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324
324. 개시(開始) (1)
“흥······.”
손에 머금은 흑마법으로 마력 사슬을 풀고, 마법을 사용해 적을 해치운 케빈이 콧방귀를 뀌었다.
마탑의 생활방식에 맞춰 강한 척, 태연한 척하기 위해서 말이다.
실제 성취 이상으로 보이는 것이 중요한 곳이기에.
허나, 그런 겉모습과 달리 케빈은 속으로 적잖게 놀랐다.
이런 타이밍에 맞춰 흑마법을 미리 배운 자신의 운에, 또, 단기간 내 이룩한 자신의 성과에.
한순간 신이 도왔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신이라니······.
“흐, 흑마법?”
“도대체 무슨······?”
자욱한 안개 벽에 사방이 가로막히고, 마력 사슬에 꼼짝없이 묶여 공격까지 받을 뻔한 마법사들이 케빈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경악했다.
케빈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지식을 위해서라면 웬만한 불법도 너그럽게 넘어가는 마법사에게도 흑마법은 터부시됐으니.
그러나 케빈은 일단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교수와 한패인 시연장의 다른 마법사들에게 선제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그들은 교수가 당하자 자신들이 뒤를 이어 공격하려 하였다.
케빈은 먼저 발을 통해 땅에 마력을 주입, 화염 마법이 가미된 대지 마법을 발동. 적들 발아래로 돌창을 솟구치게 했다.
콰과과과과과곽!!
흙과 돌로 이뤄진 창은 아래에서 위로 무수히 솟구치며 다수의 적을 꿰뚫었지만, 적들도 상당한 실력의 마법사.
적잖은 이들이 짐승과 같은 몸놀림과 마법을 통해 케빈의 공격을 피하거나 그 위에 올라탔다.
정상적인 놈들은 아닌 듯했다.
‘뭐, 상관없었지만.’
[파이어크레커(Firecracker)]케빈이 영창하자 대지 마법에 가미된 화염 마법이 발동.
돌창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에 있던 적들을 화염과 열기, 파편으로 공격했다.
돌창이 솟구쳤던 일대가 포격이라도 맞은 듯 불바다가 되었고, 첫 번째 공격을 피해 방심한 적들에게 크나큰 피해를 주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둘, 셋 정도 보였으나, 그들은 압도적인 화력에 전투 의지가 꺾여 그대로 도망쳤다.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케빈은 다시 손에 감정을 머금어 데릭을 구속한 마력 사슬을 억지로 끊어버렸다.
마법사를 목표로 만든 탓인지, 흑마법에는 생각보다 취약했다.
“교수님······?”
마력 사슬에서 풀려난 데릭이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데릭치고는 보기 드문 표정.
케빈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거짓말이란 뻔뻔할수록 잘 먹히는 법이니.
“종군마법사 시절 업무 겸 연구 목적으로 익힌 거니까. 놀라지 마.”
“하,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런 게 따질 사안이라 생각하나?”
케빈이 과거 전쟁터에서 병사들을 상대했을 때처럼 데릭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는 좋은 대응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 상황 자체가 전쟁이나 다름없었으니.
란다의 마탑, 갈로스에 로큘리 대학, 대륙 중앙의 마법사 가문 등이 모인 이 자리에서 주최 측인 로큘리 대학이 습격을 하다니. 전쟁이란 과격한 단어를 써도 모자람이 없었다.
다행히 데릭은 말귀가 통해 지금 눈앞의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케빈이 흑마법을 사용하는 건 개인의 작은 일인 데 반해, 지금 상황은 정상에서 아득히 벗어난 미친 상황이었으니.
‘그리고 이런 미친 짓을 미친놈 혼자서 벌였을 리가 없지······. 필시, 윗선과 관련되어 있어.’
케빈은 주변 공간을 완전히 장악한 안개를 보며 확신했다.
구체적인 효력과 위력은 알 수 없지만, 규모만 봐도 보통 결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소 원마스터(One Master)······. 아니,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 이상이 관련되어 있어야 말이 됐다.
케빈은 빨리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데릭에 이어 펠릭스의 마력 사슬을 끊은 다음 뒤돌아 올리버를 불렀다.
“제논. 너도-”
“-전 괜찮습니다.”
뒤돌아보는 케빈을 향해 올리버가 말했다. 실제로 올리버는 케빈의 도움 없이 마력 사슬에서 빠져나온 상태였다.
주변의 대다수 마법사가 아직도 풀지 못해 낑낑대는 것과 몹시 대조되는 모습.
펠릭스가 너무 놀라 얼이 빠진 채 물었다.
“어떻게 푼 겁니까?”
“방해하는 마력 간섭에 맞춰서 마력 흐름과 술식을 변경해서요?”
당연한 거지만 당연해서는 안 되는 기교를 올리버는 평범하게 말했다.
애당초 케빈이 흑마법으로 마력 사슬을 끊은 게 그 방법이 까다롭기 때문이었는데.
실제로 이 자리 있는 적잖은 마법사 중 다섯, 여섯 명만 뒤늦게 마력 사슬을 자력으로 빠져나온 게 그 증거였다.
마탑의 학생은커녕 일개 직원인 주제 이런 수준의 마력 통제력을 보유하다니.
올리버가 보통 직원이 아님을 아는 데릭과 펠릭스조차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이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게 됐지만 말이다.
주변을 둘러싼 안개가 요동침과 동시에 하얀 아가리로 변해 해당 공간을 삼켰다.
***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회의실로 개조한 호텔 최상층부. 생명학파의 수장 테어도어 브란트가 대뜸 말했다.
실제 나이에 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그는 안개로 뒤덮인 창문 밖을 바라보았고, 그런 그의 뒤로 순수마력 학파의 명예 그랜드 마스터 필립 로어와 스카디 소학파의 원마스터 틸다 아이스아이가 앉아 있었다.
부탁대로 수행원도 없이 각각 혼자서 이곳에 와주었는데, 테어도어는 그답지 않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꼈다.
그만큼 자신을 신뢰한다는 거였으니.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덕목이었다.
“흐음······. 테어도어 씨. 질문 두 가지만 해도 되겠습니까?”
로어 가문의 수장 필립이 노년에 접어든 나이임에도 깍듯이 예를 갖춰 말했다.
테어도어를 존경했기에. 테어도어 역시 이에 존중으로 화답했다.
“해보시게. 그댄 그럴 자격이 있지.”
“억울하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모든 것이네.”
“모든 것이요?”
“그래. 현재의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부조리한 이치 모든 것 말이야. 대답해 보게. 인류 중 가장 높은 지식을 갖추고, 가장 위대한 힘을 가진 게 누군가?”
“······우리 마법사지요.”
“맞아······. 그럼, 지금 인류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은 누구지?”
“······그 역시 우리 마법사입니다.”
“맞아. 전부 우리 마법사지. 지금 세상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마법이고, 그 마법을 관장하는 게 우리니까. 그런데, 현재 우리의 위치를 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테어도어가 진실된 억울함과 분노를 담아 말했다.
역사상 마법사들이 가장 번영하는 시대였음에도 말이다.
“난 옛날부터 이해할 수 없었네. 왜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자본가와 협작질만 일삼는 위정자 따위가 우리 마법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지. 심지어 태어난 것 외에는 그 어떠한 업적도 없는 왕이란 족속은 우리 머리 위에 있지 않나? 이게 정녕 옳다고 생각하나?”
필립과 틸다. 마탑의 두 거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테어도어의 과격한 발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 둘 모두 젊은 시절부터 테어도어의 논문을 읽고, 개인적으로 교류했기에 테어도어가 어떤 사상을 품은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해당 발언에 그렇다 할 충격받지 않았다.
뭣보다 필립과 틸다도 마법사였기에 정도만 다를 뿐 테어도어의 사상에 어느 정도 동의하기도 했다. 다만······.
“반응들이 없군.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나?”
“전혀······. 세밀한 부분에서는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마법사들이 우월하다는 부분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보통 인간이 할 수 없는 걸 우린 할 수 있으니까요. 특별하죠.”
“그 말이 날 기쁘게 하는군. 필립 중장.”
“그런데 부조리한 이치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필립은 창문 너머 심상치 않은 안개를 봤음에도 차분히 질문을 이어갔다.
현 마법 사회의 원로이자, 한때 아카이브 후보로까지 올랐던 뛰어난 마법사를 이해하기 위해 말이다.
“신이 정한 인간의 수명.”
“······.”
“그대들은 억울하지 않나? 그대들 역시 그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학식과 힘, 업적을 세운 존재들이며, 평생에 걸쳐 자신을 갈고닦은 사람들이지 않나? 그런데 보게. 자네들을 포함한 나 모두 서서히 노화(老化)의 저주를 받아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지. 억울하지 않나?!”
테어도어가 진실로 분노하고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건 너무나도 당연하였다.
몇 대에 걸쳐 사용해도 마르지 않을 금고를 쌓고, 일시적으로 젊음을 되돌리는 지식을 쌓으며, 천재지변을 방불케 할 힘을 쌓았음에도 저 하늘에서 정해놓은 절대적이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자신을 조여왔으니.
“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조리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나고 두려운 건 따로 있네.”
테어도어의 목소리에 점차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목표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거야······.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했음에도 목표한 경지에 닿지 못하고 죽는다니. 슬프지 않나? 도대체 저 하늘이 뭐기에? 신이 뭐기에? 우리의 노력을 무시하고, 성취를 가로막는단 말이야!!”
설득보다는 포효에 더 가까운 말이었지만, 놀랍게도 여태까지 내뱉은 말들 줄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필립과 틸다 역시 수많은 마법사처럼 목표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자들이었으니.
그 형용키 어려운 두려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허나, 하늘이 정해놓은 운명에서 벗어난다면 길이 열리지. 유한한 삶에서 탈피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고, 노화(老化)의 저주에서 벗어나며, 목표한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어. 무한한 시간을.”
“흐음······.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스카디 소학파의 원마스터 틸다가 침묵을 깨고 대답했다.
그녀는 평소처럼 차가운 분위기를 풍겨 속을 읽을 수 없었다.
“능력에 비례하지 않은 부조리한 사회, 노력에 보답받지 못하는 부조리한 이치. 그랜드 마스터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대충 이해했습니다.”
“알아줄 줄 알았네.”
“그리고 제 생각이 맞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신 것 같고요.”
“맞아. 그리고 그대들이 날 도와줬으면 해.”
현 사회 체계를 무너뜨리고, 하늘의 법칙마저 어기겠다는 너무나 과격한 발언.
그러나 필립과 틸다 역시 경험이 많은 마법사라는 걸 증명하듯 당황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리에게 말을 꺼냈으니, 계획이 있고 방법이 있을 것 아닙니까?”
테어도어가 뒤로 돌아 필립과 틸다와 얼굴을 마주 봤다.
“이곳 레이크 빌리지를 시발점으로 난 새로운 마탑을 만들 걸세. 느슨한 연합체가 아닌 하나의 완벽한 조직을, 진정한 마법사들만 있는 진정한 마탑을 재창조할 걸세.”
“그런 다음 국가와 전쟁이라도 벌이실 겁니까?”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곧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니 이에 맞춰 준비만 하면 되네.”
새로운 시대. 느닷없고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단어였지만, 필립과 틸다는 흘려듣지 않았다.
테어도어가 과격한 사상을 가진 자이긴 하나, 헛소리할 인물이 아니라는 건 알았기에.
“새로운 시대 말입니까?”
“세상이 곧 개벽(開闢)할 거거든.”
질문했음에도 의문은 해소되긴커녕 쌓여만 갔다.
허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혼돈의 가운데 오직 선택받은 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지. 내 손을 잡게. 그렇다면 젊음과 영생을 주도록 하겠네.”
현실감이 없는 소리였지만, 필립과 틸다는 흘려듣지 않았다.
오만하지만 그만큼 자부심이 강한 자였기에 이런 거짓말을 할 위인이 못 됐다.
“이곳에 있는 건 저희 둘······. 나머지 마탑 관계자들은 다 설득했다는 겁니까? 아그니 소학파와 엔릴 소학파의 원마스터 말입니다.”
“그들은 내 손자가 설득하고 있네. 그들도 괜찮은 마법사긴 하지만 자네들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없으니 말이야.”
“으음······. 손자 분께서 그들을 잘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내 손자니까. 그리고 설득 못 해도 상관없어. 거절하면 거절하는 대로 이용할 방법이 있으니.”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라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처럼이 아니라 그렇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 가장 하기 싫은 선택이니. 난 그대들을 존중하거든. 그러니 올바른 선택을 해주게.”
테어도어가 오만할 정도로 당당히 말했고, 필립은 갈기 같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질문하나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두 번째 질문인가?”
“아뇨, 새로 생긴 의문입니다.”
“뭐지?”
“젊음과 영생을 준다 하셨는데, 지금 생명학파가 그 정도 기술력이 있습니까?”
“솔직히 대답하면 아직 불안정해. 여러 기술을 수집, 개발, 보완했지만, 결정적인 한 조각이 부족하거든. 허나, 곧 해결 가능한 문제일세.”
“근거가 무엇입니까?”
“최고의 재료를 찾았거든.”
테어도어가 자신감을 뿜으며 대답했다. 지금 눈앞에 일어난 모든 것이 그것 때문이라는 듯.
“알 수 없는 말이군요······. 최고의 재료라니.”
“거기까지는 알 거 없네. 그건 내가 다뤄야 할 문제니. 그대의 문제는 내 제안을 수락할지 말지야.”
테어도어가 이윽고 대답을 강요했다. 거절하면 다른 식으로 활용하겠다는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듯.
필립이 웃었으며, 손에 쥐고 있던 축소화된 창의 마법을 풀고, 개량한 확대화 마법을 사용했다.
“길어져라.”
필립의 말대로 창대는 쭉 길어져 총알처럼 빠르게 앞으로 뻗어 나갔다.
피웅━━━━━쾅!!
비록, 마력을 두른 테어도어의 손에 가볍게 붙잡히고 말았지만 말이다.
“······아쉽군. 진심으로. 난 그대가 날 이해해 줄줄 알았는데 말이야.”
“커져라.”
필립의 말과 함께 쭉 뻗은 창이 수십 배로 커졌다. 테어도어의 손을 찢어버리며.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