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168
168. 이별 (1)
시(市) 공무원 폴 카버.
그의 말은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았다.
세상에는 시스템이 있고, 그 시스템에 따라 세상은 굴러갔다.
작은 카페부터 거대한 세상까지 그 기본적인 원리와 맥이 닿고 있었다.
처음 올리버는 그 말을 어렴풋이 이해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말뜻이 피부로 이해됐다.
란다 인근 소도시 버러통으로 가, 윌레스를 만나 협상하고, 그 과정에서 왕가의 후계자가 악마와 거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딱히 세상은 변한 게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해가 뜨고 지며, 도시는 굴러갈 뿐이었다.
마치 기계와 같이.
그리고 그것은 도시에 사는 올리버도 마찬가지였다.
시외(市外) 임무를 마치고 난 후, 올리버는 감옥에서 탈출한 탈옥범들을 잡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풀 꺾이긴 했지만, 감옥이 부서지는 과정 중 도망친 죄수들이 너무 많아 아직까지 비상체제였기에.
큰 건을 한 올리버는 원한다면 쉬어도 됐지만, 그냥 돈을 벌기로 했다.
탈옥범을 잡는다고 경찰, 시(市) 방위군까지 도시 구석구석을 들쑤시는 통에, 그레이마켓이나 블랙마켓이 폐쇄돼 딱히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탈옥수를 잡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편에 속했다.
란다 감옥의 행정은 잘 잡혀 있어, 수감된 죄수들의 모발, 혈액들을 보관했기에 올리버는 이를 받아 추적하기만 하면 됐다.
미니언에 센시브 노스(sensitive nose)를 부여하면 웬만해서는 대부분 쉽게 찾을 수 있어, 하루에 최소 한두 명, 많을 때는 다섯에서 일곱 명까지 잡았다.
대부분 잡범이라 하나하나 액수가 그리 높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숫자가 많으니 제법 짭짤했다.
정기적으로 감옥이 습격당해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물론, 가끔씩 위험한 흉악범을 마주할 때도 있었다.
쌍도끼를 휘두르는 정신 이상 용병,
하수도에 터를 잡은 조작계열 흑마법사,
여덟 개의 은행을 턴 엔조이먼트 드루이드 등등.
이들은 다른 탈옥수에 비해 다섯 배에서 열 배 가까이 되는 현상금이 걸렸고, 올리버는 마주치는 족족 이들도 잡았다.
똑- 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포레스트 레스토랑 지하 사무실. 올리버가 물었다.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지자 올리버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서 장부와 씨름 중인 포레스트를 볼 수 있었다.
“왔나?”
“예, 많이 바빠 보이시는군요.”
“요즘 일이 많잖나?”
올리버를 고개를 끄덕였다.
탈옥범을 잡느라 해결사들 모두 분주했고, 자연스럽게 해결사와 거래하는 중개인들도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큰 건이 아니라, 작은 건이 무수히 많아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갔다.
“뭐, 그렇다고 불평할 생각은 없네. 뭐가 됐건, 난 계속 수수료를 받아먹을 수 있으니. 일이 없는 것보단 낫지.”
포레스트가 이 바닥 프로답게 말했다.
실제로 그는 피곤해 보이긴 해도 일을 하는 손은 대충 움직이지 않았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레스토랑 일도 그렇고, 많이 바쁘시겠습니다.”
“자잘한 일은 직원들이 알아서 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어. 난 중간중간 돈 들어가는 부분만 보고 듣고 결정하면 돼. 잠시만 기다리게.”
포레스트는 작성 중이던 장부를 마저 다 쓰고 일어나 책상 뒤쪽에서 서류 가방을 가져왔다.
“여기 저번 보수네. 한꺼번에 스무 명이나 잡아서 그런지 이번에는 액수가 좀 되는구만.”
“머피 씨 덕분이죠.”
“머피?”
“예, 봐둔 부지 근처에 탈옥범들이 터를 잡아 신경 쓰인다고 제게 도움을 청했거든요. 현상금은 전부 저더러 가지라고 했습니다.”
“무료 청소를 시킨 셈이군. 돈도 많이 버는 친구가.”
그건 사실이었다. 올리버가 이런저런 일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아서는 해결사에서 사실상 시(市) 소속으로 넘어갔고,
머피의 경우에는 호프먼 운송회사 합병에 성공해 사업의 수직화에 성공, 그로 인해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T구역 내에서는 이사 다음 급이 되었다고 하던가?
여하튼 다들 참으로 열심이었다.
“인력을 지원해주시고, 주변 정보도 제공해줬으니,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포레스트는 올리버의 말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해결사로서는 썩 훌륭한 태도는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굳이 따질 생각도 없었지만.
이미 올리버의 성격을 알기에 조언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고, 무엇보다 저 기이한 태도가 썩 싫지도 않았다.
이 바닥에서 보기 힘든 저 느슨한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묘한 신뢰를 줬다.
실제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알파벳 앞 구역대 고객 몇몇이 의뢰를 보낼 정도로.
물론, 헐값에 부려먹으려는 인간도 있지만, 그건 포레스트가 거르면 되는 거였고····.
“포레스트님?”
“음?”
먹보주머니로 현금을 챙긴 올리버가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이만 일어나 봐도 되겠습니까?”
“아···. 잠깐만. 괜찮으면 몇 가지 질문 좀 해도 되겠나?”
“네.”
“곧 비상령이 끝날 거 같아. 감옥 습격 후 지금까지 다들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으니 당연하지····. 도시 밖이나, X, Y구역으로 튄 인간들은 놓쳤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로 넘어가고.”
“예.”
“그럼, 다시 일이 밀려올 거야. 비상사태 때문에 대부분 의뢰를 받을 수 없었거든. 일종의 성수기인 셈이지. 혹시, 바로 일할 생각인가?”
흠·····. 올리버가 잠시 고민했다.
“글쎄요.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 조금 휴식을 가질까 합니다.”
“다행이군.”
“다행인가요?”
“그래, 원래라면 자넬 최대한 굴려 수수료를 받아먹을 생각을 했겠지만,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몸을 사려야 하거든.”
“시국이라뇨?”
“파테르교에서 곧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될 거라더군.”
아, 기억났다. 얼음 땅에서 기이한 힘이 감지돼 파테르교에서 난리가 났다는.
그냥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한동안 쉬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 물론, 시에서 보호해 준다고 하니, 크게 걱정할 건 아니지만, 굳이 소나기가 올 때 외출할 필요도 없으니.”
“예.”
“그럼, 단속이 끝날 때쯤 일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는 게 어떻겠나? 그 사이 동안 자넨 푹 쉬고, 난 괜찮은 일을 찾아볼 테니.”
“예, 알겠습니다. 말씀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좋군. 그럼, 이만 가보게. 수고 많았네.”
***
보상금을 챙긴 후 올리버는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다.
바로, 집으로 갔는데, 가는 도중 길거리 잡화점에 들려 신문사 별로 신문을 한 부씩 샀다.
“좋은 선택일입니다. 도시가 난리가 나 재밌는 기사가 많이 나왔거든요. 덕분에 평소보다 두, 세배는 더 잘 팔립니다. 다행이죠?”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잡화점 주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숙소로 돌아와 신문을 읽으니 흥미로운 기사가 많이 보였다.
탈옥범들로 인한 도시의 피해 보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 용감한 경찰들.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관해 이야기했으며, 논설을 내놓기도 했다.
몇몇 호사가들과 시의원들은 이 문제를 분석하며 해결 방안을 내놓기도 했는데, 경찰국의 힘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죄수들을 너무 좋게 대해 줬다며, 오염구역을 개발해 그곳에 감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참으로 재밌었다.
이 모든 것이 시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한 일종의 밑 작업.
감옥 건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뭐가 그리 재밌나?”
“뭐라고 할까.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밑그림이 보이니 재밌네요. 어르신.”
갑자기 끼어든 제3의 목소리. 올리버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그곳에는 멀린이 서 있었다.
“놀라지 않는구만.”
“포털을 이용해 절 여기로 보내주신 분이 어르신인 걸 잊지 않았습니다. 언제 나타나셔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혹시, 자네 재미없다는 이야기 듣지 못했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늙은이의 통찰력이라고 해두지. 잠깐만 실례.”
멀린은 그 말과 함께 올리버가 든 신문을 가져와 읽었다.
“음····. 시(市)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구만. 이리저리 밑밥을 까는 거 보니····. 마법사를 견제하려는 무력 조직이라도 세울 생각인가?”
“····!”
“오, 반응을 보아하니, 뭔가 아는 게 있나 보군. 하긴, 실력 있는 해결사는 자연스럽게 그런 일에 접하니.”
“어떻게 아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늙은이의 통찰력이라 해두지. 퍼즐 하나만 봐도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어.”
“오····. 대단하시군요.”
“아니, 거짓말이야. 그걸 믿나? 나 정도 되면 여기저기서 여러 정보가 들어와. 그걸 듣고 예측할 수 있지”
“·····.”
“그런 눈빛 하지 말게. 상처받으려고 하니. 마법의 기초일세.”
“거짓말하는 거요?”
“아니····. 맞기는 한데, 아니야. 연출이지.”
“연출요?”
“그래, 지혜로운 척, 대단한 척하는 거. 이게 마법의 기초일세. 이러면 대다수 사람들은 감탄하며, 감히 대항할 생각도 못 하지.”
음·····. 그렇게 틀린 말 같지는 않았다. 연출이라.
“그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겁니까?”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이나? 다른 일 때문에 왔네.”
“다른 일요?”
“그래, 로스번과 아이들이 지낼 곳이 정해졌어.”
***
마텔에서 탈출한 로스버과 다른 아이들이 머물 곳은 원소학파 소유의 한 지부라고 했다.
란다에 있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으니, 인적이 드문 오지로 보내기로 했고, 아이들은 모두 이에 동의했다고 했다.
“뭐, 선택사항이 없는 것도 있고. 애들이지만 자기 처지는 다들 잘 알고 있거든.”
대저택 복도를 걸으며 멀린이 말했다.
“그렇군요.”
“냉정하군. 불쌍하지 않나?”
“안타깝지만 별수 없죠.”
올리버의 대답에 멀린은 피식 웃었다. 그의 감정을 읽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마법 훈련을 받을 거야.”
“마법요?”
“그래, 마텔에서 신체를 개조해 마력을 담고 운용할 수 있는 몸이 됐거든. 어디까지 될지 모르지만, 일단 한번 훈련시켜 볼 생각이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지.”
“그렇군요. 그런데 전 왜·····?”
“떠나기 전 자네와 만나고 싶다고 정중히 부탁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더군.”
“······.”
올리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애당초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 일이 아니었다.
그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멀린이 진지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그 아이들은 힘들 거야. 정말로.”
“네?”
“나이가 많아. 보통, 마탑 애들은 평균 일곱 살쯤에 기초 교육을 받아. 그걸 고려하면 꽤 늦은 나이지. 특히, 로스번은 15살, 두 배는 더 늦었지. 그쪽에 넣는 건 내 능력으로 했지만, 거기 생활을 견디는 건 애들의 몫이야.”
“·····.”
“그러니 조언 같은 거라도 해줘. 그 아이들은 자넬····. 동경하는 것 같으니.”
“절요?”
“그래, 너요.”
올리버는 미간을 찌푸렸다. 동경이란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과 연결된다는 생각은 안 했다.
“이상하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그래도 어울려줘. 고단한 삶에선 간혹 거짓말이라도 필요할 때가 있으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멀린의 목소리가 진중해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이라도 필요하다라···.
이윽고 한 방에 들어섰다.
방에는 아이들이 지낸 것으로 추정됐다.
침대가 다섯 개 있었고, 그 앞에 아이들이 짐을 싼 채 앉아 있었다.
“아·····!”
아이들이 모두 올리버를 봤다.
반가움, 동경, 감사, 숭배, 호의 온갖 밝은 빛이 빛났다.
올리버는 그 빛이 부담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아이들 역시 뭐라 말을 걸지 못한 채 일어서서 초조하게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어색한 침묵.
그러던 중 로스번이 필사적으로 용기 내 올리버 앞에 다가왔다.
처음 글자를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와 비슷했다.
“저, 저 선생님.”
“네, 로스번.”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지낼 곳을 얻었어요. 마, 마법도 배울 수 있다고 했고요.”
그 말에 맞춰 다른 아이들 역시 조심조심 다가와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 해요.”
올리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이런 일····. 어려웠다.
새삼 자신이 어리석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니.
올리버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냈다.
“·····음, 저기, 편하게 말해도 될까요? 제가 이런 걸 잘 몰라서.”
긴장한 채서 있던 로스번이 대답했다.
“····예.”
“다들 지금 뭔가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뭐가 무서운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아이들은 부정하지 않았다. 모두 머뭇거리던 중 로스번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저, 저희가 거기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그, 그러니까. 저희가 정말 마법사가 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어요.”
“····.”
“저도 로스번 나이 때에 흑마법사의 제자로 들어갔어요. 주인님, 그러니까. 제 스승님을 그때 만났거든요.”
“저, 정말요?”
“네. 그러니 로스번을 비롯한 다른 분들도 하기에 따라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다지 논리적인 말은 아니었으나, 다행히 통한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지배하던 두려움이 조금이나마 걷혔다.
로스번만 빼고. 그는 희망을 보다가 다시 절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전 당신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하, 하지만. 선생님은 대단한 분이잖아요? 그에 반해 전 아무것도 아니고요.”
“아무것도 아니라뇨?”
“말 그대로요. 여기서 책에서 봤어요. 마법에는 재능이 필요하다고. 제겐 재능이 없을 거예요.”
“확인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 아닐까요?”
“····그렇지만, 전 선생님에 비해 분명 모자랄 거예요. 재능뿐 아니라, 용기나 지혜도요. 근데 잘할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용기가 없다뇨?”
“···??”
“로스번, 로스번은 혹시 저한테 다가와 글을 가르쳐 달라고 했던 것 기억하나요?”
“····예.”
“그때 당신은 용감했습니다. 저보다도요. 이건 진심이랍니다.”
“······.”
“전 그러지 못했거든요. 제가 흑마법사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기 때문이거든요.”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조셉의 선택을 받던 그때 만약 단 한명이라도 흑마법에 재능이 있는 자가 나타났다면 올리버는 선택 받지 못하고 지금도 광산에 있었을 터였다.
로스번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요?”
“예, 다시 말하지만, 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랍니다. 그에 비하면 당신은 저보다 더 용감하다고 할 수 있죠. 전 먼저 말을 걸 용기가 없었거든요.”
올리버가 로스번에게서 눈을 떼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나오자마자 서로 챙겨줬죠. 혼자 도망치려고 하거나, 울지 않고요····. 최소한 전 그게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침묵하며 올리버의 말을 경청했다.
올리버가 다시 로스번을 보며 말했다.
“앞날이 어찌 될지 전 모르고, 약속도 못 합니다. 그건 거짓말이고, 전 당신께 거짓말하기 싫습니다. 로스번. 하지만, 전 당신이 저보다 용감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배우는 속도도 빨랐고요. 당신은 똑똑합니다.”
“····저, 정말인가요?”
“예. 그러니, 하던 대로 하면 충분히 잘 적응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로스번은 그 말에 입을 앙다물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하나만 더 질문드려도 돼요?”
“말씀하세요. 전 듣기 위해 왔습니다.”
“화가 나요. 마텔에게요. 복수하고 싶어요. 그런데, 복수는 나쁜 거잖아요? 어떡해야 하죠?”
로스번의 감정 아주 깊숙이 숨겨놨던, 분노와 증오를 끄집어냈다. 생존을 위해 억지로 쑤셔놨던 감정을 올리버 앞에 드러냈다.
“돌려주고 싶어요. 그때의 고통을 공포를 그들 전부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늘 잊으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어떡하면 좋죠?”
대답을 갈구하는 로스번.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정말 용서가 안 된다면요.”
“·····그래도 되나요?”
“예, 로스번···. 전 그런 걸 잘 모르거든요. 분노나, 용서나, 그런 거. 그래서 로스번의 마음에 공감하고, 좋은 대답을 해줄 수 없어요.”
“······.”
“그리고 이제는 아시겠지만, 제 일은 해결사예요. 필요하면 사람도 죽이죠. 이런 제가 어찌 감히 당신께 용서하라고 말하겠습니까? 그건···. 좀 아니죠.”
로스번의 감정은 점점 분노와 증오로 기울어 갔다.
“하지만 로스번.”
“···?”
“제가 알기로 로스번이 힘을 길러 복수를 한다 해도 아주 힘든 일이 될 거예요. 세상은 거대한 기계라서, 그걸 망가트리려고 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거든요.”
“····상관없어요.”
“그렇다면 괜찮아요. 그러나 어렵사리 얻은 지식과 힘을 평생 싸우는 데 바쳐야 할거예요. 당신께서는 싸우기 위해서 제게 글을 배운 건가요?”
“······.”
“강요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알고 싶어요. 제게 글을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무슨 생각, 무슨 목표로 그랬나요? 저는 최소한 그게 싸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요.”
“·······.”
“다시 말합니다. 전 당신이 복수한다 해도 막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당신의 권리이니.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복수를 포기하고 원래 꿈꿨던 목표를 추구한다면, 음······. 필요할 때 한 번 더 도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