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57
57. 해결사 (2)
시간이 흐르고 눈이 내렸다.
올리버는 캔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해결사라는 직업이 무엇이며, 그 바닥이 돌아가는 원리, 인간군상, 주의할 점, 기본 지식 따위를 배웠다.
그 외에도·····.
딱- 딱- 캔트가 쿼터스태프를 휘두르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은퇴한 게 10년, 20년 전···. 솔직히 어떻게 변했을지 나도 모르겠다.”
딱- 딱-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휘두르며 대답했다.
“그런가요?”
딱- 딱- 그 둘은 같이 쿼터스태프를 휘둘렀다.
“그래, 실력 위주 시장이고 란다도 발전했으니, 그 바닥도 많이 변했을 거야. 내가 가르쳐준 지식이 얼마나 쓸모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특히, 넌 나처럼 어정쩡한 데서 돈이나 벌려는 게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가려는 거니.”
캔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블랙마켓을 이용할 수 있는 해결사라니.
어떤 명성을 쌓고, 어떤 인맥을 쌓아야 할지 캔트로서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하나같이 전설적인 존재들뿐.
그러나 웃기게도 캔트는 눈앞에서 땀을 흘리는 열다섯, 열여섯 정도 되는 소년이라면 불가능하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뛰어난 흑마법 실력? 아니면, 의외로 높은 학습력?
아니, 그 이전에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남들과 다른 이 꼬마는 원한다면 뭐든지 손에 쥘 것 같은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을 보고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캔트도 처음이라 그 이상 설명할 수 없었다.
“하····. 좋아, 이쯤에서 그만하지.”
캔트가 쿼터스태프를 내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말에 따라 올리버도 캔트와 똑같은 자세로 뒤로 물러났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말라깽이에, 지팡이 쥐는 법도 모르던 녀석은 어느새 변해 기본까지 갖추었다.
자신과 합을 맞출 정도로 말이다.
물론, 적당히 힘 조절을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무서운 학습 속도였다.
“어떻습니까? 캔트 님.”
“····지나가다 얻어맞을 수준은 아니군. 하지만 방심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계속 연습해라. 먹는 것도 신경 쓰고, 운동도 빼먹지 말고.”
마치 부모와 같은 잔소리.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올리버는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입기 시작했다.
갈색 면바지에 카키색 외투로, 이날을 위해 특별히 산 헌 옷이었다.
“이제 갈 거냐?”
“예, 간다고 했으니까요.”
올리버가 짐가방을 메며 대답했다.
“좋아···. 목소리에 힘이 있군. 일하려면 목소리가 중요하지. 믿음을 주거든···. 얼굴 표정만 좀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얼굴은 잘 안되네요.”
“하긴, 사람이 전부 다 잘할 수 있나···. 잠시 내 앞에 서보겠나?”
캔트의 요구에 올리버는 바로 앞에 가 섰다.
너무 뻣뻣하지도 구부정하지도 않아 자연스러우면서도 여유로운 자신감이 느껴졌다.
“왜 블랙마켓을 이용하고 싶지?”
“흑마법과 관련된 서적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혹시 악마와 관련된 서적에 관심 있는 게 아닌가?”
“아직은 그쪽에 관심이 없습니다.”
“좋아. 훌륭해···. 아무리 그쪽 바닥이라지만 악마에게 관심을 가지는 자는 경계 대상일 테니. 그 정도로만 대답을 유지해. 하지만, 절대 강한 부정은 안 돼. 오히려 더 수상해 볼 테니. 적당한 수준에서 부정해.”
“음, 예. 알겠습니다.”
“또 너무 이것저것 묻지 마. 아무리 궁금해도 적절한 때가 아니면 참아. 그 바닥에서는 의외로 입을 조심해야 하니까. 질문을 많이 하면 네가 노출되고, 그걸 이용해 널 이용하려는 자들이 생길 거야. 아무리 궁금해도 네가 질문하기 적절한 상황이 오기 전까진 참아라. 그럼 기회가 올 거다. 너 정도 되는 흑마법사면 반드시 와.”
“알겠습니다···. 그런데 적절한 때라면 언제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그들이 네게 두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널 간절히 필요로 할 때. 그럼, 자연스럽게 더욱 쉽게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캔트는 올리버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이건?”
“소개장. 내가 말한 중개인에게 줄 소개장이다. 봉인해 뒀는데, 열지는 마라. 개봉되어 있으면 조작했다고 의심할 수 있으니. 깐깐한 양반이지만, 처음 일할 상대로 나쁘지 않을 거야. 직업의식이 뛰어나거든.”
캔트는 진심으로 말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거지 소굴 밖으로 향했다.
“중개인에게 가기 전에 어떻게 한다고?”
“가죽 가면을 써라.”
“그래, 괜찮은 사람이긴 하지만, 신분은 드러내지 마라. 그게 안전과 활동면에서 부담이 없으니.”
“예····. 그럼, 이만 헤어져야겠군요.”
거지 소굴을 나와 눈이 떨어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올리버가 말했다.
“그렇지····. 자 이거 받아라.”
“이건···?”
캔트가 내민 쿼터스태프를 바라보며 올리버가 물었다.
“선물이야. 받은 게 많아서 그냥 맨손으로 돌려보내자니 영 안 내키네.”
“선물요?”
“그래, 낡아빠진 쿼터스태프지만, 내게 가장 소중한 거야. 부디, 받아줘.”
“·······.”
올리버는 말없이 쿼터스태프를 바라봤다.
손때가 타 반들반들했으며, 가운데 감은 붕대는 얼마나 오래됐는지 너덜너덜했다.
뭣보다 평생을 같이한 물건이라 그런지 희미하게나마 캔트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안 내키나?”
“정말 주시는 겁니까? 소중한 물건이잖습니까?”
“맞아. 그래서 주는 거야.”
올리버는 평소보다 더 무뚝뚝한 표정으로 쿼터스태프를 잡았다.
그때, 캔트가 한마디 했다.
“한 가지만 명심해줘. 자넨 이상하거나, 망가진 게 아니야···. 다른 거지. 그거 하나만은 명심하고 살아줘.”
“····예, 명심하겠습니다.”
올리버가 대답하곤 그대로 거지 소굴을 떠났다. 캔트는 그런 올리버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
끼이이이익―!
우중충한 회색 택시가 도로변에 거칠게 멈췄다.
가만 보면 차 겉면에 녹이 슬고, 먼지가 쌓여있는 등 상태가 영 아니었다.
“T구역 27번 거리. 도착했습니다. 손님.”
사복 차림의 운전사가 갈색 종이봉투로 감싼 병을 마시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지폐를 건네며 올리버가 연습한 대로 인사했다.
다행히 자연스러웠는지, 그는 싱긋 웃고는 손을 흔들어줬다.
“저야말로.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올리버가 내리자마자 붕 떠나는 택시.
좋은 출발이었다.
올리버는 우선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빠져 가방에서 가죽 가면을 꺼내 얼굴에 뒤집어썼다.
인형사 글립에게서 노획한 것으로, 잠시 후, 손까지 변한 것을 확인한 후 쪽지를 꺼내 주변을 둘러봤다.
란다의 노동자 계층의 거주지인 T구역을.
확실히 X구역이나 W구역보다 나아 보였는데, 란다 중심지보다는 낙후됐지만,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고, 건물도 대부분 사용 중이었다.
이상한 낙서나, 토템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올리버는 쪽지에 그려진 약도대로 27번 거리 입구를 시작으로 큰길을 따라 쭉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삼거리가 나왔다.
“분명····. 아.”
올리버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포레스트란 간판이 달린 한 레스토랑이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간소한 차림의 직원이 다가왔다. 독특하게도 붉은 피부색을 지녔는데, 가슴에는 알이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손님. 혼자 오셨습니까?”
“직원을 구한다고 들어 찾아왔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손님. 직원은 다 구했습니다.”
“소개를 받고 왔습니다.”
“소개요?”
“예, 여기.”
올리버가 품 안에서 캔트가 준 소개장을 꺼내 내밀었다.
직원은 부드러운 미소로 편지를 건네받고는 겉면을 살펴봤다.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예, 물론요.”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오겠습니다.”
종업원은 인사를 하곤 잠시 어딘가로 향했다.
그것도 잠시 그는 바로 돌아와 올리버를 안내했다.
“괜찮으시다면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손님.”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갔다.
식당과 바를 가로질러 직원용 통로로 들어가더니 한 문 앞에 멈춰 섰다.
똑- 똑-
“사장님. 모셔왔습니다.”
“들여보내게. 알.”
종업원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라 손짓했다.
올리버는 종업원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에는 한 반백의 노신사가 앉아있었다.
양복 조끼에 바지, 장갑 등 꽤 잘 차려입었는데, 건장하기도 꽤 건장해 보였다.
최소한 올리버가 만나본 노인 중 이토록 건장한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데이브라고 합니다.”
“데이브?”
“예.”
“반갑군. 데이브. 난 포레스트라 하네. 초면에 실례지만, 그 지팡이 좀 보여줄 수 있겠나?”
올리브가 자신의 쿼터스태프를 보고 되물었다.
“이거요?”
“그래, 그거. 부탁하지. 데이브.”
“····여기 있습니다.”
올리브는 캔트에게서 선물 받은 쿼터스태프를 건넸다.
“이런····. 진짜 캔트의 쿼터스태프군. 아직 안 죽고 살아있을 줄이야. 하지만 편지를 보낸 건 더 놀라워.”
노인은 편지를 살짝 들었다.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관계로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여기 왔다는 건 해결사가 되고 싶은 건가?”
“예.”
“흑마법사라고? 그것도 실력이 뛰어난?”
올리버는 캔트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어느 정도 기본기는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뭐, 좋아···. 어차피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테스트 한 번 해봐도 되겠나?”
“테스트요?”
올리버가 되물었다.
캔트가 말하길 소개장을 가져가면 바로 받아줄 거라고 했는데.
그런 의문을 이해했는지, 포레스트가 친절히 설명해줬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떠보는 거나, 공짜로 부려 먹겠다는 게 아니니. 대가는 지불할 거야. 다만, 캔트가 일했을 때랑은 이 바닥이 많이 변했어.”
“그렇습니까?”
“그래, 마탑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져 기어이 이 바닥에도 마법사가 진출했고, 육체를 강화한 강화 인간까지 제법 생겼거든. 식민지 전쟁에서 은퇴한 군인들까지···. 사람이 넘쳐. 그래서 이 바닥도 사람을 가려 받는 실정이야.”
포레스트의 말은 진심이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해했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맙군. 말귀 못 알아먹는 친구들이 있는데.”
“테스트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예의 바른 친구군. 마음에 들어. 일단, 간단한 일부터 맡겨보지. 실패해도 페널티가 없는 걸로. 현상범을 잡거나, 도둑맞은 물건을 되찾거나, 혹은····. 아! 다시 묻지. 정말 자기 실력에 자신 있나?”
올리버가 캔트의 조언을 되새기며 대답했다.
“예.”
“그럼, 동물 좀 찾아와 주게.”
“동물요?”
“그래···. 말이 좋아 동물이지. 맹수나 괴물에 더 가깝지만.”
포레스트가 그 말과 함께 캐비닛에서 서류철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올리버는 서류철을 열어 확인했는데, 깨알 같은 글씨와 한 흑백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신기한 동물이군요.”
“···? 당연히 신기하지. 키메라인데···. 정말 지하에서 수련만 하다 나왔나 보군.”
올리버는 대답을 아끼며 사진 속 동물을 봤다.
거대한 개를 베이스로 온갖 생물을 짜깁기했는데, 등에는 닭 날개 같은 것이 달려 있고, 앞발에는 맹금류의 발톱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옆구리에 돋아난 가시였다.
“마법 연구소 마텔에서 만든 키메라로, 실험 중 하수도로 탈출했다더군.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현상금을 걸었네.”
“이걸 잡으면 되는 건가요?”
“그래. 단, 죽이거나 다치게 하면 안 돼. 중요한 샘플이라 다치게 했다간 책임을 물을 거라더군.”
“그렇군요.”
“현재 포상금이 4200만 란다. 꽤 높은 편이야. 탈출 한지 거의 2주째인데, 생체 병기라 그런지 아무도 못 잡고 있어. 교활하고, 강한데다, 옆구리에 달린 가시를 쏘기도 해 까다롭거든.”
“····.”
“경험이 부족한 애송이라지만 해결사 넷이 죽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 고기 맛을 알아 민간인도 건드리고 있지. 날뛰고 있는 구역이 빈민가 V구역이라지만 이대로 가면 경찰국도 냄새를 맡을 테고. 그래서 초조해하고 있지···. 해보겠나?”
“·····.”
“···안내키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네.”
“아뇨. 한번 해보겠습니다.”
“진심인가?”
“예.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게.”
“포획한 후 들어서 여기까지 들고 와야 합니까?”
“설명을 깜빡했군. 그럴 필요는 없네. 현재 키메라가 활동하는 곳 근처에 연구소 관계자들이 대기하고 있거든. 일단, 그곳에 가면 그들을 찾아내 내 이름을 대면 되네. 그럼, 추적하는 데 필요한 털과 기타 자세한 사항을 설명해 줄 걸세.”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레스트의 말은 진심이었다.
“다시 묻네. 정말 괜찮겠나?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자칫 큰일 날 수도 있네. 캔트 지인이라니 해주는 말이야.”
“음·····. 죽는 건 싫지만, 괜찮을 것 같습니다. 뭣보다 키메라라는 거 구경해보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