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hides his sword skills RAW novel - Chapter (140)
천재 마법사가 검술을 숨김-140화(140/150)
140화. 레볼루카(4)
우리가 향한 곳은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었으니.
‘오랜만이네.’
에고에 올 때면 항상 들르던 잎사귀족의 마을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 하나. 잎사귀족의 족장 그란텔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저 녀석도 팔이 많이 자랐군.]이제는 양팔의 밸런스가 꽤나 맞는 듯한 모습. 이종족 특유의 재생능력 덕에, 5년 사이 많이 회복한 그였다.
그런 그를 향해 클랄이 달려나가 무어라 속삭였다. 리우와 나머지 일행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짧은 보고 후, 만면에 미소를 띈 채 다가온 그란텔.
“에고에 잘 오셨습니다. 전 잎사귀족의 족장 그란텔입니다.”
리우와 일행들을 향해 인사한 그는 곧바로 안쪽을 향해 손짓했다.
“누추하지만 안쪽으로 드시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족장님.”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인 리우와 일행들. 그란텔이 안내한 곳은 나 역시 익히 아는 곳이었으니. 천 년 이상 이곳을 지켜왔다는 고목이 있는 곳이었다.
그 아래에 자리한 의자들에 착석하자, 그란텔의 시선이 재차 리우에게 향했다.
“그래, 은인의 지인들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이안의 삼촌인 리우입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제 동료들이자, 이안과 함께 마탑생활을 한 교수들이고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환히 웃던 그란텔의 미소가 잠시 거둬졌으니.
“평소였다면, 이안의 친구분들이시기에 무조건적으로 환대해드렸을 겁니다.”
이내 진중한 표정으로 리우와 스테노스, 그리고 알로이를 훑는 그였다.
“헌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더군요. 혹시 마탑으로부터 쫓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심지어 두 분은 마탑 소속이었다고 하셨잖습니까.”
그 짧은 사이, 클랄이 그란텔에게 내용을 전한 것이 분명했다.
[대신 떠봐주는군.]‘다른 동료들한테는 이런 적이 없었지.’
앙헬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을 에고에 데려왔을 때는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그였다.
이들을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다는 나의 말.
그것을 전해 들었을 그란텔이, 대신 이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이야기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로서도 에고의 숲에 받아들여 드릴 순 없습니다. 괜히 에고의 주민들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아,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선 저희에 대해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그리곤 잠시 나와 앙헬을 바라보며 뜸을 들이던 리우.
“……사실 저희는 한 가지 뜻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무슨 뜻을 지니셨습니까?”
잠시 눈을 감은 리우. 그 눈이 재차 뜨였을 땐, 깊게 가라앉은 눈빛이 그란텔을 향해 쏘아졌으니.
“세상을 바꾸려고 합니다.”
더없이 진중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그였다.
“사실 저흰 명문가 자제들을 필두로 의지를 모아왔습니다. 모두가 세상의 부조리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뜻으로 모인 것이지요.”
“왜 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미 기득권층인 분들께서 그런 생각을 지녔다니, 저로선 이해가 잘 되질 않군요.”
“당연한 의문이십니다. 가문에서 시키는 대로 살아가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고개를 살짝 저으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리우.
“다만 치기 어린 시절, 호기심이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 천 년 전 갑자기 언어가 바뀌었을까 하고요. 그리곤 다른 가문의 친구들을 모아 고대어 연구를 시작했지요.”
그의 이야기는 잠시 동안 이어졌다.
“물론 금기된 행동이지만, 무서울 것 없었던 때였죠. 그리고 그러길 십여 년, 저희는 결국 어느 정도 고대어를 해독해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기초적인 문법에 불과했지만요.”
각 가문의 유수한 인재들을 모았을 리우. 그런 그들이 10년이나 노력을 기울인 결과가 고작 기초적인 문법이었다.
“으음. 대단한 분들이군요.”
다만, 그란텔의 말대로 대단한 업적임은 분명했다.
‘문자 배열이 완전히 다르니.’
오망성의 가주들은 완전히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낸 터. 이미 고대어에 익숙한 나 역시, 현재의 언어를 배울 때 꽤나 애먹었던 터였다.
“그렇게 습득한 고대어로 처음 접한 책이 있습니다. 그때 멤버였던 그렌텔가의 친구가 가문 서고에서 훔쳐 온 책이었죠.”
오망성 중 하나인 가문. 마탑의 1년 선배였던 노아 그렌텔이 속한 가문이기도 했다.
“그 안에 적힌 내용에 저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슨 내용이었기에 그렇습니까?”
“천 년 전, 오망성의 가문들이 행했던 일들입니다. 기사들을 학살하고, 반하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지요. 그리고 마법사들의 세상을 만들었다고요.”
“으음…….”
“이종족들도 그때 이곳으로 도망치듯 들어온 것이라 보았습니다.”
에고에서만 살아온 그란텔과 두 번째 삶을 살고 이는 나는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네.’
현생을 살아가는 그로서는 상당히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터였다.
“그 평화로웠던 세상을 망치고,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짓들을 자행한 것이 우리의 핏줄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입술을 잠시 짓씹은 리우는 어느새 주먹까지 움켜쥔 채였다.
“그래서 그 그렌텔가의 친구와 제가 주축이 되어, 지금과 같은 조직을 결성했지요. 원래의 평화로웠던 세상을 되찾고 싶었죠. 저희에게 피해 입은 이들에게 원래의 삶을 되찾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군요.”
쉽사리 볼 수 없는 리우의 진중한 모습. 허나, 그란텔은 거기에서 질문을 그치지 않았다.
“멋진 생각입니다만, 그래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 거지요?”
“사실 아직 이렇다 할 일은 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엔 저희의 힘이 아직 너무 미약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지금부터는 더 이상 가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혹시 옵타티오라는 물건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 그것은 그란텔은 물론, 내게도 흥미로운 것이었으니.
‘그때 디폰이 레볼루카에게서 훔쳐 왔다고 했었지.’
이미 내 수중에도 하나 있는 물건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 물건이…… 세상에 다시 나타났습니까?”
다만, 그란텔의 표정이 굳어졌으니,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듯한 그였다.
“아직은 아닙니다만, 저희의 정보력에 의하면 오망성의 가문들이 옵타티오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조각만을 남겨두고 있다고 하죠.”
“허! 그런 일이!”
“원래 저희 레볼루카에도 한 조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가지지 못한 마지막 한 조각이지요.”
“하, 다행이군요.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으신 거겠지요.”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젓는 리우.
“하지만, 저희도 지금은 분실했습니다. 5년 전 어떤 이가 가지고 도망쳤는데, 아직 되찾지 못했지요.”
그란텔의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옵타티오의 조각을 모두 모은다면, 대륙을 뒤흔들 힘을 지닐 수 있을 터. 그 주체가 오망성이라는 것이 여간 찝찝한 것이 아니었을 테니까.
“……큰 일이 아닐 수 없군요.”
“더구나 마탑까지 오망성을 돕는 정황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리우의 말에 의하면 단 한 조각만을 남겨둔 오망성.
[그래도 다행이구만.]그러나 나와 앙헬의 표정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되려 안도의 한숨이 지어지는 터였다.
‘그러게. 그때 디폰 그놈을 만난 게 지금 생각해보면 천운이었어.’
이미 그 한 조각은 나의 일리미타에 숨겨져 있었으니까.
“아무튼 저희는 그들을 막아야만 합니다. 비록 지금은 오해를 사서 마탑에 쫓기고 있는 신세이지만, 어차피 곧 그들과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었습니다. 놈들이 또 세상을 망칠지 모르니까요.”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제 말을 쉽게 믿어주실 순 없겠지만, 이것이 저희가 여기까지 오게 된 정황입니다. 이곳에서 저희가 재정비할 때까지만,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깍듯이 고개를 숙여 보이는 리우. 그의 어깨에 그란텔의 손길이 닿았다.
“우선 알겠습니다. 일단 시간이 늦었으니, 쉬실 곳을 안내해드리지요. 이곳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을 테니, 내일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감사합니다.”
그 후 리우의 시선은 내게로 향했다.
“그렇게 된 일이란다, 이안아. 당장은 믿기 힘들겠지만,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뒷면이야.”
“그렇군요.”
“네게 강요하진 않으마, 너도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알겠어요. 일단 푹 쉬셔요. 삼촌.”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리우와 일행들. 잎사귀족의 안내를 받아 먼저 침소로 향한 그들이었다.
“역시 자네는 주변이 귀인으로 넘치는 구만.”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재차 입을 뗀 그란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의 삼촌과 일행들 말일세. 자네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든든한 아군이 될 수 있겠구만.”
“허나, 그란텔 님은 저 말을 그대로 믿으실 수 있으십니까?”
그러자 짙은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였다.
“하하. 처음 우리가 만난 때, 왜 내가 자네를 왜 믿었는지 아는가?”
“제가 에고의 은인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물론 그도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자네를 믿기엔 수상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 칸의 후예인데, 델레마의 핏줄이기도 하고. 말이 하나도 맞질 않았어.”
그의 말이 맞았다. 나 역시도 왜 이리 의심 없이 나를 대해주는지 의구심이든 적이 있었으니까.
“사실 내겐 능력이 하나 있다네. 잎사귀 족장에게만 전수되는 것이지.”
“수풀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 말씀입니까?”
“그뿐만 아니야. 난 상대가 거짓을 고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거든.”
“예?”
“수풀들의 감정도 읽어내는 판에, 인간의 감정 따위를 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는가.”
놀라운 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로군. 그토록 섬세한 이인데, 네 호흡이나 감정은 그란텔 앞에서 너무나도 잘 드러났겠지.]고목과도 대화하는 능력. 그 경지라면, 그의 감각에 걸리지 않을 자는 없을 테니까.
“자네의 말은 이상했지만, 거짓은 없더군. 그리고 숲속의 고목들도 자네에게서 칸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고 말이야.”
“……처음부터 저를 모조리 꿰뚫어 보신 게군요.”
“그렇기에, 카를레스에게도 자네를 믿고 도와주라 일렀지.”
그런 그의 고개가 재차 멀어져가는 리우에게 향했으니.
“자네의 삼촌도 결코 거짓이 없다네. 저 이를 신뢰해도 되겠어. 마침 자네와 생각도 비슷하지 않은가?”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었다.
“맞습니다. 저 생각만 확실하다면,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요.”
결국, 리우가 바라는 뜻은 현재의 원심회와 같았다.
다만 그 뿌리가 상류층에서 시작했느냐, 아니면 아래에서 시작했느냐가 다를 뿐.
“자네 삼촌의 말에 따르면, 저들과 힘을 합치지 않으면 힘들 것 같더구만.”
“예. 아무래도 저희와 규합해야 할 듯싶습니다. 같은 뜻이라면 힘을 합치는 것이 백 번 낫겠지요.”
마탑과 오망성 사이에도 구심점이 있다는 리우의 말. 내 세력만으로 상대하기엔 너무나도 벅찬 상대들이었다.
‘나 자신의 힘도 훨씬 강해져야 하겠지.’
더구나 당장 놈들을 상대하기엔 내 능력 역시 아직 한참 모자랐고.
“그란텔 님 부탁이 있습니다.”
“무언가? 말만 하게.”
급하게 본색을 드러내려는 그들을 상대하려면 조금 빨리 강해질 필요가 있었으니.
“저를 다시 홀로 데려가 주십시오.”
“물론이지. 내일 낮에 가세나.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아뇨. 지금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달이 야심한 시각. 그곳에서 실험해볼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