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hides his sword skills RAW novel - Chapter (54)
천재 마법사가 검술을 숨김-54화(54/150)
54화. 잊혀진 시간
“폐쇄…… 말씀입니까?”
떨리는 아드문의 음성. 어느덧 떠오른 달빛이 돌아선 소년의 얼굴을 비췄다. 잔잔히 흔들리는 눈망울이 내게로 향했다.
“응. 당분간은 쓸모가 없어. 아무리 네가 다 꿰고 있다지만, 마탑 연구원들 사이로 들락거리는 것도 걱정스럽고.”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아드문. 아쉬울 터였다.
‘돌프가에서 천 년간 지켜온 곳이니.’
아도니스 칸의 은신처라는 의미를 제하더라도, 돌프가의 후손들이 대대로 지내온 장소였으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녀석.
“제가 지켜온 건, 단순히 그 장소가 아니니까요. 칸께서 남기신 뿌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저희의 진정한 소명이었죠. 전 아인님을 만났으니, 그곳은 더 이상 큰 의미 없습니다.”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다. 우선은 물건들만 꺼내 오는 거고, 아예 없애는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어차피 귀광족의 도움이 없다면, 결계를 해체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에. 그저, 잠시 비워두는 것에 불과했다.
“지금 가시면 딱 타이밍이 맞습니다. 마법사들 저녁 식사시간이라 1시간 정도 자리를 비울 거예요.”
“그래. 가보자.”
역시나 이곳 지리에 빠삭한 아드문. 녀석은 유적 발굴지 내부를 제집 드나들 듯 이동했다.
[아무도 없는 것 같네.]예의 천막 속으로 들어서자, 주황빛의 결계가 우리를 반겼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비장한 표정의 아드문. 녀석이 20개의 문답을 이어갔다.
[캭!]오로지 아도니스라는 기사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찬 질문. 오베론이 배를 부여잡았다.
‘……이것 때문이라도 폐쇄해야지.’
고개를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순식간에 문답을 마친 아드문 덕에, 결계가 입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 아공간이라는 곳에 물건들을 옮기실 참인가요?”
“그러려고. 거긴 공간에 제한이 없거든.”
“그렇군요.”
지하 광장에 도착한 내가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일단 이 잡동사니들부터 챙기자.”
전리품이 가득 놓여 있는 선반이었다.
‘이걸로 빚도 좀 갚아야지.’
내겐 큰 쓸모가 없지만, 세상에 드러난다면 장사꾼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물건들. 하나하나가 분명 시장을 들썩이게 할 장비들이었다.
우웅!
일리미타의 포탈을 열어, 물건들을 집어 들었다. 물건들의 사이즈에 맞게 커지는 포탈. 그 모습이 마치 입을 벌려 물건을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명물이구만.]전리품들을 모두 집어넣은 후, 다음 시선이 향한 곳.
“저기에 있는 것들도 챙겨가자.”
내부에 있는 또 다른 결계. 보관해둔 수많은 무공서들과, 전생의 내가 사용했던 무구들도 빠짐없이 챙겨야 했다.
* * *
“조금 섭섭하긴 했는데, 정리하고 나오니 오히려 시원한 마음입니다.”
마법사들이 식사를 마치고 복귀하기 전, 서둘러 빠져나온 우리였다.
“그래. 나중에 또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우선은 이렇게 남겨두자고.”
마탑의 연구원들이 결계를 풀지 못한다면, 언젠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
물론, 만에 하나 결계를 푼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걱정이 없었고. 안에 있는 물건을 다 빼뒀기에, 그냥 고생만 하고 허탕치는 꼴인 것이다.
[만약에 결계를 풀고 들어가면, 표정들이 봐줄 만하겠지?]대신 마법사들이 결계를 풀어낼 때를 대비해, 작은 선물은 남겨둔 채였다.
‘열 좀 받겠지.’
광장 바닥에 ‘똥멍청이’라고 커다랗게 써두고 나온 우리였다.
“놈들이 올 때가 다되어가니 얼른 나가자.”
들어올 때와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아드문.
“나갈 때는 이쪽이 안전합니다.”
녀석의 말에 따라 발길을 옮기길 잠시였다.
“잠깐.”
조용히 속삭이며, 허리춤에 맨 단검에 손을 올렸다.
“저 천막, 아까는 걷혀있지 않았나?”
우리가 향하는 곳에 근처에 있는 천막 하나. 분명 위쪽으로 걷혀있었건만, 지금은 아래로 처져 있었다.
“예. 뭔가 이상합니다.”
아드문 역시 낌새를 느끼고 주먹을 쥐었다.
투둑!
그 순간 천막 안쪽에서 들려온 소리.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분명 누군가 있다’
누군가 우릴 지켜보고 있는 거라면, 조용히 지나칠 순 없을 터. 단검을 꺼내 들며, 천막 쪽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마탑의 연구원인가?]골치 아팠다. 최소 5성급 이상의 마법사일 터. 더구나 그를 해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뒷수습이 문제였으니.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순 없어.’
우리가 결계에서 나오는 모습을 본 이상,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단, 처리하고 본다.’
화륵!
왼손에는 파이어볼까지 소환해낸 채, 타이밍을 재길 잠시.
‘……!’
그 일촉즉발의 적막을 깬 건 상대방 쪽이었다.
펄럭-
천막을 걷으며 앞쪽으로 엎어지는 한 사람. 파이어볼을 쏘아내려고 왼손을 뻗어내려던 그때.
“고, 공자!”
고개를 바짝 숙인 상대가 소리쳤다.
“접니다! 공격하지 마세요!”
머리를 조아린 채 떨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
“아이테오……?”
안티에서 보았던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언제 나가야 할지 타이밍을 본다는 게 그만…….”
조금 황당했으나, 마음은 금세 진정되었다.
‘……마법사가 아닌 게 어디야.’
복잡해질 상황이 아님에 감사할 따름이었으니까.
“유적지엔 왜 있는 거지? 날 따라온 건가?”
“아, 예. 앙헬님이 마탑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공자께서 나오시면 저희 거처를 알려드리라고 했습니다.”
“원심회의 위치를?”
“예. 마탑 주변에서 말 걸면 공자께서 곤란해지실까 봐, 좀 멀어지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탑에서부터 여태 따라온 그였다.
‘진짜 숨어다니는 능력은 좋나 보네.’
기척 없이 여기까지 숨어든 능력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후우. 다음부턴 놀래키지 말고, 미리 말하라고.”
“죄송합니다.”
“그래서, 거처는 어디로 잡았지? 아니다. 지금 같이 가보자. 나도 앙헬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니.”
“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제야 바닥에서 일어난 아이테오. 그의 표정이 한결 풀린 채였다.
“그리고 다음부턴 무릎 같은 건 꿇지 말라고. 난 그런 거 질색이니까.”
“아, 옙!”
신이 난 그가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가려면 이쪽으로 가야 해요. 그쪽 길은 지금 못 가요.”
물론, 아드문의 말에 걸음이 버벅이긴 했지만.
* * *
[시장에 자리 잡았나 보군.]아이테오가 안내한 곳은 이아스의 시장 한켠이었다.
“여깁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익숙한 곳.
‘오?’
첫날부터 들렀던 식당의 바로 옆 건물이었다.
“들어가 보자.”
간판도 없는 2층짜리 건물. 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서 오십시오.”
작은 카운터에 앉은 여직원이 미소로 우리를 반긴다.
‘겉모습은 잡화점이군.’
그 너머로 보이는 잡동사니들. 이것저것 물건들을 모아두고, 잡화점으로 위장하고 있는 원심회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리번거리는 날 반기는 종업원. 내 존재를 알고 있는 듯, 재차 고개를 숙였다.
[이 여자도 원심회겠지?]‘그렇겠지.’
그녀가 카운터 뒤쪽으로 향했다.
“이리로 드시면 됩니다.”
바닥의 카펫을 걷어내자 나타난 나무문. 끼익- 종업원이 문을 들어 올리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뻗어 있었다. 지하에 별도의 공간이 마련된 듯했다.
“고맙군.”
목례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걸음을 내디뎠다.
[꽤 깊네.]한참이나 이어진 계단. 간간이 있는 횃불에 의지한 채 잠시 걷자.
‘오호.’
거대한 공동이 우릴 반겼다.
“오셨습니까?”
그 안에서 미소짓고 있는 앙헬.
“비밀스러운 곳이군.”
“저희 같은 이들이 자리 잡기엔 더할 나위 없지요.”
내 결계 안의 공간과 견줄 정도로, 꽤나 널찍한 공동. 한 조직이 자리잡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언제 이런 곳을 물색했지?”
“이곳은 원래 저희 지부 중 하나였습니다. 마침, 공간도 넓은 편이라, 옮겨오는 데는 문제가 없었죠.”
“대단한 조직력이군. 다른 도시에도 이런 지부가 많은가?”
“예. 중소규모의 도시까지는 아니지만, 굵직한 도시에는 대부분 존재하고 있습니다.”
역시나 엄청난 규모였다.
“조직원은 몇이나 되지?”
“5성 이상의 마법사가 삼백. 무예를 갈고 닦은 자가 백 정도 됩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대단한 집단이었으니.
‘대륙 전체에 퍼져 있단 건가.’
이들이 이때까지 어떻게 이 세력을 숨겨왔는지가 의문일 정도.
“대단하구나.”
“과찬이십니다. 그저 천 년 전에 앙겔로스 님께서 남기셨던 말씀을 실행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는 앙헬. 허나, 내 고개는 갸웃할 수밖에 없었으니.
‘천 년 전에 남긴 말…… 이라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으니까.
“천 년 전의 말씀이라면?”
최대한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며 묻자.
“전언자께서 저희를 찾으신 이유가, 곧 대의를 실행시키기 위해서 아니었습니까?”
앙헬이 되려 되물어왔다.
‘대의라…….’
허나, 도통 감이 오는 것이 없었다.
‘말실수하면 안 되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앙겔로스의 전언자가 아님을 들통날 수도 있는 노릇.
[일단 그렇다고 해.]‘그게 낫겠지?’
지금은 장단을 맞춰주며 아는 척하는 수밖에.
“그렇지. 앙겔로스께서 대의도 실행할 것이라고 하시는군.”
마치 옆에 앙겔로스라도 있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그러자 조금 굳어지는 앙헬의 표정.
‘말실수했나?’
심장이 철렁했다. 설마 날 떠보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철두철미한 그의 성향상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서둘러 말을 돌리려는 찰나, 먼저 고개를 숙이는 앙헬.
“죄송합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주셨으나. 아직 저희의 준비가 완벽하지 못합니다. 대의를 일으키기 위해선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진 알 수 없었으나,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래? 어쩔 수 없군.”
“그래도 지금의 궤도라면 몇 년 내로 실행 가능할 겁니다. 아마 마탑을 졸업하실 즈음엔 저희의 규모가 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다행이었다. 당장 무언가 사고를 칠 일은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십 년 감수했네.’
괜히 세상을 상대로 전쟁이라도 벌인다고 하면 어쩌나 했던 터였다. 이제, 자연스레 그 대의가 무엇인지 알아내면 될 테지.
[시간 좀 벌었구만.]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것들은 뭐지?’
앙헬의 뒤쪽에 놓인 책장. 그 안에는 몇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내 시선이 향해 있자, 앙헬의 설명이 이어졌다.
“천 년 전 앙겔로스께서 전하신 서책들과 역대 교주들의 기록들입니다. 원심회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지요.”
“내가 좀 봐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편하게 보십시오.”
자연스레 걸음이 책장 쪽으로 향했다. 앙겔로스가 실행하고자 했다는 대의의 내용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고.
[이놈들이 어떻게 버텨온 건지도 알 수 있겠네.]원심회가 지난 천 년간, 역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도 파헤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실례 좀 하지.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편히 이야기들하고 있으라고.”
책장 가장 왼쪽에 꽂힌 책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