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hides his sword skills RAW novel - Chapter (55)
천재 마법사가 검술을 숨김-55화(55/150)
55화. 잊혀진 시간(2)
[이 세상이 너무나 흉흉하여, 본 좌가 직접 구제하러 나타났나니. 불평등을 겪는 모든 자는 들으라. 내 손으로 하나 된 세상을 구현하리라.]가장 먼저 집어 든 책.
‘헛소리하고 있네.’
앙겔로스가 직접 작성한 원심회의 교리였다. 관심도 없는 내용인 데다, 두께만 해도 내 주먹만 했기에.
‘이딴 건 필요 없고.’
도로 내려놓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앙헬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니, 앙겔로스 님께서 흡족해하셔서 말이야.”
대충 둘러대자, 고개를 조아리는 앙헬.
“감사합니다. 본거지를 옮길 때마다 가장 소중히 다뤘던 서책입니다.”
“어쩐지 보존 상태가 아주 좋다고 하시는군.”
몸 둘 바를 모르는 앙헬이었다.
“그 옆에 있는 것들은 역대 교주들이 남겨둔 기록입니다. 각각의 세대에서 행해온 일들은 물론, 굵직한 사건들도 써둔 것이지요.”
“그래. 교리는 이미 앙겔로스 님께 많이 들었으니, 역대 교주들이 어떻게 지내왔는지부터 봐야겠다.”
자연스레 옆의 책으로 손길이 향했다.
‘이거면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천 년 전, 내가 죽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원심회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분명, 그 잊혀진 시간도 이 기록들 속에 남겨져 있으리라.
“예. 그럼 저흰 뒤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남겨진 책은 수십 권이었다. 대충 훑어만 보더라도 꽤나 시간이 걸릴 터.
“먼저 올라들 가 있어. 굳이 날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난 오늘 여기 있는 걸 전부 보고 돌아갈 생각이다.”
어쩌면 이곳에서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몰랐다.
“그, 그럴까요?”
서둘러 눈치를 살피는 아이테오였으나.
“전 괜찮습니다. 전언자께서 궁금하신 게 생기실 수도 있으니, 옆을 지켜야지요.”
“저도요. 공자 혼자 남겨두고 떠날 순 없습니다. 제가 식사하실 거라도 사 오겠습니다.”
반면, 경쟁적으로 날 보필하고자 하는 앙헬과 아드문이었다. 그 모습에 아이테오가 두 눈을 크게 끔뻑이고 있었으니.
“아, 아! 저도 여기 있겠습니다! 보필하겠습니다!”
그제야 황급히 소리치는 그였다.
“뭐, 좋을 대로들 하라고. 셋이서 은신 기술에 대한 토론이라도 하던지.”
앙헬과 아드문은 진심으로 내 곁에 남아있고 싶어 할 테니.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다.
‘아드문이 두 사람이랑 친해지면 나쁠 건 없겠지.’
은신술에 대해 좀 더 배운다면 틀림없이 도움 될 터였다.
아드문에게 있어선 또 다른 발전을 얻을 기회였다.
‘그럼 나도 집중해보자고.’
곧이어 집어 든 다음 책. 곧장 첫 페이지를 넘겼다.
[카르가스 제국력 820년 ~ 833년. 원심회 54대 교주, 아일루스 지음.]앙헬이 55대 교주라고 했던바. 바로 직전 세대의 교주가 작성한 것이었다.
‘역순으로 진열된 건가.’
순서는 큰 상관 없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으로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을 테니.
[천 년의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원심회의 규모를 키우고 있다.마법을 단련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무예를 갈고 닦은 자를 양성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교리에 적힌 내용이기에 기사들을 키우고는 있지만, 의문은 피할 수 없는 바다. 마법사에 비해 기사들이 터무니없이 약한 것이 사실이니까. 다 뜻이 있으시겠지…….]
앙헬의 말대로 교주가 행한 일을 기록한 책이었다. 눈은 쉴새 없이 움직였다. 이들의 기록은 단순히 원심회 내부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일로 산맥은 언제 가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마물들로 득실거리는 곳에 발을 붙이기란 쉽지 않으나, 앙겔로스 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라면…….]이따금 자일로 산맥을 드나들었다는 기록. 그것이 내 눈길을 붙잡았다.
‘굳이 거긴 왜 가는 거지?’
마물 외엔 누구도 발길을 들이지 않는 곳. 짙은 마기로 일반적인 생명체는 살아갈 수도 없는 척박한 장소였다.
[폐관 수련하러 갔나?]그 옛날, 9성의 기사나 마법사들이 이따금 수련을 명목으로 찾긴 했으나.
‘아냐. 앙겔로스의 뜻을 전하기 위해 갔다는데?’
54대 교주가 자일로 산맥을 찾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것 말곤 별 내용 없네.’
비교적 최근 시대의 기록이었기에, 대부분은 나도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툭. 책을 내려놓고 다음 권을 집어 들었다.
* * *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아드문과 아이테오가 사다 준 식사로 허기를 채우며 지속된 독서.
나머지 세 사람 역시도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아이테오는 졸려 죽으려는 듯 보였지만.
“즉, 아드문 자네는 체술로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여 기척을 줄이는 것이군.”
“맞아요. 소리만 감추는 정도죠.”
“엄청난 재능이구만. 몸을 그렇게 잘 다룰 수 있다니.”
아드문이 몸을 컨트롤하는 수준은 앙헬마저 놀랄 정도였고.
“전 왜 제가 은신술에 재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이테오는 은신술에 재능이 있다는 앙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넨 그 이유를 모르는가?”
“예. 그냥 가만있어도 사람들이 눈치를 잘 못 채긴 합니다. 그래서 도둑질도 쉽게 할 수 있었고요.”
“아이러니하군.”
앙헬이 팔짱을 낀 채 그의 몸을 훑었다.
“자넨 저주받은 몸이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혹시 마법을 수련하려 한 적이 있나?”
“어릴 적 용병단에 들어갔을 적엔, 배워보려고 용쓴 적이 있죠.”
“당연히 배우진 못했겠지?”
아이테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예…….”
“그건 자네가 저주받은 몸이기 때문이야.”
아이테오의 손목을 점지하는 앙헬.
“역시 온몸의 혈도가 꽉 막혀있어. 애초에 마나 같은 기가 흘러 들어갈 틈조차 없는 몸인 거지.”
“예에?”
“태어나자마자 죽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심각하단 소리야. 마법 같은 건 꿈에도 생각할 수 없지.”
아이테오는 충격받은 채 표정이 굳어졌다.
[앙헬이 정확히 알고 있구만.]아이테오의 기운이 잘 느껴지지 않던 이유. 오베론과 나 역시 이미 눈치채고 있던 바였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진 말게. 그 덕에 자네는 은신술에 특화될 수 있으니까. 몸속에 쌓인 기운이 없으니, 숨겨야 할 기운도 없다는 소리야.”
“아!”
그제야 앙헬의 의도를 이해한 아이테오였다.
자신의 기운을 얼마나 갈무리하냐가 은신술의 경지를 나누는 척도. 애초에 지워야 할 것이 없기에, 아이테오는 그에 있어서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것이다.
“그래서 자네의 기척을 주변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했던 거야. 인간이란 무의식중에도 타인의 기운을 느끼는 법이거든.”
“그렇군요.”
“이제 그 저주받은 몸도, 원심회에선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의 설움을 달랠 수 있도록 해주마.”
“……감사합니다.”
“우린 아이테오 자네처럼 차별받고 자란 이들을 위해 존재해. 모두가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건만, 자네처럼 때로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꺾여버리지.”
앙헬의 심각한 표정에 아이테오는 어느새 빠져들고 있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하니,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맞습니다.”
어느새 결연해진 아이테오의 표정. 그새 세뇌되어가고 있는 듯한 그였다.
‘괜히 교주가 아니구만.’
[구워삶는 재주가 제법이야.]아이테오의 아픈 속 사정을 건드리고, 그 책임을 세상으로 돌려버린 앙헬. 너무나도 자연스레 아이테오의 충성심을 끌어내는 그였다.
‘뭐, 그건 알아서들 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은신술에 대한 얘기는 저들끼리 나눠도 충분할 터. 나는 얼른 지난 과거에 대한 탐독을 이어가야 했으니까.
‘이것도 거의 다 봤네.’
어느덧 내 손에는 11대 교주의 기록이 쥐어져 있었다.
[그놈의 자일로 산맥은 왜 교주들마다 가는 거야.]‘그러게. 앙겔로스가 거기다 뭘 해둔 거지?’
54대 교주부터 방금 읽은 11대 교주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자일로 산맥을 찾았다.
‘뭐, 다음 걸 보면 알 수 있겠지.’
11대 교주가 남긴 기록. 그것은 카르가스 제국력 3년에서 22년까지의 기록이었다.
10대 교주부터는 멸망한 제국, 브라셀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죽은 후 카르가스 제국이 새워지기까지 200년의 공백. 제국이 바뀌고, 언어가 바뀌는 그사이의 역사는 그 어디에도 남겨져 있지 않았던 바였다.
심지어 오베론까지도 몰랐으니. 그렇게 다음 책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때.
‘엥?’
[뭐야.]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왜 이것밖에 없지?’
책장에는 더 이상 남은 책이 없었으니까.
‘아직 열 권은 더 있어야 하는데?’
1대 교주 앙겔로스부터, 10대 교주까지의 기록이 있어야 하는 터. 비어있는 책장에 시선은 갈 곳을 잃어버렸다.
결국, 고개는 다시 앙헬을 향해 돌아갔으니.
“여기 책은 이게 전부인가?”
두 사람을 향해 일장 연설을 늘여놓던 앙헬.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 있는 것들은 그게 전부입니다. 10대 교주까지의 기록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있거든요.”
“뭐? 그걸 왜 지금…….”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 그 기간의 기록이었건만.
‘답답하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죄송합니다. 어차피 그것들은 고대어로 쓰여있는 터라, 저희 신전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신전이라고?”
“예. 자일로 산맥 깊은 곳에, 앙겔로스 님께서 신전을 만들어두셨거든요.”
그제야 조금 풀린 의문. 그 때문에 교주들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자일로 산맥을 찾았던 것이다.
“그럼 자네도 신전에 찾아가는가?”
“물론입니다. 1년에 한 번씩 찾고 있습니다. 올해는 6개월 후쯤에 갈 예정이고요.”
즉, 나머지 기록을 보려면 반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아쉽구만. 나도 궁금했었는데.]어쩌겠는가. 그래도 잊혀진 시간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다는 것에 위안 삼을 수밖에.
“그럼, 그때 나도 같이 가자고. 신전에 들러서 마저 기록을 봐야겠어.”
허나, 앙헬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 말이라면 항상 고개를 숙이던 그였지만, 처음으로 부정을 표하고 있었다.
“그건 너무 위험하실 것 같습니다. 산맥 초입구까지는 제가 보필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론 제 몸을 간수하는 것도 벅찰 정도니까요.”
“신전이 그 정도로 깊은 곳에 있나?”
“……예. 아실지 모르겠지만, 자일로 산맥은 15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물론, 알고 있는 바였다.
“그중 헵타라는 구역에 있습니다.”
그제야 앙헬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앙겔로스 놈. 깊게도 만들어놨네.’
15개의 구역. 그중 7번째에 있는 구역이 바로 ‘헵타’였다.
‘반년 뒤라……. 충분하려나.’
한 가지 방법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반년 안에 에고를 들렀다 오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 녀석들 도움이라면 헵타까진 들어가 볼 수 있을 테니.’
[그냥 쟤보고 나머지 기록들 가져오라고 해. 괜히 무리하지 말고.]‘일단 에고에 다녀와서 정하지 뭐. 자일로 산맥 마물들도 여전한지 궁금하기도 하잖아.’
자일로 산맥에 가득한 괴수들. 그리고 그들 틈에 끼어있을 백옥 사과와 같은 영약들.
‘앙헬 같은 고수가 옆에 있을 때, 따라 가봐야지.’
그런 것을 놓치고 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일단 내 몸 간수 할 방법은 내가 찾아볼게.”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야 마는 앙헬.
“으음. 알겠습니다.”
“아, 참. 앙헬. 부탁할 게 또 있어.”
마탑에 가기 전, 그에게 당부할 사항이 한 가지 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