당장 악기의 게승자인 자신조차 억제하는 게 고작인데.
저걸 어떤 필멸자가 버틴단 말인가?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아.
하나.
-죄악에는 저마다의 적합성이 있거든. 나도 오만의 죄악 말곤 상성이 그리 좋지는 않았어.
이어지는 루시퍼의 말에.
-저번에 벨리알에게 색욕의 죄악을 맡긴 이유는 기억하지? 같은 이유로 분노의 죄악 역시 분노에 적합한 놈한테 맡기면 돼.
‘분노에 적합한 놈이라…….’
-거기다 현재 분노의 죄악 자체가 엄청 약해져 있는 상태라, 지금이라면 필멸자도 접촉할 만한 상황이거든.
‘그렇단 말이지?’
시문의 눈은 한층 가라앉았고.
-어. 그러니까 분노와 친숙하고 어울리는…… 음. 그냥 쉽게 말해서 성격이 엿같은 애를 찾으면 돼.
계속해서 이어지는.
-거기다 그쪽과 관련된 능력이 있으면 딱이지! 예를 들면 그린스킨 특유의 광폭화 같은 능력 있잖아?
루시퍼의 말에.
“엿같은 성격에 광폭화를 지닌 필멸자라…… 잠깐. 그거라면!”
가라앉았던 시문의 두 눈이 반짝였다.
* * *
굉장히 넓고 고급스러운 거실.
그곳으로.
“으음. 아까 방송 보니까 거의 끝난 거 같던데.”
지루한 비음을 흘린 청아한 미녀가.
“언제 나오려나…….”
달칵.
외모에 어울리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린다.
이에 화답하듯.
파아앗!
특유의 소환 빛이 방안으로 번뜩이더니.
“아오! X발 진짜! 어떻게 저런 X신 같은 것들이랑 같은 마스터라고 붙여주고 있냐!”
걸쭉한 짜증이 터져 나온다.
앙칼짐이 잔뜩 어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무엇이 그리 성이 나는지.
“무슨 그마를 바라본다는 것들이! 권능 하나 막혔다고 죄다 쓸모가 없어지냐고!!”
콧김까지 씩씩 내뿜으며 성을 토했다.
그런 성난 여성의 등장에도.
“진정해. 말숙아. 그 구간이 원래 좀 그래.”
일말의 당황은커녕.
“권능에 얼마나 덜 의지하느냐가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 랭크를 가르는 척도거든.”
도리어 진정 어린 말까지 건네는 청아한 미녀.
“뭐야. 유정이 너 내 방송 봤어?”
이유정의 말에 고말숙은 눈매를 꿈틀했고.
“당연하지. 누구 아레난데? 그래도 이겼으니까 적당히 넘겨. 보아하니 너, 앞으론 걔들이랑 매칭은 안 되겠던데.”
이어지는 이유정의 달램에.
“X! 그래! 앞으로 그 새끼들이랑 다시 매칭 안 된다는 게 중요하지!”
화를 떨쳐내려는 듯.
짜증스럽게 머리를 털어내는 고말숙.
그녀의 입가로.
“거기다 이번 아레나 클리어를 클리어했으니까. 곧 그마 승급전이…….”
작은 미소가 걸쳐지려는 순간.
딩동.
“이 야밤에 또 누구야?”
입구의 초인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