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hides his sword skills RAW novel - Chapter (99)
천재 마법사가 검술을 숨김-99화(99/150)
99화. 앙헬 브리먼
“……수왕족이라고?”
카리스를 향해 재차 고개를 돌린 아리에스.
“흐익! 진짜 반인반수네!”
로브 후드를 벗은 카리스의 맨얼굴이 드러난 채였다. 조금은 창백한 피부색과 로브 자락 끝으로 삐져나온 손가락. 그 사이에 있는 물갈퀴들이 그녀의 정체를 방증하고 있었다.
다만 반인반수는 수왕족뿐만 아닌, 모든 수인족들이 싫어하는 말이었기에.
“저 요망한 아해는 입을 찢어놓을 필요가 있겠구나! 감히 반인반수라 했느냐!”
수왕족장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나 로브 후드를 벗어버린 카를레스. 그의 창백한 피부 위로는 힘줄이 돋아난 채였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온 것은 왜였을까. 말을 가려 하지 못하는 아리에스와 불같은 성격의 카를레스. 둘 덕분에 일이 하나 늘어난 기분이었다.
[앞으로 며칠간 골치 좀 아프겠구만.]한참의 실랑이 끝에 카를레스는 겨우 진정됐고.
“아!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냥 잠깐 나가 있어.”
아리에스는 결국 복도로 쫓겨나고야 말았다.
‘앙헬이 깨어있었으면, 사일런트 마법이라도 걸어버렸을 텐데.’
흑마법의 부작용. 그녀를 입단속 시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
겨우 조용해진 상황. 그제야 카리스가 집중하기 시작했으니.
“우선 진찰부터 해볼게요. 어디가 안 좋은질 파악해야 해서요.”
모두의 시선이 소녀의 손끝으로 모였다.
우우웅!
그 끝에 푸른 기운이 일렁이자, 손을 뻗어 앙헬을 훑기 시작하는 카리스.
머리에서부터 시작된 그 손길이 가슴팍을 지나칠 즈음이었다.
“으음…….”
이내 그녀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군.]그렇게 5분여간 진행된 카리스의 진찰. 어느새 앙헬의 발끝까지 훑어낸 카리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였다.
“……어떤 것 같아?”
모든 이가 소녀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상황.
“생각보다 많이 심각해요. 지금 숨이 붙어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요.”
내저어진 그녀의 고개에 일행들의 탄식이 흘렀다.
“어디가 다쳤는지 정밀하게 파악하는 데만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아요.”
“그 정도야?”
“네. 뼈가 부러지지 않은 부위가 없어요. 그러면서 근육들도 꽤나 손상되었고요. 다친 곳을 모두 파악해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어요.”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설왕의 발에 깔아뭉개졌으니, 성한 곳이 있을 리 만무할 테니까.
“그리고 가장 심각한 건…….”
말을 잇는 카리스의 표정이 한층 심각해졌다.
“심장 쪽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아요.”
“어떤데?”
“그 역시도 자세히 살펴봐야 알겠지만, 가장 크게 다친 부위에요.”
절로 두 눈이 감겼다. 목숨과도 직결되는 부위. 심지어 마법사인 앙헬에겐 더욱 중요한 곳이었으니, 마나 써클이 감도는 곳이었다.
“……부탁 좀 할게.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해줘. 무엇이든 구해올 테니까.”
카리스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우선 오늘은 상태부터 완벽하게 파악해볼게요. 치료에 대한 가능성은 그다음에 말씀드릴 수 있어요.”
재차 손에 푸른 기운을 물들이는 카리스.
“그럼 다른 분들은 잠시 나가주세요. 집중해야 해서요.”
작은 몸집의 소녀는.
앙헬을 향해 커다란 손길을 내밀었다.
* * *
후우우…….
을씨년스러운 밤바람이 옷깃을 스쳐 지나갔다. 카리스에게 앙헬의 진찰을 맡겨둔 후 홀로 밖으로 나온 터였다.
[걱정되냐?]‘그걸 말이라고.’
원래도 앙헬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은 예상했지만. 카리스에게 직접 들은 것은 그 이상이었다.
[그래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대게 치료사들은 더 부정적으로 말하는 법이거든.]‘……그러길 바라야지. 그래도 하필 심장이라니.’
우울감이 몰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라프텔 마을 외곽을 산책하며 머리를 식힐 따름이었다.
[앞으로 할 일에 큰 도움이 될 녀석이었는데.]‘그러게. 앙헬의 도움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단순히 그의 무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원심회의 리더. 대륙 전역에 퍼진 거대한 비밀조직의 수장이 가진 능력은 상상 이상일 테니까.
물론, 전언자로 인정받은 이상, 나 역시 그 역할을 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원심회를 잘 아는 녀석이니까.’
원심회의 생리를 잘 아는 그와는 뽑아낼 수 있는 효율이 달랐다.
더구나, 내겐 그 외에도 할 일이 차고 넘쳤다. 현재 가진 걱정은 앙헬뿐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나저나 마탑 생활하면서 흑마법은 어떻게 파헤친다.’
아리에스를 만나게 된 이상, 흑마법에 대해서도 알아보아야 할 터.
다만, 일주일 후면 마탑의 새 학기가 시작되기에 적절한 방안이 없었다. 마탑 주변에서 흑마법의 기운을 흘린다면, 고위급 마법사들이 눈치챌 테니까.
[흑마법의 마력이 새어나가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야겠군.]‘마력이 새어나가지 않는 공간이라…….’
그렇게 라프텔 외곽의 공터에서 사색에 잠겨가던 때. 오베론과 내 시선이 허공에서 만났으니.
‘누구지?’
바로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운 탓이었다. 고작 두세 걸음 떨어져 있을 정도의 거리.
‘기척을 전혀 못 느꼈어.’
천천히 검 자루에 손이 올라갔고. 오베론의 시선은 뒤쪽으로 향했다.
[엥?]오베론이 재차 입을 떼려는 순간.
타앗.
내 손에 닿는 무언가. 누군가 검 자루를 쥐려던 내 손을 막아내고 있었다.
“워워. 나일세.”
물갈퀴가 달린 커다란 손이었다.
‘카를레스?’
[방금까지 뒤에 있더니, 갑자기 또 앞으로 튀어왔네.]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의 경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9성의 반열임에는 틀림없을 터. 지금의 내가 알아차릴 수야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기척도 숨기시고 오셔서 긴장했습니다.”
“후후. 언제 알아차릴 수 있나 싶어서 장난기가 발동했지.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감각이군. 원래는 자네 등을 터치해서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카를레스.
“역시 그란텔이 말한 대로 보통 소년은 아닌가 보군.”
“과찬이십니다. 마음먹고 하셨으면, 전 절대 느끼지 못했겠죠.”
“하하! 그렇고말고!”
역시나 단순한 그였다.
“헌데 이곳은 왜 찾으신 겁니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 참! 그란텔 그 친구가 출발 전에 내게 따로 부탁을 하나 하더군.”
“부탁이요?”
웃음기가 빠진 그의 눈빛이 내게로 쏘아졌다.
“자네에게 훈련을 시켜주라고 말이야.”
“네? 훈련이라면…….”
난데없는 이야기에 진의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래. 자네가 에고의 미래를 바꿀 거라며, 우리 역시도 자네의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하더군.”
그 말과 함께 품속에서 삼지창을 꺼내 드는 카를레스.
우우우웅!
3미터가량의 길이로 자라나는 금빛 창이었다.
“오랜 벗이 부탁하니, 나도 흥미가 생기지 뭔가. 가끔 이상한 소릴 하긴 해도, 틀린 말은 안 하는 친구이거든.”
“아……!”
채 말을 끝내기도 전.
“그럼 받아들인 것으로 알겠네.”
후우우웅!
횡으로 창을 휘둘러오는 카를레스.
‘이런!’
가까스로 고개를 숙여 피해냈다.
“갑자기 이러시는 겁니까!”
그의 손이 재차 삼지창을 움켜쥐었다.
“그러면, 내 가르침을 마다할 것인가?”
이번에는 꼬나쥔 창을 그대로 찔러내는 카를레스였다.
‘해보자 이거지?’
우우웅!
순간적으로 발끝으로 모여든 오러.
탓!
좌측으로 몸을 던지며 검을 빼 들었다.
[그래. 머리가 복잡할 땐, 몸 쓰는 게 최고지]결국 카를레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터였다.
‘오랜만에 강자랑 검을 섞어 보는구나!’
갑작스럽긴 했지만,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아도니스 때의 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승리를 확신하기 어려운 강자였으니까.
본디 자신보다 강한 자와 검을 섞을 때, 실력도 급성장할 수 있는 법. 지금의 내게 그는 까마득한 존재였으니,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이제 할 마음이 들었나 보군.”
검을 들어 자세를 잡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수를 상대로는 찰나의 호흡도 흐트러트릴 수 없었으므로.
후우우웅!
강한 바람과 함께 휘둘러져 오는 삼지창. 이번에도 역시나 가로로 뻗어오는 금빛 무리였으니.
우우웅!
어느덧 프라가라흐 위에는 오러가 덧붙여졌다.
[오오, 처음부터 제대로 하는구만!]‘아껴둘 실력이 없을 뿐이야!’
카를레스의 창에 실린 기세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질 정도였으니. 오러 없이 맞닿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카아아앙!
금빛 오러와 금빛 창살의 만남.
“커헉!”
그 찬란한 만남 끝엔 짧은 외마디 비명이 이어졌다.
[……완력이 미쳤구만.]고작 한 번의 합이건만, 수십 발걸음은 뒤로 밀려났으니. 역시나 그의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오호. 그 기운은 인간들에게서 사라진 것 아니었나?”
“검을 쥐기 위해 다른 방법으로 연습했습니다.”
오러의 정체를 알아본 카를레스. 그의 눈이 잠시 반짝이나 싶더니.
“흐음. 신기하긴 하다만, 아직 너무 약하군. 고작 이 정도였나? 이럴 거면 그냥 검술은 접고 마법에 전념하는 것이 더 낫겠어.”
그의 도발이 이어졌다.
‘칫.’
그가 의도적으로 내 자존심을 긁어낸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지닌 근성을 보려는 것일 테니까.
‘이대로 물러서면 내가 아니지.’
그에 화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릉!
손바닥이 아려오는 것도 잊은 채, 그를 향해 재차 검을 겨눴다.
* * *
카아아아앙!
결국, 손아귀에서 놓쳐버린 프라가라흐. 손끝을 타고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 정말 질리는 정신력이군. 알겠으니 이제 그만 좀 하자고. 벌써 아침이야.”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젓는 카를레스. 횟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합을 겨눈 우리였으니. 어느덧 새벽 동마저 터 오르고 있었다.
‘큭!’
손가락이 굽혀지지도 않는 손. 땅에 떨어진 프라가라흐를 겨우 챙겨 넣자.
“인정하지. 자넨 자세도 괜찮고, 근성은 더욱 쓸만하군.”
그제야 카를레스의 칭찬이 허락되었다. 비로소 그의 훈련을 받을 진짜 자격을 부여한 것이리라.
“……고맙습니다.”
“검은 누구에게 배운 거지? 기본기가 아주 좋던데. 분명 훌륭한 스승일 테지.”
그 말에 하품을 쩌억 하는 오베론.
[짜식이. 보는 눈은 있구만.]유일하게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는 그 뿐이었다.
“흐음. 그렇다고 해서 배울 게 없는 건 아니야. 오늘은 내가 봐주었으나, 제대로 한다면 자넨 나와 한 번의 합도 겨루지 못하겠지.”
맞는 말이었다. 일부러 내가 대응할 수 있게끔 직선적인 공격만 해온 카를레스. 그가 정말로 진심을 다했다면,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 채 머리가 달아났을 테니까.
“많이 봐주신 덕입니다.”
“그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자네도 더 이상 검을 쥘 수 없고. 손님도 찾아온 것 같으니.”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 그 끝에는 굳은 표정의 카리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카리스……? 무슨 일이야?”
가까이에 온 그녀의 눈가엔 한 없이 슬픔이 가득했으니.
“이안 님…….”
순간 몰려든 불안감이 전신의 피로를 잊게 했다.
“……앙헬 님의 심장이 멎어버렸어요.”
청천벽력이었다.