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hides his sword skills RAW novel - Chapter (92)
천재 마법사가 검술을 숨김-92화(92/150)
92화. 아리에스 델레마(2)
“무, 무슨……!”
자신의 목을 움켜쥔 아리에스. 선홍빛 핏방울이 손의 주름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걱정 마. 죽을 정돈 아니니까.”
앙헬 역시 어찌할 바 모른 채 서 있을 따름이었다.
“앙헬. 잠시 아리에스 좀 맡아줘.”
“알겠습니다.”
곧바로 샌드 스피어를 꺼내어 아리에스를 겨냥하는 앙헬. 적막이 흐르는 그들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뭔데, 갑자기?]‘듣다 보니 좋은 생각이 나서.’
발걸음이 멈춰진 곳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쪽 벽면이었다.
[엥? 여긴 왜?]검은 기운이 일렁이는 기하학적 무늬들의 연속. 아리에스가 연구 중이라던 계약 마법의 마법진이었다.
‘내가 한 번 발동시켜보려고.’
[네가 무슨 수로?]손에 쥔 프라가라흐를 들어 보였다.
검날에는 아리에스의 선홍빛 피가 짙게 묻어있었으니.
‘이렇게.’
프라가라흐를 그대로 마법진에 찔러넣었다.
푸욱!
오러를 머금은 검은 손쉽게 벽면을 통과했고.
[오?]쿠우우…….
마법진에 일렁이던 검은 빛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작동되는 거라고? 정말로?]잔잔히 진동하던 검은 기운들은 아리에스가 그려둔 마법진으로부터 떨어져나왔다. 마치 먹잇감을 찾듯 주변을 일렁이는가 싶더니.
화아아악!
이내 쏜살같이 어디론가 향하는 검은 연기들.
“허!”
아리에스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튀어나온 것도 동시였다. 검은 기운이 덮쳐간 것은 그녀였으니까.
잠시간 그녀의 몸 주변을 맴돌던 기운들은 이내 다시 마법진으로 돌아와 흩어지고 말았다.
“어, 어떻게……!”
그 모습에 말을 잇지 못하는 아리에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여유 있던 그녀의 동공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해오던 연구를 타인이 한순간에 완성해버렸으니. 당연히 감정이 요동치고 있을 터였다.
[어떻게 한 거야?]‘피의 서약만큼은 내가 꼭 배우고 싶었거든.’
이미 흑마법 서책에서 보았을 때부터 내 것으로 만들리라 점지해두었던 마법.
‘마법에 필요한 재료 정도는 외울 수 있잖아?’
마법진은 마법적 원리를 통달해야 그릴 수 있다지만. 마법진 완성 후 필요한 재료들은 이미 머릿속에 있는 터였다.
‘언젠가 재료들이 보이면, 미리 모아두려고 숙지하고 있었지.’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아리에스.
“마법진을 어떻게 발동시킨 거야!”
그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준비한 재료 중에 빠진 게 하나 있더군.”
“……뭐?”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이 만든 마법진은 단순한 계약 따위가 아니거든.”
어느덧 작동을 마친 후 사라져 버린 마법진. 그곳에 덩그러니 꽂혀있던 프라가라흐를 뽑아 들었다.
“당신이 하려던 건 피의 서약이야.”
그 칼날 끝에 여전히 맺혀 있는 아리에스의 핏방울들.
“즉, 피계약자의 머리카락이 아니라 피가 필요하다, 이 말씀이지.”
“허?”
한탄을 내뱉은 그녀. 막혀있던 연구가 해결되었다는 기쁨이었을까. 그 만면에 미소가 머물기도 잠시.
“그, 그럼? 지금 내가 피계약자가 되었다는 말인가?”
“그런 셈이지. 내게 종속된 피의 계약을 한 거야.”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난 계약 사항조차 읊은 게 없거늘!”
당황한 채 소리치는 아리에스. 그녀의 당혹 어린 눈동자를 향해 미소지어주었다.
“무슨 소리야? 아까 네 입으로 동의했잖아.”
“무엇을 말이냐!”
“앞으로는 진실만을 말하고 내게 협조한다며. 살려주는 조건으로.”
“그, 그건! 피의 서약을 위해 한 말이 아니지 않으냐!”
“글쎄. 그건 피의 서약이 판단해줄 문제겠지.”
이내 이글거리는 아리에스의 눈동자. 무어라 소리치려던 순간이었다.
“커헉!”
그녀의 목에서 튀어나온 건 음성이 아닌 각혈이었으니.
“아무래도 피의 서약은 내 편인 것 같네.”
내게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려 한 순간, 아리에스에게 저주가 내려진 것이었다. 즉, 서약이 제대로 이뤄졌단 방증이었다.
“그리고 서약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겠지?”
“이, 이……!”
결국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마는 아리에스.
“피계약자는 계약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 그게 피의 서약의 기본 수칙이야.”
피의 서약은 단순히 양쪽의 합의를 보는 계약이 아니었으니. 상호 간의 복종을 전제로 하는 계약이었다.
“앙헬. 이제 샌드 스피어는 거둬도 될 것 같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여전히 아리에스를 견제하고 있던 앙헬. 각혈을 하고 있는 아리에스의 모습에, 그제야 손을 거둬들였다.
“……하!”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 마는 아리에스. 그런 그녀에게 손을 건넸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지. 당신 능력이라면 꽤나 도움 될 거야.”
아리에스의 입술이 짓씹어졌다. 이 상황에 분명 굴욕감을 맛보고 있으리라.
헌데, 내 말에 감정이 요동친 이는 아리에스뿐만이 아니었으니.
“……예?”
앙헬 역시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마, 마녀와 함께하신다니요.”
“문제라도 있나?”
“저희를 먼저 공격했던 자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물론 아깐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은 계약이 되어있어. 내게 해가 될 짓을 하는 순간 먼저 목숨을 잃을 존재야. 앙헬도 아까 보지 않았나.”
“……하지만! 저희가 하는 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자입니다. 흑마법 따윌 부리는 자의 힘을 빌리실 생각이십니까?”
계속해서 열변을 토하는 앙헬.
[얘 어지간히 맘에 안 드나 본데? 네 말에 토를 단 건 처음이야.]‘사이비니 뭐니 해서 그렇겠지.’
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바였으나.
‘그래도 놓치긴 아까운 인재야.’
아리에스의 흑마법에 대한 이해도만큼은 높이 살 만했다.
오망성이 한 짓을 파헤치려면, 흑마법을 많이 알수록 도움이 될 터였으니까.
“앙헬, 잠시.”
결국, 노발대발하는 그의 귓가에 다가갔다.
“앙겔로스 님께서 저자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하시는군. 그래도 안 되겠는가?”
그 말에 표정이 점차 굳어가는 앙헬. 괜히 오베론이 있는 뒤쪽을 돌아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정 안된다면, 내 다시 말씀드려보지. 현 교주인 앙헬이 결사반대한다고 말이야.”
“그, 그것은!”
얼굴이 새빨개져 버린 채로 당황한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모시는 신이 그리하라는데, 어쩌겠는가.
“흥!”
다만 아리에스를 향해 한 번 꼬나 본 후, 밖으로 향하는 앙헬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절망에 빠진 아리에스. 눈이 쌓인 듯 빛바랜 머리칼이 바닥을 쓸고 있었다.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날 따라가면 당신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대꾸하던 아리에스.
“내가 마법진의 재료를 우연히 맞췄을 것 같은가?”
이어진 내 말에 천천히 고개가 들렸다.
“……뭐?”
“나도 분명 흑마법에는 견문이 있다고 했을 텐데.”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어린 나이에 흑마법까지 섭렵했다고? 심지어 나조차 모르는 것을!”
“그게 아니야. 당연히 흑마법에 대한 이해도는 당신이 더 높겠지. 다만, 나 역시 당신이 읽었던 흑마법서를 보았을 뿐이야.”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아리에스의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다.
“길게 말할 것 없이, 직접 보여주지.”
우우웅!
손목 위로 나타난 일리미타의 아공간. 적게 벌어진 틈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은 책 한 권이었다.
“……그게 뭐지?”
“직접 확인해 보든지.”
천천히 손을 뻗어 책을 건네받는 아리에스.
차락.
첫 장을 넘기자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차락.
또 다음 장을 넘기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차라락!
후로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들려왔으니.
“이, 이건!”
아리에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손에 쥐여준 책. 그것은 델레마 서고에서 필사를 마친, 흑마법서였으니까.
“……마, 말도 안 돼.”
“어때. 그 정도면 날 따르는 대가로 충분하지 않겠어?”
나와 책을 번갈아 바라보는 아리에스. 그 주름진 눈가를 따라 눈물이 타고 흘렀다.
[마녀도 마법사는 마법사란 게지.]평생을 탐구해온 흑마법. 그 시초를 다시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하염없이 벅차오를 터였다. 자신이 당한 수모도 잊을 만큼.
“난 아직 그 책에 담긴 마법들을 이해하기엔 어려워. 허나, 당신은 그게 있다면, 훨씬 빠르게 흑마법들을 습득할 수 있겠지.”
“……이걸 내게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이지?”
“별거 없어. 그냥 내게 협조 좀 잘해달라는 의미에서.”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그건 이미 피의 서약 때문에 내가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일 텐데……?”
그녀의 말은 날 피식 웃게 만들었다.
“고작이라니. 아무리 피의 서약을 했다지만, 서로 더 진정성 있게 지내면 좋지 않겠어? 앞으로 함께 다녀야 할 사이라면 말이야.”
어차피 내게 도움이 될 사람. 그런 이에게 나 역시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책을 꼬옥 끌어안은 채 두 눈을 감아버린 아리에스.
흐르는 눈물이 멈출 때 까지는 잠시의 시간이 걸렸으나, 그쯤은 기다려줄 수 있었다. 마음으로 받아들일 시간이 그녀에게도 필요할 테니까.
[근데 저거 줘도 되는 거야?]‘어차피 나한테 해가 될 짓은 못 하니까. 필요할 때만 잠깐씩 빌려주지 뭐.’
아리에스의 입이 재차 떨어진 것은 10여 분이 흐른 후였다.
“헌데, 이건 어디서 구한 게지? 얼핏 보아도 제대로 된 서적임이 분명한데……. 델레마의 서고에 있는 서책을 자네가 어찌……?”
흑마법서를 접한 충격이 너무나도 컸던 것일까. 그제야 서책의 출처를 궁금해하는 그녀였다.
허나, 굳이 대답을 할 필요는 없었다.
“허……. 이 무슨 운명이란 말인가.”
고개를 든 그녀가 바라본 것은 붉게 물든 나의 눈동자였으니까.
* * *
어느덧 다시 젊은 모습으로 되돌아간 아일레스. 흑마법 중 하나인 변체술을 사용해 외모를 바꾼 그녀였으나.
“햐오! 드디어 다시 젊어졌어! 다신 원래 모습을 찾지 말라구! 그건 숙녀에게 실수야!”
왜인지 말투까지 바뀌어버린 그녀였다.
[무슨 부작용이 말투도 마음대로 바뀌는 거 라냐?]‘마법진 그릴 때 뭐가 잘못됐나 보지.’
어린 외모엔 썩 잘 어울리는 부작용이었기에, 아리에스 역시 굳이 책을 다시 살펴 마법진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너도 델레마 출신이라니!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일이야? 어쩜 좋아?”
나 역시 델레마를 파헤치고 있다는 것은 말해둔 터. 내게 동질감을 느낀 그녀였다.
“일단 여기선 나가자고. 이곳에 계속 있을 순 없으니까.”
“근데, 보스! 질문 있습니다!”
손을 든 채, 뒤에 서 있는 아리에스.
“뭐지?”
“나 여기 있는 마도구들 챙겨가고 싶은데, 어떡하지? 1년 동안 자일로 산맥 넘으면서 가져온 것들이란 말이야.”
그런 그녀에게 앙헬이 한마디 하려는 찰나.
“그쯤은 일도 아니지.”
일리미타의 아공간을 키워냈다.
우우우우……!
평소보다 훨씬 크게 모습을 드러낸 포탈. 그 거대한 아가리로 이곳의 물건들을 삼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게 하나둘씩 연구 자재들을 삼키길 잠시.
“그럼 다시 나가보자고.”
걸음을 다시 옮기려던 때였다.
쿠우우우웅!
순간 전해진 거대한 진동.
‘뭐지?’
신전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