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331
331. 칼 (1)
끈적끈적한 핏빛 화염을 두른 올리버는 그대로 돌진해 혈마법 소학파의 원마스터와 맞부딪혔다.
참으로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원마스터의 혈마법 수준이 어정쩡하게 높은 탓에 올리버가 통제권을 가져오기 딱 좋았고, 데릭과의 수차례 전투 덕분에 화염 마법의 요령을 익혀 이리 혈화(血火)를 몸에 두를 수 있었으니.
요컨대,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재빠른 대응에 도움을 줬다는 거였다. 이 얼마나 축복인지.
“말도 안 돼······!”
반대로 이런 대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원마스터는 당황하며 피로 날개를 형성해 기민하게 뒤로 빠졌다.
그리고는 소량의 핏방울을 매개로 피 풍선을 소환해 터트려 대량의 혈액을 확보했다.
[혈복도(血蝠刀)]혈액을 확보하자마자 원마스터는 피에 마력과 의지를 부여해 박쥐 모양의 칼날을 대량으로 만들어 날려버렸다.
과거 바토리가 썼던 혈마법.
올리버의 기억이 맞다면 상당히 강력한 기술이었다.
칼날의 수가 많은 건 둘째치고 위력 역시 인공 영혼으로 강화한 블랙슈트를 뚫을 만큼 강했기에.
원마스터의 수준이 바토리 정도가 되지 않는다는 걸 고려해도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좁은 공간에선.
다행히 지금과 그때랑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올리버 역시 혈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
퐈화화화화화화화━!
올리버는 몸에 두른 혈화를 한쪽에 쥔 톤파에 집중해 바닥을 내리쳤다.
핏빛 화염은 충격과 함께 불의 장막을 형성, 좁은 복도를 커튼처럼 뒤덮어 날아오는 혈복도를 단숨에 불살라 무력화시켰다. 기름을 머금은 천처럼 순식간에.
이는 마법 특성에 따른 결과였다.
화염 마법을 막기 쉬운 게 얼음 혹은 화염 마법인 것처럼.
올리버의 능숙한 맞대응에 원마스터는 물론 뒤에서 구경하던 야렐리와 다른 마법사들 모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혈마법이라는 기이한 기술을 쓰는 원마스터를 일개 교수 개인 직원이 압도했으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개.
자신만만하던 원마스터는 혹여 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가슴속에 조용히 싹텄다.
그러자 여느 감정이 그러하듯 공포는 원마스터의 마음속에 뿌리내려 불안과 걱정을 양분 삼아 순식간에 그 몸집을 부풀려 숙주의 이성과 감성을 지배했다.
원마스터는 여태까지 보여주었던 자신만만한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단숨에 버리며, 허공에 띄운 피를 자신의 발밑에 모아 작은 피 웅덩이를 형성했다.
도망칠 속셈.
하지만 이미 예상한 올리버가 한 발짝 더 빠르게 움직였다.
[혈빙화(血氷花)]올리버가 영창하며 발을 통해 마력을 주입했고, 그 마력은 혈액과 반응해 핏빛 얼음꽃이 되어 원마스터의 발을 시작으로 목까지 단숨에 뒤덮었다.
도망치기 위해 만든 피 웅덩이가 자신을 붙잡는 덫이 된 것.
원마스터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올리버를 빤히 봤다.
그도 그럴 게 올리버가 원마스터보다 훨씬 높은 혈마법 이해도와 사용능력을 구사했으니.
뒤에서 구경하던 야렐리와 다른 마법사들도 넋을 놓은 채 바라볼 뿐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올리버는 태연자약했지만.
“······제압한 것 같습니다.”
홀로 원마스터를 제압한 올리버는 야렐리를 보며 정중히 말했다.
“너, 너 정체가 뭐야······?!”
발부터 목까지 핏빛 얼음꽃에 묶인 원마스터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실로 당연한 반응이었다.
혈마법은 피를 매개로 감정과 마력을 뒤섞은 이단적이면서도 한층 더 강력한 마법.
비록, 원마스터가 사용한 혈마법이 바토리가 사용한 혈마법보다 그 수준이 낮긴 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야렐리의 얼음 마법을 단순에 밀어붙인 것이 그 증거.
그런데 웬 교수 직원 나부랭이가 그런 혈마법으로 자신을 제압하였다.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이야기.
바로 그 순간 원마스터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생명학파의 그랜드 마스터 테어도어가 자신에게 숨긴 게 있지 않을까 라는.
그는 분명 케빈과 그 연구원 및 직원을 산 채로 잡으라 하였는데, 어째 케빈을 노리는 게 아닌 눈앞의 직원을 노리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으며. 원마스터는 일이 꼬였을 때 느끼는 특유의 질척질척한 불길함과 공포를 느꼈다.
“너······. 정말 정체가 뭐야?”
진지한 원마스터. 정작 올리버는 원마스터의 반응에 공감하지 못한 채 결이 다른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교수 개인 직원인 제논 브라이트입니다. 혈마법은······.”
올리버가 말꼬리를 흐리며 야렐리 쪽을 봤다. 그들 역시 올리버의 대답을 기다렸다.
“음······. 마운틴 페이스 때 바토리 님을 상대하며 우연히 배우게 됐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조잡한 거짓말. 그럼에도 올리버는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원마스터의 혈마법에 제때 대응하지 않았으면 여러모로 위험했을 테니.
‘케빈 교수님께서 어떻게든 해주시겠지.’
올리버는 자신에게 재량권을 넘겨준 케빈을 보험처럼 믿으며 생각했다.
“말도 안 돼. 거짓말하지 마······. 혈마법을 우연히 배웠다니. 내가 이걸 익히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데? 너 진짜 정체가 뭐야?!”
“원마스터야 말로 지금 뭐 하는 건가요?”
흥분한 원마스터가 소리치던 중 야렐리가 앞으로 나오며 끼어들었다.
놀랍게도 그녀 역시 올리버에게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지만, 그와 별개로 변호해주었다.
“야렐리. 너는 저게 신경이 안 쓰여? 정체도 불분명한 자가 교수 개인 직원으로 잠입해 있는데?”
“마탑을 배신하고, 학회에 초대한 손님들을 함정에 빠트린 분께서 하실 말씀은 아니죠.”
야렐리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올리버를 경계하던 마법사들의 주의가 다시 원마스터에게 쏠렸다.
뭐가 됐건 자신들을 위기에 빠트린 건 생명학파였고, 구해준 것은 올리버였으니.
야렐리가 상황을 정리하곤 혈마법 원마스터를 다시 추궁했다.
“그보다 아까 전 이야기를 다시 해보세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죠? 그리고 천지가 개벽(開闢)하고, 그에 대비한다는 건 또 무슨 이야기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런 짓을 벌인 거냐고요?!”
야렐리는 이성으로 감성을 억누르며 물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해 대응하고자 하면서도,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안면이 있는 마법사들을 실험용 쥐나 물건처럼 취급한 걸 보았으니.
올리버는 해당 문제를 야렐리에게 맡긴 채 뒤로 한걸음 물러나 살펴봤다.
올리버 역시 생명학파에 궁금한 게 많긴 했지만, 자신이 나설 상황은 아닌 것 같기에.
‘그런데 대답을 안 하시는군.’
올리버가 꼼짝없이 붙잡혔음에도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원마스터를 보며 생각했다.
그는 혼란과 불안함, 두려움을 기반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정도가 제법 심했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장기간 대치가 이어지자 올리버는 다른 접근 방식을 써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야렐리 씨. 괜찮으시면 저도 질문 하나 해 봐도 되겠습니까?”
추궁했지만 그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한 야렐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심리 상태는 올리버에 대한 의심과 신용이 미묘하게 섞여 있었다.
올리버는 불안함에도 양보해주는 야렐리에게 감사를 표하며 원마스터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혈마법 원마스터······. 일단, 괜찮으시면 성함을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내 이름은 왜?”
“대화에 들어가기 전 서로 이름을 묻는 게 예의라고 배웠습니다.”
올리버는 진심으로 답했으나, 원마스터는 경악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의라니. 정말 맛이 간 놈 같았다.
“······네놈 정체부터 밝히면 말해주지.”
“전 마탑 교수 개인 직원 제논 브라이트입니다. 성함을 말씀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죠······. 혹시,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원마스터는 다시 한번 침묵했다. 거절의 뜻. 허나, 상관없었다.
감정 반응만 봐도 올리버는 얼추 필요한 정도는 얻을 수 있었으니.
일단, 이런 식으로 개략적인 정보를 파악한 다음, 자세한 건 아서 씨가 말씀하신 설득 방법을 쓰면 됐다. 이빨을 뽑는 것 말이다.
“아까 전 말씀하신 천지가 개벽(開闢)한다는 게······. 무슨 종말론과 관련되어 있는 겁니까?”
혹시나 해 툭 던진 질문에 원마스터가 움찔했다. 겉뿐 아니라 속까지.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에.
“종말론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야렐리가 물었고 올리버는 적당히 둘러댔다.
“저도 지나가며 들은 거라 자세히는 잘 모릅니다. 다만, 원마스터의 반응을 보아하니, 뭔가 짚이시는 구석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올리버가 다시 정곡을 찌르자 원마스터는 움찔했고, 그 모습을 본 올리버가 제안했다.
“야렐리 씨······. 일단, 원마스터를 챙겨 이곳을 탈출하고 나서 알아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목적도 달성했고, 여기서 꼭 알아낼 필요도 없으니까요.”
일리 있는 말에 야렐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이곳을 탈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럼, 제논 씨가 원마스터를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올리버는 품 안에서 얼마 남지 않은 마력 포션을 마시며 대답했다.
“예, 맡겨주십시오.”
“그건 내가 곤란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제3의 목소리.
올리버와 야렐리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혈마법 원마스터 뒤로 공간이 일그러지며 포털이 형성되는 걸 볼 수 있었다.
일그러진 공간의 틈새 사이로 생명학파의 그랜드 마스터의 손자 칼이 나왔다.
“칼?! 다행이군. 날━컥!!”
혈마법 원마스터는 아군을 보자마자 반가움을 빛내며 도움을 청했지만, 칼은 반갑지 않은지 냅다 손을 뻗어 마력을 분출, 올리버의 얼음 마법의 통제권을 가져와 그대로 주먹을 쥐어 원마스터의 몸을 으깨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혈마법 소학파의 원마스터는 피를 토하며 죽었다.
‘아무래도 혈마법 특유의 재생능력은 없으신 듯하네.’
올리버가 되살아나지 않는 원마스터를 보며 생각했다.
허나, 지금 그거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칼의 실력이었다.
그랜드 마스터의 손자라 해 보통 실력이 아닌 줄 알았지만, 이건 예상 이상이었다.
아무런 매개나 도움도 없이 허공을 일그러트려 포털을 만들고, 올리버가 통제 중이던 얼음의 통제권을 빼앗아오다니.
조금 놀라웠다. 통제권을 빼앗는 건 보통 실력으로는 어려운데.
건방지게 굴려는 건 아니지만, 올리버가 저번에 마텔에서 만났을 땐 이 정도 실력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니지 오만해서는 안 되지.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고, 칼 씨가 수련을 통해 실력이 나아졌을 수도 있으니.’
올리버는 상대를 폄하하는 자신의 태도에 깊이 반성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았다.
야렐리가 끼어들었다.
“······동료를 구해주려고 온 거 아닌가요?”
“난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속마음도 훤히 보여 정보를 누설하는 바보를 동료로 둔 적 없어.”
칼은 자신감과 오만 그 사이에서 대답했다.
란다에서 퍼진 마법사들의 전형적인 모습.
그러나 야렐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불쾌함과 혐오감을 빛냈다. 칼의 안하무인과 같은 태도와 동료를 소모품처럼 여기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듯.
정작 올리버는 생명학파답다고 생각만 들 뿐이었다.
야렐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작, 입막음이나 하려고 직접 오신 건가요?”
예리한 질문이었다. 칼은 생명학파의 그랜드 마스터의 손자이자 연구소를 맡을 정도로 조직 내에서 위치가 있는 자이니.
고작 입막음을 위해 직접 나타나는 건 이상했다.
“그것도 있지만, 확인할 게 있거든.”
예상은 적중. 칼이 그리 대답하곤 올리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뭔가 꿰뚫어 보는 시선이었다.
“너······. 케빈의 개인 직원 제논 브라이트라고 했지?”
“예.”
“근데, 사실 흑마법사지? T구역의 해결사 데이브.”
그 어떠한 예고도 없이 칼이 대뜸 질문했다.
모두 침묵하며 올리버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