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123
123. 부탁 (1)
블랙마켓 끝자락 크라임 펌 직원들을 위한 사무실 옆.
그곳에 한 빼빼 마른 노신사가 텅 빈 책상을 깔고 앉아 있었다.
그 역시 크라임 펌에 소속된 직원으로, 주로 크라임 펌에서 직접 취급하는 ‘특수 상품’의 판매를 맡고 있다고 했다.
시체도 당연히 그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의사와 흑마법사 시체를 원하신다고요?”
“예, 흑마법사는 그냥 흑마법사가 아니라 조작계열로 시체전문인 사령계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술 실력도 갖추고 있고요.”
올리버가 원하는 조건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금테 안경을 쓴 노신사는 그 말에 맞춰 서류를 작성해갔다.
사각사각 글을 다 쓴 후 금테 안경을 한번 들어 올리며 노신사가 말했다.
“조건이 까다롭군요. 등급은 어느 정도 생각하십니까?”
등급.
조가 미리 설명해줬다.
올리버가 주문한 것처럼 특수한 조건이 붙는 시체는 등급으로 나뉘었다.
당연히 등급이 높을수록 더 높은 품질을 자랑했고, 가격도 더 높아졌다.
총 다섯 등급으로 나뉘며 2등급부터는 나름대로 해당 직군에서 이름을 알린 이도 있다고 했다.
“음·····. 3등급은 어떻죠?”
금테 노신사가 팔랑팔랑 서류를 넘기며 대답했다.
“의사는 1억 2천, 흑마법사 2억인데, 흑마법사는 주문하신 조건까지 고려하면 3억은 받아야 하겠습니다.”
맙소사·····. 올리버는 처음으로 돈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나름대로 목숨 걸고 번 4억을 가뿐히 초과할 줄이야.
솔직히 여유롭게 다 살 줄 알았는데····. 이쪽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았다.
올리버가 침묵하자 노신사가 안경을 벗으며 정중히 말했다.
“상품 자체가 특수하고, 취급이 까다로운지라 가격이 좀 비싼 편입니다. 상품은 언제나 구비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돈을 좀 더 모은 뒤 와주셔도 됩니다. 전 언제든 여기에-”
“-혹시, 4등급 가격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의사는 그대로에, 흑마법사는 추가 조건 없이 조작-사령계열로만 조건을 바꾸겠습니다.”
멈칫하는 금테 노신사.
다시 안경을 쓰더니 글자를 수정하고 새로운 서류를 펼쳐 살펴봤다.
팔랑, 팔랑, 팔랑 소리가 울리더니 이윽고 멈췄다.
“4등급 의사 시체 중 때마침 싼 게 하나 있습니다. 9천만 란다지만,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해 10퍼센트 디스카운트해서 8천 1백만 란다에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거 좋네요.”
“어디 보자····그리고 흑마법사는 1억 7천만 란다에 판매해 드릴 수 있습니다.”
8천 1백만, 1억 7천만. 다 합쳐 2억 5천 1백만 란다.
큰 비용이긴 했지만, 낼 수 없는 금액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까 전에 산 기타 약품과 작업 도구, 기구까지 다 합치면 이번 보수의 상당 금액을 써버리는 셈이었다.
약간 망설여졌다.
돈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 돈을 지금 다 써버리면 나중에 필요한 순간에 곤란해지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이 정도 금액까지 써가며 보조용-송장인형을 만드는 게 옳은 건지도 의문이 들었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그 두 개 주문하고 싶습니다.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올리버가 현재에 집중하기로 결정 내렸다.
돈이야 더 벌면 되는 거였으니. 한시라도 빨리 실험을 하는 게 나았다.
제법 큰 금액에 등 뒤에 있던 조가 살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 앞에 앉은 금테 노신사도 마찬가지였다.
“사신다고요?”
“예. 무슨 문제라도····?”
“아뇨····. 물건은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열흘 후 받을 수 있습니다. 총금액은 2억 5천 1백만 란다입니다.”
“예.”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좀 늦는 감이 있었지만, 이곳 절차와 규칙이 그렇다니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차라리 그사이 동안 다른 일이나 할까 했다.
금테 노신사가 다시 말했다.
“그럼, 이곳 서류에 작성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계약금으로 대금의 절반을 지금 지급해주셨으면 합니다. 규칙인지라.”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갑형 먹보주머니를 꺼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무기명 통장에서 돈을 다 뽑아 왔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올리버는 먹보주머니의 입을 억지로 벌린 다음 그 안으로 깊숙이 팔뚝을 쑤셔 넣었다.
오엑-?!
넣은 팔을 휘적거리자 잠시 후 먹보주머니 안쪽에서 반응이 왔다.
올리버는 그 상태로 먹보주머니를 거꾸로 잡았다.
“꾸에에에엑━━! 꾸에에에엑━━━! 꾸에에에엑━━━━! 꾸에에에엑━━━━━!”
속에 있는 걸 게워내는 소리와 함께 투둑- 투둑- 돈다발이 책상 위로 쏟아졌다.
지폐 다발 채로 토해낸 덕분에 정리하기 편했지만, 당사자인 먹보주머니는 괴로운 듯 다섯 개의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올리버는 기세를 놓치지 않고 위아래로 더 흔들며 달래 주었다.
“죄송해요. 조금만 더. 나중에 1만 란다 한 장 드릴게요.”
꾸에엑━!
꾸에엑━!
꿰익━━!
마침내 먹보주머니가 모든 걸 게워내며 축 늘어졌다.
금테 노신사는 잠시 놀라더니 이내 침착함을 되찾아 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묶인 지폐를 차곡차곡 쌓기 시작한 것인데, 중간중간 지폐를 파르륵 파르륵 손끝으로 만져 액수를 확인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1억 2천 5백 5십만 란다····. 정확히 맞군요.”
“네·····. 아, 그리고 서류는 여기 작성했습니다.”
올리버가 작성을 끝마친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작성이라 해봐야 이름을 적고, 주문 상품이 서류에 적힌 게 맞는지 확인하는 정도였지만.
금테 노신사가 서류를 살펴보며 말했다.
“이름이 데이브 라이트 맞습니까?”
“예.”
“그렇군요·····. 주문하신 물건은 결코 늦지 않게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받으십시오.”
금테 노신사가 철 열쇠를 내밀었다.
“얼굴을 확인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걸 드립니다. 잃어버리신다고 물건을 못 받는 건 아니지만, 가져오시는 게 서로 더 편할 겁니다.”
올리버는 말뜻을 이해했다.
보안을 위한 절차. 올리버는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대답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려고 하자 금테 노신사가 말했다.
“거래해서 영광입니다. 데이브 씨.”
“·····예,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묘한 위화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약간 더 친절하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 볼일을 끝마친 올리버는 조와 함께 블랙마켓 밖을 빠져나갔다.
지하실을 올라와 주차장 밖으로 나오자 란다 특유의 우중충한 하늘이 반겨주었다.
“이제 제가 약속을 지킬 차례네요.”
올리버가 뒤따라오던 조를 바라보며 물었다. 조는 긴장을 숨기며 침묵했다.
“그런데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왜 저랑 싸워보고 싶으신 거죠?”
***
올리버와 조는 R구역 외곽 인적이 드문 구석으로 갔다.
재개발 도중 일련의 사건으로 공사가 멈춘 폐허로, 조가 블랙마켓의 업무로 인해 알게 된 곳이라고 했다.
“무슨 업무죠?”
“처형. 블랙마켓에서 사기를 친 놈이나, 물건 빼돌린 직원을 여기서 처형하지.”
실제로 그를 증명하듯 희미하지만, 핏자국 같은 게 보였다.
“아이러니 한 말이지만, 이쪽 시장도 신뢰라는 게 필요해 의외로 관리를 철저히 하거든. 불량품을 파는 세입자나, 물건을 바꿔치기하는 직원을 늘 감시하고 솎아내지.”
“다들 이쪽 일에 열심이로군요. 대단합니다.”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건 대단하고 중요한 일이었으니.
조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제가 말실수라도 했나요?”
“아니, 그냥 이상한 놈이다 싶어서.”
조가 양복과 손목시계를 벗고 팔뚝을 걷어붙이며 대답했다.
“자, 그럼 한판 붙지.”
“잠깐만요. 전 아직 제 질문에 대답을 못 들었습니다. 왜 저랑 싸우시려는 거죠?”
“그건, 일단 싸운 뒤 대답해·····주지!”
조가 말을 끝마치는 동시에 땅에 떨어진 벽돌 조각을 찼다.
팍-! 소리와 함께 주먹만 한 돌덩어리가 올리버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쿼터스태프를 휘둘러 벽돌을 쳐냈다.
팍━! 거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어느새 흑마법으로 육체를 강화한 조가 너클까지 낀 채 올리버 앞으로 달려왔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빠르고 능숙했다.
“호······.”
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주먹이 올리버의 얼굴로 날아왔다.
면도칼처럼 날카로웠지만, 올리버는 아슬아슬하게 뒤로 물러나 피했다.
“응?”
“아, 죄송합니다. 좀 빌리겠습니다.”
올리버가 조의 몸에 넣은 흑마법의 일부를 추출한 뒤 말했다.
일부러 했다기보다는 반사적 행동에 더 가까웠다.
조도 놀란 눈치였다.
“·····.”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품 안에서 넣어둔 시험관에서 생명력을 추출한 다음 빌린 흑마법을 변화시켜 한데 엮었다.
[블랙 슈트 ver. 2]감정과 생명력을 실처럼 만든 후 천을 짜듯 빼곡하게 엮은 다음, 그 상태 그대로 몸은 물론 쿼터스태프에도 둘렀다.
과거 조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조도 그때가 떠올랐는지, 의미심장한 눈을 하며 감정을 추출해 자신의 몸을 강화한 후 다시 자세를 잡았다.
무슨 각오 같은 것이 엿보였다.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각오.
탁- 탁- 탁-
조가 양 주먹을 쥐고 자세를 잡은 뒤 제자리에서 뛰기 시작했다.
호흡은 안정되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올리버는 이에 대응하고자 쿼터스태프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장병기인 쿼터스태프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린 자세.
탓! 타다닷!
조가 움직였다. 다리에 기운을 집중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거리를 좁혔다.
몸놀림 자체도 유연하고 날카로워 보통 눈으로 좇기 힘들었다.
보통 눈으로는 말이다.
탕━!
붕━!
순간 속도를 올려 접근한 조. 올리버는 이동 동선을 따라 쿼터스태프를 휘둘렀다.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휘둘렀음에도 조는 재빠르게 허리를 낮춰 공격을 피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웅크린 자세 그대로 주먹에 기운을 모아 내질렀다.
팡━━!!!
기계와 같은 정교한 펀치는 마치 폭탄과 같은 폭발음을 내며 올리버의 가슴을 노렸다.
올리버는 재빠르게 쿼터스태프를 당겨 가슴을 보호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던칸과의 전투 후 상대가 어디를 공격할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한 박자 늦고 말았을 터.
텅━━━━!!!
쿼터스태프와 부딪힌 너클이 굉음을 냈다.
거대한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를.
그러나 조는 개의치 않고 바로 하단발차기를 했다.
순식간에 흑마법 기운을 다리로 집중해 공격력을 높였는데, 확실히 전보다 더 능숙했다.
올리버는 이번 공격은 그냥 허용하는 대신 쿼터스태프를 내리쳐 공격했다.
서로 일격을 주고받으면 흑마법 화력이 높은 올리버가 유리하니.
그런데 이거 웬걸. 조는 어깨를 모은 다음 빙글 돌면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흑마법과 별개인 육체의 기술.
올리버가 감탄하며 물었다.
“대단하네요. 이건 어디서-”
━쾅!!
조가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올리버는 팔을 들어 막았다.
블랙 슈트를 두르고 있어 피해나 통증은 없었으나, 위력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진 고기가 될 수준의 주먹이었다.
확실히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강해졌다.
무슨 훈련이라도 한 걸까. 대단했다.
몰아치는 조의 공격. 그걸 상대하는 올리버.
올리버와 조의 공격이 교체할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폭풍처럼 울려 퍼졌다.
올리버의 공격은 대부분 피하거나 스치는 선에서 끝났지만, 조의 공격은 세 번 중 한 번꼴로 올리버의 몸에 제대로 적중했다.
실제로 뒤로 물러나는 건 올리버.
역시 근접전에서는 조에게 밀렸다.
그럼에도 조는 점점 더 초조해하며 올리버를 필사적으로 몰아붙였다.
“으아아아악!”
조가 주먹을 내지르다 말고 스텝을 바꿔 올리버에게 몸통박치기를 시도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올리버는 한 박자 늦게 대응했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조가 무게를 이용해 올리버를 철거되다 만 벽으로 몰아붙였다.
탁하고 벽과 등이 부딪힌 올리버.
그때였다. 조는 몸에 서려 있던 기운의 상당 부분을 자신의 오른 주먹에 집중시킨 후 왼손으로 잡아 힘껏 휘둘렀다.
쾅━━━━━━!!!
충격으로 뒤로 날아가는 올리버. 그저 날아갈 뿐 아니라 등 뒤를 받쳐주던 벽까지 무너졌다.
상당히 위력적인 공격. 실금이 간 올리버의 블랙 슈트가 이를 대변해줬다.
비록 몸에 상당한 부담을 요구하는 공격법이었지만, 어찌 됐건 위력은 진짜였다.
휙━!
뒤로 넘어진 올리버가 구르듯 재빠르게 일어서며 달려오는 조를 향해 쿼터스태프를 휘둘렀다.
꽝━━━━!
다급히 달려오던 조는 당황하며 가드를 올렸지만 흑마법의 화력 차이로 인해 가드가 열리고 말았다.
“크윽-!”
충격과 고통에 무너지는 조의 자세.
올리버는 재빠르게 일어나 다시 쿼터스태프를 휘둘렀고 조는 방어했지만, 공격을 완전히 막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아까 전 자신이 필사적으로 몰아넣은 벽에 자신이 몰리게 된 거였다. 꽤나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이해가 안 됐다. 과거에 비해 충분히 실력이 높아졌는데 왜?
“야·····.”
“예?”
조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꽤 지쳐 보였다.
“제대로 해.”
“네?”
“봐주지 말고 제대로 덤비라고. 내가 내 실력을 제대로 알 수 있게. 적당히 상대하지 말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말. 허나, 조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의 감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질투, 궁금증, 공포, 용기, 억울함, 인정, 분노, 인내, 슬픔, 희망 등등 복합적인 감정이 빛나고 있었다.
꽤 예쁜 빛이었다.
그 빛을 보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