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hides his sword skills RAW novel - Chapter (120)
천재 마법사가 검술을 숨김-120화(120/150)
120화. 아일렌 돌프(3)
하늘도 우리의 심란한 심경을 헤아리는 듯했다.
‘날이 많이 흐리네.’
갑작스레 몰려든 먹구름 떼. 밤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들이 달빛조차 가린 채였다.
우리는 조그마한 라이트 마법에 의지한 채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일행들과 함께 결전의 장소로 향하는 길이었다.
마차나 포탈로 이동하면 추후에 우리의 흔적을 찾아 추적할 수도 있기에, 부득이 걸어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됐는데.’
황무지 같은 흙바닥을 따라 다섯 시간가량 이동했을 즈음일까.
“이제 곧 슈바니헬 협곡입니다.”
앙헬의 손짓이 가리킨 곳. 흙바닥의 끝에는 가파른 절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자일로 산맥의 첫 번째 구역처럼, 깎아지른 듯한 황무지 협곡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협곡 위쪽에서 아래쪽을 바라보는 형세였으니.
‘습격하기엔 이만한 곳이 없지.’
직접 내려다본 현장의 모습은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길도 좁고 양옆도 막혀있고. 딱 적당하군. 최적의 장소를 골랐어.]‘호리조 덕분이지.’
호리조가 목숨을 걸고 내게 알려준 정보. 인도자의 길을 통해 지하 감옥으로 이동한다는 그 정보 덕이었다.
마탑에서 황실까지 주욱 이어진 인도자의 길. 그중에 가장 급습하기에 좋은 지형이 바로 이곳, 슈바니헬 협곡이었으니까.
[근데 왜 범죄자들은 포탈로 이송하지 않는 거지?]‘포탈은 한 명씩 이동해야 하니까, 혹여 탈주할 위험이 있잖아.’
[흐음.]‘어차피 제국 지하 감옥엔 포탈도 없고.’
한 번 들어가면, 그 누구도 나올 수 없는 수감시설. 그런 곳에 포탈이 설치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하긴, 그냥 무장해서 이송하는 게 최선이겠구만.]그렇게 슈바니헬 협곡을 한 번 훑어본 후, 일행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도 참 복이 많군.’
이 순간 눈에 들어온 인물들이 새삼 달리 보이는 것은 왜였을까.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게 만드는 이들.
“다들 도와줘서 고마워.”
9성 기사에 육박하는 카를레스는 물론. 8성 마법사 앙헬과 흑마법에 능통한 아리에스까지.
마탑의 마법사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큰일을 앞두고 있었음에도, 마음 한구석을 든든하게 해주는 이들이었다.
“아, 난 끼기 싫은데!”
괜히 한 번 툴툴거리는 아리에스였지만.
“부탁드립니다. 아리에스 님.”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아드문 앞에서는 약해지는 그녀였다.
“그,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누나만 믿으라고!”
다만, 그 모습이 언짢은 한 존재가 있었으니.
[누나는 개뿔. 할망구 주제에.]오베론이 혀를 쯧- 차고 있었다.
‘냅둬. 괜히 관심받고 싶어서 저러는 거잖아.’
이제야 슬슬 아리에스의 성격을 파악해가는 중이었다.
“전언자님. 오셨군요. 저희도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순간 우리에게 다가온 서른여 명의 무리들. 원심회의 간부들과 일부 조직원들 역시 이번 작전에 동참한 터였다.
[얘들도 너희랑 같은 옷을 구해 입고 왔군.]검은 로브에 은색 가면을 쓴 채로 나타난 이들. 하나 같이 옷을 맞춰 입은 이들이었다.
‘그래야지. 그게 이번 작전의 핵심이니까.’
우리 역시도 그들과 같은 복장이었다. 마탑의 학생인 나는 물론, 원심회도 정체가 탄로 나면 안 될 테니까.
“고맙군. 다들 이리 모여줘서.”
“아닙니다. 별말씀을……!”
가장 선두에 서서 고개를 숙이는 사내. 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다친 곳은 다 나았나?”
그러자 가면 틈새로 새어 나오는 음성.
“저, 저를 알아보시는 겁니까?”
그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당연하지. 주란트 아닌가.”
“헙! 얼굴도 가렸는데 어찌 알아보시고! 가, 감사합니다! 걱정해주신 덕에 괜찮습니다!”
이내 가면을 들어 올려 얼굴을 비쳐 보이는 주란트. 그의 눈가는 감격에 절어있었다. 이제는 익숙한 표정이었다.
[원심회 애들은 네가 좀 관심만 주면 아주 기뻐 죽으려고 하는구만.]나와 대화만 나눠도 감복한 표정을 짓는 이들.
‘그만큼 날 잘 따른다는 거지.’
내 입장에서 나쁠 것은 전혀 없었다.
[참나. 아무리 그래도, 고작 누군지 알아봐 준 걸로 이렇게 좋아할 일이냐? 그게 뭐 대수라고.]오베론이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데에는 이유도 있었다.
그나 나처럼 숙련된 기사들은 걸음걸이만 보고도 누구인지 판가름할 수 있었으니까.
평생을 몸의 움직임에만 초점을 둬온 우리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면을 쓴다 해도, 누구인지 정도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 지난번엔 자네 덕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어. 고맙네. 앙겔로스 님의 가호가 있을 거야.”
“펴, 평생 모시겠습니다. 충!”
말도 더듬을 정도로 감동한 주란트. 왜인지 그의 뒤로 늘어서 있는 이들의 가면 뒤로 부러운 시선이 쏘아지는 것만 같았다.
“다들 준비는 됐겠지?”
동이 트기도 전 황량한 협곡 위엔 우렁찬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옙!”
내게 한 번이라도 눈도장을 찍고 싶은 듯, 소리치는 원심회의 일원들.
“마탑은 결코 쉽게 볼 자들이 아니다. 알고들 있겠지?”
“옙!”
협곡의 바람을 타고 내 음성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진 마라! 만반의 준비가 된 너희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 대상이 마탑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각기 다른 아픔을 지닌 이들. 누구 하나 평탄한 삶을 살아온 자들은 없었다. 세상의 차별로 인해 원심회에 가입한 이들이기에.
“자신을 믿어라. 그 누구보다 뛰어난 것이 너희들이니까.”
지금 전하는 메시지는 그들에게 더욱 와닿을 것이었다.
“옙!”
잠시 후면 마탑의 세력들과 아일렌이 지나갈 시간. 우리는 황량한 협곡 위에서 결의를 다졌다.
* * *
두두두두!
조용하던 협곡을 울리는 소리. 땅이 울리듯, 말들의 힘찬 발길질 소리가 퍼져왔다.
“……놈들이 온 것 같습니다.”
앙헬은 물론, 이미 모든 이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해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모래 구름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한 무리의 인영들.
“준비하지.”
강력범들을 이송하는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생각보다 수가 많네.’
오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말을 탄 채, 커다란 철창 주위를 감싼 형세였다.
호리조에게 수송하는 인원에 대한 정보는 들은 것이 없었던바. 예상보다는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있었다.
[앙헬 말 듣기를 잘했네.]‘그러게 말이야.’
원래는 카를레스와 앙헬, 아리에스만 데리고 오려고 했었으나. 혹시 모른다며 원심회의 식구들을 불러모으던 앙헬이었다.
‘생각보다 신경 써서 호송하는구만.’
[최소한 갇혀 있는 놈들이 풀려나도 제압할 정도는 되겠지.]강력범들이라 그런지 마탑에서도 꽤나 신경을 쓴 듯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부르길 잘했군.”
“뭘요. 그저 혹시 몰라 부른 것뿐입니다. 사실 원심회 아이들이 없었어도, 카를레스 님이면 충분히 다 쓸어버리지 않겠습니까.”
그 말도 사실이긴 했다. 수송 인원 중에 마탑주라도 껴있지 않은 이상, 카를레스를 막을 이는 없을 테니까.
“에헴! 물론이지!”
그가 마음먹고 트라이던트를 개방한다면, 그 수가 백 명이라도 어찌할 수 없을 터였다.
“그래도 그건 너무 흔적이 많이 남아. 우리 작전은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는 거다.”
수인족들이 에고에 틀어박혀 산지 어언 천 년. 세간에서는 수인족들이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노예로 거래하는 물품에 불과할 뿐.
아직 카를레스가 가진 힘을 세상에 드러내기엔 일렀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들을 몰살한다고 해도 이번 사건은 무조건 마탑에 흘러 들어가겠지요.”
“응. 우리가 습격하는 즉시 비상 연락 체계를 가동할 테니까.”
저들 역시도 마탑 소속의 일류 마법사들. 호송을 위해 마탑과 실시간 교신 마법을 사용하고 있을 터였다.
[건드리면 바로 마탑에서 눈치채겠지.]일전의 마탑 사이렌처럼, 즉각 마탑 내부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정체를 숨기는 게 더 중요한 거고.’
그것이 검은 복장과 은색 가면을 착용한 이유였다. 저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향후 이번 사건을 추적할 마탑의 눈을 피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으니까. 절대로 우리의 흔적을 남겨선 아니 되었다.
숨죽인 채 그들이 다가오길 기다리길 잠시, 협곡에 다다르자 점차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는 마법사들이었다.
“아드문, 어때? 좀 보여?”
그제야 보이기 시작하는 그들의 면면. 다만, 가장 먼저 시선이 쏘아진 곳은 철창 내부였다.
가로, 세로 10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철창 내부엔, 열 명의 범죄자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모두 쇠창살에 손발이 묶인 채였다.
“으음…….”
그곳에서 눈을 떼지 않던 아드문. 곧이어 그 고개가 끄덕여졌다.
“……맞는 것 같습니다. 아니, 확실합니다.”
아직 거리가 꽤 되었건만.
“저기 오른쪽에 있는 여자아이가 제 동생입니다.”
아드문은 소녀의 실루엣만으로도 아일렌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몇 년이 흘렀건 결코 잊을 수 없으리라.
“……그래. 우리가 꼭 되찾도록 하자.”
두 주먹을 불끈 쥔 아드문.
“네. 알겠습니다.”
녀석은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탑의 마법사들을 향해 눈빛을 쏘아 보낼 뿐.
“어……?”
그런 내 미간이 좁혀진 것은, 다른 범죄자들을 살핀 때였다.
[쟤들도 있군.]호리조와 리우. 두 사람도 강력범죄자로 낙인되어, 아일렌과 같은 처지였으니까.
“제 아이들이군요.”
앙헬 역시 철창에 묶여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 채였다.
“오히려 잘 됐어. 이번에 모조리 구출하는 거다.”
“알겠습니다.”
눈을 좁힌 채 마법사들의 면면을 살피는 앙헬. 그의 눈살이 조금은 찌푸려졌다.
“다만, 놈들이 생각보다 강한 호송대를 꾸린 것 같군요.”
“왜 그러나?”
“저기 철창 앞에 앉아 있는 사내 보이십니까?”
그의 손끝이 가리킨 곳. 수감자들을 가둬둔 철창 앞에 마련된 의자에는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저자는…….’
그제야 그 모습이 주의 깊게 들어왔다.
[흠. 강력범들이라 신경 좀 썼나 본데.]오베론과 나 역시도 익히 알고 있는 외형. 그 새빨갛게 물든 머리칼이 그의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피의 군주로군.”
마탑에서 수도 없이 봤던 사진 속의 인물이었다. 마탑에선 8성 이상 마법사들의 사진을 여기저기에 붙여놓은 터였으니까. 명예의 전당이라나 뭐라나.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앙헬.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 데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필이면 저놈이 담당했군.’
현 마탑주의 오른팔이라고도 불리우는 존재. 아직 9성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곧 대마법사의 영역을 바라본다는 존재였으니.
“골치 아프게 됐네.”
화속성의 공격 마법에 있어선, 9성 마법사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그였다.
“……이를 어쩐다?”
“전언자께서 생각하시기에도 피의 군주는 부담스러우시겠지요? 어떡하시겠습니까, 다음을 기약하시겠습니까?”
앙헬의 물음과 함께, 쏘아진 수십 개의 눈동자. 내 대답만을 기다리는 수십의 인원들을 훑으며 눈썹을 씰룩였다.
“무슨 소리야, 다음이라니?”
“어찌하느냐고 걱정하시기에…….”
“아아, 그건 마탑주 걱정이었지. 오늘 오른팔이 날아갈 테니까.”
“예?”
피식 웃으며 일행들에게 손짓했다.
“가자. 우리 새 식구 데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