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hides his sword skills RAW novel - Chapter (79)
천재 마법사가 검술을 숨김-79화(79/150)
79화. 에고의 원탁(2)
나를 응시하는 수십 쌍의 눈동자.
크고 작은 괴인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코끼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덩치의 이종족부터, 다람쥐처럼 조그마한 이종족까지. 에고에 사는 모든 종족이 부름에 응답한 터였다.
“인간?”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로군.”
“뭔데 인간이 에고의 숲에서 나오는 거지?”
족장이거나 족장의 대리인 자격으로 온 자들. 그들이 노골적으로 쏘아 보내는 눈빛은 어린 소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감들이 정정도 하셔라.’
물론, 산전수전 다 겪은 나였기에 꿀릴 것은 없었다, 더구나 게 중 몇몇 존재들은 내 정체를 알아보는 듯하기도 했고.
“저자가 얼마 전에 에고에 왔다던 그 어린 인간인가?”
“우리 아이들도 본 적 있다더군.”
“그때 테러범의 마력 폭탄을 저지했다지?”
락훈 일당이 테러를 벌이려던 날. 그 주위에 몰려들었던 이들의 족장들이었다. 그날의 상황을 전해 들은 이들은 비교적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왔으니.
‘내 편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구만.’
그나마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에 도움이 될 터였다.
[쟤도 왔군.]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는 족장들 사이. 나를 향해 작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존재.
‘족장 대신 참석한 건가?’
수왕족장을 대신해 참석한 카리스였다. 그녀의 옆으론 귀광족의 장로가 함께 자리했으니, 그들의 미소 덕에 긴장이 풀릴 수 있었다.
나를 훑은 족장들. 적개심과 호기심이 섞여 있던 그들의 시선은 이내 다른 곳으로 쏘아졌다.
“그란텔 족장님 어떤 이유로 인간을 이곳에 데려온 것입니까?”
“아니, 그보다 에고의 원탁을 소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여 년 만에 처음인 것 같군요.”
“변고라도 있는 겁니까? 그란텔 님 같은 분께서, 상의할 것이 있다니.”
그란텔을 향해 갖가지 질문을 쏘아내는 족장들.
그가 채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다들 모였군.”
나무 틈새에서 들려온 낮은 음성. 수풀을 해치고 나타난 것은 호족장과 그의 일족 둘이었다.
호족의 행차에 나머지 족장들이 주춤한 듯 보인 것은 착각일까.
코끼리만큼 거대한 덩치를 지닌, 회색빛 피부의 한 족장. 상인족의 족장만이 호족장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입을 열었다.
“으음. 오늘은 의외의 손님들이 많군.”
호승심이 강한 종족은 아니지만, 마음먹고 무력을 발휘한다면 호족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종족. 그가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본디, 에고의 원탁에는 족장이나 그들의 대리인만이 참석할 수 있었으니까.
그란텔이 데려온 나는 물론, 호족장이 데려온 호족의 일원들마저 불청객인 셈이었다.
“저 인간이 우리를 이곳에 모았다고 볼 수 있지. 호족 일원 두 명을 데려와달라고 요청한 것도 저놈이고.”
호족장의 말에 족장들의 눈가에 한층 깊은 의문이 서렸다. 역시나 나서서 말하는 상인족장.
“그게 무슨 말이오?”
“말한 대로야. 얼마 전 우리 호족의 1등 전사, 히레이가 봉체를 해제하는 일이 발생했지.”
“뭐요?”
봉체 해제라는 말에 기겁하는 족장들. 에고에서 금기시된 룰을 어긴 것이기에 그들의 눈초리가 좁혀졌다.
“헌데, 저 인간이 주장하더군. 자신이 그를 죽였다고 말이야. 물론, 잎사귀족과 수왕족의 도움을 받았지만.”
“허. 무슨 그런 일이!”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한 시비를 명명백백하게 밝히기 위해 자네들을 부른 거지.”
족장들의 입가로 흐르는 침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에고의 원탁을 요청할 법하지.”
상인족장의 고개가 나지막이 끄덕여졌다.
“자, 그럼 인간 꼬맹이. 증거는 준비됐겠지?”
호족의 눈길이 내게 향하자, 족장들의 시선도 따라 옮겨졌다.
“물론이죠. 이야기에 앞서,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이자, 눈매를 좁혀 보이는 족장들.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저 내 할 말을 이어갈 따름이었다.
“호족장께서 말씀하신 대로, 호족의 1등 전사가 봉체를 해제하는 일이 있었죠.”
족장들은 내 입가에 집중했다. 어서 이야기 이어가 보란 듯이.
“저희가 그를 급습했기에 그가 봉체를 해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발언에 족장들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호족장은 두 눈을 부릅뜬 채였다.
“이놈이! 이제야 바른대로 고하는구나! 네놈들이 급습한 바람에, 히레이가 그런 결정을 한 게야!”
호통과 함께 기세를 여실히 드러내는 호족장. 상인족장이 나서 그를 진정시켰다.
“그래도 일단 마저 들어보지.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으니.”
그리곤 내게 계속해보라는 듯 손짓하는 그였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먼저 공격한 것은 사실이나, 왜 저희가 그자를 습격했는지를 아셔야겠지요.”
잠시 뜸을 들인 후, 호족장을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로부터 에고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으로 이어갈 이야기는 히레이가 봉체를 해제한 것보다,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내용이었으니까.
“혹시 최근 에고에서 실종되는 주민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콧방귀는 끼는 호족장.
“뭣이?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는 저의가 무엇이지? 감히 인간 따위가 에고의 일에 관심 가지려 하지 말아라!”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원인족장을 가리켰다.
“족장님. 최근 원인족에서도 한 명이 실종되지 않았습니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원인족장. 얼마 전 호족들에 의해 납치된 적이 있는 바였다.
그에게 관심이 채 쏠리기도 전, 또 다른 족장들을 가리켰다.
“묘족과 긴꼬리족에서도 최근에 납치당한 적이 있으시지요?”
도른의 잡화점에서 보았던 종족들.
“……한 달쯤 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우리도 몇 주 전이었어.”
철창 안에 갇혀 있던 모습을 직접 보았기에, 틀릴 일이 없었다.
“그 외에도 분명 최근에 실종된 이들이 더 있을 겁니다. 저기 있는 수왕족의 카리스 양처럼요.”
수십 쌍의 눈길이 향한 곳. 멋쩍게 웃고 있는 카리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저도 납치당한 적이 있죠. 그래서 인간들의 노예로 팔려나갈 뻔한 것을 저기 있는 공자께서 도와주셨답니다.”
그녀의 말은 족장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음이라.
“가, 감히 수왕족장의 여식을?”
“미친 일이로군.”
“인간의 노예로 팔아넘기다니!”
“어떤 미친 자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술렁이는 족장들. 그들을 향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자가 바로 호족의 1등 전사였습니다.”
사실이라도 확인하려는 듯, 족장들의 시선이 카리스에게로 향했다.
“네. 맞아요.”
천천히 끄덕여지는 고개. 호족장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순간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귀광족의 장로까지 한 마디는 더했으니.
“히레이 그자가 우리 귀광족도 납치하려 했습니다.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그란텔 족장님과 저 소년이 도움을 준 것이죠.”
모든 족장들이 침음을 삼키기에 이르렀다.
“……어찌 그런 일이.”
“에고의 주민끼리는 건들지 않는 것이 규칙인 것을!”
분위기에 완전히 휩쓸려버린 이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지막 한 방을 먹여주기 위한 카드를 꺼냈다.
‘기세를 좀 타볼까.’
옆에 있던 그란텔에 다가서, 그의 몸을 덮고 있던 망토를 잡아챘다.
“히레이라는 자를 막기 위해, 그란텔 님께서 이런 피해를 입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여실히 드러난 그란텔의 부상. 양팔이 없어진 그의 모습에 족장들의 두 눈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어, 어찌!”
“그란텔 족장! 괜찮은 겐가!”
“에고에 무슨 이런 일이!”
그들의 흔들리는 감정. 그것은 곧 호족장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이 미천한 인간이 말을 막하는 구나! 네놈이 말한 것 중엔 증거가 하나도 없지 않느냐. 수왕족, 귀광족, 잎사귀족만 입을 맞춘다면, 충분히 지어낼 수 있는 거짓말이렷다!”
그런 그의 태도는 바라던 바였으니.
‘슬슬 시간 다 됐군.’
에고의 숲 바깥쪽. 멀찌감치서 한 인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증거요? 지금부터 보여드리죠. 히레이가 에고의 주민들을 납치했다는 사실과…….”
걸어오는 사람을 가리켰다.
“그가 인간들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단 사실을요.”
그곳을 향해, 일제히 집중된 시선.
[타이밍 좋게 왔구만.]어두운 밤, 달빛 아래에 비친 얼굴의 주인공은 도른이었다.
‘저놈이 정한 약속 시각이니까.’
히레이와 거래를 하기 위해 정한 날짜. 그것이 오늘이었기에, 이 자리에 등장한 놈이었다.
“저 인간이 뭐길래 증거라는 거지?”
호족장의 날 선 물음. 애써 미소지으며 답할 따름이었다.
“데려오신 호족 두 분을 보내서 맞이해 주시겠어요? 히레이가 보낸 자들이라고 하면 다 알게 되실 겁니다.”
비록, 도른과 거래했던 호족원들은 아니지만.
‘히레이가 보냈다고 하면, 의심하지 않겠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터였다.
허나, 돌아온 호족장의 대답은 당연히 호의적이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팔짱을 낀 채, 눈썹을 찌푸리는 그.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때였다.
“우선 저 어린 인간이 말하는 대로 해보는 게 좋겠군. 솔직히 호족보단 그란텔 족장에게 더 믿음이 가서 말이야.”
거대한 발을 내딛는 상인족장. 그로부터 시작된 족장들의 원성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맞소. 저 어린 소년을 쉽게 믿을 순 없지만, 그란텔 족장은 신의가 있는 사람 아니오?”
“그래. 히레이든, 그란텔 족장이든. 누군가는 잘못한 것이니, 밝혀내긴 해야지.”
“호족장께서도 협조하시오. 만약 저 소년 말대로 했는데, 증거가 안 나오면 그때 벌하면 될 것 아니오?”
내가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호족장만을 바라보는 상황.
[네놈 연설이 잘 먹히긴 했나보다?]결과적으로는 모두 나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었으니.
“……알겠다. 그리하지.”
결국, 호족장의 고개도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대신 이번에 증거라 할 만한 게 나오지 않는다면, 잎사귀족과 수왕족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 네놈의 목숨도 달아날 줄 알아라.”
엄포를 놓는 놈. 허나 나 역시 자신만만했다. 내가 말한 것이 사실인 데다, 도른까지 등장한 상황.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진실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너희 둘, 저자에게 가보아라.”
결국, 데려온 호족원들에게 명을 내리는 호족장.
촤아아…….
그와 동시에 우리 주변으로 넘실대며 다가오는 수풀들. 그란텔이 우리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중이었다.
우우우웅!
그에 더해 주변을 감싸는 반투명한 막.
‘방음 마법인가.’
족장들 중 누군가, 우리의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손을 쓴 것이었다.
[센스 있군.]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기다리길 잠시. 결국, 도른과 마주한 두 명의 호족.
모두의 귀추가 주목된 그때, 먼저 입을 연 것은 도른이었다.
“흐익! 사, 살려주십쇼!”
호족들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는 놈.
[뭐야, 쟤 갑자기 왜 저래?]‘뭐지?’
[어째 이상하게 흘러간다?]그 모습에 당황스럽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갑작스러운 놈의 행동에, 족장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고.
“저게 네놈이 말한 증거더냐?”
호족장의 입가가 묘하게 씰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