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hides his sword skills RAW novel - Chapter (90)
천재 마법사가 검술을 숨김-90화(90/150)
90화. 앙겔로스의 신전(4)
항상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유지하던 여인. 목에 칼이 들어와도 평온하던 그 얼굴엔.
“가, 가면이라니? 이게 내 본모습인데?”
처음으로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그럼 네 나이에 이 정도 성취를 얻은 걸 믿으라고?”
많이 쳐줘야 이십 대 초반에 불과한 외모. 그렇다고 하기엔, 그녀가 부렸던 마법은 너무나 특별한 것들이었다.
광역 디스펠과 흑령술들은 쉽게 성취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으니까. 금기 마법들은 공식적으로 배울 수 없기에, 더욱 오래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둘 중 하나겠지. 마탑주처럼 영악을 잔뜩 먹었거나…….]‘아니면 외모를 바꾸는 금기 마법을 배웠겠지.’
외모를 바꾸는 것 역시 금기시된 영역이나, 금단의 영역에 발들인 그녀가 하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래. 이미 이렇게 된 마당에 숨길 순 없겠지.”
결국 고개를 내젓는 여인. 그녀의 몸 주변으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나더니, 이내 그녀의 몸을 훑어갔다.
검은 기운이 손끝을 훑고 지나가자, 손의 피부가 쭈글쭈글해졌으며.
몸통을 관통하자, 꼿꼿했던 등은 점차 굽어갔다.
“어떠한가? 이게 내 본래 모습이라네.”
어쩐지 늙어버린 말투와 함께.
화아아…….
마지막으로 검은 연기가 스쳐 지나친 곳. 그녀의 원래 얼굴이 드러나고 있었다.
“허.”
그 모습에 헛숨을 삼킨 드류. 단순히 늙은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왼쪽 얼굴은 일반적인 노파의 모습이었으나.
‘으음. 이래서 외모를 감추려 한 건가.’
오른쪽 얼굴 전체가 불에 녹듯 흘러내려 있었으니까. 훤히 드러난 안면 근육들과 이따금 보이는 하얀 뼈들은 심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호호. 미안하군. 이리 생겨서. 그러게 왜 굳이 모습을 드러내라 한 겐가.”
멋쩍은 듯 웃어 보이는 노파. 왼쪽 얼굴만 씰룩이는 것이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잠시 놀라긴 했지만, 적응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화마에 당한 게로군.’
전장에서 오래 지나다 보면 더한 꼴도 많이 봐온 터였으니까.
“뭐, 나쁘지 않군. 어쭙잖은 가면을 쓴 것보단 이편이 진솔한 대화를 하기에 낫겠지.”
“호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로군.”
무덤덤한 내 모습에 조금은 호기심이 어린듯한 노파였다.
“그 어린 나이에 그런 담대함을 가졌을 린 없고…….”
내 얼굴을 훑으며 말을 이어가는 노파.
“자넨 젊음을 유지하는 영약을 먹은 게로군?”
결국, 나 역시 외모를 속인 것으로 생각한 그녀였다.
잔혹한 사체들, 언데드, 그리고 금기된 마법까지. 일반적인 소년이라면 침착하게 받아들이기엔 불가능한 상황들이었으니까.
“아니. 난 그냥 원래 이 모습인데?”
허나, 환생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말할 필요도 없는 노릇. 그저 열다섯의 조금은 특이한 소년일 뿐이었다.
“……뭐?”
역시나 못 믿겠다는 눈치의 노파. 그 주름진 입가가 재차 꿈틀댔다.
“그럼 이 검술은 무엇이지? 분명 마나의 기운은 아니고. 네놈도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댄 건가?”
자신의 목에 드리워진 오러를 가리킨 노파였다.
“금단의 영역이라……. 뭐 그럴지도.”
오망성에 의해 오러가 사라진 지금. 어찌 보면 나 역시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인 것일지도 몰랐다.
잠시 생각에 잠긴 노파.
“……설마?”
그 입이 다시금 열어질 찰나였다.
“닥치거라, 이 요망한 것! 감히 누구에게 말을 섞는 것인가!”
신전 내부에서 뛰쳐나온 앙헬의 음성이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역시, 진짜 외모를 숨기고 있었던 게로군!”
그 역시 짐작하고 있었던 듯, 노파로 변한 모습에도 크게 당황치 않은 모습이었다.
“또다시 허튼짓을 할지 모르니, 바로 죽이는 게 낫겠습니다.”
서둘러 마법을 영창하려는 앙헬. 듀라한과 함께 디스펠 마법진도 사라졌기에, 그의 손짓에 따라 샌드 스피어가 재차 나타났다.
“잠깐.”
허나 아직은 일렀다.
“확인할 것이 남아 있어.”
내 의도를 알아차린 앙헬이었으나, 그의 샌드 스피어는 여전히 노파를 겨냥한 채였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자입니다. 일반적인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요. 단순히 제압만 해두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괜찮을 거야. 허튼 수작을 부리면 내가 바로 목을 날려버리지.”
노파의 목에 닿을 듯 뻗어진 검. 다른 수작을 벌일 틈도 없이, 목이 달아나버릴 터였다.
“들어서 알겠지? 수작 부리다 걸리면 바로 죽는 거야.”
“……그럴 생각도 없었다우.”
그럼에도 못 미더웠던 탓일까. 앙헬의 손이 재차 노파를 향해 뻗어졌다.
우우웅!
그러자 노파의 양팔 위로 생겨나는 푸른 끈.
“혹시 모르니 이리 해두겠습니다.”
결박마법을 걸어버린 앙헬이었다.
“젊은 것들이 겁은 많아가지고……. 늙은이를 이리 대해서 되겠나?”
혀를 차는 노파였지만.
“이제 쓸데없는 소린 하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해.”
대화의 주도권은 내게 있었다.
* * *
자일로 산맥의 일곱 번째 구역, 헵타. 그 설산에 자리한 석조건물 내부엔 긴장된 적막이 흘렀다.
노파를 데리고 신전 내부로 들어온 우리. 물론, 그 주름진 목에는 프라가라흐가 겨눠진 채였다.
‘대체 무슨 실험을 한 거야.’
노파에게 질문을 잇기도 전, 신전 내부의 각종 집기들이 시선을 빼앗았다. 그리고 이따금 보이는 사체의 조각들은 그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려웠으니.
“우욱!”
드류는 들어오길 거부한 채, 신전 밖에서 대기할 따름이었다.
“일단 이것들이 다 뭔지 물어야겠군.”
“으음. 아름다운 작품들이지.”
“뭐?”
“이것들로 흑마법을 부릴 수 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노파는 정말로 곳곳에 놓인 고깃덩이들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흑마법을 연구하고 있던 것인가?”
“보다시피. 이만한 장소도 없거든.”
자일로 산맥의 깊은 곳.
‘딱 제격이긴 하지.’
거친 눈발이 365일 내내 휘날리는 이곳이라면, 금기된 마법을 연구하기엔 최적이었다.
신전 내부를 가득 메운 연구 자재들. 마탑에의 초대형 연구시설들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작년, 앙헬이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노파는 없었던바. 길어봐야 1년 정도 만에 이리도 많은 연구를 행한 것이다.
“대단하군. 전부 혼자서 한 것인가?”
“물론이지. 이 늙은이와 함께할 이는 없다네. 미치지 않고서야 흑마법을 연구할 놈은 없지.”
마치, 자신은 미쳤다는 듯 웃어 보이는 노파. 그 모습이 더욱 호기심을 이끌었으니.
‘능력 하나는 엄청나군.’
금기된 마법을 혼자 이 정도로 계승했다는 것은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노파의 주름에 낀 세월엔 온통 흑마법이 함께 했었으리라.
[이 할멈한테서 정보 좀 얻을 수 있을까?]‘그래야지.’
오망성을 상대하기 위해선, 흑마법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수록 좋을 터. 어쩌면 노파를 만난 것 역시도 기연일지 몰랐다.
“흑마법은 어디서 배운 것이지?”
“으음. 그건 좀 곤란한 질문인데. 자네라면 이 검에 깃든 힘의 출처를 쉽게 밝힐 수 있겠는가?”
잔잔히 고개를 젓는 노파. 예상치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금기된 마법의 출처를 쉽사리 알려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흐음. 그렇단 말이지?”
노파의 눈치를 살피며 손에 든 물건. 아직 부서지지 않고 남아 있던 세 개의 검은 돌이었다.
찰나의 순간 흔들린 노파의 눈동자. 이내 안정을 찾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 틈을 놓칠 리 없었다.
“어디 보자……. 아까 이 돌들 때문에 뛰쳐나왔었지?”
“뭐?”
“이것만큼은 부수지 말아 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꽤나 값진 흑마법 재료들인가 봐?”
“딱히 그런 건 아냐. 흔한 재료들이니 마음대로 하라고.”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는 노파.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 하나씩 없애보도록 하자고. 앙헬, 마법 좀 준비해주겠나?”
“그리하겠습니다.”
쿠우우…….
곧바로 타오르는 샌드 스피어를 소환해낸 앙헬이었다.
“뭘 먼저 없애볼까? 이거?”
가장 먼저 앙헬을 향해 건넨 돌.
파아아!
앙헬이 곧바로 돌을 파괴했건만, 아직 노파는 별 반응이 없었다.
“흥. 흔한 재료들이라고 했을 텐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래 봐야 소용없어.”
궁시렁대는 노파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다음 돌을 골라냈다.
“다음은…… 이걸로 할까?”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는 노파. 허나 이어진 내 행동에 그 늙은 눈동자는 재차 흔들렸다.
“아니다. 그냥 이거부터 없앨래. 설인 가죽보단 드래곤 하트가 훨씬 가치 있겠지.”
“뭐, 뭐?”
남은 두 개의 돌. 그 위에 써 있는 글자는 각각 ‘설인의 가죽’과 ‘드래곤의 심장’이었다.
다만,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에 노파가 놀란 것만은 아니었으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안 게지?”
돌 위의 표식을 읽어낸 것 때문이었다. 검은 돌 위에 새겨진 글귀는 고대어였으니까.
“그건 알 거 없고. 드래곤 하트를 없애면 너한테 훨씬 타격이 크겠지?”
드래곤의 심장이 새겨진 돌을 앙헬에게 건네려는 찰나.
“아, 안돼!”
결국 소리 치고 만 노파.
“내가 그걸 어떻게 구한 건데! 그것만은! 뭐든 말할 테니, 제발!”
결국, 승리의 미소가 지어진 건 이쪽이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애간장 태우냐?]‘그게 바로 대화의 기술 아니겠어?
진작부터 각 돌에 쓰여진 문구는 알고 있었던바. 그저, 노파의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해 하나씩 없애려 했던 것뿐이었다.
“이제야 이야기할 생각이 좀 드나보지?”
“하아. 이 망할 놈. 정녕 너 같은 아해가 있단 말인가! 오망성의 가주들만큼이나 간악한 놈이로구나.”
“뭐? 오망성?”
작은 한숨을 내쉬는 노파.
“그래. 내 흑마법의 원천이 어디인지 궁금하다고 했지?”
그 주름진 입이 다시 떨어질 땐, 노파의 눈가엔 알아차리기 힘든 감정이 서려 있었다.
“난 그 오망성 중 한 가문의 출신이다. 가문에서 흑마법을 알게 됐지.”
오망성 가문 중 하나라는 노파. 내게 겁주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확률도 있으나.
‘오망성이라…….’
그런 배경이 있다면, 흑마법을 접하게 된 것도 납득할 만 했다.
난 오망성의 배후에 흑마법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럼 흑마법은 가문에서 직접 전수 받은 건가?”
“하! 그럴 리가. 몰래 수련하다 걸려 이리된 것 아닌가.”
기다란 검지를 펴 자신의 우측 안면을 가리키는 노파. 녹아버린 얼굴이 억지로 미소짓는 듯 기괴하게 꿈틀대고 있었다.
“가문의 비밀 서고에 있던 금기된 서적들을 읽는 것이 그리 재밌더군. 결국, 발각되어 쫓겨나고 말았지. 이렇게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로 말이야.”
“……그랬군.”
“이제 의문이 풀렸나? 소년이여.”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망성의 가문 출신이라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럼 당신의 가문은 어디지?”
“그래. 그것도 궁금할 테지.”
그와 함께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노파. 다시금 그 손이 내려졌을 땐.
“내 이름은 아리에스.”
검은색이었던 눈동자는 붉게 물든 채였다.
“아리에스 델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