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705
705. 점령된 도시 (3)
606수비연대.
이들의 원래 임무는 수비였다.
수비의 대상은 세상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하고, 가장 발전된 문명을 이룩했으며, 가장 뛰어난 요리 문화를 가진 연합 왕국의 수도였다.
당연히 606수비연대는 이를 하나의 명예로 생각해 매일 고된 훈련에 매진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가의 심장을 지키고, 더 나아가 여왕 폐하를 지키는 거였으니까.
허나, 세상이 요지경이라더니 이들은 원래 임무에서 벗어나 란다로 파병 오게 됐다.
파병된 이유는 인도적 차원의 군사 지원으로, 놀랍게도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고 거드름을 피우던 이 죄악은 도시는 하수도에서 튀어나온 시체 군대에 공격받아 하루아침에 망할 뻔하였다.
코미디 중 코미디.
그중 절정은 때마침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왕국군이 란다를 구해줬다는 점이었다.
듣기로 왕국군 깃발이 한번 펄럭이자, 시체 군대가 부리나케 도망쳤다고 했다.
당연히 구원받은 란다는 왕국군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도시를 지켜달라 읍소했고, 그 결과 606수비연대는 팔자에도 없던 란다로 파병 오게 됐다.
이 거대한 도시를 지키기에는 숫자가 모자랐기에. 덕분에 란다로 파병 오게 된 606수비연대의 심정은 다음과 같았다.
“빌어먹을 도시 같으니라고.”
군인 A씨가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뻑뻑 피우며 중얼거렸다. 작전 중임에도 담배를 피우다니 기도비닉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용자라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야, 야. 담뱃불 꺼.”
군인A의 동료 군인B 씨가 다가와 말렸다.
“아, 좀 봐줘. 어차피 우린 후방이잖아?”
“야.”
“이 기분 나쁜 곳에 며칠씩이나 머무는데, 담배라도 피워야지······.”
군인A가 어둠이 뒤덮인 Y구역 거리를 가리키며 한탄했다.
그러자 군인B도 멈추고 말았다. 군인A의 말대로 이곳은 정말 기분 나쁜 곳이었으니까.
관리가 안 된 채 오랫동안 방치된 거리, 무너지는 건물과 어설프게 지어진 가건물, 기분 나쁜 낙서와 토템, 수많은 시체 등등. 세상이 멸망한 채 방치된 풍경이 있다면 바로 이러지 않을까 싶었다.
또, 거지와 돌연변이, 갱 등은 얼마나 많았는지.
지금은 청소하긴 했으나 처음 왔을 때는 난리였다.
각종 사제(私製) 무기로 무장한 갱단이 습격할 뿐 아니라, 오거맨이라는 거인 돌연변이와 개처럼 생긴 하운드라는 돌연변이까지 공격해댔으니까.
뭐 그래 봤자 갱은 갱. 군율, 장비, 기본 전투력 등. 진짜 군대의 상대는 아니었지만.
군인B는 문득 허무함과 허탈감을 느끼며 군인A에게 담배를 달라 요청했다.
“크크크. 너도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지?”
“그래, 뭐 하는 짓인가 싶다. 갱들도 모자라 괴물(돌연변이)이랑 싸우고, 거지들 청소하고, 으······. 싫다 싫어.”
“그나마 이제 후방이나 지켜서 다행이지.”
“그건 그래. 본격적인 공세는 핑크맨과 란다 방위군이 맡으니까. 근데, 이 녀석들은 왜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거야?”
군인B가 고착된 전선에 관해 불만을 토로했다.
Y구역도 처음에는 삐걱댔어도, 곧 갱들을 다 밀어버렸건만, 이상하게 Z구역은 아직까지 정체되고 있었다.
“개발 반대 위원회인가? 그놈들이 꽤 세다고 하잖아?”
“시체 따위에 털린 놈들이 한 말일 뿐이잖아.”
“그거야 그렇지. 그래도 너무 무시하진 말자고 소문대로 엄청난 보물을 가진 놈들이잖아.”
군인B가 그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치안 안정을 위해 Y구역의 갱들을 모조리 청소한 후 그들의 물건을 압수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재화를 발견했다.
단순한 금붙이, 은붙이, 보석을 넘어 사라진 예술품이나 엄청 오래된 골동품 같은 것도. 예술품 감정사 출신 병사는 침을 질질 흘리기까지 했다.
개발 반대 위원회가 갱들을 매수할 때 쓴 거라 추측됐는데, 덕분에 그나마 사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Z구역까지 장악이 끝나면 다들 조금씩 짭짤한 용돈을 챙길 수 있을 거라 믿어.
“정말 소문이 사실 아닐까?”
“뭔 소문?”
“이곳 청소하는 거. 치안을 위해서라 했지만, 역시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서 아니야?”
“나는 마녀 때문인 줄 알았는데. 온갖 흑마법사들과 접촉해 악마를 숭배하는 사악한 마녀. 이름이 뭐였드라, 마, 마ㄹ-”
“-다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군인A와 B가 대화를 하던 중 제3의 목소리가 큰 소리로 끼어들었다.
“소, 소대장님!”
“젠장! 담배 빨고 자빠졌었군! 원래라면 한 대 갈겨줬을 테지만, 봐줄 테니 움직여!”
“움직인다고요?”
“그래! 모두 Z구역으로 간다! 곧 뚫릴 것 같다고 지원 요청이 왔어······. 빌어먹을! 표정 관리해. 나도 엿 같다고!”
소대장의 호통에 군인A, B가 표정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확인했다.
젠장, 농담이 아닌지 부대가 분잡스럽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어둠 넘어 수많은 인영(人影)이 막사를 정돈하고 있었다. 심지어 정비를 위해 멈춰있던 여러 대의 외골격 장갑 속 엔진이 돌아가기까지 했다.
“아, 진짜······어?”
군인A가 한탄을 내뱉으려던 찰나, 다른 의미의 소리를 입 밖으로 나왔다.
그 소리는 있으면 안 되는 걸 봤을 때 나오는 소리였다. 식사 중 식탁 위로 떨어진 수류탄이라던가. 근본적으로 틀리진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위력뿐이었다.
꽈앙!!
고밀도의 철 덩어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며, 어둠 너머로 가동 준비 중이던 외골격 장갑이 부서지는 모습이 들어왔다.
몸체와 팔이 완전히 박살 나 분리됐다, 심지어 한 대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외골격 장갑이 파손됐다. 가동 중이라 마력 장벽을 펼쳐 방어 중이던 기종까지.
도대체 어떻게? 무슨 무기? 공격 방향? 숫자?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추측할 수 있는 건 강력한 고화력의 무기라는 점과 적이 여럿이라는 것뿐이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외골격 장갑이 동시에 파손될 수 없었으니까.
군인들이 모두 총을 들어 태세를 갖추려 하자 이번에는 총성이 울렸다.
두!
두!
두!
두!
두!
두!
두!
사방 여러 각도에서 끊어치는 듯한 총성. 놀랍게도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신, 병사들이 들고 있던 개인화기가 모조리 관통당했다. 도저히 쓸 수 없게 정확히.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오싸악······!
그 사실에 군인들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며 온몸의 털이 주뼛 섰다.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나, 반대로 전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불!”
누군가 소리쳤다. 어둠은 이제 방해물밖에 되지 않았다.
탁! 타닥!! 탁!
같은 판단을 내린 병사들은 모두 랜턴을 켜 주변을 밝혀 시야를 확보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는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일격에 박살 난듯한 외골격 장갑과 군용 트럭뿐. 적은 주변 어디에도 없었다. 기척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가능해······.”
군인 중 훈련받은 마력사용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한두 명이 저격을 맞고 죽은 거면 가능해도, 외골격 장갑을 파괴할 중화기 공격이 이뤄졌는데도 인기척이 없는 건 말이 안 됐다.
이 정도 고화력을 퍼붓기 위해서는 주변에 사람이, 그것도 다수의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근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귀신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통신장치가 전부 파괴됐습니다!!”
“겔 상병! 당장 상부에 보고하도록!!”
소대장은 통신장치가 파괴됐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마력사용자인 겔에게 명령했다.
마력사용자가 작정하고 뛰어간다면 바로 보고할 수 있을 터.
명령을 받은 겔 상병이 움직이려는 그때 그가 멈칫했다.
타고난 재능, 훈련, 시술을 통해 극한까지 끌어올린 동체시력이 무엇인가를 포착하였다.
그것은 현재의 기술을 아득히 초월하는 공간 마법이었다.
공간을 넘기 위한 마력광을 빛내지 않고, 허공을 일그러트린 채 하늘 위에서 한 발의 총알이 나타나 이곳을 향해 떨어졌다.
탄착 지점은 땅.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단 한 발의 총알에 믿기지 않는 마력이 담겨있어.
“모-”
-파아아앙!!
겔 상병이 입을 열려는 순간, 허공 너머로 나타난 총알이 섬광을 그리며 대지에 착탄, 새파란 전광을 흩뿌려 주변 사람을 기절시켰다.
사실상 전멸이었다. 그것도 1분도 되지 않는 짤막한 시간 사이에.
온몸의 피부가 곤두설 정도로 무서운 일. 허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러한 습격이 Z구역을 포위한 606수비연대 전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세컨드.”
“······응.”
“좀 더 서둘러주세요.”
“응.”
***
“젠장! 젠장! 지원! 지원-”
-뚝!
군용 통신장치 너머로 들리던 다급한 요청이 칼처럼 끊어졌다.
척 들어도 위급하기 그지없는 상황. 그러나 이 사실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인정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상황이 그러했다.
지금 Z구역을 포위한 모두 부대가 같은 상황이어서였다.
“갑자기 어디서······!”
“화력, 숫자 모두 추측 불가!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정확한 판단이었다.
현재 Y구역을 점거하고, Z구역을 압박하던 606수비연대를 습격하는 것은 ‘공간 저격’ 단 하나뿐이었지만, 문제는 그들의 말마따나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에 있었다.
차량은 물론, 외골격 장갑, 군용 골렘까지 한 방에 박살 낼 정도로 위력은 말도 되지 않았고, 화기만 정확히 노리는 정확성까지 보유했으니. 무엇보다 3,000명가량의 병력을 동시에 압박하기까지 했다.
공격 수단은 분명 공간 저격 단 하나뿐이었지만, 적들의 실력과 장비, 규모는 도저히 예측 불가했다.
마치, 연대 전체가 눈을 가린 채 수천 명의 저격수에게 노려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싸움이라기보다는 가학적인 사형에 더 가까웠다. 아니, 그보다 더 나빴다.
한 방에 곱게 죽여주는 게 아닌, 계속 빗맞혀 조롱했으니까.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총성 사이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알 수 있었다.
“뭐! 사망자가 없다고?!”
“예! 화기만 박살 낼 뿐 사람을 직접 노리진 않습니다. 총알에 마법을 담아 간접 공격으로 기절은 시키나 아직 사망자는 없습니다!!”
“미친!! 뭐 하자는 거야?!!”
보고를 들은 지휘관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나기처럼 총격을 퍼부음에도 사망자가 없다니. 일부러 노린 거였다. 군대를 습격해 놓고 말이다.
지휘관은 이를 자비라기보다는 고도의 정신적 공격이라 해석했다.
너희와 우리의 수준 차이가 이 정도라고. 이를 증명하듯 시야에 닿는 병사들 모두 히익! 히익! 비명을 지르는 등 셸쇼크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사방팔방에서 총탄이 날아와 목을 훑고 쉴 새 없이 핥고 갔으니.
사망자는 없으나 전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3,000명가량 되는 병력이. 단 몇 분 사이에.
물론, 전부 이런 것은 아니었다.
일반 병사는 대부분 총성에 정신을 관통당해 행동 불능에 빠졌으나, 노련한 베테랑과 마력사용자, 종군마법사는 나름대로 대응하려 했다.
베테랑 군인들은 적이 목숨을 빼앗지 않는다는 점을 꿰뚫어 보곤 총격을 무시한 채 움직이려 했으며,
마력사용자들은 섬광처럼 움직여 총격의 범위에서 벗어나 주변을 수색하려 했고,
종군마법사는 마력 감각을 최대한 곤두세워 공간 저격을 역추적하려 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파아앙······!!
쩌저저적······!!
그러나 모두 헛수고였다.
총격을 무시하려는 용감한 병사들에겐 집중 사격을 가해 스트레스를 극한으로 높여 의지를 부숴버렸고,
마력사용자들에겐 전격과 얼음 등 마법이 담긴 탄환을 쏴 기절, 구속시켰다.
종군마법사들은 힘을 합쳐 역추적을 시도했으나 갈피조차 잡지 못한 채 고무탄으로 두들겨 맞았다.
마치 하늘에서 이곳을 내려다보듯 정확하게.
그 모습에는 이질적인 악의가 느껴졌다. 목숨을 당장 빼앗지 않는 건 피를 보기 싫어서가 아닌, 피를 보면 주체 못 할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불합리를 넘어선 부조리한 일방적 공세.
당연히 그 공격은 최전방에서 Z구역을 직접 압박하던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용병으로 고용된 핑크맨과 강제 동원된 란다 시(市) 방위군 말이다.
[여긴 17-2! 17-2! 17-4는 보고 바람! 17-4는······]통신장치로 너머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
맞은편에 있는 올리버가 등 뒤에 총격을 가하는 송장인형-듀란스를 둔 채 물었다.
송장인형 듀란스는 특유의 신체 조작을 이용해 여러 개의 눈을 움직이며, 여러 개의 기관-저격총으로 공간 저격을 난사하고 있었다.
“받지 않으실 겁니까?”
질문을 들은 란다 방위군 중 한 명이 올리버와 통신장치를 번갈아 보더니, 총을 뽑아 자기 통신장치에 갈겨버렸다.
탕!
총성에 맞춰 통신장치는 산산이 조각나 부품이 내장처럼 땅 위에 흩뿌려졌다.
올리버가 방위군 병사에게 물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좋아서 온 게 아니라 끌려온 거라서요. 그보다 저희에게 원하시는 게 뭡니까?”
방위군 병사는 란다 소속답게 눈치 빠르게 판단했다.
지금 이 저격수 군대의 정체가 올리버 등 뒤에 서 있는 송장인형 하나라는 점은 차치하고, 여기까지 올리버가 오는데 어떠한 보고도 없었다.
해결사 데이브를 발견했다는 보고는커녕, 공격의 배후라는 보고조차도.
즉, 왕국군과 핑크맨, 방위군 모두 해결사 데이브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데이브가 자기들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원하는 게 있다는 것밖에 말이 되지 않았다.
원하는 게 없었다면 여기까지 왔을 때처럼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게 지나갔으면 됐을 테니까.
이 사실에 방위군 병사는 어떠한 협박보다도 큰 공포를 느꼈다.
“저분들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가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포로로 잡은 선택하는 사람들과 온몸에 붕대를 두른 개발 반대 위원회 사람이 있었다.
“풀어줘.”
방위군 병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올리버의 부탁을 들어줬다.
왕국군에 억지로 끌려온 거라 의욕이 없을뿐더러,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선택하는 사람들과 개발 반대 위원회 사람은 아까까지만 해도 자기들을 구속하던 방위군 군인들의 손에 부축받아 일어났다.
올리버는 그들에게 조용히 따라올 것을 손짓으로 부탁했고, 모두 뭔가에 홀린 듯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렇게 올리버는 단 몇 마디 부탁과 손짓으로 Z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3천 명의 왕국군이 포위한 포위망을 유유히 지나.
멈칫.
올리버가 가다 멈추며 뒤를 돌아 방위군 병사를 바라봤다.
“보고······. 안 해주셨으면 하는데, 하셔도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부탁. 올리버는 다시 가던 길을 같다.
그렇게 올리버가 사라지자 허수아비처럼 서 있던 방위군 병사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누구 만났나?”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