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707
707. 물음 (2)
대재앙에 의해 원래의 모습과 이름을 잃어버린 건물 안.
그곳에 쓸쓸한 고요가 내려앉아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올리버의 질문이 만든 현상으로, 이는 건물 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붕대를 두른 채 올리버 맞은편에 앉은 마리가 그러했다.
그녀는 놀란 듯, 혹은 찔린 듯 두 눈을 크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올리버는 그런 마리를 말없이 바라봤다.
“······.”
“······.”
침묵에 대한 이자인 듯 적막은 더욱 무거워졌으며, 이윽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마리가 입을 열었다.
“저, 저는-”
“-그러고 보니 마리가 처음이군요.”
“예?”
“순수한 의도로 절 도와준 사람이요. 마리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
“광산에서 절 꺼내주신 분은 조셉 님이긴 했지만, 그분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거든요.”
부유하고 품위 있는 삶을 위해 흑마법사가 된 조셉이 올리버를 광산에서 꺼내준 이유는 악마에게 바치기 위해서였다.
흑마법사로서의 재능이 부족한 그는 재능있는 제자들을 악마에게 바쳐 자신의 실력을 향상, 원하던 풍족한 삶을 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제자 중 하나인 올리버의 손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평생토록 모신 악마의 외면 받은 채 그 명을 달리했지만 말이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마리는 아니었죠. 아무런 계산도 속셈도 없이 절 도와주셨죠.”
마리는 눈을 내리깐 채 침묵했다.
“기억나지 않으시나요? 제가 톰 감독관님에게 혼나고 있을 때요.”
“······.”
“얻어맞던 중 마리가 절 도와주셨죠. 순수한 의도로요. 캔트 님이 첫 번째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마리가 처음이더라고요.”
“······기억합니다.”
“그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던 것 같네요. 정식 제자가 뭔지나 물어봤지.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감사하다는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뇨.”
침묵하던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저는······. 데이브, 아니, 올리버께 감사받을 일은 한 적 없습니다. 순수한 의도로 도와준 게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제가 올리버를 도와준 건 그게 제 생존 방식이라 그런 것뿐이었습니다. 제 편을 늘리기 위해······. 흑마법 재능이 부족한 제가 자리를 지킬 방법은 아군을 늘려, 감독관으로서 능력을 증명하는 것뿐이었거든요.”
생각해 보니 그때도 마리 주변에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꽤 많았던 거 같았다. 인망이 있었다는 뜻. 조셉이 죽은 후, 패밀리가 잘 굴러간 것도 마리의 공이 컸었다.
“그러니 제게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절 위한 것뿐이었습니다.”
마리는 죄를 고백하는 사람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하나, 올리버의 평가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리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 이유가 있다 해도, 절 도와준 건 측은지심에 기반했으니까요. 마리의 과거 덕분이겠죠. 염색 공장 근처에서 살던 때요.”
염색 공장이란 단어가 나오자 마리가 한순간 굳었다.
마리의 인생 중 가장 암울한 시기였으니까.
그 시절 마리는 염색 공장의 폐수로 인해 머리가 보라색으로 물들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험한 꼴까지 당할 뻔했다. 다행히 조셉에게 거둬져 살았지만.
여하튼 그 점을 고려하면 마리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런 기억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올리버가 비정상이었다. 원래부터 무신경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과했다.
정작 당사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다쳐가며 마리를 지키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 자신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살펴 주는 마리를 지키기 위해서요. 하긴, 그게 아니고선 절 신으로 모시는 짓도 하지 않았겠지요.”
“그건 제 힘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은 신도들이 스스로-”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을 신으로 모시는 게 마리 덕분이 아니라 저절로 이뤄진 거라고요?”
올리버의 물음에 마리는 입을 다물었다. 다시 적막이 깔리려는 찰나 올리버가 대화를 이어갔다.
“마리가 나쁜 뜻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저도 압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감탄, 존경, 동경, 감사함 그리고······.”
올리버가 말하다 말고 마리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녀의 감정을 살펴봤다. 자신에게 품은 강렬한 감정을.
“······그 외의 수많은 호의적인 감정만 품고 계시죠. 다른 사람들도 제게 그런 감정을 품을 수 있게 열성적으로요.”
올리버가 건물 벽 너머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올리버의 남다른 분위기에 잠시 굳긴 했지만, 여전히 올리버를 믿고 있었다. 지금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아마, 세컨드가 입구를 막아서고 있지 않았다면 건물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을지도 몰랐다. 부디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올리버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이기심에 마리가 죄책감을 빛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왜 마리가 절 신이라 부르며 무릎을 꿇었는지도요. 세상이 힘들고 고난이 가득하니 믿을 수 있는 게 필요하셨던 거겠죠. 이해합니다. 다들 그러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조차도 마지막엔 그러셨죠.”
한때 끔찍한 죄악을 지었으나, 진심으로 속죄하던 마법사.
“그분께서 제 앞에 빌었습니다. 부디 자신들을 버리지 말아 달라, 무릎을 꿇고, 제 바짓단을 붙잡으면서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마법사가 제게 빌었습니다.”
“뭐라······. 대답하셨습니까?”
“못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해보려고 하는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이 두 눈에 그분의 죄가 너무 선명히 보여.”
올리버는 자신의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리켰다.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 산 채로 사람의 배를 가르고, 병균을 투여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가족들의 반응을 기록하던 그 모습이요.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듯이 보였습니다.”
마리는 가만히 들었다.
“물론, 압니다. 그분께서 진실로 반성한다는 것쯤은. 또, 그분의 속죄가 그저 죄를 없애려는 얄팍한 게 아닌 것도요. 하지만 그래도 못하겠더라고요······. 마리?”
“예, 올리버.”
“마리가 절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사실 저란 인간 자체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고아원과 광산 시절에는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였거든요. 옆에서 누가 굶어 죽어도 신경 쓰지 않고 감자수프를 먹을 정도로요.”
“저는 올리버께 구원받았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요.”
“몇 번 목숨을 건 적도 있지요.”
올리버가 선선히 인정했다.
“다만, 그건 죽는 것보다 더 싫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뿐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전 겁쟁이입니다. 제 운명이 무섭고 두려워 이러고 있는 게 그 증거죠.”
그랬다. 올리버는 겁쟁이였다. 자신의 운명이 두려워 당장 나무에 갇혀 고통받는 고아원 원장도 구하지 않고 외면할 정도로.
마리는 반박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살짝 일그러진 올리버의 표정에 그가 느끼는 고통과 부담감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원래는 여기 올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생각이었죠. 세상의 종말이 오든 말든요.”
“그럼, 왜 오신 거지요?”
“제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뭐든 변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의지든 마음이든.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모르겠다는지 마리는 묻고 싶었으나, 차마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러분이 싫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여전히 여러분은 대단하거든요. 종말이 오는 와중에도 자신의 할 일을 하려 하고, 더 나아지려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마리의 눈 따위로는 감히 올리버의 감정을 잃을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마리는 올리버가 진심을 이야기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르신의 부탁을 들어줄 용기는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죄악이 선명히 보여서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오든 오지 않든요.”
주저앉은 올리버가 간신히 일어서 란다로 왔건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란다로 온 것 자체가 크나큰 변화라 하면 변화였으나, 그 이상은 없었다.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올리버의 물음에 마리는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느꼈으나, 거절하지 못했다. 자신은 올리버에게 더한 짓도 한 바 있었다.
“마리가 대답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
“제가 지옥의 왕자인 건 맞지만, 그건 그저 순전히 우연일 뿐입니다. 제 재능처럼요. 그 재능 덕분에 삶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제가 원해서 왕자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
“그러니 혹시 아신다면 알려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저는······.”
“틀린 말 아니구만! 좋아서 그렇게 태어난 건 아니지!!”
마리가 힘겹게 대답하려던 그때 유달리 과할 정도로 활기찬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자주 들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누군지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이완 님?”
올리버가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이완이 있었다.
지저분한 수염과 다크서클, 망토 아래 아주 비싼 옷을 걸친 흑마법사 장인. 올리버는 그를 말 없이 바라봤다. 놀랍게도 그에게서는 어떠한 죄악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나야! 콩과 소를 바꾸는 천재적인 협상가이자, 위대한 빚쟁이, 바다 건너 사막의 땅과 용이 날아다니는 동방, 쥐가 총을 쏘는 미친 세상과 거인이 사는 하늘나라도 가본 위대한 방랑자. 빼 먹지 말라고, 내 업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좀 살려줘.”
세컨드에게 제압당해 땅 위에 깔리듯 엎드려 대가리에 총구가 겨눠진 이완이 당당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강제로 들어오려다 이 꼴이 난 것인데, 이완을 구하기 위해 온몸에 붕대를 두른 개발 반대 위원회 사람이 다가오려 했으나, 세컨드가 수십 갈래로 나눈 팔을 총구로 주조해 겨눠 멈춰 세웠다.
“쏜다.”
허락이 떨어지면 바로 총알을 박아 넣을 기세. 그러나 올리버는 그러지 않았다. 마리를 이곳까지 대피시킨 건 이완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세컨드를 뒤로 물리며 이완에게 사과했다. 이완은 개의치 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경 쓰지 마. 약한 내가 참아야지. 더 중요한 이야기도 있고······. 그쪽 말이 맞아. 자네처럼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잘 없지.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고선.”
이완의 말투는 평소처럼 가벼웠으나 올리버는 어떠한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때였다.
“같은 이치로 그 친구들도 그렇게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거야.”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누구긴 누구야. 건달 깡패, 망상에 걸린 애새끼, 뒤끝이 엄청 긴 녀석, 잠자는 숲속의 할망구지.”
모멸적이기 그지없는 별명들. 그러나 그렇기에 누구를 이야기하는 건지 알기 쉬웠다. 과거 이완이 직접 설명해 준 바 있었다.
건달 깡패는 인육 요리사, 망상에 걸린 애새끼는 영원한 아이 팬, 뒤끝이 엄청 긴 녀석은 피리 부는 사나이. 그리고 잠자는 숲속의 할망구는 아마,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뜻하는 것일 터였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지. 그들이라고 누군가를 위한 밑거름으로 태어나고 싶었겠어?”
무슨 뜻인지 올리버는 이해했다. 사실 이미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들이 올리버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태어나 살아왔다는 것 정도는.
그도 그럴 게,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의 살점을 먹어 괴력을 얻었고, 팬이 꿈꾸던 왕국 네버랜드를 흡수해 그림자 크리처를 얻었으며, 피리 부는 사나이의 분노를 추출해 껍데기를 깼으니까.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올리버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올리버를 기다려야만 했다. 홀로 외로이.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본다면 이완의 말 그대로였다. 그들은 올리버를 위해 태어났다 해도 무방했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마저도.
“이야기의 요점이 뭐죠?”
“운명이란 군대와 같다는 거야. 뺄 수 있으면 최대한 빼야지.”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착한 내가 도망칠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운명의 모든 속박과 굴레로부터 말이야. 바로,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