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768
768. 올리버 (9)
시곗바늘을 약간 뒤로 돌리면 꽤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악업을 쌓은 연합 왕국의 심장부 수도(首都)에선 종말이 일어났고, 정말 아슬아슬하게 구원을 받았다.
12장의 날개를 가진 소년에게 말이다.
말 그대로 기적.
허나, 기적의 여파 탓에 수도에는 크고 작은 소란이 발생했다.
약탈, 방화,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는 아니나, 어떤 의미에서는 더 치명적인······.
새로운 믿음이 피어나려 했다. 눈앞에서 신과 같은 존재가 나타났으니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다행히 그 신과 같은 존재가 직접 거둔 사람들이 이를 억누르고 있어 아직은 괜찮은 수준이긴 했지만.
여하튼, 연합 왕국의 수도에서는 새로운 종교가 태동할 기미를 하나둘 보이고 있었다.
신과 같은 존재, 당사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
그리고 재밌게도 란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저 때문인가요?”
“당연히 자네 때문이지.”
점점 알게 모르게 신으로 추앙받는 올리버에게 일개 사업가인 포레스트가 술을 마시며 답했다.
누군가 본다면 불경하다 화를 낼 작태였으나, 정작 올리버는 그 태도가 퍽 편안해 보였다.
그걸 알기에 포레스트도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거긴 했지만.
“물론, 순전히 자네 잘못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 상황 자체가 그랬으니까. 수도를 점령한 좀비 군대와 왕국군과 싸우지 않을 수 없었으니······.”
포레스트는 란다에도 올리버 신앙이 퍼지는 이유를 하나씩 설명했다.
그 중 첫 번째는 올리버가 홀로 란다를 해방한 일이었다.
왕국군이 여론전을 위해 틀어놓은 방송은 올리버가 혼자 왕국군은 물론, 퍼펫의 좀비 군대를 쓰러트렸다는 승전보가 되어, 올리버 혼자 란다를 해방시킨 사실은 란다 전역에 알렸다.
“시의회에서 합작이다 의뢰다 살을 붙이긴 했지만, 결국 자네 혼자 도시를 해방시킨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그것도 어떠한 사상자도 내지 않고.”
“그럴 의도로 한 게 아닌데 좀 난감하긴 하네요.”
“어쩔 수 없지. 강력한 힘을 숭상할 수밖에 없으니까. 왠지 아나?”
“글쎄요?”
“강력한 힘은 두려움과 동경을 자아내기 때문이야. 그 두 감정은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감정이고.”
“그 감정을 해소하는 게 숭배하는 거란 뜻입니까?”
“그래, 인간은 약한 존재니까.”
과거라면 이해하지 못할 발언이었으나, 올리버는 이젠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받아들이는 건 아니었지만, 이해는 했다.
곧이어 포레스트가 두 번째 이유를 설명했다.
“자네가 수도에 가서 고생하는 동안 빅마우스가 활약한 것도 한몫했네.”
“시민들이 지하에 대피하는 동안 말씀입니까?”
올리버가 종말을 막기 위해 수도로 가 있는 동안, 폴 카버를 필두로 시의원 모두 란다의 지하를 개조해 하나의 방공호로 만들었다.
혹여, 올리버가 종말을 막는 데 실패했을 때 대비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으나, 시의회는 이를 성공시켰고, 그 성공 비결 중 하나가 빅마우스였다.
올리버의 축복을 받은 빅마우스는 식량과 의료품 등 란다 시민이 지하에서 버틸 식량과 물자를 제공해줘. 물리적으로 수용 불가한 인원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무한한 식량과 물자를 모두에게 제공해주는 먹보 주머니는 기적이라 할 수 있지. 그걸 아무런 대가 없이 주면 더욱 기적이고.”
“그럴 줄 알았으면······.”
‘지원해 주지 말 걸 그랬습니다’라고 올리버가 말하려다 말았다.
그랬다면 지하를 방공호로 개조하는 일이 실패하고 말았을 터였고. 그로 인해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게 뻔했다.
농담으로라도 가벼이 말할 사항이 아니었다.
“표정이 복잡해 보이는군.”
“제 얼굴에 드러납니까?”
“옛날보다 아주 조금은.”
올리버가 자기 얼굴을 매만졌다.
포레스트는 그 모습을 보며 농담처럼 말했다.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어도 그런 표정을 짓다니 재밌구만.”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맞아, 그 정도는 아니지. 그래서 내가 책을 쓰려는 거야.”
포레스트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올리버를 힘주어 가리켰다.
“자네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걸 알리기 위해. 모든 걸 다 아는 것도,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걸. 그 증거로······.”
포레스트가 말꼬리를 잠시 흐리다 다시 이었다.
“······자네는 자네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막지 못하고 있지 않나? 일종의 역설인 셈이지. 내 계획이 멋지다고 한 이유도 그 때문이지?”
올리버는 인정했다.
“예······. 제가 못하는 부분을 도와주시는 거니까요.”
“난 자네 중개인이지 않나? 자네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게 내 일이지,”
포레스트가 자랑하듯 말했다. 단순한 거드름이 아닌, 올리버를 진심으로 돕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하나, 그러한 기색도 곧 사라졌다.
“······그렇다고 내가 쓰는 책이 사람들의 믿음을 무로 돌리진 못할 거야. 믿음은 가지게 하기도 어렵지만, 빼앗는 건 더 힘들거든.”
“경험이 느껴지는 말씀이군요.”
“내가 이 바닥에서 얼마나 굴렀는데? 란다 밑바닥에 얼마나 많은 사이비가 판치는지 아나? 아, 물론, 자네는 사이비가 아니란 뜻이지만.”
“사이비라 칭해도 괜찮습니다. 사실, 사이비 맞죠.”
포레스트는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가짜가 자신을 진짜라 칭하는 가운데, 진짜는 자신을 가짜라 칭하다니.
아니, 어쩌면 자신을 가짜라 칭할 수 있는 건, 진짜이기에 가능한 걸지도 몰랐다.
진짜이기에 가능한 권리.
“흠,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걸세. 자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왜냐면 숭배란 신을 위한 게 아닌, 본인을 위한 거니까. 불안을 지우고,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할.”
올리버는 침묵한 채 가만히 들었다.
포레스트가 대뜸 질문했다.
“사람들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나? 숭배받는 게 싫다면? 자네에 대한 기억을 지우면 이 모든 사태도 사라질 텐데.”
포레스트는 올리버가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할 법한 질문을 했다.
올리버가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답했다.
“할 수는 있지만, 하지 않을 겁니다.”
“아······. 종말 자체가 잊혀져서인가?”
“아뇨, 저라는 존재만 흐릿하게 지우면 종말을 기억시킨 채 없앨 수 있긴 합니다. 다만, 그건 무의미한 짓입니다. 사람을 직접 주물러 바꾸는 건요.”
“······.”
“그건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는 행위 같은 겁니다. 결과는 같을지언정, 과정은 정반대가 됩니다.”
“물고기를 받는 사람이 아닌,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 돼라?”
“예. 사람이란 그래야 합니다.”
“하······. 복잡하구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미, 포레스트 님께선 알고 계십니다.”
홍인들을 고용하고, 종국에 그들에게 레스토랑을 맡긴 포레스트를 향해 올리버가 말하였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포레스트는 피식 웃었다.
“그럼, 책을 더더욱 열심히 써 자네 또한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알려야겠군.”
올리버는 침묵으로 동의했다.
“못 하는 것도 있고, 실수도 하고, 돈에도 욕심 있고, 썰렁한 개그를 하는 인간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이야.”
“전 안 썰렁합니다. 재밌죠.”
“하. 하. 하. 하······. 방금 건 좀 웃겼어.”
포레스트가 입으로만 웃는,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는 ‘네가 뭐라 지껄이건 나는 인정하지 않을 테야’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전 포레스트 님을 좋아하지만, 그런 태도는 조금 불만입니다.”
“불만이면 자네가 책 쓰던가.”
“포레스트 님과 같이 일한 걸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약간 후회되네요.”
“실망도 하고 살아야 성장하지······. 좋아, 객쩍은 소리는 이쯤에서 그만하지.”
“전 진지한데요?”
포레스트는 올리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약서를 가져와 내밀었다.
앞으로 출간하게 될 서적에 대한 수익 분배에 관한 거였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수익 분배는 5대5며, 올리버 몫은 재개발 연합이 수취해 운용한다는 거였다.
“원래는 책이 완성된 후 사인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어째 지금이 아니면 받기 힘들 것 같아-”
사각사각사각.
포레스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올리버는 망설임 없이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 사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포레스트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제 만나지 못하는 건가?”
포레스트가 올리버가 건네는 계약서를 받아 챙기며 물었다.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겁니다.”
“마리와 조는 만나고 떠나도 되지 않겠나? 제인 아가씨도 있고 말이야.”
“이미 필요한 대화를 다 나눴습니다. 그 증거로 그들 모두 자기 일을 잘하고 있고요. 아쉽긴 하나 이 정도가 딱 좋습니다. 과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군.”
포레스트가 마지못해 인정했다.
올리버의 발걸음 하나가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지 알아.
올리버에게 별거 아닌 손짓조차 수많은 의미가 부여돼 자칫 걷잡을 수 없는 태풍이 될지도 몰랐다.
그 순간 포레스트는 올리버가 왜 그토록 사람을 직접 주무르길 꺼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 방식으로 사람을 다루면, 결국, 사람을 없애는 방식으로 밖에 갈 수 없었다.
필요할 때 없애고, 필요할 때 다시 만드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효율적이며, 잔혹한 방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어찌해 신이 인간과 거리를 두는지 알 것 같았다.
“참 외롭겠구만.”
“그래 보이나요?”
“주제넘지만 그렇네. 중개인 노릇을 하면 많은 걸 가진 사람도, 힘 있는 사람도 많이 만나지. 우습게도 가진 게 많아 그들은 외롭다네.”
포레스트가 농담 같은 진실을 말했다.
사람은 너무 많은 걸 가지면 외로운 법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당사자를 사람이 아닌 돈주머니, 권력 출납기 정도로 보았다.
역사 속 수많은 왕이 의심암귀(疑心暗鬼)에 사로잡히고, 인간불신에 괜히 빠진 게 아니었다.
막대한 축복은 때때로 저주와 같았다. 자신이란 존재가 축복에 잡혀먹힘으로서.
100년도 못사는 인간도 그러할 진데, 하물며 신에 가까운 존재는 어떨까?
포레스트는 올리버가 그토록 괴로워하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렇나?”
“예, 여러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은······. 조금 기쁘구만.”
포레스트가 미소를 짓자 올리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포레스트가 엿보인 빈틈을 쑤시고 들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제 중개인이시니까요.”
포레스트가 따라 일어나며 응했다.
“뭔가 당한 느낌이지만, 일단 말하게. 힘없는 내가 참아야지.”
허락이 떨어지자,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내밀었다.
“이걸 맡아 주십시오. 누굴 주긴 줘야 할 거 같은데, 오해의 소지를 살 것 같아서요.”
“이건······.”
포레스트가 섣불리 쿼터스태프를 받지 못했다.
이 쿼터스태프는 캔트가 준 것이었고, 올리버에게 있어 뜻깊은 물건이었다.
아니, 물건 이전에 신체 일부라고 할 수 있었다.
“진심인가?”
“전 이제 필요 없어서요. 포레스트 님이라면 잘 사용하실 거라 믿습니다.”
“············알았네.”
포레스트가 긴 침묵 끝에 떨리는 손으로 쿼터스태프를 받았다.
쿼터스태프는 약간 묵직한 수준이었으나, 동시에 한없이 무거웠다.
“하나만 더. 차일드도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천사의 집 종업원분들과 함께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건 좀 큰 부탁인데?”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참고로, 더 이상 생명력도 감정도 필요 없을 겁니다.”
“이래서 좋은 소리를 들었을 때 더욱 긴장해야 하는 건데.”
포레스트가 불평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은 그게 끝인가?”
“더 말씀드리고 싶긴 한데, 그러면 화내실 거 같으니 참겠습니다.”
“그거참 고맙군.”
포레스트가 손을 내밀었다.
올리버는 그 손을 맞잡아 악수했다.
포레스트가 손을 꽉 쥐며 나지막이 물었다.
“이제 떠날 건가?”
“예, 마지막까지 재밌었습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요······. 포레스트 님도 재밌었습니까?”
“재미? 아니, 영광이었네.”
포레스트가 온 마음을 담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올리버는 그 미소를 만족스럽게 보더니 조용히 사무실 문을 열어나갔다.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닫힌 문 너머로 포레스트가 자기 일을 하는 소리가 들렸고, 올리버는 복도를 걸어 정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웅성. 웅성. 웅성.
문을 열고 나가자, X구역이 아닌 Z구역이 나타났다.
공간을 뛰어넘은 것.
올리버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지옥의 저주에서 벗어난 개발 반대 위원회 사람들과 이브, 판도라, 릴리스. 마지막으로 이완에게 인사했다.
“다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