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hides his sword skills RAW novel - Chapter (94)
천재 마법사가 검술을 숨김-94화(94/150)
94화. 설산의 왕(2)
눈앞에 비치는 커다란 주먹. 마치 하늘의 운석이 떨어지듯 내게로 쏘아지는 그것은.
‘너무 빨라!’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속도를 자랑했다.
초근거리에서 직선으로 다가오기에 볼 수 있지, 거리가 멀었다면 간파하지도 못했을 움직임.
타앗!
본능적으로 땅을 박차며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허나 이미 내게 거의 다다른 설왕의 주먹. 그 하얀 운석은 내 다리를 스치며 땅에다 내리박혔다.
쿠아아아아!
설산에 쌓여있던 눈들이 하늘을 향해 튀어 올랐고.
‘……큭!’
그 충격파에 몸이 바닥을 굴렀다.
[괜찮냐!]온몸에 눈을 뒤덮은 것은 괜찮았으나.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아.’
빗맞았음에도 엄청난 위력을 보인 설왕의 주먹. 고작 스쳤음에도 오른쪽 발목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겨우 몸을 일으키던 찰나, 내게 다시금 그림자가 드리워졌으니.
“크아!”
어느덧 다가온 설왕이었다. 그대로 짓밟으려는 듯 높게 치켜든 발. 내 상체만 한 발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 수 있었다. 이번 공격을 절대 피할 수 없을 것이며. 단 한 번의 공격에, 나는 죽고 말 것이라는 것을.
‘젠장!’
다친 다리로는 도무지 놈의 공격을 피할 수도, 막아낼 수도 없었다.
[이런 씨! 천 년이나 기다려서 다시 만났는데!]오베론과 함께 점차 커지는 그림자를 바라볼 때였다.
우우웅!
눈앞에 번지는 빛무리. 무엇인지 판단할 틈도 없었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내 몸을 밀어냈으니까.
툭!
조심스럽게, 허나 힘있게 내 몸을 밀쳐낸 무언가. 누군가의 손길이었다.
‘……!’
단순한 물리력이 아니었다. 푸른 마력이 몸을 감싸 안은 채 몸을 순식간에 이동시켰다.
그제야 빛무리 사이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으니. 앙헬이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블링크!’
블링크 마법을 사용해 내 몸을 밀어낸 그였다.
쿠와아아아아……!
이내 앙헬의 몸을 덮쳐버린 설왕의 발.
“앙헬!”
곧이어 들어 올려진 놈의 발아래에는 앙헬이 사지를 축 늘어뜨린 채 쓰러져 있었다.
설산에 퍼져가는 붉은 핏물.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피가 눈발을 물들이고 있었다.
“안돼애!”
순간 내 입을 비집고 튀어나온 것은 의도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아우성.
앙헬이 없으면 설왕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었고.
앞으로의 행보에 그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앙헬,’
그는 이미 내 동료로서 가슴에 인식되어 있었으니까. 그 자체가 너무도 소중한 존재가 된 터였다.
설왕을 바라보는 눈에는 절로 살기가 맺혀갔다.
‘……이 개 같은 자식이!’
허나,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압도적인 놈의 무위 앞에선 어떠한 전략도 통하지 않을 테니까.
절망적인 상황. 놈은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놈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작은 벌레와 같았으니. 그런 나의 무력함이 스스로를 더욱 분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런 기분도 오랜만이군.’
아도니스였던 때. 검제라는 호칭을 얻은 후로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나를 상대했던 이들은 항상 이런 기분이었을 테지.’
내가 베어냈던 수많은 상대들이 느꼈을 무력감이었다.
그런 자들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이들이 있었으니. 9성급의 대마법사도, 대륙을 휩쓸었다는 기사도 아니었다.
자신이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의지를 불태웠던 이들. 그들이야말로 죽어서도 부끄럽지 않을 자들이었다. 꺼지지 않는 그들의 의지는 적이라 할지라도 존경할 만했으니까.
스릉!
그렇기에 나 역시 검을 꼬나 쥐었다. 그것이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유일한 행동이었으니까.
“크아아아!”
태산같이 느껴지는 놈앞에서 어떤 수를 써도 먹히지 않을 터였지만.
“……그래. 와봐라.”
결코 수치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한 걸음씩 다가오는 설왕.
화르륵!
놈을 보며 파이어볼을 영창했으며.
우우우웅!
온몸의 오러를 팔 끝으로 모아냈다. 프라가라흐를 깨어내기 위함이었다.
‘그놈이라면 저놈의 살갗도 뚫을 수 있겠지.’
다만, 그 지속시간이 너무나 짧았기에, 놈과 맞닿을 최후의 순간을 노릴 뿐.
‘죽더라도 한 방은 먹인다.’
발목이 부러졌기에, 제자리에 선 채 놈을 기다렸다.
화라락!
놈의 타이밍이라도 빼앗아보려 날려 보낸 파이어볼. 그냥 맞아도 별 타격은 없었을 테지만, 불을 싫어하는 까닭일까.
“크아!”
옆으로 몸을 기울여 피해내고 있었다.
‘이걸로 최대한 타이밍을 잡아야 겠어.’
다가오는 놈의 속도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화르륵!
화염구는 계속해서 재소환됐다.
화아아아!
얼굴, 몸통, 팔다리 가릴 것 없이 놈을 향해 날아드는 화염구. 마나를 크게 소모하지 않는 마법이었지만, 생각보다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크아……!”
불덩이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뒤트는 놈. 다가오는 속도를 현저히 줄일 수 있었으니까.
‘뭐 하려는 거지?’
그것도 잠시. 걸음을 떼는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 선 설왕.
크워어어!
놈이 제자리에 멈춰선 채 가슴을 두드렸다.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은데?]날아오는 화염구가 어지간히 귀찮았던 탓일까. 잠시 날 노려본 놈은 이내 다리를 굽혔다.
[아무래도 화염구를 너무 남발한 것 같군.]쿠우우웅!
거대한 굉음과 함께 땅을 박찬 설왕. 그 거체가 무색할 만큼 빠른 속도로 도약한 놈은.
‘이런!’
한 번에 내가 있는 곳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화염구를 쏘아내 보았지만.
쿠워어어!
흥분한 놈은 육탄으로 맞설 뿐 피하지 않았다.
“크아아아!”
공중에서 주먹을 내지르는 설왕. 놈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오베론.’
결국, 다가온 마지막 순간.
‘다시 봐서 즐거웠다.’
프라가라흐에 모든 오러를 흘려보냈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비치는 것은 놈의 거대한 주먹뿐. 그 관절 사이로 검을 찔러넣으려 집중한 때.
“쿠아앙!”
설왕의 우측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
[오?]그쪽을 굳이 바라볼 필요는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미지의 존재는 빠르게 설왕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으니까.
퍼어억!
아니, 정확히는 내려앉은 것이 아니라 설왕의 안면을 가격한 채였다.
“크엑!”
공중에서 그대로 공격을 허용한 설왕. 그 주먹이 내 옆으로 비껴가는 것은 당연지사였으니.
쿠우웅!
애꿎은 눈밭만이 충격에 깊게 패였다.
‘……!’
그제야 눈에 들어온 미지의 존재.
“쿠앙!”
나를 보며 소리치는 녀석은 내가 너무도 잘 아는 존재였다. 솜뭉치 같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녀석.
“라타토스크!”
홀로, 자일로 산맥에 풀어두었던 라타토스크였다.
[호오. 그새 저만큼 성장했구만.]다만, 그 덩치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으니. 어느덧 내 상체만큼 커진 녀석.
“크앙!”
울음소리도 조금은 낮아진 듯했고, 외모도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하아…….’
워낙 긴장했던 탓일까. 녀석의 등장이 이리도 달가울 수 없었다.
“크아아아!”
허나, 그 찰나의 기분조차 만끽할 틈을 주지 않는 설왕. 어느새 일어난 놈은 라타토스크와 날 번갈아 노려보고 있었다.
라타토스크의 공격에 충격이 없진 않았는지.
뚜둑!
고개를 양쪽으로 돌려보며 털어내는 놈이었다.
[라타토스크가 이길 수 있을까?]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라타토스크. 녀석이 잠깐의 변수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아직은 안 되겠지.’
내 고개는 저어졌다. 자일로 산맥의 절대자라는 녀석이지만, 그것도 성체일 때의 이야기. 아직 설왕을 상대하기엔 일렀다.
“쿠앙!”
그럼에도 내 앞을 가로막는 라타토스크. 날 지키려는 듯, 설왕을 마주한 녀석이었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설왕은.
쿠우우웅!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발을 굴렀다.
쿠웅! 쿠우웅!
계속해서 발을 놀리는 놈.
‘무슨 짓이지?’
그 의도는 곧 알 수 있었으니.
[설산이 무너지고 있어.]설산에 쌓인 눈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흥분한 놈이 눈사태를 만들어 우리를 파묻으려 한 것이었다.
앙겔로스의 신전이 있는 이곳은 높은 언덕 사이의 협곡에 위치해 있었기에.
‘이대로면 다 죽어.’
꼼짝없이 눈 속에 파묻힐 운명이었다.
“쿠앙!”
라타토스크 역시 위험한 상황임을 인지한 것일까. 그런 설왕을 향해 달려드는 녀석. 허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퍼어어!
폭탄처럼 쏘아진 주먹질 한 방에.
“쿠!”
옆에 있는 나무로 처박혀버린 녀석이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쿠우우웅!
아랑곳하지 않고 발구름을 이어가는 설왕.
파드득!
그 진동에 놀란 새들이 하늘 위로 날아오를 무렵.
“키에에에에!”
돌연 귓가를 찢을 듯 들려온 울음소리. 설산에 퍼져간 그 괴성은 설왕의 몸짓도 멈추게 만들었다.
울음소리에 담긴 기운은 몸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였으니까.
‘또 뭐지?’
헵타 구역은 설인 만이 서식하는바. 나 역시도 그 정체를 알 수 없었으나.
“서, 성공했어!”
곧이어 들려온 아리에스의 음성. 고개를 돌린 곳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이 비쳤다.
우우웅!
그 발아래엔 엄청난 크기의 마법진이 그려진 채였으니. 눈 위로 그려진 마법진은 검은빛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뭘 불러낸 거야?”
이곳의 제왕인 설왕마저 경계하게 만드는 존재.
“직접 봐.”
아리에스의 손가락이 창공을 가리켰다.
“키에에에에엑!”
이윽고 미지의 존재는 하늘을 나는 새 떼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날개를 펼친 모습이 흡사 새처럼 보일 법했으나.
[호오. 저놈 정도면 상대할 만하겠지.]그 거대한 날개가 태양을 가릴 기세였으니. 절로 안도감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였다.
뼈마디로 이뤄진 거대한 언데드.
흑마법으로 소환해낼 수 있는 최고위층의 언데드 중 하나가 바로 저놈이었으니까.
“본 드래곤이라…….”
죽은 드래곤의 사체를 소환해 내버린 아리에스였다.
본 드래곤이 설왕을 이길 것이란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설왕도 쉽게 이기진 못하겠지.’
놈에게도 역시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테니까. 본 드래곤이라면 우리가 도망갈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어줄 터였다.
“크으으……!”
그 위용에 설왕의 시선 역시 빼앗겼으니. 놈도 더 이상 산사태를 유도하지 않고, 본 드래곤을 응시할 따름이었다.
“아리에스, 잘했어!”
제대로 사고를 내버린 아리에스. 대단한 능력자임에는 틀림 없었다.
죽은 자를 소환해내는 의식 중,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본 드래곤.
아무리 서적을 보고 따라 했다지만, 한 번에 놈을 소환해낸다는 것은 보통 재능이 아니었으니까.
“이 책만 보고 따라 하면 어지간한 건 할 수 있다고!”
그간 들인 노력을 한 번에 보상받은 듯이, 아리에스의 눈시울이 촉촉해진 채였다.
“키에에에엑!”
점차 다가오는 본 드래곤.
‘어서 와서 활개 쳐라.’
녀석에게 모두의 시선에 쏘아진 그때.
[뭔가 이상한데?]놈을 바라보는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원래 본 드래곤은 머리가 없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이쪽으로 날아오는 놈의 기다란 목 위엔, 머리통이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