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68
68. 세계수 (2)
세계수.
올리버는 왜 포레스트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는지, 책방 주인이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나, 말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물건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수(世界樹)는 올리버가 봐온 그 어떠한 것보다 방대하며, 그 개념이 모호한, 한 마디로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것도 현재 진행형으로 말이다.
제대로 된 관련 서적이 나온 게 고작 30여 년 전이었으며, 아직도 연구 중이었는데,
솔직히 올리버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아, 그래···. 그나마 책방 주인의 설명이 괜찮은 편이었다.
아주 방대한 백과사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이는 올리버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우선, 세계수(世界樹)에 관해 설명하자면 현재까지 밝혀진 나무 중 가장 거대한 나무인 건 사실이었으나, 결코 육안(肉眼)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세계수는 땅 위에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 있냐고? 바로 땅 밑에 있었다.
우리가 디디고 있는 땅 아래에 말이다.
세계수의 본체는 다름 아닌 땅속에 있는 뿌리였으며, 그 뿌리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수많은 나무가 곁가지처럼 자라나 있다고 하였다.
즉, 세계수란 하나의 거대한 나무가 아닌 거대한 뿌리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나무의 군집체로 보는 것이 타당했다.
어떻게 이런 생명체가 생긴 것인지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지만, 그나마 신빙성이 있는 가설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구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본체(뿌리)가 햇빛 등 영양분을 얻기 위해 전 세계로 뻗어 나와 세계수가 됐다는 설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수많은 나무의 뿌리가 뒤엉켜 자연적으로 하나로 합쳐 세계수가 됐다는 거였다.
둘 모두 학계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아 서로 옳다고 싸우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세계수의 기원은 ‘이것이다’라고 확실하게 결론 난 것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흥미로운 점은 이다음이었으니.
단순히 뿌리로 연결된 수많은 나무라면 그저 신기할 뿐이었겠지만, 세계수는 그저 신기할 뿐인 나무가 아니었다.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웠고, 유용하며, 동시에 매우 강력한 존재였다.
왜냐하면, 세계수에는 거대한 자연 마력이 흘러 나무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 기억해 심연 세계인 ‘룻 넷(root net)’에 저장하였기 때문인데,
이 룻 넷을 이용하기만 한다면 바다 건너는 물론 세계 반대편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즉, 세계수란 세계를 보는 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허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법사와 드루이드는 마법과 주술을 통해 이 ‘룻 넷’에 인위적으로 들어가 정보를 저장, 관리, 출력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는데, 이를 전문 용어로는 ‘룻 넷 세일링(root net sailing)’ 간단하게 ‘넷 세일링(net sailing)’이라 불렸다.
이 넷 세일링은 수천만 권이 넘는 무한한 정보를 세계수에 전부 저장해 관리하며 필요할 때 꺼내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가히 경이적이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토록 많은 정보를 저장하는 데 종이 하나 필요 없고.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도 큰 노력이 들지 않다니.
그저 룻 넷에 들어가 필요한 정보를 연상만 하면 되기에 몹시도 편하고 효율적이었다.
그 외에도 통신, 행정 처리 등 세계수가 관련되지 않은 부분이 없었으며,
그런 탓인지 이 나라를 비롯한 몇몇 ‘축복받은 국가’에서는 점차 국가 행정, 정치에 세계수를 적극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하였다.
이때 올리버는 세계수의 위험성과 단점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아직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세계수는 편리하지만, 그만큼 허술하고 위험한 점도 많았다.
가령, 포레스트가 말한 헤임달과 같은 전문 조직의 침입에 약하다는 게 그중 대표적인 예였다.
그뿐 아니라 룻 넷을 이용할 수 있는 넷 세일링 역시 익히기 몹시 힘들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였다.
참고로, 힘들다는 것은 단순히 노력으로 메꿀 수 있는 것을 넘어 재능도 요구됐는데,
기본적으로 상당한 마법 실기 능력이 필요했고, 수많은 정보의 바다인 룻 넷에서 의식을 유지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 역시 요구했다.
자칫 잘못하면 사용자의 의식이 정보의 바다에 휩싸여 크나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책은 경고하고 있었다.
즉, 강력하고 편하지만, 그만큼 이용이 어려웠고, 덕분에 소수의 마법사 학파와 드루이드 종파만이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올리버는 책에서 본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왔다.
바로, 노동자 거주지 끝자락인 U구역과 빈민가 거주지의 시작인 V구역 사이로, 한참을 헤맨 끝에 이곳 경계지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세계수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이게 세계수····?”
올리버는 홀로 외로이 서 있는 나무를 보며 웅얼거렸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나무에 불과했는데, 그럼에도 주변에 쳐진 철 울타리와 팻말 덕분에 세계수 중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마탑에서 공인한 세계수. 파손·훼손 시 법에 따라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 요망. 란다 경찰국.]올리버는 철 울타리에 붙어있는 팻말을 보고 다시 세계수라고 하는 나무를 봤다.
다시 봐도 평범한 나무였다.
란다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그중 일부는 이 나무처럼 울타리가 쳐져 있었는데, 올리버는 왜 자신이 좀 더 빨리 세계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아마 관심 있는 것 외에는 잘 보지 않는 좁은 시야 탓이겠지.
“이건 좀 고쳐야겠군.”
올리버는 자신의 단점을 새삼 인지하며,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평범한 인간의 시야가 점차 흐릿해지며, 감정과 생명력 심지어 마력까지 꿰뚫는 흑마법사의 시야가 활성화 되었다. 그러자 희미하지만 세계수에 흐르는 마력을 볼 수 있었다.
“이건···?”
올리버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고개를 갸웃댔다.
흑마법사의 시야로 보니 세계수는 나무가 아닌 파이프에 더 가까워 보였는데, 파이프 가운데로 각종 색색의 마력이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푸른빛, 노란빛, 빨간빛, 보랏빛 등등.
몹시도 빠르고 복잡해 자연스럽게 흥미가 동했다.
올리버는 자기 얼굴을 만져봤다.
혹시 몰라 여태까지 사용하지 않은 가죽 가면을 썼는데, 여차할 경우를 대비한 거였다.
다행히 가죽 가면은 제대로 쓰고 있었다. 이걸로 얼굴이 한번 노출돼도 문제없을 터.
안전을 확인한 올리버는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세계수 밑, 뿌리를 향해.
“음·····.”
난감함에 올리버가 신음소리를 냈다.
분명 아래가 보이긴 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아 점점 흐릿하게 보였다.
마치, 백 걸음 떨어진 곳에서 하는 인형극과 같았는데, 뭔가 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할 뿐이었다.
책에서 적힌 대로 뿌리가 땅속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거 같았는데, 눈만 피로하고 뭐 하나 건진 게 없었다.
“하아······.”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반 호기심으로 읽은 책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였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수많은 마력이 흐르는 나무를 보고, 세계수의 기능과 위상에 대해 알게 된 것만으로 충분히 많은 것을 얻었다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부족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겠다.
올리버는 이 세계수라는 것을 직접 한 번 이용해 보고 싶었다.
수많은 신경 뿌리로 연결된 룻 넷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접속해 어떤 것이 있는지 그 맛을 한번 보고 싶었다.
물론, 이는 몹시도 위험하며, 어떤 의미로는 어리석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이, 괜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으니.
그럼에도 올리버는 한번 해보고 싶었다.
왜냐면 해보고 싶었으니까.
어느새 정신을 차리자 올리버는 울타리를 넘어 세계수에 바짝 붙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시험관에서 감정을 추출했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다.
마력을 통해 룻 넷에 들어갈 수 있고, 자연과의 소통으로도 룻 넷에 들어갈 수 있는데, 왜 흑마법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지.
올리버는 한 번 실험해보자는 생각으로 감정을 머금은 손을 세계수에 뻗었다.
책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이 없는 걸 보니, 의미 없는 짓일 게 뻔했지만, 그냥 실험 차원에서 한 번 시도해 봤다.
뭐, 설마 성공할 리가-
“-있네?”
살짝 놀라며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뭐라 설명해야 할까?
소시지 공장과 글립의 비밀 공간에 들어갈 때와 비슷했다.
감정을 손에 머금은 채 손을 대면 열쇠 구멍에 열쇠를 끼운 듯 맞춰진 기분이었다.
물론, 글립 때처럼 열쇠 구멍이 알 수 없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어 바로 열리지는 않았지만, 이는 올리버에게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몇 번 감정을 이용해 훑으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대충 감을 잡혔기 때문인데. 이건 세계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약간 결이 달라 어색하긴 했지만, 올리버는 이에 굴하지 않고 약간의 반발 작용까지 무시하며 억지로 열쇠 구멍에 감정을 맞춰 욱여넣었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촤르륵 촤르륵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이윽고 철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와 함께 생소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밤하늘처럼 검은 바탕에 하늘과 땅이 없는 허공 세계.
움직이는 거라고는 유성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는 알록달록한 마력뿐이었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이 세계가 룻 넷임을 직감했다.
세계수의 신경 뿌리로 이뤄진 또 하나의 세계, 수많은 지식이 담긴 정보의 바다.
이상하게도 올리버는 신기하고 흥미로울지언정 공황에 빠지지는 않았다.
그저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고 관찰하며 이곳을 이해할 뿐이었다.
아까 전에 말했던 것처럼 주변은 밤하늘처럼 검었다.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자기 손을 봤다.
하얀색 선으로 이뤄졌는데, 심연의 가상 세계라 그런지 육체의 형태도 다른 것 같았다.
그 외 신경 쓰이는 것이라면 귓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정보의 목소리 정도?
이방인을 반기지 않는지 수많은 목소리가 소리쳐 올리버를 압박했는데, 올리버는 그냥 귀를 닫고 주변을 관찰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나가야 하나?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들어오는 건 어떻게 운이 좋게 들어올 수 있었지만, 나가는 법은 모른다는 거였다.
책의 내용을 기억해봐도 그저 개론과 정보만 담겨 있을 뿐이었고. 이용하는 법 따위 적혀 있지 않았다.
당연히 나가는 법 따위 없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였다.
책에서 봤던 것처럼 정보의 바다에 표류하여 뇌가 타버리려나?
“뭐,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
올리버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물론 그런 사태가 된다면 무섭기 그지없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렇기에 올리버는 답도 없는 문제로 고민하기보다 차라리 실험하기로 했다.
분명 룻 넷을 제대로만 다루면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그게 사실인지 확인해보려 했다.
그럼, 어떤 정보를 찾아봐야 할까?
악마? 흑마법? 아름다운 감정?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이고 하니 좀 더 가벼운 걸 먼저 해볼까 했다.
크게 문제가 없을 거 같아 연습용으로 딴 좋을 거 같은 거.
“포레스트.”
약간의 삐걱거림이 있었지만, 이내 주변을 유성처럼 이동하던 마력 중 일부가 올리버의 눈앞으로 날아와 불꽃놀이처럼 퍼졌다.
그와 함께 알 수 없는 문자가 허공에 나열되었는데, 모두 처음 보는 글자였다.
“이게 무슨····. 응?”
올리버는 놀라며 소리 냈다. 이 처음 보는 글자들 계속해 보고 있노라니 대충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될 거 같았다.
정확히는 정보를 ‘느낄’ 수 있었는데, 올리버는 흐릿하지만 천천히 정보를 인식해갔다.
이제 좀 익숙해지려고 할 찰나 어디선가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응?”
올리버는 그 순간 보았다. 무수한 마력으로 이뤄진 눈을.
[그대는 누구시오?]올리버가 말없이 눈을 관찰했다. 누군가 보일 것 같았는데 그때 눈이 다시 한번 소리쳐 물었다.
[그대는 누구시오?!]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갑자기 시야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새 현실로 돌아온 것인데, 올리버는 손안에 머금고 있던 감정이 다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감정이 다 해 튕기어 나온 거 같았다.
“호·····.”
또 새로운 사실에 흥미를 느끼는 것도 잠시.
올리버는 룻 넷에서 보았던 감시자 같은 존재를 떠올리며 이내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자칫 잘못하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 있으니.
생명력과 감정으로 블랙 슈트를 만들어 있는 힘껏 뛰어 이곳에서 벗어났다.
충분히 호기심도 채웠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몸을 사려야 했다.
아직 모르는 게 많았고, 실력도 부족했으니.
***
이후,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올리버는 바로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처음 세계수에 접속한 곳 근처에 머물며 일주일 동안 주변을 관찰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접속 도중 만난 눈 때문인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에 관측된 것은 알았기에 계속 주변에 머물러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살펴보았다.
혹여 귀찮은 존재에게 걸린 거라면 여차할 경우 지금 신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갈 생각도 있었는데.
다행히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왜냐면 일주일 동안 올리버를 추격하는 기색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세계수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별일이 아닌 작은 헤프닝으로 결론 내린 올리버는 해당 구역을 벗어나 머무는 숙소로 돌아간 후, 한동안 잊고 지냈던 포레스트의 레스토랑에 찾아갔다.
저번 임무가 끝나고, 거의 열흘만인 것 같았는데, 너무 안 가 자신을 잊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뭐, 캔트는 이 일의 몇 없는 장점이 자유로움에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아직 신입인 올리버로서는 약간 눈치가 보였다.
딸랑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붉은 피부의 알이 맞이해 줬다.
그는 올리버를 보곤 반갑게 미소지었다.
“데이브 씨.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 만나러 오신 겁니까?”
“예.”
“다행이군요. 사장님께서도 데이브 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오시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