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Regressor Makes Mythic Items RAW novel - Chapter (504)
제504화
504화. 죄악 (5)
갑작스러운 벨소리.
당연하게도.
“X발.”
고말숙의 미간이 확 찌푸려진다.
당연했다.
당장 현 시각만 하더라도.
“대체 뭐야?! 이 늦은 시간에!”
새벽 3시 아니던가?
누군가가 찾아오기엔 영 맞지 않는 시간대였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잠깐.’
일그러졌던 고말숙의 얼굴이 삽시간 가라앉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방금 마치고 나온 빌어먹을 아레나도 그렇지만.
현재 그녀의 랭크는 마스터 랭크.
그것도 그랜드 마스터 승급전을 바라보는 마스터 랭크의 끝자락인 상태다.
한데.
‘나 왜 벨소리가 들릴 때까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한 거지?’
저 입구의 벨소리가 울릴 때까지.
어떠한 기척도 알아차리지 못하지 않았나?
이는 아무리 방금 막 아레나를 끝내고 온 컨디션이라 한들.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에 고말숙은 입구로 나가는 대신.
스윽.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를 맞이해 주던 청아한 미녀.
이유정을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라앉은 저 이유정의 반응으로 보건대.
‘뭐야. 유정이도 저 인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이유정 역시 벨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전혀 몰랐던 모양일 터.
그녀가 대한민국의 투탑을 달리는 챌린저급 랭커임과 동시에.
철벽의 성녀라고 불리는 타이틀을 돌이켜보자면야.
‘……X나 센 놈이 분명해.’
지금 벨을 누른 저 존재는 상당한 실력자임을 알 수 있을뿐더러.
‘거기다 이런 시간에 여길 찾아올 실력자라면…….’
이런 야심한 시각에 찾아온다?
‘때려죽일 만큼 나쁜 새끼겠지.’
결코 반가운 방문객은 아닐 터.
고말숙과 같은 생각인 것일까?
저벅.
이유정은 어느새 몸을 일으켜, 고말숙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런 이유정의 손엔.
철컥.
그녀의 애병인 무시무시한 둔기가 쥐어져 있었고.
끄덕.
이유정과 말없이 시선을 교환한 고말숙은 고개를 까딱인 채.
“이 시간에 어떤 새끼야?”
입구로 다가가.
“아주 뒈질…….”
벌컥!
문을 열자마자 주먹을 치켜드는 순간.
뚝.
고말숙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춘다.
문을 열자마자 무언가에 당했다든가.
어떤 사특한 술수에 당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당하긴 했다고 해야 할까?
“어음…… 역시 너무 늦었나?”
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
누가 봐도 감탄을 터뜨릴 웬 미남자의 등장과.
“미안. 좀 급하게 와서 그런지. 내가 너무 생각이 없었네.”
그 얼굴에 걸린 난처한 미소에 말이다.
이는.
“…….”
뒤편에서 대기 중이던 이유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고.
“아. 유정이도 있었구나.”
그런 이유정까지 포착한 남자가.
“밤늦게 정말 미안해. 내일 다시 올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몸을 돌리는 순간.
움찔.
고말숙과 이유정.
두 사람의 경직이 풀리더니.
“잠시만요! 오라버니!”
“어, 어딜 도망가?!”
순식간에 남자의 양 어깨를 잡아채는 두 사람.
이에.
“어, 어?!”
어깨를 붙잡힌 남자.
시문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런 두 사람을 돌아봤다.
당연했다.
늦게 찾아왔다고 냉랭한 얼굴로 입도 뻥끗 안 하더니.
사과와 함께 돌아서자.
꽈악!
시문조차 조금 아릿할 정도로 잡아 오는 이 우악스런 손아귀도 그렇지만.
“도…… 망?”
갑자기 도망간다는 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나 이는 당사자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일까?
“아…….”
“그, 그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유정과 고말숙.
특히나.
“아니 그러니까…… 네, 네가 먼저 이 야밤에…….”
도망을 언급했던 고말숙의 얼굴은.
“와놓고…… 갑자기 얼굴 보고 째 버리면…… 난 뭐가 되고…… 이런 기회를…….”
횡설수설하는 내용만큼이나,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고.
“말숙아? 너 대체 뭐라고 하는…….”
이에 시문의 의문을 표하려는 순간.
“오라버니.”
외모만큼이나 청아한 목소리가 날아든다.
어느새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이유정이었다.
“말숙이가 방금 아레나를 끝내고 나왔거든요.”
그녀는 시문을 잡아챘던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우스울 정도로.
“수준차 매칭 때문에 고생도 꽤 한 상태라, 오라버니가 이해 좀 해주세요.”
굉장히 차분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당연하게도.
“아아. 아레나 매칭에 당하고 왔구나. 그래도 얼굴을 보아하니 이기긴 했나 보네.”
그녀가 거론한 ‘매칭’의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시문이었기에.
“말숙아. 그냥 적당히 풀고 넘어가라. 원래 그 구간이 그렇더라. 나도 그랬어.”
시문은 동정의 시선으로 고말숙을 내려다보았고.
“어, 엉?”
갑작스러운 화제의 전환에 당황함도 잠시.
“아…… 어! 그, 그렇지! 아주 말도 마라!”
늪에서 꺼내준 이유정을 향해 감사의 눈길을 보낸 고말숙은.
“내가 아주 X발 그냥! 다 떠먹여 가면서 깼잖냐! 무슨 아레나 보모라도 된 줄 알았다고!”
얼른 그녀가 만들어 준 기회를 잡아챘다.
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천하의 고말숙이 가장 방심할 수 없는 상대.
‘혹시 나 목소리 좀 떨리나? 눈깔은? 얼굴은 어떻지? 이씨! 구라 치는 거 티 나나?’
아직 놀란 가슴이 완벽히 정리되지 않은 탓인지.
이래저래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던 고말숙은.
“마, 맞아! 그건 그렇고!”
이 야밤에 정말 상상치도 못한 행차를 한 시문을 향해 눈을 번뜩이곤.
“김시문.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 아까 보니까 뭐 급하게 왔다 하지 않았냐?”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도 효과는 확실했던 것일까?
“아. 그게 있잖아…….”
그녀를 바라보던 시문의 얼굴이 슬쩍 가라앉았다.
* * *
유정이의 취향이 가미된 것일까?
시문의 거실처럼 세련되고 고급스럽긴 했으나.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한 스푼 더 담긴 넓은 거실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런 인테리어와 달리.
“……그러니까.”
거실 중앙에 앉은 세 남녀의 분위기는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나보고 그 신물인가 뭔가의 액받이를 해달라?”
시문이 꺼낸 이야기의 무게가 남다르지 않은가?
“그…… 말숙아? 액받이라는 단어는 좀 그렇다야. 일단 나도 물심양면으로 돕겠지만, 너한테도 도움은 될 거야.”
이는 시문 역시 알고 있었기에.
“물론 말숙이 네가 힘들거나 위험해지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돼. 결코 널 위험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평소답지 않게 조심스러운 어조였고.
그러한 시문의 태도가 좋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하!”
짧게 헛숨을 내쉬는 고말숙.
“나쁜 새끼. 말이라도 못하면…….”
그녀는 진동으로 착각될 정도로 씰룩이는 입꼬리를 애써 억제하며.
“그래. 하자. 애당초 나한텐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답해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 때문인지.
“말숙아. 다시 말하지만 내키지 않으면…….”
시문은 다시 한번 말을 꺼내려 했으나 거기까지.
“야. 나 그 정도로 안 멍청해. 네 말은 제대로 알아들었어.”
가볍게 고개를 저은 고말숙은.
“내가 하자는 건 그냥…… 내 스스로의 입장이 있어서야.”
“네 입장?”
“어.”
다소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당연했다.
‘그동안 저놈한테 받은 것만 해도 얼만데…….’
실버 랭크 시절.
시문과 첫 만남이었던 상록숲에서의 만남.
그 뒤로 이어진 인연으로 현재 마스터 랭크 끝자락에 도달한 그녀다.
물론 눈앞의 이 남자는 ‘말숙아. 어차피 내 도움이 없었어도 챌린저까지 갔을 거다.’라고.
아주 당연하고도 태연하게 말했을 테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고말숙이라는 인간에 대해, 무한한 믿음을 내보이면서 말이다.
실제로 시문의 그 원인 모를 믿음이.
‘나쁜 새끼. 사람 흔드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녀의 마음을 수없이 흔들댔지만 거기까지.
고말숙은 결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도움 없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다고…….’
그간에 시문이 주었던 엄청난 수준의 지원.
그것 없이 후발주자인 그녀가 어떻게 챌린저까지 치고 올라간단 말인가?
더 열받는 것은.
‘아무리 내가 이 악물고 달려도…….’
이러한 지원에 더해 잠까지 줄이고, 몸을 갈아가며 달려 나가도.
‘저 괴물 같은 놈에겐 도무지 닿을 수가 없어.’
눈앞의 이 괴물 같은 남자는 항상 자신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것이다.
다이아에서 마스터, 마스터에서 그랜드 마스터 등.
고작 한 단계 차이인데.
그 간격은 늘 잡히지 않고 멀어져 왔단 말이다.
그렇기에.
‘도무지 갚고 싶어도, 기회조차 없었는데…….’
은혜를 갚을 기회를 항상 놓치기 일쑤였는데.
‘그까짓 신물의 기운을 몸으로 받아내는 것쯤이야.’
이렇게 몸으로라도 그 빚을 갚아낼 수 있다면야.
‘수백 번도 더 할 수 있어.’
고말숙의 입장에선 얼마든지 해낼 자신이 있었다.
애당초 가진 것이라곤 이 튼튼한 육신뿐이지 않은가?
그러니 이따위 몸쯤이야.
“나 할 수 있어. 당장 시작해.”
시문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그 결연한 모습에.
“저, 저기 말숙아?”
시문은 다소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이게 너한테 마냥 독이 되는 건 아니야.”
누가 보면 무슨 신약 테스트.
혹은 생체 실험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가?
시문은.
“물론 일단 테스트를 해보긴 해야 하지만, 아마도 내가 본 너에게는…….”
이 부분에 대해 확실히 주지시키려 했지만.
“오라버니.”
난입해 오는 이유정의 목소리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그녀의 목소리가 다소 쌀쌀하게 들려와서가 아니었다.
실제로.
“높은 수준의 신물이라면. 제게 맡기셔도 되지 않나요?”
목소리만큼이나 가라앉은 이유정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가?
당연하게도.
“유, 유정아?”
영문 모를 그녀의 싸늘함에 시문은 당혹을 표했으나.
이유정의 태도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덧붙이지만, 전 단순히 효율성에 입각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는 단순히 시문의 의견에 태클을 거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전 챌린저 랭크잖아요. 거기다 보조 계통이 주력이죠.”
전투계 플레이어에 뒤지지 않는 전투력을 지닌 이유정.
하지만.
“제 특성도 그렇고. 어느 보조계들처럼 이능이나 권능의 친화성도 높은 편이에요.”
그 계통적 근간은 성력과 권능에 기반한 보조계에 해당한다.
“그러니 객관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신물의 관리는 말숙이보단 제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시문이 언급한 신물의 대리 관리에 관해선.
“오라버니께서 혹여나 걱정하시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최소화가 될 테고요.”
철벽의 성녀 이유정.
현 보조계 계통에 탑을 달리는 그녀가 맡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나.
“유정아. 나도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닌데…….”
시문의 생각은 다른 것일까?
조심스럽지만.
“여러모로 생각해 봐도, 이 신물은 아무래도 말숙이가 맡아주는 게 옳은 거 같아서 그래.”
분명하게 답하는 시문.
그 속에 담긴 단호함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그녀가 결코 모를 수 없었기에.
“…….”
이유정은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삐죽.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슬쩍 내밀 따름이었다.
깔끔한 시문의 성격상 어련히 알아보고 말하겠냐만은.
“뭐…… 오라버니께서 정 그러시다면야.”
가슴을 뚫고 삐져나오는 서운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무리도 아니었다.
‘난 진심으로 드리는 말인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감히 시문의 말에 토를 달던 것이 몇 번이나 되었던가?
작금의 모든 것은 순수하게 시문을 위해 한 말이었는데.
저런 단호함까지 보여버리면.
‘이러면 괜히 나만 이상한 애 되잖아.’
여러모로 오해를 살 수 있는 그림이 되지 않는가?
다행히도.
이는 어릴 적부터 이유정을 봐온 시문도 잘 아는 것인지.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유정아.”
시문은 뾰로통한 이유정을 향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고.
어째서일까?
분명 작은 미소 한 번일진대.
“오라버니도 참…… 뭘 이런 걸로 인사를 하고 그래요.”
이유정의 얼굴은 빠른 속도로 녹아내렸다.
하나 반대로.
“아냐. 유정이 네가 늘 신경 써 주는 건 나도 잘 아니까. 그나저나 말숙아?”
작더라도 미소를 걸친 것치곤.
“너 정말…… 이걸 맡아도 괜찮은 거지?”
시문의 얼굴은 어딘가 이상했다.
파르르.
유려한 이마가 미세하게 떨려오는 것은 물론.
덥기라도 한 것인지.
주륵.
시문의 얼굴 곳곳에 작은 땀방울까지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고.
아까의 상황 때문인지.
이것을 이제야 확인한 두 여성.
“오라버니?”
“야. 너 괜찮냐?”
이유정과 고말숙은 깜짝 놀라 한 걸음 다가갔다.
이에.
“난 괜찮아.”
시문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으나 그뿐.
“괜찮긴 개뿔! 이제 보니 온몸을 벌벌 떨어대는구만!”
시문의 상태를 체크해 나가는 고말숙의 언성은 대번에 높아졌다.
시문은 이를 진정시키려는 듯.
“그게…… 내가 지금 좀 버티고 있는 게 있어서 그래.”
빠르게 답해주었으나.
“버텨? 잠깐. 그러고 보니 아까도 뭘 버틴다고…… 이런 X! 너 설마!”
역효과였던 것일까?
“나한테 말한 그 신물이라는 걸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야? 처음 벨 눌렀을 때부터?!”
한층 더 높아지는 고말숙의 언성.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시문이 뭐라 답하기도 전에.
“야, 이 멍청한! 당장 그 신물의 대리인가 뭔가 뱉어내! 당장!”
시문의 어깨를 확 잡아 오는 고말숙.
꽤나 버텨왔기 때문일까?
“윽.”
작은 흔들림에도 시문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어, 어?!”
이에 깜짝 놀란 고말숙은 어디 아픈 동물이라도 만진 것처럼.
“미, 미안. 난 그냥…….”
잠시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더니 얼린 고개를 흔들고는.
“아이 씨! 야! 얼른! 얼른 그 신물인지 뭔지 넘기라니까!”
다급히 시문을 재촉했다.
그 때문일까?
아니면 분노의 죄악을 억제해 온 시간이 꽤나 지나서일까?
“말숙아. 서두르지 마…… 권한 양도를 위한…… 서로 접촉부터…….”
점점 말이 느려지는 시문.
그에 맞춰.
주르륵.
이마의 땀과 몸의 떨림 역시 그 양이 늘어난다.
이를 본 고말숙은 대경실색을 하며.
“양도에 뭘 접촉해야 한다고? 뭔데!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냐고!”
애가 타는 얼굴로 다그쳤고.
그에 시문이.
“우선 서로의 이…….”
‘이마’라는 단어를 내뱉으려는 순간.
“이 멍청이가! 고작 그거 때문에 그리 어렵게 말했냐!”
버럭 소리치는 고말숙의 목소리와 함께.
“이게 뭐라고. 진작 주둥이부터 박아달라 했어야지!”
터억.
시문의 뒤통수로 거치면서도 부드러운 손이 닿더니.
촉.
“읍?!”
촉촉한 감각이 시문의 입술을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