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hides his sword skills RAW novel - Chapter (62)
천재 마법사가 검술을 숨김-62화(62/150)
62화. 변절자
“그게 무슨 말이죠? 칸이 되어달라니…….”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난 이미 칸이라고 소개했었으니.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인간들과의 골이 깊어. 인간들은 이종족들을 다른 무리로 취급하고. 심지어는 납치해서 인신매매까지 하지 않는가.”
충분히 공감하는 바였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이기도 했고.
“근데 문제는 비단 인간과 이종족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럼요?”
“아까 봐서 알겠지만, 에고의 주민들끼리도 불화가 커져가고 있어. 이종족들끼리도 서로 달갑게 보지 않는 실정이지.”
호족과의 갈등이 있었기에,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아무리 호전적인 호족이라 하나, 주민들 간에는 발톱을 겨누는 일이 없었으니까.
‘예전엔 다들 사이가 좋았었는데…….’
허나, 한 가지 궁금한 사실이 있었으니.
“근데 아까 주민들 간에 규약을 맺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같던데.”
“정확히 들었군. 수백 년 전에 족장끼리 맺은 규약이야. 절대로 에고 안에서 주민끼리 건드리지 말자고.”
“그 덕에 그나마 질서가 유지되는 거군요.”
“그래. 최소한의 규칙이지. 헌데, 요즘 몇몇 놈들이 규약을 어기려고 하는 듯해. 아까 본 호족같은 녀석들이 점점 더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지.”
“……그렇군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그토록 애정하던 이종족들이 이리 지낸다니.
‘어쩌다 이 지경까지.’
그의 처연한 눈빛이 다시금 내게 닿았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부탁하는 걸세. 그 옛날 자네의 선조가 해주었던 것처럼, 자네가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줄 수 있겠나?”
물론 나도 바라는 바이긴 했으나.
“아직 제겐 그럴 힘이 없습니다.”
고개는 저어졌다. 고작, 4성에 불과한 마법사. 호족은커녕 잎사귀족의 1등 전사와도 싸울 수 없는 실력이었으니까.
‘비웃음이나 사겠지.’
특히 호족같이 호승심이 강한 녀석들을 아우르려면, 그에 맞는 무위를 보여주어야 할 터.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지금 당장 무언갈 해달라는 건 아닐세. 다만…….”
그란텔이 등을 기대고 있던 나무를 쓰다듬었다. 성인 스무 명이 양팔을 벌리고 안아도 다 품지 못할 거대한 나무.
“이 나무가 말해주고 있네. 자네에게서, 천 년 전의 칸이 풍겼던 것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이야.”
“이 나무가요?”
“그래. 우리 잎사귀족들은 수목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거든. 너무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지만은 말아 주게나. 내가 자네를 스스럼없이 믿게 된 연유도 이 나무에게 있으니.”
잎사귀족의 능력 중 하나였다. 물론 그 능력은 크분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바였지만.
‘나한테서 전생의 내 느낌이 난다라…….’
조금은 아이러니했다. 정신은 내가 맞지만, 핏줄은 전혀 달랐으니까.
[영혼을 느끼는 거, 그런 건가?]‘하긴, 너도 날 영혼으로 알아본다고 했지.’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오베론도 날 단번에 알아봤던 터였으니.
‘그럼 이 나무는 천 년 전의 날 기억하는 건가?’
다만, 뒤쪽에 있는 이 고목이 천 년이나 되었단 것이 조금 흥미로웠다.
“제 선조를 본 적이 있는 나무입니까?”
“그렇다는군. 천 년 이상 된 고목이야.”
“그래서 천 년 전의 일도 자세히 알고 계신 거였군요.”
작은 미소를 띄는 그란텔이었다.
“그래. 잎사귀족에겐 없어선 안 될 나무지. 말 그대로 역사의 산증인이야. 그런 나무가 자네에게 희망을 걸어보라고 말하고 있다네.”
나무를 쓰다듬는 그란텔. 그 손길이 닿은 곳에 새로운 나뭇가지가 자라나고 있었다.
‘신기한 종족이란 말이지.’
수목을 아끼고, 평화를 바라는 종족. 언젠가 이들의 바람을 이뤄주고 싶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언젠가 제 능력이 된다면, 에고의 주민들을 위해 힘써보겠습니다.”
이종족끼리 뭉쳐도 모자랄 판에, 그들간에도 사이가 멀어졌다니. 그건 나 역시 원치 않는 바였으니까.
“고맙네.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구만.”
“아닙니다. 당장 이뤄드릴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죠.”
작게 웃어 보인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늦었으니, 다시 마을로 데려다주겠네. 갑세”
내게 나뭇잎 손을 건네는 그란텔.
“네. 감사합니다.”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 * *
잎사귀족 일원들에 의해, 다시 도착한 숲의 초입부. 다른 이종족과 마주치지 않도록, 우리를 숲 끝자락까지 배웅해준 터였다.
“이야기는 잘 끝났어?”
그제야 한시름 놓은 드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친절하셨어.”
“그럼, 우리 하루 만에 해결한 거네?”
“응. 일단 잎사귀족은 바로 찾았으니까. 내일 다시 가서, 그분들이랑 에고 더 깊은 곳으로 갈 거야.”
“……으응? 오늘로 끝난 게 아니야?”
드류의 눈이 확장됐다. 온몸으로 난감함을 표시하는 녀석.
“이제 잎사귀족도 찾았으니까, 도움받아서 돌아다녀야지. 아직 아무것도 못 얻었잖아. 너도 영약같은 거 챙겨야 하고.”
“아, 그건 그렇지…….”
드류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는 갔다. 녀석으로선 이종족들의 모습이 아직 낯설 테니까.
‘심지어, 눈앞에서 인간들이 죽는 것도 봤으니.’
거리낌 없이 침략자들을 죽이는 모습. 외관마저 다른 그들이었기에, 열다섯의 소년이 기가 죽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잎사귀족만 따라다니면, 다른 종족은 마주칠 일 없을 거야. 이 숲에 대해선 가장 잘 알고 있는 종족이니까.”
“정말? 하긴, 그분들이랑 다닐 땐, 다른 종족은 안 마주치긴 했지. 잎사귀족 분들은 네 말대로 친절하더라.”
“잘 대해주셨어?”
“응. 너가 족장님이랑 대화하러 간 사이에, 특이하게 생긴 열매도 챙겨 주셨어. 네 말대로 엄청 달고 맛있더라!”
역시나 맛있는 먹거리는 드류에게 즉효였다.
“흐으……. 또 먹고 싶다.”
에고에 대한 불안감은 금세 떨쳐버린 녀석. 그렇게 에고의 숲을 벗어나던 때였다.
‘뭐지?’
사락.
에고의 영역을 벗어나자마자, 양옆에서 느껴지는 기척. 양쪽에서 우리를 향해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
반사적으로 단검에 오러를 실어 휘두르자.
서걱!
손끝에 전달되는 감촉. 분명 단검에 의해 무언가 절단된 느낌이었다.
‘누가 감히!’
[마력 포승줄을 엮은 건가.]바닥에 떨어진 것은 촘촘한 그물이었다. 빠르게 대응한 내 쪽은 무사했지만, 반대편에서 쏘아진 그물망은 드류를 그대로 덮쳤으니.
“으악!”
바닥에 고꾸라지고만 녀석. 애석하게도 녀석을 신경 써줄 순 없었다.
‘웬 놈이냐.’
우리에게 그물을 던진 자들을 경계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이윽고 달빛에 비친 실루엣들. 대여섯의 인영이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곧바로 드류를 따라 바닥에 드러누웠다.
[엥? 뭐해? 왜 눕는 거야. 자세 잡고 싸워도 모자랄 판에.]‘일단 잡힌 척해야지.’
밤이 깊은 탓에, 내 행동을 못 봤을 확률이 높았다.
더구나 오러가 아니면 자르기도 힘든 마력 포승줄이었으니까.
[하긴, 저걸 잘라냈다고 생각하기도 힘들겠지.]그물망으로 날 잡았다고 생각할 놈들. 그들의 실력을 알 수 없기에, 허점을 노려야만 했다.
‘무슨 목적으로 우릴 노린 거지.’
오른손으론 단검을 쥐고. 속으로는 뇌운을 영창하며 기다리고 있던 때. 긴장된 분위기를 뚫고 나온 목소리.
“이놈들아, 잘못 던졌잖아!”
당혹감이 가득 베인 음성이었다.
“야야! 얼른 걷어줘!”
다급히 달려와 그물망을 걷어가는 사람들.
‘엥?’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 역시도 당황스러웠다. 서둘러 그물을 걷어간 이들.
“어이구. 얘들아 미안하다. 우리가 잘못 보고 실수했네.”
처음 소리쳤던 자가 벙찐 표정으로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아, 예. 뭐.”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어안이 벙벙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으니.
“어디 다치진 않았지?”
단검을 다시 갈무리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구나. 근데 이 시간에 너희 둘이 에고에서 나오는 거냐?”
“아, 안에서 길을 잃었어요. 운 좋게 이종족은 안 마주쳤거든요.”
대충 둘러대자, 머리털이 덥수룩한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흐음. 그렇구나. 이 근방에는 없나 보네. 늦었으니 얼른 에이탈로 돌아가거라.”
“아, 예.”
조금 떨떠름하긴 했지만, 실수를 인정한 사내. 먼저 고개를 숙여왔기에 할 말은 없었다. 굳이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가자, 드류.”
사내들에게서 벗어나, 에이탈로 향하는 길.
“어휴, 깜짝 놀랐네.”
그들이 시야에 안 보이자, 가슴을 쓸어내리는 드류였다.
“다친 덴 없지?”
“응. 근데 뭐 하는 사람들일까?”
“글쎄.”
한밤중에 겪은 황당한 일. 조금 놀란 것 말고는 피해를 본 것도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자.”
잠시 걸어 다시 도착한 에이탈. 늦은 밤인지라, 대부분의 건물엔 불이 꺼져 있었다. 인구가 적은 마을이기에 당연한 현상. 우리의 숙소만이 환한 불을 밝히고 있었다.
“어? 근데 저기도 불이 켜져 있네?”
숙소로 향하려는 찰나, 드류의 시선이 머문 곳.
길 건너편의 한 건물. 굳게 닫힌 문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까 그 잡화점인가?’
여관 주인과 락훈의 대화에서 들었던 곳. 이종족 매매를 한다는 도른의 잡화점이었다.
‘저기서 마력 폭탄도 샀다고 했지.’
다른 가게는 모두 문을 닫은 시간. 아직 불이 켜진 저곳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드류, 저기 잠깐만 들러보자.”
“그래. 잡화점 구경은 재밌으니까.”
곧바로 발길을 돌려 다다른 곳.
끼익-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 어?”
카운터에서 졸고 있던 직원이 침을 닦았다. 졸린 듯 멍하니 우릴 바라보는 젊은 사내.
“아직 영업하시는 거죠?”
“아, 아. 예에…….”
왠지 당황한 듯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뭘 파나 보자고.’
이들이 취급하는 물건들은 내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했으니까.
내부는 꽤나 넓었다. 진열된 물건 역시도 그에 맞춰 상당히 많았고. 에이탈 같은 소도시에 어울리는 규모는 아니었다.
[이 많은 물건들이 여기서 다 소비가 되나? 에이탈에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닌데.]‘어차피 떴다방도 운영하는 놈들이니까. 다른 데서도 팔겠지.’
그렇게 상점 내의 물건들을 훑었다.
그것도 잠시. 의문은 재차 들 수밖에 없었으니.
‘이것들은 눈속임용이군.’
진열된 물건들은 여느 잡화점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뿐. 하나같이 구하기 쉬운 물건들만 진열되어있었다.
[아무래도 ‘진짜’들은 따로 보관하는 것 같지?]‘그렇겠지.’
보통 암거래나, 금지된 물품을 다루는 가게들이 흔히 쓰던 수법이었다. 눈속임용 물건들을 깔아놓고, 진짜로 유통하려는 물건들은 신뢰가 입증된 고객에게만 판매하는 방식.
“이봐요.”
다시 다가간 카운터. 직원이 동태눈깔을 뜬 채 머리를 긁적였다.
“예에?”
“좀 더 재밌는 물건을 찾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흐음. 진열된 물건이 전부입니다만.”
당연히, 열다섯 소년이 고깝게 보일 수밖에 없으리라. 숨겨둔 물건을 보여주기 싫을 터였다.
‘델레마인 걸 드러내야 하나.’
대륙 제일이라는 가문의 힘을 빌린다면, 고객으로 받아줄 수도 있는 일. 그렇게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 눈을 붉게 물들이던 찰나였다.
끼이익-
재차 상점의 문이 열렸고.
“아, 사장님!”
직원이 벌떡 일어나 새로 들어온 자를 반겼다.
[호오. 재밌게 돌아가네.]고개를 돌린 곳엔.
“어? 그때 그 공자님이시네?”
도른 경매장에서 보았던 콧수염 난 사회자가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