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arlock RAW novel - Chapter 785
785.
에필로그 – 은퇴한 노인(4) [완결]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점심식사를 마치고.
포레스트는 다시 자신의 전용 좌석으로 가 타자기를 두들겼다.
아, 물론 정말 점심식사만 한 것은 아니었다.
급한 이야기를 끝마치고, 식사한 후. 과거 그에 관한 이야기도 좀 나눴다.
책 자료가 필요해.
그와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나눈 대화가 뭐였는지,
기억에 남는 일화가 무엇인지,
시간대에 따른 그의 평가 등등······.
참고로 마리와 요안나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와인햄이라는 소도시였다.
재개발 연합의 협력사가 있는 그 소도시.
당시 마리는 입지가 위태로운 흑마법사의 제자였고, 요안나는 그를 붙잡기 위해 온 성기사라 했다.
왜 단둘이 있을 때 서로 어색해했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흑마법사의 제자와 성기사라니. 그런데 지금 이곳에 나란히 앉아 있고.
포레스트는 적잖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삶이란 알 수 없는 거란 걸 깨달았다.
포레스트는 이후 ‘그’와 헤어지고 언제 다시 만났는지 등을 물어보았지만, 또, 그리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이미 수차례 들었던 이야기인지라 대략적으로 훑으며 궁금한 점만 짚고 넘어갔으면 됐기에, 또, 마리와 요안나는 이제 온종일 붙잡아도 될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어서였다.
마리는 명실상부 선택하는 사람들의 수장이었고, 요안나는 성녀로서 성황을 보조하는 실질적 수장이라.
‘나도 좀 바쁘고······.’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기계처럼 묵묵히 타자를 두들기며 포레스트가 생각했다.
사실 은퇴한 몸인지라 그렇게 바쁜 건 아니었지만, 기이하게도 오늘따라 바빴던 과거 시절과 같은 기분이 들어 막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과 한창 일하던 시절 말이다.
기분 좋은 조급함이랄까?
그래서 포레스트 또한 마리와 요안나를 굳이 잡지 않고, 과거 인터뷰를 토대로 궁금했던 점만 물어본 후 그녀들을 보내, 이곳에 와 쉴 새 없이 타자기만 두들겼다.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타다닥-
타자기 소리가 멈추는 것은 과거 정리한 자료를 훑어볼 때만으로.
자료를 확인한 후 포레스트는 머릿속으로 내용을 정리하고, 교정해 다시 타자기를 두들겼다.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얼마나 집중했는지 포레스트에게 우연을 가장해 인사하려는 사람들조차 기세에 눌려 다가오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포레스트는 피크타임인 저녁 시간과 밤이 될 때까지.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타다닥. 타다닥. 티잉-! 철컥!
쉬지도 않고 계속해 타자기를 두들기고 두들겼다.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음?”
글을 다 쓰고, 뻐근해진 손가락을 풀던 중 포레스트는 이변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손님이 다 빠지고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나?”
포레스트는 반사적으로 종업원을 불렀고, 다행히 종업원들은 안 보이는 곳에 남아 있었는지 포레스트의 부름에 바로 응했다.
“네, 어르신.”
제복을 입은 종업원이 반듯한 몸가짐을 유지하며 다가왔다.
포레스트는 그런 종업원을 바라보다 무심코 시계를 확인했다.
[01 : 20]새벽 한 시 이십 분.
아무리 인기 있는 레스토랑이라도 문 닫을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레스토랑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중요한 건수가 있어?
아니.
포레스트가 이곳에 있어서였다. 은퇴한 늙은이가.
“이런, 미안하군.”
“신경 쓰지 마시지요.”
포레스트의 사과에 쩔쩔매던 종업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알이 끼어들었다.
그는 여유와 품격이 느껴지는 동작으로 종업원을 물린 다음 포레스트에게 미소 지었다.
“저도 일이 있어 문을 안 닫은 거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 무슨 일?”
“큰 건수가 있습니다. 중개인으로요. 그러니, 더 계셔도 됩니다.”
“아니, 됐어. 얼추 끝났으니······. 이제 집에 갈래.”
“그럼, 제가 태워드리겠습니다.”
“중요한 일 있다면서?”
“방금 취소시켰습니다. 전 나름 잘 나가는 중개인이라서요.”
알의 뻔뻔한 태도에 포레스트는 피식 웃었다.
“그럼, 신세 좀 지지.”
포레스트는 그리 말하고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쓴 모든 종이를 끝으로 정리해 챙긴 뒤, 알의 골동품 차량에 올랐다.
“지금도 조수석에 타고 싶은 기분이십니까?”
“그렇구만. 그러니 닥치고 운전이나 해. 피곤하다.”
“네, 알겠습니다!”
힘찬 대답과 함께 시동을 거는 알.
반짝거리는 외관처럼 내부도 잘 관리됐는지, 부드러운 엔진 소리가 울리며 자체에 작게 진동했다.
주아아아앙-!
알은 능숙한 운전 실력을 발휘해 오늘 아침 레스토랑으로 왔던 것처럼 주욱 나아갔고, 어느새 포레스트의 집 앞에 도착했다.
“어르신.”
“어? 벌써 왔나?”
알의 아늑한 운전 솜씨에 깜빡 잠들었는지 포레스트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예.”
“깜빡 졸았나 보군.”
“많이 피곤하셨나 봅니다.”
“아니라 하면 거짓말이긴 하지. 나이를 먹으니 타자기 두들기는 것도 일이더구만······. 이왕 잔 거 조금만 더 늦게 깨우지 그랬나?”
“아, 죄송합니다.”
포레스트의 타박에 알이 바로 사과했다.
아침에 길이 막혔을 때 사과한 것처럼 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포레스트는 알을 빤히 바라보다 알의 어깨를 주먹으로 때렸다.
퍽.
약간 묵직한 소리. 알은 놀라 표정을 지었다.
포레스트가 알을 포함한 직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은, 레스토랑 종업원 교육을 할 때 빼고는 없었고, 그마저도 주먹이 아닌 매를 사용했다.
그런 포레스트가 약하게나마 주먹을 휘두르다니.
놀란 알을 향해 포레스트가 말했다.
“일일이 사과할 필요 없어.”
“예?”
“일일이 사과할 필요 없다고, 네 잘못 아니니까.”
“······.”
“당당하게 굴어. 이젠 네가 T구역 30번 거리의 중개인이니.”
무슨 말인지 이해한 알의 표정은 서서히 밝아지더니, 무엇인가 결심한 듯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다.
“하아······. 압니다. 사과한 것도 중개인으로서 돈 많은 노인네 비위 맞춰 준 것뿐입니다. 절대 진심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 그럼, 내가 당한 거군.”
“예, 당하신 겁니다. 저한테.”
포레스트는 란다의 부호답게 호탕하게 웃고는 짐을 챙겨 차 문을 열고 내려갔다.
“어르신!”
“응?”
“오늘······. 괜찮으십니까?”
포레스트가 미소 지었다.
“······물론. 너야말로 내일 늦게 오지나 마. 오늘은 좀 아슬아슬하더라.”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일은 식료품 안 사 가도 되니, 절대-”
-타악!
알이 말하는 도중 포레스트가 차 문을 닫았고, 알은 불쾌한 기색 없이 창문 너머로 인사하며 차를 몰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알이 떠난 것을 확인한 포레스트는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
“허······. 이리 갑자기 올 줄은 몰랐습니다만?”
멋대로 집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붉은 피부 남자에게 인사했다.
“미안합니다. 스승님께 보고 배운 게 이런 거뿐이라.”
주인 멋대로 들어와 기다린 붉은 피부의 남자가 답했다.
“바빠서 지금밖에 시간이 없어······. 아니면 내일 다시 오도록 할까요?”
“허······, 이미 오셨는데 됐습니다. 아카이브.”
***
“커피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술?”
겉옷을 벗은 포레스트가 찻잔에서 술과 커피를 꺼내며 물었다.
“멋대로 들어온 손님에게도 친절하시군요.”
“이래 보여도 중개인 출신입니다. 무례한 사람은 질리도록 상대해 봤죠. 하물며, 아카이브가 상대면 얼마든지 친절해질 수 있습니다.”
“아카이브 말고, 케빈이라 부르셔도 됩니다. 솔직히 그 직위를 자랑스러워하진 않거든요.”
“그런 거치고는 열심히 아카이브 노릇을 하던 것 같습니다만?”
농담조였으나, 빈말은 아니었다.
최초의 홍인 마법사인 것도 모자라 아카이브가 된 케빈은 놀라울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거의 칩거 생활만 하던 전대에 비하면 더욱.
그는 대재앙으로 위기에 빠져있던 성황시국과 연합 왕국 왕실을 뒤에서 도와준 것 외에도, 퍼펫과 밀약을 맺어 위기에 빠진 전통 학파를 다시 일으키는 등, 국경을 초월할 정도로 부지런히 활동했다.
그 정도로 얼마나 대단한지 현재에 이르러 피부색과 무관하게 모두가 새로운 아카이브의 권위를 인정했다.
란다에 홍인 사회가 성립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별거 아닙니다. 그보다 오늘따라 이상하시군요. 전에는 분명 케빈이라 부르신 것 같은데, 또, 아카이브라 하다니요.”
“나이를 먹어 그런지 심술을 좀 부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커피? 술?”
“커피로 하죠.”
포레스트는 단숨에 물을 끓여주는 아그니 소학파의 마법 주전자로 커피를 타 케빈에게 건넸다.
케빈은 그 커피를 한번 마신 뒤 바로 용건에 들어왔다.
“하······. 그래, 부르신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이야기가 빠르군요. 옛날처럼 전통 학파 사업에 관해 귀띔 좀 해주실 줄 알았는데.”
“성질 고약한 늙은이에게는 제가 친절하지 못합니다. 그런 인간을 스승으로 모신 탓에요. 뭐, 불만입니까?”
“아뇨, 힘없는 제가 참아야죠. 잠시만.”
포레스트는 나무판자 같은 뻣뻣한 몸을 일으켜 짐을 내려놓고, 잠시 위로 올라갔다.
터벅.
터벅.
터벅.
케빈이 말없이 기다리길 한참.
“여기.”
포레스트가 내려와 백과사전 두께의 종이 뭉치를 탁자 위에 턱하고 올렸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탁자가 흔들렸고, 포레스트는 가방에 든 종이 뭉치를 꺼내 백과사전 높이의 종이 뭉치 위에 올렸다.
“이건 설마······?”
뭔가 아는 눈치의 케빈. 포레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녀석에 관해 적은 책입니다. 오늘 완성했죠.”
케빈이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책이 내 살아생전에 완성될 줄은 몰랐는데······. 책 한 권 두께라기에는 너무 두껍고요.”
“책은 진작에 완성됐습니다. 잘못되고 빈 부분을 채우느라 시간이 좀 걸린 거뿐이지. 그리고 책 두께는······. 이해 바랍니다. 애초에 한 사람의 인생을 이 정도로나마 요약한 게 기적 아닙니까?”
반박할 말이 마땅치 않은지 케빈은 수긍했다.
“밀린 숙제를 끝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래 끌어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걸 왜 제게 보여주시는 겁니까? 전 출판사가 아닌데.”
케빈이 뭔가를 눈치챈 듯 눈을 빛냈다.
“이미, 생각하시는 게 있는 거 같은데, 그거 맞을 겁니다.”
“저더러 출판사 노릇을 하라는 겁니까?”
“예.”
포레스트가 주인 멋대로 들어온 손님 이상으로 뻔뻔하게 부탁했다.
자기가 쓴 글을 대신 책으로 내달라고.
케빈은 눈을 가늘게 떠 포레스트를 바라보았으나, 짜증을 내진 않았다. 대신, 의문을 표했다.
“어째서입니까? 그 오랜 세월을 잡고 씨름한 걸 왜 제게 마침표를 찍어 달라고 하는 겁니까?”
“전직이긴 하긴 해도 내가 중개인이지 않습니까? 중개인의 덕목은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보조하는 것. 제 직업윤리에 따른 겁니다.”
“포레스트 씨······.”
“또 중개인으로 이 책이 진짜 자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 손에서 책이 되는 것 보다, 아카이브 손에서 책이 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책 내용 때문에 다들 포레스트 씨가 쓰신 걸 알 겁니다.”
“중요한 건 간판이죠. 케빈 씨께서 저 책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알지 않습니까?”
중개인인 포레스트가 아는 걸 아카이브인 케빈이 모를 리 없을 터.
예상대로 케빈은 포레스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그 책은 경전이 될 겁니다. 최소한 비슷한 취급을 받게 되겠지요. 다름 아닌 그 녀석에 관해 다룬 책이니. 그렇다면 일개 뒷골목 중개인보다는, 좀 더 권위 있는 사람의 손에서 책이 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뭐든 흠집 내기 좋아하는 놈들이 있으니까요.”
“뭐든 찬양하길 좋아하는 놈들도 있죠. 전 포레스트 씨가 후자보단 전자에 가까운 줄 알았는데요.”
“오, 당연합니다. 난 이성적이고 냉소적인 란다인이라 찬양보다는 비판을 좋아하지요. 그러나, 친구에 관해서는 별개입니다.”
“친구?”
“예, 처음에는 중개인과 해결사 관계이긴 했어도, 이후 친구가 되기도 해서······. 친구에 관한 책을 쓴다면 이왕이면 트집거리를 남겨주고 싶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친구라면 더욱 말이죠.”
케빈은 흑마법사의 눈으로 포레스트를 바라보며 그 진심을 확인했다.
“거기다.”
“······?”
“엄밀히 말하면 전 책을 내달라 부탁하는 게 아닌, 본인 일을 하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카이브에게 자기 일을 하라고 말이지요······.”
“제 일이요?”
“아카이브란 그 녀석을 보조하기 위해 있는 존재라고 본인 입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짜증 나긴 하지만 아니라고는 할 수 없군요.”
“벌써 짜증 내면 안 되는데······.”
“예?”
“부탁드릴 게 하나 더 있어서······.”
포레스트가 천으로 뭉친 그의 쿼터스태프를 가져와 탁자 위에 타악 올렸다.
***
포레스트는 마리와 요안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케빈에게 했다.
아카이브답게 요점을 파악한 케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쿼터스태프와 포레스트가 쓴 종이를 조용히 챙겼다.
이후로는 뭐 특별한 건 없었다.
케빈은 마시던 커피를 마저 마시고는 그냥 바람처럼 사라졌다.
섭섭하진 않았다.
애당초, 케빈과 포레스트가 만난 건 책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일 뿐인지라.
케빈이 떠난 후, 포레스트는 자기 할 일을 했다.
일이라 해봐야 옷을 벗고, 씻은 후, 책을 좀 읽다 잠자리에 드는 게 전부였지만.
피곤해서 씻는 것도 생략한 채 곧바로 침대 위에 눕고 싶기도 했으나, 가난한 젊은 시절부터 품위 있고 여유로운 삶이 꿈이었던지라 그럴 수는 없었다.
“꽤······. 만족스럽군.”
조명등만 켜 놓은 채 누워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의 인생 전반은 젊은 시절 꿈꾸던 인생 그 자체.
늘어지게 잠자지는 못하나, 여유롭게 아침을 준비하고 신문을 읽을 수 있었고, 집세 걱정도 없었으며, 레스토랑에서 눈치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등.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물론, 그중 아쉽거나, 후회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인생이란 것 자체가 불만족스러운 것.
포레스트는 지금 자신이 누리는 인생에 만족하고자 했다.
“재밌기도 재밌었고.”
책을 완성하던 중 떠올린 그 녀석과의 일을 생각했다.
바쁘고 정신없을 때도 있었지만, 전제적으로 재밌었다.
그 탓인지 내일 아침이 약간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토록 끙끙대던 책도 완성해 넘겨주고, 사실상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돈도 많으니 할 일이 없고 자유시간이 생긴 사실에 기뻐해야 정상이었건만, 포레스트는 그런 텅 빈 시간표를 맞이하기 약간 두려워졌다.
전혀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가듯······.
“나도 늙긴 늙었군.”
포레스트가 잠들기 위해 조명등을 끄고, 몸을 뒤척였다.
원하든 원치 않는 내일은 오는 법.
두려워하고, 낯설어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저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며, 견뎌내야 했다.
종업원 시절 포레스트가 그러하듯,
중개인 시절 포레스트가 그러하듯.
하물며, 지금은 돈까지 많으니, 막상 오면 별거 아닐 게 뻔했다.
그렇게 포레스트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정리한 채 똑바로 누워 잠에 빠졌고, 한참을 잠들었다.
쌔액, 쌔액, 쌔액······.
쌔액, 쌔액······.
쌔액······.
쌔······.
······.
너무 한참을.
“응?”
너무나도 깊은 적막에 포레스트가 서서히 깨어났다.
너무 조용해 깼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나 실로 그랬다.
그도 그럴 게, 이쯤 되면 알람 시계가 울려야 했건만.
혹시, 너무 일찍 일어난 건가 싶어, 시계를 확인하려는 찰나.
“일어나셨습니까?”
오랜만이면서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벼락을 맞은 듯 몸이 굳은 포레스트는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돌렸고.
볼 수 있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이형의 공간을 배경 삼아 소파 위에 유유히 앉아 있는 그를······. 올리버를.
아이 티가 나던 앳된 얼굴은 사라지고, 어느새 청년의 얼굴로 변한 올리버가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포레스트 님.”
***
인간 세상에 없어야 할 올리버.
그가 자신의 곁에 앉아 인사했다.
포레스트는 호흡을 한번 가다듬은 뒤 화답했다.
“자네도 오랜만이군.”
“안 본 사이 많이 늙으셨군요.”
“예의도 없어졌고······. 그래, 난 죽은 건가?”
“예.”
올리버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을 맞이하듯.
그런 태도 때문인지 포레스트는 딱히 놀라지 않고 그냥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내가 천국에는 못 갈 줄 알았지만······, 그래도 고통 없이 죽다니 호상인가?”
“지옥에 오신 것 같습니까?”
“나도 양심은 있으니까.”
“하하하······.”
포레스트의 농담에 올리버가 웃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자네도 꽤 많은 일이 있었나 보군. 웃는 모습을 보아하니.”
“칭찬이시죠?”
올리버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술잔을 포레스트에게 내밀었다.
가만 보니 포레스트가 즐겨 먹던 브랜드였다.
“······맛있군. 정말로.”
“이야기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뭐?”
“제가 하는 일이요. 죽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을 합니다. 그들의 삶이나, 한탄 같은 것들을 들어주고 제가 대답해 주는.”
“죽은 사람 전부?”
올리버는 허공에서 우유 잔을 꺼내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에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몇 명인데, 그들 전부와 대화를 나누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렸건만, 그렇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이기에 더욱.
“허······. 힘들겠군.”
“그만큼 보람도 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포레스트 님과도 대화할 기회를 얻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들과도 만날 생각인가?”
“언젠가는요······. 그런데 반응이 좀 이상하시네요. 포레스트 님은 저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신가요?”
“글쎄, 너무 갑작스러워서······. 없으면 안 되나?”
“아뇨, 그 역시 선택이니 문제없습니다.”
정말 괜찮다는 듯한 올리버의 표정.
풍부해진 그의 표정을 지으며, 포레스트는 자신의 할 일을 떠올렸다.
“보고할 건 있네. 중개인으로서.”
“뭐죠?”
“책을 다 썼어. 자네에 관한 책.”
“정말요?”
“그래.”
“책 이름이 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천재 흑마법사.”
“천재 흑마법사?”
“그래, 그게 자네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아서······. 불만인가?”
“음······. 아뇨, 다만, 책이 망하면 제목 탓일 거 같긴 하네요.”
“책 주인공이 재미없어서일 수도 있지.”
“전 재밌습니다. 모두 제 농담에 배꼽을 부여잡고 웃는다고요.”
“확실해졌군. 여긴 지옥이야.”
포레스트는 올리버의 유머를 부정했고, 올리버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침묵한 채 자신을 바라보는 올리버.
포레스트가 적막을 견디지 못하고 물었다.
“만약에 대화를 다 나누면 어떻게 되나? 떠나나?”
“떠난다기보다는 선택지를 줍니다. 천국에 가 쉴지, 지옥에서 죄를 씻을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지를요.”
“? 대부분 첫 번째 선택지를 고를 거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두 번째나, 세 번째 선택지를 고른 사람도 꽤 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으나, 한편으로는 믿었다.
올리버였으니까.
“······말씀하기 불편하시면 가만히 있으셔도 됩니다.”
올리버가 말했다.
“말씀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릴 테니.”
올리버가 계속해 말했다.
“그러니, 포레스트 님이, 절 보고 있는 모든 분이 자기 이야기를 말씀하고 싶을 때 말씀하셔도 됩니다.”
올리버가 웃으며 말했다.
“전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