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660
660. 새벽 (3)
아이잔 왕국의 경제도시 브체.
이 도시는 파테르교의 대규모 대출 덕분에 세워진 도시로, 지금 이곳엔 두 자릿수가 되는 왕과 왕자, 왕족들이 모여있었으며, 그들이 이끄는 군대도 상주하고 있었다.
이 정도 되는 인원과 병력을 수용할만한 곳은 이곳뿐이었기에 필연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파테르교의 대규모 투자 덕분에 가능한 기적.
그러나 슬프게도 그러한 기적조차 연합왕국과 갈로스에 있는 경제도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이잔 왕국의 자랑인 브체는 아무리 좋게 쳐줘도 연합왕국과 갈로스의 도시에 비하면 시골 소도시에 불과했다.
신앙이 약해지고 금을 숭배하는 시대가 반영한 비극이라 할 수 있었는데, 반대로 말하면 ’아이잔 왕국의 브체‘는 작을지언정 도시는 도시라는 걸 뜻하기도 했다.
공장이 있고, 십만 단위의 사람들이 거주하며 군대가 주둔할 수 있는 하나의 도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도시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침 햇살을 받아 어둠이 걷힌 도시에 새로운 어둠이 내려앉은 것.
드드드드드드드드······!!
거기다 하늘 위에선 거대한 바람이 불어 도시의 건물을 뒤흔들었다. 심상치 않은 기현상.
그 기현상에 야간 통행 금지령을 받고 아직까지 자기 집에 감금된 도시민들은 하나둘 창문 밖으로 머리를 빼꼼 내밀어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원래라면 이러한 행위도 불법인지라 도시를 통제하던 군대가 막아야 마땅했으나, 군인 중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뭐, 뭐, 뭐야······?”
군인들조차 넋을 놓은 채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시 위를 유유히 유영하는 거대한 짐승을 말이다.
“······.”
짐승의 출현에 사람과 가축이 침묵하며, 도시는 소름 끼치듯 한 깊은 적막에 빠졌다.
들리는 거라고는 간간이 울리는 숨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 그리고 눈알 굴리는 소리밖에 없었다.
그 눈알들은 모두 하늘 위를 배회하는 거대한 짐승을 향하였다.
길게 쭉 뻗은 목과 다리, 날개를 가지며, 산보다 거대하면서도 늑대처럼 날렵한 몸을 가진, 온몸이 검붉은 비늘로 뒤덮인 짐승에.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한번 당한 도시민들의 눈에는 새로운 공포가 올라왔고,
명목상으로나마 도시를 지키기 위해 온 군인들마저 눈이 떨리며, 들고 있던 무기를 하나둘 내리고 말았다.
압도적인 위용에 의지가 꺾인 것.
그것은 고귀한 혈통을 가진 이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요, 용······?”
브체 시청.
창문을 통해 짐승의 존재를 확인한 왕 중 하나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방금까지 위엄있게 흑마법사 토벌을 주장하던 것과 너무나도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허나,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으니 그만을 욕할 것은 아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용은 지, 진즉에 멸종한 거 아니었소?”
“누가 소환한 건가?”
“소환마법이 쉬워? 거기다 용을 누가 소환해······. 환영 아니야?”
“환영은 아니야, 환영이면 도시가 요동칠 리 없잖아?”
-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믿기지 않은 광경에 환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도중 저 하늘 위를 유영하던 짐승이 다시 한번 괴성(怪聲)을 내질렀다.
그 울음소리에 공명하듯 건물의 나무 창문과 석조 벽면이 미친 듯이 흔들렸으며, 말과 개 등 도시의 가축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날뛰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도시의 존립이 위태로울 거 같은 그때, 짐승이 도시 외곽을 향해 급하강했다.
“어쩌면 좋소?! 추기사제!!”
군대를 이끌고 왔으나, 투지는 놓고 온 왕들이 추기사제의 옷깃을 붙잡으며 물었다.
하나같이 다급한 표정. 그러나 그와 상반되게 로데릭 추기사제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좋은 소식입니다.”
“뭐?!”
“좋은 소식이라니? 제정신이요?”
“무슨 소립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로데릭이 설명해줬다.
“기다리던 자가 돌아왔습니다. 다 같이 맞이하러 가지요.”
그 말과 동시에 땅이 흔들리며 도시 외곽에 거대한 흙먼지가 일어났다.
용이 도시 근처에 착륙한 거였다.
***
쿠후후후후후훙······!!!
용으로 변한 송장인형-인육 요리사가 착지하자 내장을 흔드는 묵직한 진동이 땅을 타고 저 멀리 퍼져나갔다.
사방에 피어오르는 뿌연 흙먼지.
육안(肉眼) 보다 흑마법사의 눈이 더 편한 올리버에겐 그렇다 할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용으로 변한 인육 요리사는 거대한 날개를 휘저어 흙먼지를 거둬주었다.
날개가 거대한 덕분인지 흙먼지는 삽시간에 걷혔고, 그 틈새 사이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거대한 덩치를 가진 로데릭 추기사제와 화려한 차림을 한 다수의 남성, 그들을 호위하는 성기사와 군인들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올리버를 발견한 누군가가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허옇게 변한 안색, 얼빠진 채 흔들리는 동공, 처진 눈썹, 식은땀, 미세하게 떨리는 손과 발, 요동치는 감정 등.
아마, 올리버가 인육 요리사의 머리 위에 서 있기 때문일 터였다.
도시에 그림자를 드리운 용의 머리 위에 말이다.
애당초 이걸 노리고 한 거였으니.
“포스(Fourth).”
올리버가 송장인형-인육 요리사 안에 깃든, 차일드-포스(Fourth)를 불렀다.
그르르르르르······.
포스가 인육 요리사의 입을 빌려 대답했다.
그 모습에 주변의 사람들은 더욱 경악하고 말았다.
이미 올리버가 용을 통제하고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긴 했으나, 짐작하는 것과 두 눈으로 확인하는 건 별개였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하던 일을 마저 했다.
“내려가게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올리버가 부탁했고, 차일드-포스는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길쭉한 목을 지면 가까이 댔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수많은 사람이 용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제는 책과 전설로만 만날 수 있는 용을.
용으로 변한 인육 요리사는 고룡에 비견될 만큼 거대했으나 뿔이 짧지 않고, 턱살 역시 늘어지지 않아 젊고 강력해 보였으며, 불타는 듯 붉은 눈과 거대한 아가리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오금을 저리게 했다.
그런데 그런 용의 머리를 한 흑마법사가 엘리베이터처럼 이용해 지면 위로 내려왔다.
탁.
반사적으로 모두 그 흑마법사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는 멀끔한 옷차림에 비해 기형적으로 빼빼 말랐으며, 한 손에는 붕대를 두르고, 다른 한 손에는 쿼터스태프를 쥐는 등. 척 봐도 눈에 띄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머리 한쪽이 허옇게 탈색된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그렇다고 위협적인 외관이냐면 그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타고 온 용 탓인지, 아니면 그가 내뿜는 기이한 분위기 탓인지,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건 추기사제와 왕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높은 곳에 위치했어도 결국 그들 역시 한낱 사람에 불과했으니.
그때, 누군가 이 불편한 침묵을 깼다.
“전하(殿下).”
올리버였다. 용을 타고 날아온 그는 맨 앞에 서 있는 로데릭 추기사제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예를 철저하게 지킨 것. 그 덕분인지 숨 쉬는 걸 잊은 사람들이 하나둘 숨을 쉬기 시작했다.
“멋대로 자리를 이탈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올리버의 멋대로 떠난 일을 사과했다. 로데릭이 이에 답했다.
“······괜찮소. 급한 사정이 있는 것도, 양해를 구한 것도 들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양해보다 위협에 더 가까웠으나 로데릭을 포함한 아무도 이를 따지지 않았다.
홀로 다수의 성기사를 제압해 유유히 빠져나가고, 용까지 타고 돌아온 사람이 양해라 했으면 양해인 거였다.
대신 로데릭은 질문했다.
“볼일을 잘 보셨소? 알아볼 게 있다고 하던데?”
“아······.”
올리버가 탄성을 내며 주변을 바라봤다.
로데릭 보다 한걸음 뒤에 서 있는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과 군인, 성기사들을.
그들은 올리버의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반사적으로 멈칫했다.
선택받은 국가권 중 2류 국가의 집합소인 대륙 중앙 국가치고도 꽤 기이한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왕이 흑마법사의 시선에 주눅 들다니.
퍼펫, 인육 요리사, 팬,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세상을 아예 적으로 돌린 흑마법사면 모를까, 질서에 순응하려는 흑마법사에게 보이긴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었다.
아무리 힘이 센들 질서에 순응하려는 자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파테르교의 도움을 받는 왕들에겐 존중을 표해야 했다.
그것이 질서였으니까.
그러한 이치로 왕들은 당당함을 유지하는 거였다. 파테르교라는 질서하에.
그런데 왕들은 눈앞의 흑마법사에게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 두려움이 입을 열었다.
“예, 로데릭 전하. 잘 알아보고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전하······님들?”
올리버는 로데릭에게 대답하곤, 그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들이 왕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로데릭이 이점을 자연스레 지적했다.
“오······ 국왕들을 알아보시는 거요?”
왕을 알아보냐는 물음. 얼핏 이상한 말 같았지만, 사실 그렇게 이상한 말도 아니었다.
연합왕국이나 갈로스처럼 왕들이 신문과 같은 미디어에 잘 노출되는 국가면 몰라도, 대륙 중앙의 대다수 소왕국은 그렇지 않았다.
정치나 정세에 관심이 많아 따로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몰라도, 그게 아니면 대륙 중앙의 국왕들을 알아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리고 올리버는 후자에 속했다.
게으르다거나, 준비성이 없다나 뭐 그런 개념은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관심이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그런데 그런 올리버가 왕들을 알아본 거였다.
“복장을 보고요,”
로데릭의 부름에 올리버는 국왕을 비롯한 군대를 이끌고 온 왕자와 왕족들의 복장을 가리켰다.
눈치가 빠른 이들이라면 충분히 알아볼 근거가 됐으나,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허나, 이를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석연치 않은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또, 올리버가 놀라운 발언을 해서였다.
“다들 피리 부는 사나이님을 토벌하기 위해 모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올리버는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았음에도 이들이 모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허영심이 많은 일부 탓에 완벽하진 않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기밀을 유지했음에도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올리버가 답했다.
“그냥 들었습니다.”
그냥 들었다는 애매하고 수상쩍기 그지없는 대답.
그 모습에서 몇몇 성기사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가 겹쳐 보였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 압도적이며 불쾌한 감각이.
“로데릭 전하······. 항복한 흑마법사들은 어찌 되었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있던 곳에 있소. 어설프게 움직이려 하면 혼란만 가중할 테니. 무장을 해제하고, 군인과 성기사들의 감시 아래 격리되어 있소.”
“감사합니다. 전하.”
올리버가 다시 로데릭에게 감사를 표했다.
조금 딱딱하고, 과하게 예를 갖췄지만, 그 모습 덕분에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는 많이 완화되었다. 조금 많이.
“그 흑마법사들은 어찌할 건지 물어볼 수 있겠소.”
“전하와 앞서 이야기를 나눴듯 성기사님들과 함께 조사해 흉악한 범죄자는 파테르교에 인도하고, 나머지 분들은 저희 쪽에서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애써 위엄을 갖춘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왕권을 세우기 위해 흑마법사 학살을 주장하던 아이잔 왕국의 국왕 벨러였다.
방금까지 용을 타고 나타난 나무꾼 데이브에게 겁먹어 침묵하던 그는 로데릭과 올리버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더니 대뜸 끼어들었다.
자신이 조사했던 대로 데이브가 생각보다 미친 자가 아니라고 판단해 내린 행동이었다.
‘나무꾼 데이브. 새로운 손가락에 학살자라곤 하나, 실상은 그 정도로 미친 자는 아닙니다.’
벨러는 정보상에게서 들은 정보를 떠올렸다.
나무꾼 데이브. 뛰어난 일 처리와 드루이드를 학살한 전적, 란다의 끔찍한 노동법을 준수하는 태도 탓에 악명은 높았으나, 가만 살펴보면 악명이 부풀려진 구석이 있다고 했다.
거칠기로 유명한 란다에서도 독보적인 강자이나 힘보다는 대화를 선호했고, 의외로 말이 통하는 구석이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끼어든 거였다.
용을 타고 나타났지만 공격하지 않는다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질서에 따르는 자는 파테르교를 등에 업은 왕에게 존경을 보여야 마땅했다.
벨러는 이 점을 파고들어 지금 이야기에 끼어들어 자신의 용맹함을 과시하며, 앞으로 있을 일에서 지분을 챙길 심산이었다.
이 도시, 더 나아가 이 땅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벨러는 그러한 논리 아래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려 했다.
“도우러 온 란다의 영웅에겐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소. 다만, 이 나라의 국왕으로서-”
“-로데릭 전하.”
올리버가 벨러가 말하는 도중 로데릭을 불렀다.
소왕국이라고는 하나 한 나라 국왕의 말을 자른 거였다. 심지어 실수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냥 듣기 싫어 자른 거였다.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례에 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찰나, 올리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연히 오는 길에 들은 것인데, 흑마법사님들이 있는 곳 근처에 인신 공양을 하는 장소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공기가 일순간 멈추며, 벨러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인신 공양? 악마 숭배요?”
“글쎄요. 악마 숭배인지까지는 모르나, 사람을 바친 건 맞다 합니다.”
“어딘지 아시오?”
올리버가 벨러의 얼굴을 한번 흘겨봤다. 그는 식은땀을 흘렸다.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 들었던 것 같은데요.”
벨러를 포함한 대륙 중앙의 모든 왕이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