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170
170. 인사 (1)
X구역, 폐병원.
뚜벅. 뚜벅. 뚜벅.
올리버는 폐병원 뒷문을 통해 들어가 외길 복도를 걸었다.
사방이 캄캄했지만, 달칵- 랜턴으로 앞을 비추자 칠흑 같은 어둠이 걷히며 길이 드러났다.
밝아진 것에 비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는 휑한 복도.
그러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상황은 변하였다.
처음 나온 것은 복도 한쪽에 널브러진 해골들로, 처음 보았을 때처럼 검붉은 살점이 붙어 있었다.
어째 양이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하고.
뚜벅. 뚜벅. 뚜벅.
안으로 더 들어가자 이번에는 부패한 시체 무더기가 나왔다.
쌓인 시체 더미엔 수없이 많은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며 식사가 한창이었는데, 랜턴을 비추자 자신들의 먹이이자, 집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뚜벅. 뚜벅. 뚜벅.
이윽고 우측으로 빠지는 복도가 나왔고, 올리버는 그쪽으로 빠졌다.
오른쪽 샛길 끝에는 커다란 방이 있었으며, 복도에서 봤던 것보다 더 많은 시체 더미를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보는 거지만 헤아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올리버는 그중 한 시체 앞에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주인님.”
재단에 기댄 채 앉은 외팔이 시체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썩어 문드러진 상태였다.
바닥에는 썩은 진물이 고였으며, 몸 이곳저곳을 무수한 구더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
냄새 역시 역하기 그지없었지만, 올리버는 조금의 혐오감도 품지 않고 그 시체를 정중히 바라봤다.
“근 1년만인가요?”
“·····.”
부스럭부스럭.
올리버는 랜턴이 주변 전체를 비추게 바꾸어 바닥 한쪽에 두었고, 들고 왔던 종이봉투를 뒤져 술과 안주를 꺼냈다. 컵이랑 접시도.
올리버는 평범하게 식사 준비를 하듯 컵에 술을 따르고, 가져온 접시에 안주를 담았다.
포레스트의 레스토랑에서 포장 주문한 것인데, 냄새가 아주 좋았다.
올리버는 술을 따른 잔과 음식을 담은 접시를 죽은 조셉 앞에 정중히 놓은 후, 맞은편에 앉아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음식을 먹었다.
“오랫동안 안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주인님. 그동안 이래저래 일이 있었거든요.”
“······.”
“거지패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주인님께 인사드리고 나오고 나서요.”
“·····.”
“막상 패밀리를 떠나고 나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요. 늘 느끼는 거지만 전 참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마리가 발하던 빛이 바래지고나서, 세상을 알기 위해 나와놓고 정작 전 어딜 가야 할지조차 전혀 모르다니.”
“·····.”
“그런데 그때 캔트 님을 만나서 그분의 거지패에 들어갈 수 있었죠. 딱히, 갈 데도 없었으니. 덕분에 세상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해결사도 될 수 있었고요···. 아, 전 해결사가 됐습니다.”
올리버는 술을 비우며 차분히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캔트의 거지패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인형사 글립과 싸우며, 캔트의 제안으로 해결사가 된걸.
포레스트를 만나고, 임무를 맡으며, 마법사와 싸우는 등 현재까지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차분히 설명했다.
죽은 조셉은 여전히 침묵할 뿐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임무를 기점으로 쉬고 있습니다. 벌써 2주가 넘은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이 사이 어르신께 마법을 배웠으면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썼을 텐데.”
“·····.”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로스번과 다른 아이들을 맡아주고, 마텔 건도 저 대신 해결해주셨으니까요.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요. 그래서 현재 다른 식으로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
“이곳 X구역 체육관에서 운동해 체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송장인형도 수리하고 있고요. 참고로 뭐든 하니까 요령이 붙더군요.”
“·····.”
“그 외에 요즘 차일드도 교육하고 있습니다. 송장인형에 들어간 상태로 말을 할 수 있게요. 요즘 덩치가 더 커졌고, 그만큼 더 똑똑해졌습니다. 식비가 더 나가고 있지만요.”
“·····.”
“그 외에도 코드어도 다시 공부 중이기도 합니다. 마텔 건으로 세계수에 접속한 이후 좀 더 이해가 잘 되더군요. 막힘이 없다고 할까요? 하지만 반대로 악마에 관한 기초서적은 어째서인지 점점 더 읽기 힘들어집니다.”
“······.”
“참 이상합니다. 제대로 된 내용도 없고, 어려운 말도 없는데, 읽을수록 눈이 피로하고 속도 안 좋더라고요.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곧 마지막 구간에 들어설 것 같고요.”
“·····.”
“····거기서 봤습니다. 말을 탄 노인. 주인님과 거래하던 악마를요. 악마치고는 특이하게 사람을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아니면 제가 악마에게 잘못된 편견이 있던가요.”
“·····.”
“지금 그 악마의 노예로 일하고 계십니까?”
“·····.”
“책에서는 그렇다고 하던데요?”
“·····.”
“마지막에 일이 있긴 했지만····. 역시 전 주인님께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절 죽이려고 했지만, 뭐가 됐건 주인님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지 않습니까? 광산이라는 좁고 지루한 세상을 떠나 여기로 말입니다.”
올리버가 그때를 떠올렸다. 가난한 형제들을 만든 캔트와 재회한 순간을, 요안나에게 성경을 돌려줬을 때를.
“전·····. 그 과정에 기쁨을 느꼈고, 실망도 했지만, 종합적으로 즐거웠던 거 같습니다. 그 뭐랄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그래서 주인님께서 말을 탄 노인의 영원한 노예가 됐다고 했을 때 약간 기뻤습니다. 만날 방법이 있다는 거니까요. 언제가 될지는 약속할 수 없지만, 언젠가 한 번 직접 얼굴을 보고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
침묵하는 조셉. 술병을 다 비운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날 때 다시 한번 찾아오겠습니다. 아, 참고로 아름다운 빛이나, 악마에 관해서는 아직 제대로 조사를 못 했습니다. 일이 많고 궁금한 것만 계속 늘어나서요····. 그래도 이 덕분에 이 세상이 즐거운 거 같습니다. 배울 게 많지 않습니까?”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랜턴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도중 약속 시간에 맞게 도착할 수 있는지 시계를 살펴봤다.
빛을 든 올리버가 점차 멀어지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어둠을 뒤집어쓰는 조셉의 재단.
마치 시간이 사라진 듯 고요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체 앞의 컵과 접시는 깨끗하게 비워져있었다.
***
“하나 더!!”
X구역의 체육관 광장이자, 불법 격투기 시합 트레이너인 딘클리지.
그는 벤치프레스를 드는 올리버 옆에서 소리쳤다.
“하나 더!!”
그의 목소리는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컸으며, 그뿐 아니라 그냥 소리치는 게 아닌 터질 듯한 근육을 과시하며 소리쳤다.
딘클리지가 프런트 더블 바이셉스 자세로 소리쳤다.
“마지막 하나 더!!”
딘클리지가 사이드 체스트 자세로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딘클리지가 백 더블 바이셉스 자세로 소리쳤다.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 더!!”
딘클리지가 사이드 트라이 셉스 자세로 소리쳤다.
“하늘에 맹세코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저기 죄송한데, 아까 전부터 하나 더라고-”
“-이번에 진짜로 마지막으로 하나 더더어어어어어어!!!”
딘클리지가 고릴라처럼 근육을 과시하며 포효했다.
머리가 흩날릴 정도의 고함.
올리버는 이미 상당히 무리가 간 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벤치프레스를 들어 올렸다.
달달달 팔과 가슴이 떨렸지만, 딘클리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번들거리는 근육을 뽐내며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넌 할 수 있다! 내가 응원하마!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러자 몇몇 이들이 호응하듯 같이 소리쳐줬다.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올리버가 간신히 들어 올리자 딘클리지는 이제 쉬어도 좋다고 말했다.
올리버는 벤치프레스를 올린 다음 숨을 내쉬었다.
“하아····.”
캔트가 알려준 대로 꾸준히 운동해 나름 근력이 붙었다 생각했지만, 착각인 듯했다. 딘클리지의 훈련을 간신히 따라갈 수준이었다.
“여기······.”
말없이 다가와 물을 건네는 조.
올리버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것을 받아 마셨다.
꿀꺽. 꿀꺽. 꿀꺽.
다 마셨을 때쯤 딘클리지가 씨익 웃으며 우악한 손으로 올리버의 등을 퍽 때렸다.
꽤 아팠지만, 놀랍게도 악의는 없었다. 오히려 호감을 보이기까지 했다.
“대단하군. 대단해! ····솔직히 공돈이나 벌려고 받아줬는데, 이렇게 잘 따라올 줄이야. 근성 있어. 근성. 다른 구역 찌질이들이랑 다르게. 하핫핫핫핫.”
그의 말은 순수한 진심이었다. 인정, 호감을 올리버에게 보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쉬어. 쇠도 적당히 때려야 단련이 되니. 다음에도 나올 수 있지?”
올리버가 잠시 생각했다.
“·····예.”
“좋아, 대답에 패기가 없는 거만 빼면 완벽해. 비싼 돈 내고 다니니 거기까지는 안 따지지. 어쨌건 좀 쉬다 들어가.”
딘클리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웃으며 떠났다. 뭔가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뭐가 저리 좋은 걸까. 다행히 그 의문은 조가 해소해주었다.
“원래 사람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그렇습니까?”
“어, 이유는 나도 잘 모르지만. 이 근방에서는 유명해. 체육관 차리겠답시고, 여기 기구도 다 훔쳐왔다는 소문도 있어.”
올리버가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 자체가 노후된 것과 별개로 운동기구는 많고, 나름 괜찮았다. 그런데 이걸 훔쳐서 마련했다?
진짜 열정 하나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뭐, 그런 거 같습니다. 정말 열심히 가르쳐주시더군요.”
“네가 돈을 꽤 낸 것도 있고, 잘 따라오는 것도 있고. 못 따라오는 놈은 사람 취급도 안 하지만, 자기 훈련 따라오는 놈들은 어지간해선 다 좋아해·····. 그보다 안 힘들어? 관장님이 가르치는 건 잘해도 엄청 몰아붙이는 스타일인데.”
“그럭저럭 버틸만합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제는 제법 오래된 기억이었지만, 광산 생활을 해본 올리버에겐 아직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참 열심이군. 재주도 많으면서.”
툭 하고 던진 한마디. 올리버는 그런 조를 바라봤다. 조의 얼굴에 작게 멍이나 찰과상이 있었다.
“조도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요. 그 불법 격투기 시합이라는 거 많이 힘든가요?”
조는 얼굴의 상처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별로. 가끔씩 위험한 놈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럭저럭할만해. 특히, 요즘엔 일거리도 없으니. 이거라도 해야지.”
맞았다. 감옥 탈출 건으로 시(市)가 민감해 블랙마켓, 그레이마켓이 폐쇄됐을 뿐 아니라, 다른 범죄 조직도 몸을 사리고 있었다.
거기다 파테르교의 흑마법사 단속도 뜨면서 뒷세계 경제는 일종의 불황을 겪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어찌 잘 지내시나요?”
다른 분들이란 다름 아닌 샘과 오언으로, 켈 자유독립군 때 조를 따라와 함께 일했던, X구역의 사람들이었다.
“어·····. 너한테 고맙다는 인사 좀 전해 달라고 하더라.”
“저요?”
“포션이라던가, 일 끼워준 거라던가 이래저래 고맙대. 덕분에 이번 겨울은 한숨 돌렸다더군.”
“그러시다니 다행이네요. 다들 열심이시던데.”
“너·····.”
“예?”
“·····아니다. 그보다 이제 그만 갈 거야?”
“음····. 괜찮으시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번에 말씀하신 펀치랑 발차기, 태클 연습했습니다. 봐주실 수 있나요?”
“물론, 대신 블랙 아머랑 슈트 좀 다시 살펴봐 줘.”
“네, 좋습니다.”
***
이후 올리버는 조와 같이 훈련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대. 그렇다고 쉬진 않았다.
쉬는 대신 송장인형의 상태를 체크해보았다. 늘 정기적인 관리와 수리가 필요했으니.
현재 보유 중인 송장인형은 ‘흑마법사’, ‘던칸’, ‘저격수’, ‘넝마’, ‘도우미1’로, 그중 넝마의 파손상태는 조금 심한 상태였다.
전투 때마다 공격을 당하고, 그 찰나 방심한 적에게 기습적인 공격을 가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올리버는 고민 끝에 바로 수리하는 대신 해부해 구조를 파악하기로 정했다.
어차피 재료(시체)가 질을 결정하는 흑마법사, 던칸, 저격수, 도우미1과 달리 넝마는 가공 기술이 중점이 되니, 그리 아깝지도 않았다.
차라리 교재로 사용해 새로운 송장인형을 만드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복잡하네.”
넝마의 구조와 개조상태를 살핀 후 올리버는 지하실 구석에 갇힌 거미-파커를 살폈다.
술사와 떨어진 탓인지 올리버만 보면 발작을 일으켜 현재 딥 슬립으로 재운 상태.
이런저런 실험을 통해 올리버가 파커를 드디어 통제할 수 있게 됐으나, 올리버는 이걸 다루는 대신 해체해 부품으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거미줄 같은 능력이 마음에 들긴 하나 올리버와 협업하기에는 기동성이라던가, 전투 스타일이 달라 부적절했기에, 거미줄을 내뿜는 부위만 어떻게 살려 쓰기로 했다.
문제는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 기술자나 책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책이나 도와줄 사람을 구해야 하는구나····. 빨리 블랙마켓이 다시 열려야 할 텐데.”
올리버가 파커를 보며 아쉽게 중얼거렸다. 점점 쇠약해져 이대로 너무 오래 두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럼 부품으로 못 쓰고.
또 거기서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안전이 보장된 실험실이 필요했다.
그리 생각하며 올리버는 신문 뒤쪽 광고면을 봤다. 광고면 위에는 대문짝만한 글자로 뭐라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